수행기

절에서 명상하니 저절로, 재가안거 20일차

담마다사 이병욱 2023. 8. 20. 08:54

절에서 명상하니 저절로, 재가안거 20일차

 


절에 가면 저절로 되는 것 같다. 오늘 아침이 그랬다. 아침좌선이 대체로 잘 되었다. 막판에 눈 앞이 훤해졌기 때문이다.

테라와다 재가안거 20일째이다. 오늘도 어제에 이어 등명낙가사에서 명상했다.    약사전에서 한 것이다.

 


어제 대웅전에서 30분 앉아 있었다. 시계 초침소리때문에 집중이 어려웠다. 오늘은 시계가 있는 법당을 피하고자 했다. 그래서 들어간 곳이 약사전이다.

임해자연휴양림에서 이틀 밤을 보냈다. 2박 3일 일정이다. 연박이다. 매일 옮기는 것보다 훨씬 편하다. 하루밤 머물고 떠난다면 낮 12시까지는 비워주어야 한다. 청소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오후 3시에 새로운 손님을 받는다. 그러나 연박하면 비워줄 염려는 없다.

여행지에서도 안거는 계속되어야 한다. 등산모임에서도 안거는 계속되어야 한다. 하루 한시간 앉아 있기로 결의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행지에서 한시간 앉아 있기가 쉽지 않다. 일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의 타협을 본 것은 30분 앉아있기이다. 30분이면 부담없을 것 같았다.

휴양림에서 좌선하기가 쉽지 않다. 여러모로 번거롭다. 임해자연휴양림 바로 옆에 등명낙가사가 있어서 그곳으로 간 것이다. 이틀째인 오늘은 느긋하게 7시 반이 넘어서 출발했다.

어제 등명낙가사에 왔었다. 대웅전에서 30분 좌선했었다. 16년만에 온 등명낙가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동해바다가 바라보이는 아름다운 사찰이다. 등명루는 바다를 조망하기 좋은 곳이다. 대웅전에서도 바다가 보인다.

 

하루 온 것이 익숙해진 것 같다. 차를 절 가까이 대고자 했다. 아래 대형주차장이 있지만 절 바로 아래에도 주차장이 있는 것을 알았다. 제2주차장이라 할 만하다.

제2주차장을 찾아가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 산꼭대기 방향으로 올라 간 것이다. 차도 다니지 않는 산길 도로이다. 아마 송신탑 가는 길일 것이다. 이왕 가는 김에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괘방산 거의 정상에 이르렀다. 계속 간다면 한없이 산길을 갈 것 같았다. 어느 정도 높이에 이르자 멈추었다.

아래를 보니 바다가 보였다. 인적이 끊어진 곳이다. 온도와 습도는 적당하다. 준비해 온 커피를 마셨다. 외딴 길 산속에서 커피는 최상의 맛이다. 길을 잘못 들었을 때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오던 길로 다시 내려 갔다. 기어를 1단으로 놓고 천천히 내려 갔다. 다행히 올라오는 차는 없었다. 아마 일년 열두달 거의 없을 것 같다. 마침내 제1주차장에 이르렀다. 일주문을 돌아서 목적지인 제2주차장에 이르렀다. 제대로 온 것이다.

토요일 아침이다. 오전 8시대에 사람들은 거의 없다. 점심 때 쯤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종무소에서 돈을 바꾸었다. 이법당 저법당 불전함에 넣을 돈이다.

오늘은 약사전에서 좌선하기로 했다. 그곳에는 시계가 없을 것 같았다. 초침소리가 명상에 방해가 된다.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시계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약간 시끄러웠다.

종무소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또한 굴착기로 공사하는 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이런 소음은 문제 되지 않는다. 주기성을 띠지 않기 때문이다.

소음은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주기성을 띠는 것이다. 초침소리나 기계음은 주기성을 띤다. 이런 주기성은 집중을 방해한다. 주기성 소리에 마음이 빼앗기면 집중하기 힘들다.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는 빠라맛타(실재)라고 할 수 있다. 공사중에 나는 소리도 실재이다. 그러나 초침소리나 기계음같은 소리는 빠라맛타라기 보다는 빤냣띠(개념)에 가깝다. 사람의 마음을 거기에 계속 묶어 두기 때문이다.

대상과 일치 했을 때, 대상과 붙어 버렸을 때 이를 사마타라고 한다. 그런데 사마타는 빤냣띠를 대상으로 한다는 사실이다. 호흡명상도 빤냣띠가 될 수 있다. 호흡에 마음을 붙여 버리면 호흡은 개념이 되어 버린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실재를 보지 못했을 때 개념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초침소리와 기계음도 이와다르지 않을 것이다.

 


약사전 법당에 자리 잡았다. 오전 8시 반에 앉았다. 알람은 30분으로 설정해 놓았다. 이른 아침에서인지 아무도 없다. 너른 법당에 나 혼자만 앉아 있다.

방석은 두 개 준비했다. 하나는 바닥에 깔고 또 하나는 접었다. 엉덩이를 받칠 것이다. 평좌를 했다. 두 손은 손바닥을 아래로 하여 무릎에 두었다. 이것이 나의 가장 안정적 자세이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달려가기만 하면 된다. 시동을 걸었다. 처음부터 배의 호흡을 본 것이다. 배의 부품과 꺼짐을 계속 관찰하는 것은 시동을 거는 것과 같다.

명상환경은 좋다. 무엇보다 법당이다. 법당은 대체로 명당에 위치한다. 땅의 기운이 가장 센 곳이다. 그래서 사찰순례 가면 단 5분이라도 법당에 앉아 명상하라고 한다.

법당은 천상과 다름 없다. 법당을 장엄한 것을 보면 천상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더구나 불상까지 있다. 명상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은 없다.

배의 부품과 꺼짐에 집중했다. 그러나 명상환경이 너무 좋아서인지 움직임이 잘 잡히지 않는다. 너무 고요해서 숨소리까지 들릴 듯 하다. 가만 앉아 있어도 명상이 저절로 되는 것 같다. 사띠가 금방 확립되었다. 번뇌망상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최상의 명상조건이다.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왜 사람들이 조용한 심산유곡에서 명상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더구나 아침햇살이 법당 내부를 훤히 밝히고 있다. 눈을 감았지만 밝은 느낌이다.

배의 움직임은 거의 없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을 어디에 둘지 몰랐다. 감은 눈에 환함을 느꼈다. 환한 것을 대상으로 해 보았다. 그러나 오래 가지 못했다. 이내 어두워졌다.

마음은 늘 대상에 가 있다. 또한 마음을 대상에 가 있게 할 수도 있다. 마음이 때로 저 먼나라가 가 있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명상중에는 마음은 항상 주대상에 가 있어야 한다. 마하시전통에서는 배에 가 있으라고 한다. 배의 부품과 꺼짐을 보라는 것이다.

마하시전통에서 배는 베이스캠프와 같은 것이다. 망상이 일어나면 "망상, 망상"하면 주 관찰대상인 배로 가는 것이다.

약사전에서는 명상이 너무 잘 되었다. 무엇보다 소음에서 자유로웠다. 이런 환경에서 가만 앉아 있기만 해도 저절로 명상이 되는 것 같았다. 그저 가만 앉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눈 앞이 밝아졌다. 이러기를 몇 번 반복했다.

잘 하면 빛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호흡과 함께 해야 한다. 호흡이 빛으로 변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전현수 선생의 유튜브에서 본 것이다. 최근에는 밴드에서도 보았다.

담마와나선원 밴드에 매일 올리고 있다. 어떤 법우가 니밋따에 대한 글을 올렸다. 법우는 "니밋따를 꼭 체험하기를 기원드립니다."라고 써 놓았다. 법우의 글에 따르면 "니밋따를 체험하게 되면 수행이 전쟁이 아니라 늘 만나는 일상이 될것입니다."라고 했다. 이어서 "호흡이 처음에는 부드러운 공기 덩어리 하나가 코속으로 들락날락 합니다. 그 덩어리가 하얗게 변합니다. 그 하얀 빛덩어리와 함께 희열이 찾아 오는데 그 희열은 언어로 표현이 안됩니다."라고 했다.

 


니밋따는 수행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호흡과 관련되어 있다. 눈 앞이 환한 상태에서 배의 부품과 꺼짐을 지켜 보았을 때 점점 밝아 왔다. 이렇게 주욱가면 될 것 같았다. 그때 알람이 울렸다. 참으로 아쉬웠다. 알람을 멈추고 계속하고자 했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그만 두었다. 다만 방법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30분 좌선이 끝났다. 오늘 좌선은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소음에서 자유로움이 가장 큰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절의 기운이 작용한 것 같다. 절에서 명상하니 저절로 되는 것 같았다.

2023-08-1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