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권당(百卷堂) 현판을 달고
나도 집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름하여 백권당(百卷堂)이다. 왜 백권당인가? 책이 백권 있는 집이기 때문에 백권당이다.
오늘 백권당 현판이 도착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것이다. 현판 전문제작업소에 맡긴 것이다. 그런데 한번 잘못 제작 되었다. 일주일 전에 만든 것을 받아 보니 한자어 백(百)이 잘못 기입된 것이다. 날 일자 가운데 한 획을 빼먹은 채로 왔다.
품질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담당에게 전화해야 할 것이다. 한 획을 칠하지 않았기 때문에 칠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담당은 다시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품질사고가 났을 때 대응이 빨라야 한다. 명백히 잘못된 것은 사과를 하고 다시 만들어 주어야 한다. 설령 고쳐서 쓸만한 것이라도 고객의 입장에서 본다면 불쾌한 것이다. 고객의 입장에서 처리해 주면 문제가 없다.
백권당 현판을 다시 받았다. 이번에는 제대로 칠이 되어 있다. 나무로 된 판에 글씨를 양각했다. 양각한 글씨 위에 흰 칠 했다. 나무 색깔에 ‘百卷堂’이라는 흰 글씨가 돋보인다.
현판을 받았으니 달아야 한다. 현판 위에는 고리가 있어서 달게 되어 있다. 사무실 입구 상호 아래가 적합할 것 같았다. 마침 스크류형 못이 있었다. 십자드라이버로 돌리니 쉽게 박혔다.
현판을 달았다. 이전 보다는 돋보인다. 이전에는 상호만 있어서 일반 사무실처럼 보였으나 지금은 안에 무언가 있는 것처럼 무게가 느껴진다.
나에게는 여러 개의 이름이 있다. 실명도 있고 법명도 있다. 예전에는 필명도 있었다. 나를 나타내는 것 중에는 블로그 이름도 있다. 또한 나를 나타내는 것 중에는 상호도 있다. 여기에 백권당이라는 이름이 하나 더 추가 되었다.
백권당은 책이 백권 된다고 하여 백권당이다. 책장에 책이 백권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백권이 아니라 천권, 만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직접 쓴 책은 많지 않다.
백권당은 직접 쓴 책이 백권이 된다는 말이다. 블로그에 써 놓았던 것을 시절인연이 되어서 시기별로 또는 카테고리별로 묶어 놓다 보니 백권이 되었다.
책을 쓰기 위한 책은 쓰지 않는다. 글을 쓰다 보니 책이 되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책 만들기가 너무나 쉽다는 것이다. 목차를 만들고 서문을 쓰면 책이 뚝딱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든 책이 백권이다.
백권당이라는 당호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소설가 정찬주 선생이 이름 지어 주었다. 백 번째 책을 만들었을 때 백권당으로 하면 어떻겠느냐고 댓글을 달아 준 것이 발단이 되었다.
백권당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이왕이면 호(號)로도 사용하고 싶었다. 이에 작가는 동의해 주었다. 매월당 김시습이 있는데 당자가 들어 가는 것으로 보아 사용해도 무방할 것이라고 했다.
이름이 자꾸 늘어나는 것 같다. 글을 쓰고 나면 글에 대한 무한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로 서명한다. 날자와 함께 ‘담마다사 이병욱’이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욕심이 난다. ‘백권당 담마다사 이병욱’으로 하면 어떨지에 대한 것이다.
공산권 국가에서는 수령을 칭하는 명칭이 길다. 옛날 사람들의 관직명도 길었다. 부처님의 명호도 길다. 그 사람을 지칭하는 명칭이 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그 만큼 그 사람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까지 이름 석자로 충분했다. 글을 쓰면서부터는 법명을 앞에 붙이게 되었다. 이전에는 스스로 지은 필명을 붙였다. 그래서 ‘진흙속의연꽃 이병욱’이라고 서명했다. 지금은 ‘담마다사 이병욱’이다. 여기에다 ‘백권당 담마다사 이병욱’이라고 하면 너무 나간 것은 아닐까?
백권당은 ‘백권의 집’이라는 말과 같다. 직접 쓴 글에 대한 책이 백권이라는 말이다. 이런 말은 가족에게도 자랑할 만하다. 물질적으로 가진 것은 별로 없지만 남들이 가지지 못하는 것을 가졌기 때문이다.
백권당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든다. 정찬주 작가는 ‘백권당거사’라고 말한바 있다. 수행도반 이학종 선생은 ‘백권당선생’이라고 칭한 바 있다. 이렇게 나에게 또 하나 이름이 생겼다.
오늘 백권당 현판을 달았다. 혼자 달았기 때문에 현판식은 없다. 다만 글로서 자축한다. 그리고 기록을 남긴다. 이런 이름을 지어준 정찬주 작가에게 감사드린다. 백권당, 누구에게나 자랑하고 싶은 이름이다. 누군가 불러 주었으면 하는 이름이다.
2023-08-21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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