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을 것이 없는 사람은
오늘 상호 간판을 만들었다. 그리고 사무실 출입문 바깥쪽에 달았다. 예아트 상호를 말한다.
그동안 상호를 방치 했었다. 무려 16년 내버려 둔 것이다. 9월 23일 정평불 북콘서트를 앞두고 교체하고자 했다.
16년동안 임시 명판을 사용했다. 흑백 프린터에 고딕체로 인쇄한 것이다. 사무실에 찾아 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내버려 둔 것이다.
무엇이든지 생각날 때 해야 한다. 어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달아날 까봐 노트에 기록해 두었다.
나를 나이게끔 인식하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름이 대표적이다. 실명이야말로 나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름과 얼굴이 매칭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나타내는 것은 많다. 인터넷 시대에 필명도 해당된다. 블로그에 필명을 진흙속의연꽃이라고 했다. 블로그 글을 통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필명이 익숙할 것이다.
나를 나타내는 것에는 법명도 있다. 요즘은 담마다사라는 빠알리 법명을 사용한다. 법의 거울이라는 뜻이다. 한자어로는 법경이 된다. 글을 마칠 때 날자와 함께 법명과 실명을 서명한다.
나를 나타내는 것 중에는 상호도 있다. 회사이름을 말한다. 일을 할 때는 상호가 나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상호는 예아트이다. 상호를 세 번 바꾸었는데 최종적으로 예아트로 정착 되었다. 이전에는 인드라미디어, 예맥아트워크라고 했다. 두 상호는 각각 1년 가량 지속되어서 단명으로 끝났다.
회사 상호를 지을 때 고심했다. 나의 정체성과 하는 일을 나타내고자 했다. 최초로 지은 이름은 인드라미디어였다. 2005년의 일이다.
왜 인드라미디어라고 했는가? 인드라라는 말은 인드라의 그물망을 의미한다. 미디어는 내가 하는 일과 관련 있다. 셋톱박스를 제조해서 판매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인드라미디어는 1년 갔다. 다음에 지은 이름은 예맥아트워크이다. 왜 예맥아트워크인가? 예맥이라는 말이 좋았다. 우리 민족의 옛이름이기도 하다. 아트워크는 하는 일과 관련이 있다. 아트워크라는 말은 인쇄회로기판설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맥아트워크 역시 오래 가지 못했다. 1년 정도 사용한 것 같다. 세 번째 상호는 현재 사용중에 있는 예아트이다. 왜 예아트인가? 이는 예술과 아트워크의 합성어이다. 또한 이전 상호인 예맥아트워크의 줄인말이기도 하다.
예아트 상호는 2007년 이후 지금까지 16년 사용하고 있다. 도메인 등록도 해 놓았다. 홈페이지를 만들어 키워드광고 할 때도 예아트 상호를 사용하고 있다.
2007년 현재 사용 중에 있는 사무실에 입주했다. 비록 원맨컴퍼니에 지나지 않지만 회사처럼 보이고자 노력했다. 상호를 만들고 도메인 등록을하고 키워드광고를 하는 등 외형적으로는 회사 형태를 갖춘 것이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직원이 없는 일인사업체이다. 원맨컴퍼니에 원맨사장이다.
사업은 예전 같지 않다.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40대 후반이었다. 16년이 흐른 현재 간신히 유지 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예전에는 주문이 밀려 겹치기 하는 날도 있었으나 지금은 노는 날이 압도적으로 많다. 고객도 나이를 따지는 것일까?
큰 욕심 내지 않는다. 사무실 유지할 정도면 충분하다. 일감이 많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일이 많으면 글 쓰는 시간이 줄어 들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이렇게 오래 있을 줄 몰랐다. 2007년에 임대로 입주 했을 때 모든 것이 불확실 했다. 한해, 두해 지나다 보니 10년이 지났다. 또 다시 해가 지나다 보니 16년 되었다.
현재 위치에서 16년 보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특별한 일 없으면 이대로 갈 것 같다. 일감이 있으면 일을 하고, 일감이 없으면 노는 입에 염불한다고 글을 쓰는 것이다. 이제까지 이런 세월을 살아 왔다.
올해 들어 바뀐 것이 많다. 사무실은 그대로인데 생각이 바뀐것이다. 대표적으로 사무실 이름을 지은 것이다. 백권당으로 지었다.
백권당 현판을 만들어 붙였다. 이렇게 한 것은 북콘서트를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명상공간에 매트도 깔았다. 방석도 열 개 구입했다.
처음으로 지난 8월 26일에 북콘서트가 열렸다. 능인선원불교교양대학 동기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이제 두 번째 콘서트를 앞에 두고 있다.
두 번째 콘서트를 앞두고 상호 간판이 거슬렸다. 그 동안 임시로 붙여 놓은 것이 보기 싫은것이다. 그 세월이 무려 16년 되었다. 이제는 바꾸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렇다고 큰 것은 아니다. 가로 295미리에 높이 85미리에 지나지 않는다. 사무실 출입문 입구에 가로로 달 것이다.
어디서 상호 간판을 만들어야 할까?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다.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다.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문구점에 가는 것이다. 디자인은 되어 있기 때문에 컬러 인쇄하여 코팅하면 되는 것이다.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만안구청 맞은편 안양로에 있는 문구점에서 원하는 형태를 만들었다. 본래 명조체였으나 너무 얇게 나와서 윤명조체로 바꾸었다.
글자에 컬러를 입혀서 출력했다. 그리고 코팅 처리했다. 명패 판에 끼워 보니 딱 맞았다. 디자인도 만족스러웠다.
회사 명패를 달았다. 이전에 흑백 프린터로 인쇄한 것을 떼어내고 컬러풀한 것으로 교체하니 산뜻해 보였다. 무려 16년만에 교체한 것이다.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좋을 것이 없다. 너무 나 자신에 대해 알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지나치게 자신을 드러내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어제의 일이다. 아내가 카톡에 공유해 준 것이 있다. 법정스님 글이다. 누군가 나레이션한 것이다. 제목은 "위로 한답시고 내속을 전부 드러내 보이지말라"라고 되어 있다. 이런 류의 영상은 종종 접한다. 아마 플라톤의 인간관계론이 시초일 것이다.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매일 글을 쓰고 있다. 이런 행위는 나를 지나치게 드러내는 것이다. 가족 얘기는 절대 쓰지 않겠다고 하지만 은연 중에 드러낼 수 있다.
자신을 드러내서 좋을 것이 없다. 특히 가진 사람들이 그렇다. 부와 명예와 권력을 가진 자들은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자들은 드러내도 괜찮을 것 같다. 왜 그런가? 잃을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오늘 많은 것을 드러냈다.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쓴 것이다. 이런 글이 약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드러내는 것은 잃을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2023-09-05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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