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좌선이 힘들다고 하지만, 재가안거 24일차

담마다사 이병욱 2023. 8. 23. 10:08

좌선이 힘들다고 하지만, 재가안거 24일차
 
 
좀처럼 수행의 진척이 없다. 어제와 특별히 나아진 것이 없다. 오히려 퇴보하는 것 같다. 해태와 혼침으로 보낸 두 번의 좌선이 되었다.
 
재가안거 24일차이다. 매일 새벽 일어날 때 오늘 아침 좌선을 염두에 둔다. 모든 포커스는 좌선에 있다. 아침에 샤워를 하는 것도, 아침에 뉴스나 인터넷을 보지 않는 것도, 아침에 적당이 먹는 것도 좌선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다.
 
수행은 대단한 결심을 필요로 한다. 엄청난 결심을 하지 않으면 앉아 있을 수 없다. 한시간 앉아 있기가 쉬운 것이 아니다. 결심이 없다면 5분 앉아 있기도 힘들 것이다.
 
좌선이 힘들다 하지만 외우기보다 더 힘들까?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은 아마 경 외우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외우기에 비하면 글쓰기는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경이나 게송을 외우기 위해서는 대단한 결심을 필요로 한다.
 
경을 외운지 19년 되었다. 처음 경을 외운 것은 2004년 가을의 일이다. 금강경 공부할 때 금강경을 외웠다. 모두 5,249자의 금강경을 한달 보름가량 걸려 외웠다.
 
무엇이든지 한번 경험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쉬워진다. 이른바 요령이 생겼기 때문이다.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경외우기도 요령을 알고 방법을 알면 외우기가 쉽다. 이후에 반야심경, 천수경, 법성게 등 한문경전을 차례로 격파해 나갔다.
 
한번 경 외우기 시동을 걸자 빠알리 경도 외우게 되었다. 2011년에 처음으로 라따나경을 외웠다. 수타니파타에 실려 있는 보배경(Sn2.1)을 말한다. 이후 멧따경(자애경, Sn1.8), 망갈라경(축복경, Sn2.4), 초전법륜경(S56.11), 팔정도분석경(S45.8), 십이연기분석경(S12.2), 죽음의 명상 게송 등 수많은 경과 게송을 외웠다. 가장 최근에는 빠다나경(정진의 경, Sn3.2)을 외웠다.
 

 
경을 외울 때 사는 맛이 난다. 경을 한 게송, 한 게송 격파해 나갈 때 살아 있음을 실감한다. 마침내 모두 다 외웠을 때 그 기쁨과 환희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마치 큰 깨달음을 얻은 것과 같다. 무엇보다 해냈다는 성취감이다. 마치 승리자가 된 것 같았다.
 
경을 외우기가 쉽지 않다. 대단한 결심을 하지만 짤막한 사구게 하나도 외기가 쉽지 않다. 하물며 십여 개 또는 이십 여 개나 되는 게송을 막힘 없이 외웠다면 그 성취감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된다.
 
돈이나 물질적 재물은 사라지고 만다. 누군가 훔쳐가기도 한다. 그러나 한번 외워 놓은 경이나 게송은 누군가 훔쳐갈 수도 없다. 또한 사라지지도 않는다. 항상 자신과 함께 한다. 그래서 마음의 재물이라 했을 것이다.
 
매일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글쓰기, 경전읽기, 경암송하기, 그리고 경외우기이다. 이 중에서 가장 쉬운 것은 글쓰기이다.
 
글쓰기는 생활화가 되어 있다. 자판만 두드리면 되고 엄지로 치기만 하면 된다. 하루종일이라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경전읽기도 의무적으로 하고 있다. 경전읽기를 생활화 하기 위해서 머리맡에 놓고 읽는다. 요즘은 상윳따니까야를 읽고 있다. 이전에는 디가니까야를 읽었고, 그 이전에는 맛지마니까야를 읽었다.
 
하루에 한두경 읽는다. 새기며 읽다 보니 반년 이상 걸린다. 맛지마니까야는 6개월 걸렸고, 디가니까야는 8개월 걸렸다. 상윳따니까야는 1년이상 예상 하고 있다. 동시에 논서도 읽고 있다. 요즘 읽고 있는 논서는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이다.
 
경을 암송하는 것도 의무적이다. 이는 애써 외운 경을 잊어 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외운다. 그러나 무엇보다 행선이나 좌선에 임하기 전에 외운다. 경을 외우고 나면 집중이 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암송에서 형성된 집중을 행선이나 좌선에 이용하기 위함이다.
 
쓰기, 읽기, 암송하기, 외우기는 의무적으로 해야 할 것들이다. 이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외우기이다. 경을 외운 다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한다. 발음하기도 생소한 빠알리어를 생째배기로, 우격다짐으로 외우는 것이다. 물론 뜻도 새기면서 외운다. 그런데 애쓴 만큼 보람도 크다는 것이다. 모두 다 외웠을 때 그 기분은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좌선하기가 쉽지 않다.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괴로움일 수 있다. 마음 가짐이 되어 있지 않으면 고문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경을 외우는 것과 비교하면 덜한 것이다. 경을 외울 때는 하루 종일 외우다시피 하지만 좌선은 고작 1시간 앉아 있는 것이다.
 
경외우기에 비하면 좌선은 사실상 거저 먹기, 날로 먹기와 다름 없다. 좌복에 단지 앉아서 배의 부품과 꺼짐을 관찰하면 되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렇게 쉬운 것도 없다. 그러나 생활화가 되어 있지 않았을 때는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오늘은 두 번에 걸쳐서 앉아 있었다. 30분씩 두 번 앉은 것이다. 그런데 주어진 30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는 것이다. 자리를 잡고 관찰하려 하다 보면 알람소리가 울린다. 다시 한시간으로 복귀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겠다.
 
오늘 좌선은 해태와 혼침으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명상을 하면 정신이 명료해야 하는데 자꾸 졸리는 것이다. 이럴 때 배의 부품과 꺼짐에 집중해 보지만 자꾸 번뇌망상이 일어난다.
 
졸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초기경전을 보면 빛에 대한 지각을 하라고 했다. 광명상을 취하는 것이다. 눈 앞이 갑자기 환해 졌을 때 해태와 혼침은 싹 달아날 것이다.
 
오늘 좌선은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집중을 하려고 하다 보면 알람이 울렸다. 이렇게 본다면 좌선시간 30분은 너무 짧은 것이다. 또 한편으로 이제 앉아 있는 것이 점차 생활화 되어 감을 알 수 있다.
 
 
2023-08-2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