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스승이 없는 시대에, 재가안거 41일차

담마다사 이병욱 2023. 9. 9. 07:25

스승이 없는 시대에, 재가안거 41일차

3.52-4.27, 계산을 해보니 35분이다. 좌선을 시작한지 35분만에 중단했다. 새벽 3시 52분터 4시 27분까지 좌선한 것이다. 오늘 좌선은 실패했다.

시간이 없다. 오늘 7시 반부터 외부일정이 있다. 사무실 명상홀에서 좌선을 할 수 없다. 좌선은 저녁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투명하다. 일감이 있어서 일을 해야 한다. 주말작업을 해서 납기를 지켜 주어야 한다.

시간이 새벽밖에 없다. 새벽에 깨어 자리에 앉았다. 가벼운 행선을 하고 난 다음 자리에 앉은 것이다.

잠자던 요에 앉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불만족스럽다. 평좌한 엉덩이에 항공담요를 받쳤으나 너무 얇다. 선풍기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도대체 집중이 되지 않는다. 배의 호흡이 잡히지 않는다.

전천후가 되어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앉을 수 있어야 한다. 특정한 장소에서만 좌선을 해서는 안된다. 요중선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시장바닥처럼 시끄러운 곳에서도 선정에 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힘이 약한 초보수행자에게는 무리가 따른다.

마음은 늘 대상을 향하게 되어 있다. 마음은 늘 대상에 가 있다. 마음을 대상에 묶어 놓지 않으면 다른 대상에 가 있다. 좌선을 할 때는 마음을 호흡이라는 기둥에 사띠의 밧줄로 묶어 놓아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달아나지 않는다.

집에서 좌선은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집에다 명상홀을 만들어 놓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을 것이다. 숙달 되어야 잘 된다.

시간이 없어서 집에서 좌선을 해보았으나 잘 되지 않았다. 35분 동안 망상 속에서 보냈다. 망상도 관찰하면 법이 될 것이다. 오온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것도 빠라맛타(실재)이기 때문이다.

위빠사나 명상은 실재를 보는 수행이다. 개념을 보는 사마타와 다른 것이다. 실재는 생멸하는 것이다. 그것도 빠르게 생멸하는 것이다. 호흡이 대표적이다.

호흡을 보면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다. 때로 황홀하기까지 하다. 집중이 된 상태를 말한다. 여기서 사마타의 길과 위빠사나의 길로 갈린다. 호흡에 집중하여 호흡과 하나가 되면 사마타의 길이고, 배의 부품과 꺼짐을 새기면 위빠사나의 길이 된다. 이렇게 쓰는 것은 이론적인 것인지 모른다. 아직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가수행 41일차이다. 한시간 앉아 있는 것을 목표로 시작했다. 한시간 앉아 있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장소를 가린다는 것이다. 환경이 바뀌었을 때 한시간이라는 목표가 달성되기 힘들다. 아직도 천수답 수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스승 없이 안거를 하고 있다. 논서를 보고 유튜브를 보고 안거를 하고 있다. 이런 행위에 대해서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수행은 스승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말한다. 스승없이 수행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수행 초보자에게는 스승의 의미가 없다. 설령 스승이 있어도 질문할 것이 없다. 체험이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수행을 지도할 스승이 없다. 그러나 논서를 보면 스승의 말을 접하는 것 같다. 구구절절 공감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이 그것이다.

머리맡에 마하시 사야도의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이 있다. 현재 2권을 읽고 있다. 매일 2-3페이지 읽는다. 진도를 많이 나갈 수 없다. 새기며 읽다 보니 천천히 나가는 것이다  몇 달 걸릴 것 같다.

논서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은 나에게 스승이나 다름없다. 매일 머리맡에 있는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을 읽고 있다. 그렇다면 이 논서를 쓴 마하시 사야도는 어떤 분일까? 논서 2권의 모두에 마하시 사야도의 일대기가 실려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마하시 사야도의 일대기)

제6차결집 질문자(Chatthasangītipucchaka) 최승대현자(Aggam- ahapandita 最勝大賢者)이신 마하시 사야도(Mahasi Sayadaw)께서는 쉐보 시, 세익쿤 마을에서 1904년 7월 29일 금요일에 태어나셨다. 아버지는 우도, 어머니는 도 쉐오욱이었고, 어릴 때의 이름은 마웅 뜨윈 이었다.

12세에 소바나(Sobhana)라는 법명으로 사미계를, 20세에는 비구계를 받았고, 이후 3년 동안 정부에서 주관하는 초급, 중급, 상급 빠알리어 시험에 차례대로 합격하셨다.

법랍 4하(夏) 때에는 만달레이로 가서 여러 뛰어난 강사들 밑에서 경전을 공부하였으며 5하(夏) 때에는 몰라먀인의 따운와인갈레이 강원에서 경전을 가르치셨다.

사야도께서는 법랍 8하(夏) 때, 명확하고 효과적인 수행법을 찾아 나섰고 따토웅 밍군 제따완 사야도(Mingun Jetavan Sayadaw) 회상에서 제따완 사야도의 지도하에 수행방법을 직접 배우고 실천하셨다.

수행이 빠르게 진전된 사야도께서는 1938년에 세익쿤 마을에서 세 명의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그 수행방법을 지도하셨고, 제자들 역시 매 우 빠르게 수행이 진전되었다. 그들을 따라 50여 명의 마을 사람들이 집중수행에 참가했다.

하지만 몰라먀인의 따운와인갈레이 강원에서 급히 돌아와 달라는 부탁으로 원하는 만큼 밍군 제따완 사야도 회상에서 머물지 못한 채 몰라 먀인으로 돌아가셨다. 얼마 후 그 강원의 노스님이 입적하시자 마하시 사야도께서 강원을 맡아 경전을 가르치셨다. 사야도께서는 이 무렵에 처음으로 시행된 빠알리 경전시험에 응시하셨고, 1941년에 사사나다자 시리빠와라 담마짜리야(Sāsanadhaja Siripavara Dhammācariya) 칭 호를 받으셨다

그 후 일본이 침공하자 몰메인에서 더 이상 머물 수 없게 되어 고향인 세익쿤 마을로 돌아가셨고, 이를 좋은 기회로 삼아 스스로도 위빳사나 수행에 매진하시며 다른 이들에게도 수행을 지도하셨다. 이때 머무신 곳이 마하시 짜웅(Mahāsi Kyaung)이었는데 이는 큰(Mahā) 북(si)이 있는 정사(kyaung)란 뜻이다. '마하시 사야도'란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되 었다.

마하시 사야도께서 '위빳사나 슈니짠(Vipassana shunyikyan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이라는 위대한 책을 쓰신 것은 바로 이 시기였다. 1945년 에 출간된 이 책은 새김확립 (satipatthāna) 수행방법에 대한 이론과 실제 모두를 자세하게 설명한 종합적이고도 권위 있는 책으로 두 권, 전체 858페이지의 대작이다. 마하시 사야도께서는 단 7개월 만에 이 책을 쓰셨는데, 그때 쉐보 시 인근에는 거의 매일 공습이 있었다고 한다.

마하시 사야도께서는 25안거까지 세익쿤 마을 마하시 정사와 몰라먀 인시 따운와인갈레이 강원에서 주로 머무시면서 교학과 수행방법을 가르치고 지도하셨다.

1949년 11월 10일, 양곤 불교 진흥 협의회(Buddha Sasana Nuggaha Organization)의 초청으로 양곤에 오셔서 1949년 12월 4일부터 시작하여 수행자들에게 위빳사나 수행방법을 설하셨다. 수행센터의 이름도 마하시 수행센터(Mahasi Sasana Yeiktha)라고 칭하였다. 1952년에는 최승 대현자(Aggamahapandita 最勝賢者) 칭호를 받으셨다

제6차결집 때에는 제6차결집 질문자(Chatthasangītipucchaka)의 역할을 맡으셨고, 제6차결집 최종결정자(Chatthasangayanãosānasodhaka), 국가훈계법사(Ovādācariya) 등 불교교단을 위한 여러 역할들도 할 수 있는 만큼 수행하셨다. 그때 제6차결집 송출자(Chatthasan- gitivisajjaka)의 역할은 밍군 삼장법사께서 맡으셨다.

저술하신 책으로는 앞에서 언급한 '위빳사나 슈니짠(Vipassana shunyikyan 위빳사나 수행방법론)' 두 권 외에도 직접 저술하신 책들과 설법하신 법문들로 만든 책들을 합하여 100권이 넘는다. 또한 특별히 '위숫디막가 마하띠까 닛사야(Visuddhimagga Mahatika Nissaya 청정도론 대복주서 대역)'은 '위숫디막가(Visuddhimagga 淸淨道論'에 대한 복주서인 '위숫디막가 마하띠까(Visuddhimagga Mahātika 淸淨道論 대복주서)'를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포함해서 각각의 빠알리 어에 대해 자세히 분석하여 미얀마 어로 상세하게 설명한 책이다.

마하시 사야도께서 살아 계실 때 미얀마 국내에 스님의 가르침대로 행하는 센터가 300개가 넘게 생겼으며, 해외 여러 나라에도 센터 지부들이 많이 생겨났다. 사야도께서 가르치신 수행방법에 따라 위빳사수행을 한 수행자들은 비구, 여성 출가자, 재가 수행자를 합하여 491만명(2018년 통계)이 넘는다.

또한 사야도께서는 인도, 스리랑카, 네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인도네시아, 일본 등 동양 국가들과 미국,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국가들 등 여러 나라에 가셔서 테라와다 불교교법(Theravada Buddhasasana)을 널리 보급시키셨다.

수행지도와 저술, 불교교단을 위한 힘든 일정 속에서도 마하시 사야도 께서는 결코 자신의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제자들을 계속해서 현명하게 지도하실 수 있었다. 사야도께서는 78세를 사시는 내내 몸과 마음의 활력이 넘치셨고 가르침(Dhamma)에 깊이 헌신하셨다.

마하시 사야도께서는 1982년 8월 14일, 세랍 78세, 법랍 58 하(夏)로 마하시 수행센터에서 입적하셨다. 입적하신 전날까지도 새로 들어온 수행자들에게 기초 수행법을 지도하셨다고 한다.

이렇듯 마하시 사야도께서는 예리한 지성과 연계된 해박한 교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심오하고 뛰어난 수행 경험까지 두루 갖추어 불교교 학이나 실제 수행 모두를 효과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매우 드문 분 중의 한 분이셨다.

마하시 사야도의 가르침은 여러 법문과 책을 통해 동서양의 많은 이들에게 유익한 영향을 주었다. 지금도 마하시 사야도께서는 당신의 성품과 평생의 업적으로 현대 불교사의 위대한 인물 중 한 분으로 추앙받 고 있다.
(위빳사나 수행방법론 2권, 22-25쪽)

마하시 사야도의 일대기를 보면 동양 각국에 가서 지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는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여건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2019년 1월에 미얀마에 갔었다  그때 위빠사나 선원 순례를 했었다. 양곤에 있는 마하시 센터도 찾아 갔었다.

마하시 센터에서 마하시 사야도의 흔적을 보았다. 실물 밀랍상이 있어서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한 모습이었다. 생전에 사용한 방도 볼 수 있었다. 또한 경행대도 볼 수 있었다.

마하시 사야도는 1982년에 입적했다. 그러나 남겨진 저술은 세계 사람들에게 강렬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2008년 처음으로 마하시 사야도와 만났다. 그때 12월 한국명상원에서 교재로 채택한 것은 마하시 사야도의 법문집 빠띳짜사뭅빠다(십이연기)였기 때문이다. 이후 초전법륜경을 읽었다. 지금은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을 읽고 있다. 스승이 없는 시대에 마하시 사야도의 저술은 스승 역할을 하고 있다.

2023-09-0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