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나도 니밋따를 볼 수 있을까? 재가안거 44일차

담마다사 이병욱 2023. 9. 12. 10:28

나도 니밋따를 볼 수 있을까? 재가안거 44일차
 
 
아침 햇살이 찬란하다. 아침 해를 바라 보았다. 눈이 부셔서 계속 바라 볼 수 없다. 더 바라보면 눈이 실명할 것 같다. 잠시 몇 초 바라 보았더니 세상이 검정 반점 투성이다.
 

 
오늘은 재가안거 44일째이다. 오늘 좌선은 7시 38분부터 9시 15분까지 1시간 27분 동안 했다. 한시간을 알리는 알람을 무시하고 계속 앉아 있었다. 한참 지난 줄 알았더니 27분 더 앉아 있었다.
 
요즘 한시간 앉아있기는 문제도 아니다. 예전에는 한시간 앉아있기가 꿈이었다. 오죽 했으면 한시간 앉아있기가 소원이라고 했던가.
 
자신의 단점을 말하지 말라고 했다. 도한 자신의 전부를 말하지 말라고 했다. 요즘 유튜브에서 본 것이다. 그러나 블로그에 글을 매일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솔직하게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나의 문제점을 말한 것이 약점이 되어서 약점 잡히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삼사년전의 일이다. 그때 한시간 앉아있는 것이 소원이라고 글을 썼다. 이 글을 어느 스님이 봤다. 페이스북에서의 일이다. 문제는 스님과의 관계가 틀어졌을 때 발생했다. 스님은 한시간도 못 앉아 있는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재가안거에 들어가면서 소원한 것이 있다. 그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한시간 앉아 있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이번 안거에서는 몸 길들이기 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으로 했다.
 
안거를 시작한지 44일이 지났다. 이제 한시간 앉아있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알람이 울려도 계속 앉아 있는다. 오히려 알람이 울릴 때 더욱 더 분발한다. 마치 덤으로 사는 사람같이 더욱더 집중하는 것이다.
 
명상은 확실히 사람을 바꾸어 놓는 것 같다. 명상 전과 후가 확실히 다른 것이다. 이는 몸과 마음 상태에서 알 수 있다.
 
오늘 마음 상태는 의기소침했다.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이는 정신적 충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로 인한 것이다. 한마디 말에 상처를 받은 것이다. 이에 분노와 원망과 후회의 감정이 교차 했다.
 
오늘 몸 상태도 좋지 않았다. 수면 질도 좋지 않았고 몸에 약간 한기가 있었다. 이를 한방에 날려 버릴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명상하는 것이다.
 
명상은 몸과 마음을 변화 시켜 놓는다. 한시간 좌선 하고 나면 확실히 다른 상태가 된다. 다른 존재가 되는 것 같다. 기분을 바꾸려면 명상을 해야 한다. 다른 상태가 되려면 명상을 해야 한다. 그래서 수행이라는 말을 바와나(bhavana)라 했을 것이다.
 
빠알리어 바와나는 문자적으로 존재를 뜻한다. 어떤 존재인가? 이전과 다른 존재를 말한다. 범부가 성자가 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다른 존재가 되려면 수행을 해야 하는데 수행을 뜻하는 말이 바와나라는 것이다.
 
오늘 다른 존재가 되어 보고자 했다. 몸과 마음 상태를 바꾸어 보고자 한 것이다. 한시간 좌선하면 그렇게 될 줄 알았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 좌선에서 욕심을 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니밋따를 보는 것이었다.
 
아침에 좌선에 들어가기 전에 태양을 보았다. 태양의 이미지를 좌선에 가져 오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른바 닮은 표상을 띄우기 위한 것이다. 니밋따를 보기 위해서 태양을 본 것이다.
 
어제 유튜브에서 니밋따에 대한 것을 보았다. 빛에 대한 니밋따를 나타나게 하려면 전등, 촛불, 태양을 보라고 했다. 이들 빛에 대한 표상을 좌선 중에 띄우라고 했다. 닮은 표상을 띄우는 것이다. 그렇게 해 보고자 했다.
 
눈을 감은 상태에서 태양의 이미지를 떠 올렸다. 머리 주변이 환해짐을 느꼈다. 계속 이미지를 떠올렸다. 알람이 울리고 나서도 계속 해 보았다. 그러나 니밋따는 뜨지 않았다.
 
어제 좌선 중에 방안을 보았다. 눈을 감은 상태에서 명상홀을 본 것이다. 마치 눈앞에서 본 것처럼 선명하게 본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실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눈을 완전히 닫으니 보이지 않았다.
 
니밋따를 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니밋따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소설에서도 보았다. 소설 ‘숨’을 말한다. 송기원 작가의 소설이다. 니밋따 관련 부분을 보면 다음과 같다.
 
 
(니밋따)
 
파욱명상센터에 들어온 지 한 달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명상홀에 앉아 코끝과 콧구멍 사이 1센티미터에서 동글거리는 솜사탕을 지켜보고 있는 사이에, 솜사탕을 제외한 감각 자체가 모두 사라져버리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지고 스치는 감각들은 물론, 결가부좌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고통에서 오는 통각마저도 사라져버린다. 아니 몸의 감각들만이 아니다. 감각을 따라 일어나서 사물을 분별하는 생각이 사라지고, 그렇게 마음마저 사라져버린다. 그리하여 나는 결국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에게 남은 것이 있다면 오직 내면의 눈이다. 마음집중이며 알아차림을 헤아리는 내면의 눈만이 남아서 들숨과 날숨의 솜사탕에 몰입하고 있다. 내면의 눈이 지켜보는 나는 결국 들숨과 날숨의 솜사탕만이 전부인 것이다.

어느 날 바로 그 솜사탕에 불현듯 빛 덩어리가 엉켜 드는 사태가 일어났다. 솜사탕의 크기와 모양 그대로 빛 덩어리는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어어, 저게 뭐야?’

놀란 나머지 나는 입안엣소리로 묻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솜사탕에 열려 있던 새하얀 빛 덩어리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놀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서일까 한동안 새하얀 및 덩어리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자 새하얀 빛 덩어리가 어떤 지원을 처음 만나던 날의 백일몽처럼 여겨지는 것이었다. ‘결국 헛것을 본 거야. 언감생심이지 나 같은 괴물 따위에게, 빛은 무슨 빛’

(소설 숨, 127-129쪽)
 
 
작가는 늦은 나이에 미얀마 파옥센터에서 수행했다. 파옥센터는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함께 하는 수행처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사마타를 중시하는데 반드시 니밋따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이 체험한 것을 소설로 표현 했다. 여러 가지 니밋따가 있는데 목화솜 뭉치 같은 것을 표현 하고 있다. 이는 파옥 사야도의 책‘사마타위빠사나’에 표현 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니밋따 뜬 것에 대하여 소설적으로 묘사했다. 자신과 같은 사람에게 니밋따는 가당치도 않다고 했다. 그래서 “나 같은 괴물 따위에게, 빛은 무슨 빛”이라고 한 것이다.
 
빛을 보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오늘 빛을 보고자 태양을 한번 바라 보고 좌선에서 닮은 표상을 취하고자 했다. 알람이 울리고 나서도 내내 표상을 떠올리고자 했다.
 
수행은 욕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어떤 목적을 위해서 수행하는 것은 더욱더 아니라고 했다. 니밋따를 한번 보자고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욕심일 것이다.
 
파옥 수행센터에서는는 의도적으로라도 니밋따를 띄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것으로 본다면 니밋따를 보기 위한 것은 어느 면으로 보아서 정진에 해당될 수 있다고 본다.
 
태양 니밋따를 보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바라는 니밋따는 떠 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부수적으로 얻는 것은 있었다. 집중이 잘 되었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배의 부품과 꺼짐을 단계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희미해졌다.
 
니밋따를 보고자 한없이 앉아 있었다. 몸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어느 때부터 엉덩이 닿는 느낌이 심해졌다. 묵직한 느낌이 천근만근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마음으로까지 전달되지 않았다. 엉덩이 닿는 느낌으로 끝난 것이다. 물질과 정신을 분리해서 관찰한 것이다. 제3자의 입장에서 남의 엉덩이 보듯 한 것이다. 이런 것도 소득이라면 소득일 것이다.
 
니밋따를 보고자 노력했다. 처음 시도해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여러 번 해보야할 것이다. 소설가의 표현대로 “언감생심이지 나 같은 괴물 따위에게, 빛은 무슨 빛.”이라는 자조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알람이 울린지 한참 지난 것 같다. 얼마나 지났는지 시간을 가늠할 수 없다 사오십분은 지났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다리를 풀고 확인해 보니 27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니밋따는 나에게 언감생심인지 모른다. 어느 순간 포기 했다. 그리고 가만 앉아 있었다. 왼쪽 엉덩이 닿는 느낌이 천근만근이었지만 마음은 평화로웠다. 이런 상태로 있는 것이 빛을 보는 것 못지 않아 보였다. 나도 니밋따를 볼 수 있을까?
 
 
2023-09-12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