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좌선 중에 무심코 코를 만졌는데, 재가안거 48일차

담마다사 이병욱 2023. 9. 16. 09:12

좌선 중에 무심코 코를 만졌는데, 재가안거 48일차
 
 
좌선 중에 무심코 왼손이 코를 만지게 되었다. 코 부위가 간지러워서 손이 올라가게 된 것이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사띠 하는 중에 무심코 하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 다시 손을 들어 코를 만졌다. 손의 동작을 새기며 만진 것이다.
 
오늘은 재가안거 48일째이다. 오늘 좌선은 30분 했다. 시간이 없다. 일감이 있어서 마무리 작업해야 한다. 주말인 오늘과 내일 밤낮으로 해야 한다. 후기도 30분 이내로 끝내야 한다.
 
수행에 들어 갈 때는 주변정리를 하라고 했다. 주변에 정리가 되지 않았을 때 집중할 수가 없다. 가정이나 직장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먼저 해결 해야 한다. 지금 품질사고가 터졌는데 어떻게 태연히 앉아 있을 수 있겠는가?
 
올해 7월과 8월 두 달은 놀다시피 했다. 일감이 평소보다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 것이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것이다. 사업다각화를 실패한 것도 이유가 된다. 지나치게 한 업체에만 의지했을 때 천수답이 된다.
 
모처럼 일을 맡았다. 도면을 9개 그리는 작업이다. 인쇄회로기판(PCB)설계하는 것을 그림 그린다고 말한다. 인쇄회로기판설계 전용 캐드툴 PADS를 이용해서 작업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설계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것은 신호선 길이를 일일이 맞추는 것이다.
 
한모델에 60개의 신호선이 있다면 이 신호선의 패턴 길이를 똑같이 맞추어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가장 긴 패턴을 기준으로 하여 길이를 맞추는 것이다.
 
패턴 길이가 짧은 것은 길이를 늘리기 위해서 꼬아야 한다. 지그재그 식으로 하여 길이를 맞추는 것이다. 이런 작업을 8모델 해야 한다. 500개 이상의 패턴 길이를 맞추는 것이다.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토요일과 일요일 밤낮으로 해야 한다. 오죽 했으면 어제 정평불 1박2일 수련회 참석했다가 오늘 새벽에 귀가 했을까? 내일 정평불 산행모임인 정진산행에도 참여할 수 없다.
 
오늘 좌선은 30분밖에 할 수 없었다. 후기도 짧게 써야 한다. 그리고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어제 새벽 수련회장에서 귀가하다가 사고가 날 뻔했다는 것이다. 편도 2차선 도로에서 역주행한 것이다.
 
어제 저녁에 안성 죽산에 있는 활인선원에 있었다. 정평불 2023년 수련회가 열린 것이다. 모두 13명 참석했다. 모임이 끝났을 때는 11시가 넘었다. 다들 잠을 자로 숙소로 들어갔지만 나는 귀가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업하는 사람에게 납기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막론하고서라도 기일 내에 납품해야 한다.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주말작업 해야 한다. 안거기간인데 좌선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일에 매진할까도 생각해 보았다.
 
마음이 급했다. 집에 빨리 가서 쉬어야 했다. 새벽같이 나가서 작업해야 하는 것이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시골이라 캄캄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덜컹거리는 비포장 도로를 빠져 나와 차가 다니는 도로에 진입했다. 네비에 좌회전 표시가 보여서 죄회전 했다. 왕복 2차로인줄 알았다. 그런데 달리다 보니 옆에 차로가 또 있는 것이었다. 왕복 4차로였던 것이다. 편도 2차로를 역주행한 것이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이대로 역주행하면 대형 참사가 날 것은 뻔했다. 다행히도 밤 12시가 가까이 되어서 차가 없었다. 더 이상 지체할 것이 없다. 차를 돌렸다. 불법 유턴 한 것이다.
 
뒤에서 차의 불빛이 보였다. 마치 잽싸게 달아 나듯이 차를 몰았다. 뒤의 차가 바싹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큰 탑차였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그 때 역주행 했을 때 차를 잽싸게 돌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라고 생각해 본 것이다. 또 하나 생각한 것이 있다. 만약 내 차가 중형차 이상 되는 긴 길이의 차라면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생각해 본 것이다. 아마 두 번 후진해서 돌렸을 것이다. 그렇게 했을 경우 뒤에서 오는 탑차와 부딪쳤을 가능성이 높다.
 
심야 비오는 밤에 역주행에서 살아 남았다. 재빨리 돌려서 살았다. 차가  경차라서 한번에 돌려서 살아 남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무 생각 없이 운전했다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살면 사고가 난다.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한다. 대충 판단해서는 안된다. 교통법규는 지켜야 한다. 십년 감수한 것 같다.
 
오늘 좌선 하면서 코가 간지러워서 코를 만졌다. 무심코 만진 것이다. 수행자는 무심코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일까 미얀마의 어느 스님은 무심코 팔을 뻗었다가 나중에 알아채고 다시 뻗었다고 한다. 팔의 움직임을 새기며 천천히 뻗은 것이다.
 
사고는 무심결에 일어난다. 아무리 주의한다고 해도 사고는 일어나게 되어 있다. 사고가 나면 나뿐만 아니라 상대방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이 세상은 살얼음판과 같다.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죽음명상)
 
나의 삶은 견고하지 않지만
나의 죽음은 견고하고
나의 죽음은 피할 수 없으니
나의 삶은 죽음을 끝으로 하고
나의 삶은 불확실하지만
나의 죽음은 확실하다.
 
뭇삶은 행위의 소유자이고
행위의 상속자이고
행위를 모태로 삼는 자이고
행위를 친지로 하는 자이고
행위를 의지처로 하는 자로서
그가 지은 선하거나 악한 행위의 상속자이다.(A10.216)
 
선행을 하면, 두 곳에서 즐거워하니
이 세상에서도 즐거워하고
저 세상에서도 즐거워하나니
내가 선을 지었다’라고 환호하고
좋은 곳으로 가서 한층 더 환희한다.(Dhp.18)
 
아! 머지않아 이 몸은
아! 쓸모없는 나무조각처럼
의식 없이 버려진 채
실로 땅 위에 눕혀질 것이다.(Dhp.41)
 
형성된 것들은 실로 무상하여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들이니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들의
지멸이야말로 참으로 지복이다.”(S1.11)
 
(죽음에 대한 새김의 이치, 예경지송, 723-725쪽)
 
 
2023-09-1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