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행선할 때 마음이 충만했다, 재가안거 53일차

담마다사 이병욱 2023. 9. 21. 11:07

행선할 때 마음이 충만했다, 재가안거 53일차

 

 

현재 시각은 새벽 5 3, 행선 후기를 쓰고 있다. 오늘 재가안거에서는 행선에 대해서 쓰고자 하는 것이다.

 

잠에서 깼다. 더 자려 했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시계를 보니 2시 반이었다. 너무 이른 시간이다. 대체 이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까?

 

새벽시간은 자기계발하기에 좋은 시간이다. 새벽에 일어나면 남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부지런한 자는 새벽에 일어나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다.

 

나에게는 루틴이 있다. 이를 일상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일감이 있어서 일이 있으면 일을 한다. 일이 없으면 노는 입에 염불한다고 갖가지 의무적인 일을 한다. 글쓰기, 경전읽기, 암송하기, 책만들기, 순례기, 수행기는 일상이다. 요즘에는 재가안거라 하여 행선과 좌선을 하고 있다.

 

재가안거 53일째이다. 오늘 새벽에는 행선을 했다. 잠에서 깼을 때는 더 이상 자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에 행선하고자 했다.

 

안거라고 해서 반드시 좌선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좌선과 행선을 동등하게 적용해야 한다. 좌선 한시간하면 행선 한시간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바쁘다 보면 행선을 생략하기 쉽다. 이번 안거중에도 그랬다.

 

오늘 새벽 일찍 일어나서 걸었다. 방 안에서 왔다갔다한 것이다. 처음에는 비틀 거렸다. 새김도 분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좁은 방안에서 기역()자 공간을 왕래한 것이다.

 

 

어떤 이는 행선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명칭 붙여서 하는 것에 대해서 비웃기도 한다. 오로지 마음만 이야기하는, 오로지 사띠만 이야기하는 사람은 행선도 사띠만 하면된다고 말한다. 어떤 사띠를 말하는가? 걸을 때 사띠만 슬쩍 얹어 놓으라는 것이다. 사실상 경행과 같은 것이다.

 

경행과 행선은 다른 것이다. 경행은 문자 그대로 가볍게 걷는 것이다. 그러나 행선은 새김을 확립하며 걷는 것이다. 경행은 참선하다 몸풀기 정도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행선은 위빠사나 지혜를 계발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새벽에 행선 했을 때 비틀거렸다. 새기며 걸으려 했으나 몸이 따라 주지 않았다. 몸을 풀듯이 걸었다. 그야말로 약간의 새김만 얹어 놓고 걸었다. 이를 경행이라 해야 할 것이다.

 

얼마나 경행 했을까? 시계를 보지 않아서 알 수 없다. 30분 이상 경행한 것 같다.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늘 그 상태였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그것은 경을 암송한 다음에 행선하는 것이다.

 

암송효과는 이미 알고 있다. 암송하고 나서 걸으면 이전 상태와 완전히 다른 상태가 된다는 것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전에 새벽시간에 행선할 때 적용 해 보았었다.

 

암송을 하면 집중이 된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암송한다는 것은 외운 것을 가져오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정신 집중이 된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오늘 새벽 경행에 적용하고 싶었다.

 

빠다나경을 외웠다. 선 상태에서 눈을 감고 속으로 외웠다. 매우 빠른 속도로 암송했다. 25개나 되는 긴 경을 불과 오분 이내로 외운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암송효과가 엄청나다는 것이다. 몸과 마음 상태를 바꾸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는 경행을 할 때 나타났다.

 

암송을 하고 난 다음 경행하자 자세가 잡혔다. 비틀거리지 않은 것이다. 발을 뗄 때 새김이 분명 했다. 발을 이동할 때도, 발을 내려서 디딜 때도 새김이 분명했다.

 

행선이 잘 될 때 특징이 있다. 발바닥이 바닥에 ", "하며 들러 붙는 듯한 느낌이다. 실제로 소리로도 확인할 수 있다. 발을 뗄 때 ""하고 소리 나기 때문이다.

 

행선을 할 때는 6단계 행선을 한다. 발을 떼고 들고 밀고 내리고 딛고 누르는 여섯 단계의 과정을 말한다. 집중이 되면 여섯 단계가 분명하게 새겨진다.

 

6단계 행선도 방법이 있다. 보폭은 30센티미터 정도가 적당하다. 먼저 한쪽 발을 뗄 때 발 뒤꿈치부터 든다. 이 상태에 앞꿈치를 들면 발이 떼지는 것이다. 발을 디딜 때는 수평으로 해서 놓는다. 앞꿈치와 뒤꿈치를 수평으로 해서 바닥에 닿게 하는 것이다.

 

6단계 행선을 하면 전과정을 새길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새기는 것이다. 발 뒤꿈치를 뗄 떼 부터 바닥에 누르기까지 여섯 단계를 새기면 마음이 충만해진다. 마치 좌선할 때 배의 부품과 꺼짐 전 과정을 빠짐없이 새기는 것과 똑 같다.

 

좌선할 때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되어 있다면 집중이 잘 된 상태이다. 번뇌가 없는 상태이기도 하다. 이런 상태에 이르기 위해서는 배의 부품과 꺼짐을 면밀하게 관찰해야 한다. 행선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행선을 하다보면 마음이 편안하고 차분해질 때가 있다. 행선의 새김이 좋을 때이다. 6단계 행선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새김이 선명할 때 재미가 있다. 새기며 걷는 것이 행복이 된다. 이런 상태라면 밤새도록 걷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새벽에 행선을 했다. 처음에는 경행부터 했다. 새김이 없어서 비틀거렸다. 도중에 암송을 했다. 암송에서 생겨난 집중을 경행으로 가져 가니 행선이 되었다.

 

6단계 행선을 했을 때 새김이 확립되었다. 동작 하나하나 새기며 걸을 수 있었다. 희미하게나마 의도도 볼 수 있었다. 발을 떼기 전에 의도를 보는 것이다.

 

행선은 의도 없이 발을 나아가게 할 수 없다. 의도가 발을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마음이 물질에 영향을 주어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이때 의도는 마음의 암시가 된다.

 

마음의 암시가 있게 되면 발을 움직이게 하는 물질의 암시가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아는 없다. 발을 움직이게 하는 주재자도 없다. 정신법과 물질법에 의해서 발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새벽에 6단계 행선에 재미 붙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좁은 방을 기역자로 왔다갔다 했다.

 

행선을 할 때 오로지 새김만 있는 상태였다. 의도와 의도를 아는 새김, 발을 뗄 때 새김 등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마치 좌선 할 때 부품과 새김, 꺼짐과 새김만 있듯이, 행선에서도 의도와 새김, 발을 뗄 때와 새김, 발을 들 때와 새김, 발을 밀 때와 새김, 발을 내릴 때와 새김, 발을 디딜 때와 새김, 발을 누를 때와 새김이 있게 된 것이다.

 

행선에 재미 붙이자 계속하고 싶었다. 좌선할 때 재미 붙이면 알람소리가 울려도 계속 가는 것과 같다.

 

30분이상 행선한 것 같았다. 얼마나 되었는지 시간을 확인하고 싶었다. 행선을 중단하고 스마트폰을 켰다. 그러나 이때 집중이 깨졌다. 이전 상태로 복원이 안된 것이다.

 

오늘 행선에서 중요한 것을 하나 알았다. 그것은 행선할 때 다른 행위를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마치 좌선 중에 대화를 하면 집중이 깨지는 것과 같다.

 

선원에서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한다. 수행자들은 누군가 말 거는 것을 싫어한다. 말을 하면 새김이 깨져 버리기 때문이다. 언어적 행위가 개입되면 집중이 깨져 버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행선할 때도 대화를 한다거나 시계를 보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그 즉시 집중이 깨지고 복원시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오늘은 재가안거 53일째이다. 오늘 새벽에 행선하는 것으로 좌선을 대신했다. 마하시 전통에서는 좌선과 행선을 동등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행선하는 것도 수행에 해당된다.

 

오늘 행선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행선과정에서 마음이 충만되었다면 집중이 잘 된 것이다. 6단계 행선에서 새김이 잘 이루어진 것이다.

 

행선에 재미를 붙였다.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그러 시계를 본 것이 화근이 되었다. 시계를 보고 나서 예전상태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것도 좋은 경험일 것이다.

 

 

2023-09-2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