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밤이고 낮은 낮인데, 재가안거 61일차
“조금만 더, 조금만 더”좌선 중에 속으로 말했다. 그리고서는 “이제 끝내야 하는데.”라며 말했다. 이 고요와 이 평안을 계속 누리고 싶었던 것이다.
오늘은 재가안거 61알째이다. 오늘은 추석날이기도 하다. 오늘 차례를 지내야 하기 때문에 새벽에 백권당에 왔다.
새벽 5시 5분에 일어났다. 그 이전에 잠이 깼지만 스마트폰으로 확인 한 시간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번 안거에서 한시간 좌선하기로 했다. 그러나 추석과 같은 명절날에는 좌선을 할 수 없다. 생각해 낸 것은 새벽에 일터에 가는 것이다.
새벽 5시 27분에 집을 나섰다. 차를 타고 백권당에 도착한 것은 5시 40분이다. 간단히 샌드위치 하나와 치즈를 꿀물과 함께 먹었다. 좌복에 앉은 시간은 5시 55분이다.
요즘 해가 짧아 졌다. 아침 6시가 다 되었음에도 밖은 캄캄하다. 좌선을 할 때는 불을 꺼 놓는다. 사무실에 불을 끄니 밤중이나 다름 없다.
자리에 앉았다. 마치 동굴처럼 캄캄하다. 이럴 때 약간 무서운 기도 들었다. 아무도 없는 빌딩 한 사무실에서, 그것도 컴컴할 때 앉아 있는 것이 약간 공포가 든 것이다.
여기는 도심이다. 사람들이 몰려 사는 도시에 무서울 것이 없다. 깊은 산속 빈 집이나 폐가에 앉아 있다면 두려운 마음이 들 것이다.
초기경전을 보면 수행승들은 숲속에서 수행했다. 이럴 때 두려움과 공포가 엄습할 것이라고 했다. 맛지마니까야 4번 경에서 어느 바라문은 부처님에게 “존자 고따마여, 숲속 우거진 숲의 수행처는 견디기 어렵고 멀리 여읨을 실천하기 어렵고 멀리 여읨을 즐기기 어렵습니다. 생각하건대 숲은 집중하지 않으면, 수행승의 마음을 빼앗아 갑니다.”(M2)라고 말했다.
숲은 집중하지 않으면 두려움과 공포가 일어난다고 했다. 이에 부처님은 동의 했다. 그리고 바라문에게 감각적 욕망 등 다섯 가지 장애가 있으면 그것을 원인으로 두려움과 공포가 일어난다고 했다. 또한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비방하는 것, 전율하며 두려워하는 것, 이득과 칭송과 명예를 바라는 것, 게을러 정진이 없는 것, 새김을 확립하지 못하고 올바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이 흩어진 것, 지혜가 없어 바보가 된 것을 원인으로도 두려움과 공포가 일어난다고 했다.
숲은 외딴 곳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 누가 살까? 부처님은 사람이 살지 않는 외딴 곳에서 수행했다. 그것도 탑묘이다. 무덤가에서 수행을 한 것이다.
무덤가에서 수행한다면 두려움과 공포로 인하여 수행이 잘 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숲속에는 맹수도 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좌선을 할 수 있을까? 이럴 때 부처님은 “왜 내가 반드시 두려움을 기대해야 하는가? 여실하게 있는 그대로의 자세로 그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온다면, 여실하게 있는 그대로의 자세로 그 두려움과 공포를 제거하면 어떨까?”(M4)라고 생각한 것이다.
부처님은 여실하게 있는 그대로 자세로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고자 했다.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극복했다.
“바라문이여, 내가 걷고 있을 때에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온다면, 바라문이여, 나는 걸으면서 그 두려움과 공포를 제거할 때까지 서거나 앉거나 눕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내가 서있을 때에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온다면, 바라문이여, 나는 서있으면서 그 두려움과 공포를 제거할 때까지 걷거나 앉거나 눕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내가 앉아 있을 때에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온다면, 바라문이여, 나는 앉아 있으면서 그 두려움과 공포를 제거할 때까지 걷거나 서거나 눕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내가 누워 있을 때에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온다면, 바라문이여, 나는 누워있으면서 그 두려움과 공포를 제거할 때까지 걷거나 서거나 앉지 않습니다.”(M4)
이는 행, 주, 좌, 와에 대한 것이다. 맹수가 출몰하는 숲속에서 두려움과 공포가 밀려 올 때 행, 주, 좌, 와의 자세를 있는 그대로 취한 것이다.
두려움과 공포가 밀려 올 때 다른 자세를 취하지 말라고 했다. 이는 그 자세를 유지한 채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는 것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바라문이여,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은 낮을 밤으로 인식하고 밤을 낮으로 인식합니다. 그들 성직자들이나 수행자들에게 ‘그것은 어리석음에 기인한다.’고 나는 말합니다. 나는 밤을 밤으로 인식하고 낮을 낮으로 인식합니다.”(M4)
두려움과 공포가 일어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리석기 때문에 두려움과 공포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는 낮과 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들은 “낮을 밤으로 인식하고 밤을 낮으로”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현명한 자들은 밤을 밤으로 인식하고 낮을 낮으로 인식한다. 이는 마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현상을 여실하게 있는 그대로 보았을 때 두려움과 공포가 있을 수 없음을 말한다.
부처님은 숲속 탑묘에서 수행했다. 두려움과 공포가 밀려 올 때 그 자리에서 여실하게 있는 그대로 보고자 했다. 밤을 밤으로 보고 낮을 낮으로 보는 것과 같다. 산을 산으로 보고 물은 물로 보는 것과 같다. 이는 집중을 하면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나태하지 않게 열심히 정진을 도모했고, 혼란스럽지 않게 새김을 확립했고, 격동하지 않게 몸을 고요히 했고, 마음을 하나로 통일했습니다.”(M4)라고 말했다.
부처님은 숲속 탑묘에서 선정삼매에 들었다. 선정에 들면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밤은 밤으로 보고 낮은 낮으로 보는 것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것이다.
오늘 좌선은 5시 55분에 시작했다. 30분만 앉아 있기로 했다. 오늘 추석날이라 아침부터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럼에도 한시간 알람을 설정해 놓았다.
집중은 잘 되었다. 새벽에 샤워까지 했고 간단히 먹을 것도 먹었다. 캄캄한 어둠에서 앉아 있었다. 배의 부품과 꺼짐을 관찰했다. 약간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다. 그러나 배의 움직임에 집중하자 사라졌다.
복부의 움직임은 격렬했다. 평소와는 다르다. 두려움과 공포때문일까? 도심에서 두려움과 공포라니!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빈 집이나 무덤가라면 어땠을까? 앉아 있기 힘들 것이다.
칸막이를 친 명상공간은 어두웠다. 밤중이나 똑같았다. 그러나 서서히 날은 밝아 올 곳이다. 그것도 급격하게 밝아 올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안심이 되었다.
배의 움직임이 심했다. 마치 달리기를 한 자가 갑자기 멈추어 선 것 같다. 그럼에도 중간중간 고요할 때가 있었다. 이럴 때는 마음도 고요해졌다.
평좌한 다리의 감각은 없다. 선정인을 한 두 손도 약간 느낄 뿐이다. 몸은 나른해 졌다. 나른함과 함께 고요가 찾아 왔다. 이를 다른 말로 ‘멍때리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새김을 확립하고자 했기 때문에 멍하니 앉아 있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시간 이내로 끝내야 한다. 이 고요와 평안함을 계속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고 한 것이다. 이 순간이 계속 되기를 바란 것이다. 그러나 일어나야 한다. 39분 앉아 있었다. 후기를 쓰고 7시 45분까지는 들어가야 한다.
2023-09-29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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