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도량은 청정하게, 재가안거 66일차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0. 4. 12:21

도량은 청정하게, 재가안거 66일차
 
 
이게 무슨 소리지?”좌선 중에 소리가 들린다. 우직끈 하는 소리이다. 세 번 연달아 났고 조금 있다 한번 더 났다. 책장에 책이 무거워서 나무가 무너지는 소리일까? 냉장고에서 나는 소리일까? 잘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소리가 났다는 사실이다.
 
오늘은 재가안거 66일째이다. 오늘 컨디션은 좋다. 그 동안 괴로웠던 등의 한기는 말끔히 사라졌다. 아마 잠을 충분히 잤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며칠 동안 6시 넘어서 일어난다. 이전에는 잠에서 깨면 일어났다. 그러다 보니 새벽 4시대가 많았다. 3시대도 있었다. 심지어는 2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잠에서 깼을 때 6시까지 있고자 했다. 그 결과 몸상태가 대체로 좋아 졌다.
 
잠이 보약이다. 잠을 잘 자면 면역력도 강화된다. 잠은 몸의 복원력을 있게 한다. 잠은 몸의 항상성을 있게 한다. 몸의 항상성이 있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오늘 좌선은 8시 3분에 시작했다. 모처럼 컨디션이 좋았기 때문에 한시간 무난할 줄 알았다. 그러나 20분가량 되었을 때 혼침이 왔다. 졸립기 시작한 것이다.
 
졸음이 왔을 때 몇 가지 방법이 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잠을 자는 것이다. 그것도 되지 않았을 때 다른 일을 하면 된다.
 
혼침이 왔을 때 좌선을 그만 두었다. 좌선을 시작한지 26분만이다. 이 시간에 화분 정리를 했다. 하나의 화분을 손 본 것이다.
 
화분 중에 ‘유카’가 있다. 너무 자라서 고개가 숙여져 있다. 지지대를 대었어도 너무 자라다 보니 끈으로 묶어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유카는 오래 되었다. 기록을 찾아 보니 2016년 2월에 산 것이다. 7년 된 것이다. 이는 블로그에 화분을 산 날자를 기록해 두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로 남겼기 때문이다.
 
화분을 살 때 식물 이름을 몰랐다. 그래서 “화분을 하나 샀다. 오래 전부터 사려고 마음 먹은 것을 실행하였다. 인덕원 화원단지에서 산 열대성 식물이다. 여러 갈래의 줄기와 함께 잎이 쭉쭉 뻗어 있는 것이 강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 식물의 이름을 알 수 없다. 살 때 물어 보야 했으나 깜박 잊은 것이다.”(2016-02-01)라고 써 놓았다.
 

(2016년 유카)

 
식물이름은 유카이다. 이는 ‘모야모’에 문의해서 안 것이다. 식물이름을 알려 주는 앱에서 알게 된 것이다.
 
유카는 7년만에 엄청나게 크게 자랐다. 지지대로 받쳤으나 한계가 있다. 오늘 과감히 쳐 냈다. 식물의 아래에서는 새 순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쳐 낸 것이다.
 

 
식물정리를 한시간 동안 했다. 다른 일에 몰두 한 것이다. 이는 도량을 청정하게 한 것이기도 하다.
 
어제 옥천에 갔었다. 대청호 바로 옆에 있는 ‘천상의 정원’에 갔었다. 불자는 어디를 가든지 근처에 절이 있으면 절에 가서 참배 해야 한다. 옥천 10경 중에 하나에 속하는 용암사를 찾아 갔다.
 

 
용암사는 생각보다 큰 절이다. 그리고 전통사찰이다. 깊은 산속에 있어서 고즈넉한 산사분위기가 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스님이 절 관리를 잘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용암사에 마애불이 있다. 마애불 아래에 촛불을 놓는 철제 함이 있다. 스님은 열심히 함 내부를 닦고 있다. 무엇보다 스님은 친절하다. 스님이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 했기 때문이다.
 

 
도량은 깨끗하다. 어느 곳에도 낙엽이 떨어지지 않았다. 알고 보니 스님은 비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님은 남이 보건 말건 자신의 할 바를 다 하는 것 같다. 주지스님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촛대 함을 닦아 내고 마애불 올라 가는 계단을 비질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일까 도량이 깨끗하다.
 

 
천수경에 ‘도량청정무하예(道場淸淨無瑕)’라는 문구가 있다. 도량이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다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도량은 반드시 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몸과 마음도 도량이라고 볼 수 있다.
 

 
도량이 청정하다는 것은 오계를 지키고 육바라밀행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백권당도 도량이라고 볼 수 있다. 매일 행선과 좌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수행도량이라고 볼 수 있다.
 
수행도량은 청정해야 한다. 옥천 용암사 스님이 촛대함을 닦고 계단을 비질 하듯이, 재가수행자도 화분 정리를 했다. 웃자란 유카를 잘라 내니 마치 이발한 것처럼 시원하다. 잘라낸 가지 중에 하나는 수경 재배를 하기 위해서 패트병 자른 것에 넣어 두었다.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한시간 동안 화분 정리하고 자리에 앉은 것이다. 자리에 앉은 시간은 9시 28분이다.
 
오늘 해야 할 일이 많다. 추석연휴가 끝났다. 본격적인 일상이 시작되는 날이다. 일감 수주 받은 일을 마무리 해야 한다.
 
아무리 일이 많아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이번 안거기간에 반드시 하루에 한시간 앉아 있기로 했으니 약속은 지켜야 한다.
 
두 번째 앉았을 때 더 이상 혼침은 없었다. 처음부터 배의 부품과 꺼짐을 보았다. 배에 마음을 집중 했을 때 시간은 빨리 가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배의 부품과 꺼짐을 의도적으로 새겼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럴 필요가 없다. 자동으로 새겨 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요즘 한시간 앉아있기는 쉽다. 이는 새김이 있기 때문이다. 새김이 없다면 번뇌와 망상 때문에 앉아 있을 수 없다. 또한 혼침이 온다면 앉아 있을 수 없다. 몸이 아파도 앉아 있을 수 없다.
 
명상을 한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더구나 한시간 거뜬하게 앉아 있을 수 있다면 몸 상태는 좋다고 보아야 한다.
 
배의 부품과 꺼짐을 새길 때 몸은 없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이는 마음을 배에 두기 때문이다. 더구나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질 때가 있다.
 
집중이 되면 몸의 감각을 느끼지 못한다. 다만 닿는 느낌은 있다. 평좌한 다리는 아픔을 모른다. 설령 통증이 있다고 하더라도 집중이 강할 때는 나른하게 된다.
 
좌선을 하다 보면 눈 앞이 환해질 때가 있다. 그렇다고 니밋따와 같은 빛을 보는 것은 아니다. 배의 부품과 꺼짐을 일없이 새김 할 때 일시적으로 환해 지는 것이다.
 
눈 앞이 환해졌을 때 일시적으로 호흡도 멈추어지는 것 같다. 배의 부품도 꺼짐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상태가 되었을 때 몸은 나른해지고 공중에 붕 뜨는 것 같다.
 
흔히 좌선 중에 몸이 사라진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이는 마음이 대상을 주관찰 대상에 두기 때문이다. 마음을 발바닥에 두다가 입에 두었을 때 발바닥은 없는 것이나 같은 이치이다.
 
마음이 일시적으로 고요해졌을 때 그 상태를 유지하고자 했다. 몸은 미세하게 변하는 것 같다. 이럴 때 몸은 미세한 물질이 되는 것 같다.
 
색계가 있다. 이를 빠일리어로 루빠다뚜(rūpadhātu)라고 한다. 빠알리성전협회에서는 ‘미세한 물질의 세계’라고 번역했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색계’라고 하여 한역경전 그대로 번역했다.
 
좌선을 하면 몸은 미세해지는 것 같다. 색계를 뜻하는 빠알리어 루빠에 대하여 영어로 ‘fine material’이라고 한다. 왜 색계에 대하여 미세한 물질의 세계라고 말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디가니까야 27번경을 보면 색계 존재에 대한 묘사가 있다. 이는 색계 2선천인 극광천에 대하여“그들은 거기서 정신으로 이루어진 자로서, 기쁨을 먹고 지내고, 스스로 빛을 내고, 허공을 날며, 영광스럽게 오래 산다.”(D27.6)라고 했다.
 
색계 존재는 몸이 미세한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몸이 빛과 같이 미세한 물질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몸에서는 빛이 나고 날아 다닐 수 있을 것이다.
 
색계 존재는 소화기관이 없다. 인간처럼 음식을 먹고 살지 않는 것이다. 색계 존재는 기쁨을 먹고 산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내장기관이 없는 것이다.
 
좌선을 해서 선정의 상태가 되면 색계 존재가 되는 것과 같다. 선정 상태에서 죽는다면 색계 천상에 태어날 것이다.
 
좌선을 하다 보면 집중이 된다. 그것이 선정이든 유사선정이든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가 된다. 때로 강한 기쁨이 일어나기도 한다. 마음이 밝아 졌을 때, 고요하게 되었을 때 몸은 있으나마나 한 것이 된다.
 
마음이 밝아지고 몸이 미세하게 되었을 때 일시적으로 기쁨을 느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기를 바랬다. 그러나 자꾸 변한다. 이런 때에 알람이 울렸다.
 
알람이 울리면 한시간이 되었음을 말한다. 좌선을 끝내야 한다. 그러나 아쉬워서 더 달리고 싶었다. 아까와 같은 상태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욕심이었다.
 
좌선 중에는 소리에 민감하다. 차 지나가는 소리, 전철 지나가는 소리는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무언가 “우직끈”하며 부러지는 소리는 어디서 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것도 연달아 났다. 평소에는 들리지 않는 것이다.
 
세상은 가만 있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무너지고 있을 것이다. 목재로 된 구조물이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 “우직끈”하며 소리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냉장고 기관의 작동으로 인하여 소리가 났을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 재가안거 66일째를 맞이 하여 도량을 청정하게 했다. 물리적 공간만 청정하게 한 것은 아니다. 명상을 하면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이라는 도량도 청정하게 된다.
 
마음이 청정하면 세상도 청정하게 보인다. 그래서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마음이 오염되므로 뭇삶이 오염되고 마음이 청정해지는 까닭에 뭇삶이 청정해진다.”(S22.100)라고 했다.
 
어제 옥천 용암사 스님이 도량을 청정하게 하는 것을 보았다. 도량이 청정하니 세상도 청정하게 보였다.
 

 
옥천사 운무대에서 바라본 세상은 가이 없었다. 첩첩으로 겹쳐진 산이 하늘과 경계를 이루었다. 이곳에서 뜨는 해를 바라 볼 수 있다면 천상의 세계가 부럽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세계가 몸과 마음에도 있다는 것이다!
 

 
오늘 좌선은 1시간 16분 했다. 몸과 마음이 지극히 평온한 상태를 맛 보고 나서 그 상태를 즐기고자 했다. 그러나 이것은 욕심이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 상태에 가는 방법을 알아냈다는 것이다.
 
 
2023-10-0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