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과 꺼짐을 네 단계씩 새겼는데, 재가안거 71일차
확실히 이전과 이후는 다르다. 좌선을 말한다. 막 명상을 마쳤을 때 세상은 청정하다. 막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개운하다.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을 때 “아, 좋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오늘은 재가안거 71일째이다. 오늘 한시간 좌선을 했다. 아침 8시 51분에 시작해서 9시 51분에 끝냈다. 한시간이 금방 지나간 것 같다.
좌선은 항상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 아침이 그랬다. 앉은지 20분가량 되었을 때 혼침이 왔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졸리운 것이었다.
명상 중에 잠이 올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경전에 따르면, 부처님 가르침을 생각하는 방법이 있고, 광명에 마음을 두는 방법이 있고, 이를 악무는 방법 등이 있다. 가장 좋은 것은 자는 것이다. 그러나 걷기로 했다.
가볍게 경행했다. 행선한 것은 아니다. 행선은 육단계로 마음을 발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새겨야 한다. 그러나 경행은 가볍게 걷는 것이다. 몸을 풀어 주는 것이다.
경행을 마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번에는 배의 부품과 꺼짐을 놓치지 않고자 했다. 이럴 때 다짐하는 말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보리라!”라가 될 것이다.
배의 부품과 꺼짐을 놓치지 않고 새기고자 노력했다. 노력한 만큼 보람도 있다. 배의 움직임에 마음을 두었을 때 점차 집중이 되었다. 어느 순간 배의 움직임만 있는 것처럼 보였다.
좌선 중에 망상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주로 주관찰 대상을 놓쳤을 때 망상이 일어난다. 망상이 한창 진행되고 나서야 알아차린다.
망상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관찰 대상을 새겨야 한다. 배의 부품과 꺼짐이 주관찰 대상이다. 당연히 부품과 꺼짐을 면밀히 새겨야 한다.
마하시 사야도의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에서 생멸의 지혜에 대한 부분을 읽었다. 논서에 따르면 유약한 생멸새김이 있고 강한 생멸새김이 있다. 전자는 단지 처음과 끝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새기는 것이다. 후자는 일어남과 사라짐 사이에 수많은 생멸을 새기는 것이다.
논서대로 새겨 보고자 했다. 배의 부품과 꺼짐을 새길 때 그 사이 사이에 생멸도 새기고자 한 것이다. 마음을 온통 배의 움직임에 두었을 때 네 단계가 있는 것을 알았다.
배의 부품을 새길 때 네 단계로 새겼다. 마치 “탁, 탁”하고 걸리는 것 같았다. 배가 부풀어 오를 때 가슴에서 걸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꺼짐을 새길 때도 네 단계로 새겼다.
배의 부품을 새길 때는 네 단계로 새기고, 배의 꺼짐을 새길 때도 네 단계로 새겼다. 부품과 꺼짐 사이에 공백이 있다. 이는 부품에서 꺼짐에서 바뀌는 순간을 말한다. 이를 유지기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유지기는 매우 짧다는 것이다. 부품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곧바로 꺼짐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사실상 일어남(生)과 사라짐(滅)만 있는 것이다.
배의 부품과 꺼짐을 새길 때 두 가지 전환점이 있다. 부품에서 꺼짐으로 바뀔 때 한번 있고, 꺼짐에서 부품으로 바뀔 때 또 한번 있다. 전자는 매우 짧다. 후자는 어느 정도 유지기간이 있다.
망념은 틈을 노린다. 주관찰대상의 헛점을 노린다. 꺼짐에서 부품으로 갈 때 유지기간이 어느 정도 있는데 이때가 헛점일 수 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마하시사야도의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에서는 엉덩이의 닿음을 새기라고 했다.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 잡념이 치고 들어올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주관찰대상인 배의 부품과 꺼짐을 새길 때 ‘부품 네 단계, 전환, 꺼짐 네 단계, 닿음’으로 새기는 것이다. 이렇게 새기면 철통 같은 보안이 된다.
새길 때는 일없이 새겨야 한다. 재래시장에서 김 굽는 사람이 일없이 굽는 것과 같다. 만두 빚는 사람이 똑 같은 동작을 백번이고 천번이고 반복하는 것과 같다. 마치 생활의 달인처럼 부품과 새김, 그리고 닿음을 백번이고 천번이고 반복해야 한다.
부품 네 단계는 정말로 있는 것일까? 어쩌면 만들어 낸 것인지 모른다. 마음을 온통 배의 움직임으로 가 있다 보니 가슴에서 “탁, 탁”하고 걸리는 것이 있었다. 이를 세어 보니 네 단계였던 것이다.
네 단계 새김을 수없이 반복했다. 생활의 달인처럼 한 것이다. 부품을 네 단계로 새길 때 몇 초 걸릴까? 측정해 보지 않아서 알 수 없다. 대강 3초 정도 걸릴 것으로 생각했다.
배의 부품을 네 단계로 새길 때 3초 걸린다고 가정했다. 꺼짐 네 단계도 그 만큼 걸릴 것이다. 엉덩이 닿음은 1초 정도 걸릴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사이클을 완성하는데 7초정도 걸린다.
배의 부품과 꺼짐을 새기는데 7초정도 걸린다. 가정한 것이다. 이를 백번 새기면 어떻게 될까? 700초가 될 것이다. 1분은 60초이다. 계산하면 11분정도 된다. 천번 새기면 7천초가 된다. 계산하면 116분인데, 이는 거의 두 시간이 된다.
배의 부품과 꺼짐을 네 단계씩 새겼다. 거의 한시간 내내 새겼다. 도중에 놓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예외 없이 생각이 치고 들어왔다. 그리고 망상의 집을 지었다.
이번 안거 중에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본다. 논서에 있는 대로도 해본다. 해보면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게 된다. 오늘 네 단계로 새기는 방법도 그런 것 중의 하나이다.
2023-10-09
담마다사 이병욱
'수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행에 진전이 없는데, 재가안거 72일차 (2) | 2023.10.11 |
---|---|
졸음을 어찌할 것인가? 재가안거 72일차 (14) | 2023.10.10 |
이 고뇌의 강을 건너 저 이지(異地)의 나라로, 재가안거 70일차 (8) | 2023.10.08 |
고독한 수행자, 재가안거 69일차 (1) | 2023.10.07 |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재가안거 68일차 (24) | 2023.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