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위빠사나 명상을 하면 병이 치유된다는데, 재가안거 76일차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0. 15. 11:20

위빠사나 명상을 하면 병이 치유된다는데, 재가안거 76일차

 

 

알람이 울리기만을 기다렸다. 한시간이 매우 지루했다. 마침내 알람이 울렸을 때 해방되는 것 같았다. 한시간 앉아 있기로 했으니 앉아 있어야 했다. 도중에 다리를 풀려고도 생각했으나 악으로 깡으로 오기로 버텼다. 오늘 좌선은 근자에 최악이었다.

 

오늘은 재가안거 76일째이다. 몸이 편치 않다. 갑자기 등에 한기가 들었다. 한기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이는 스트레스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랜만에 일감이 들어 왔다. 일하는 날보다 노는 날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런 때 일감이 있다는 것은 가뭄에 단비와 같은 것이다.

 

어떤 일은 급하다. 납기가 급한 것이다. 빨리 해달라고 한다. 다음주 월요일까지는 설계를 완료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주말작업을 해야 한다. 그것도 밤낮으로 하는 것이다.

 

일은 쉬운 것도 있고 어려운 것도 있다. 대개 쉬운 일이다. 늘 하던 일이기 때문이다. 매번 하다 보니 숙달되었다. 마치 생활의 달인처럼 눈감고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번 일은 달랐다.

 

인쇄회로기판설계 일을 하고 있다. 도면을 받아서 캐드를 이용하여 회로패턴설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속으로 데이터가 전달될 때는 신호 길이를 맞추어주어야 한다. 무려 64개의 신호를 235미리로 맞추는 작업이다. 이른바 임피던스설계를 말한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빨리 가도 방향이 잘못 되었으면 다시 가야 한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임피던스설계도 그랬다. 이런 방법 저런 방법을 생각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갑자기 어느 순간 등에 한기를 느낀 것이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한다. 이는 마음의 병이 몸에 병이 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일감을 주어진 시간 내에 처리하려 하다 보니 마음만 급해 졌다. 이것이 스트레스가 되어서 몸에 까지 영향을 준 것이다.

 

이번 일은 절대적 시간이 필요하다. 일없이 해야 한다. 마치 산행하는 것과 같다. 저 고지를 바라보며 산행하면 산행이 힘들어진다. 이럴 때는 바로 앞만 보고 가야 한다. 한발 앞만 보고 가는 것이다. 그렇게 가다 보면 고지가 바로 앞에 있다.

 

방향은 잡았다. 이제 앞만 보고 가면 되는 것이다. 마치 산행하는 것처럼 일보 앞만 보고 가는 것이다. 오늘이 그날이다.

 

아무리 바빠도 좌선은 해야 한다. 지금은 안거기간이다. 스스로 재가안거라고 했다. 매일 한시간 의무적으로 앉아 있기로 했다. 자신과의 약속이다.

 

좌선만 해서는 안된다. 후기도 써야 한다. 한시간 좌선하면 두 시간 후기를 쓰는 것이 보통이다. 좌선을 막 끝낸 상태에서 쓰는 것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다.

 

위빠사나 명상을 하면 병이 치유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위빠사나 수행지침서에도 나온다. 우 쿤달라 비왐사가 지은 위빠사나 수행자의 근기를 돕는 아홉요인에 따르면 위빠사나 이익 여섯 가지가 있다. 이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청정한 마음을 갖게 된다.

2) 안정되고 균형잡힌 마음이 된다.

3) 병이 치유된다.

4) 법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다.

5) 수행자라면 누구나 바라는 것으로 사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

6) 궁극적으로 성스런 법을 얻는다.

(위빠사나 수행자의 근기를 돕는 아홉요인, 38)

 

 

이것이 위빠사나 수행의 이익이다. 여기서 세 번째 항목을 보면 병이 치유된다.”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일까? 이에 대하여 책에서는 수행자가 생멸의 지혜에 이르면 소소한 질병과 통증은 사라진다.”(39)라고 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하면 병을 고친다는 말이 놀랍다. 그러나 어느 정도 단계를 지나야 한다. 위빠사나 16단계 지혜 중에서 4단계는 지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4단계는 수행의 전환점이라는 사실이다. 이 생멸의 단계에 이르면 수행이 급진전 되어 도와 과의 전단계에 이르기 때문이다.

 

생멸의 지혜에 이르면 더 이상 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 그럴까? 이는 알아차리면 불편함이 사라지는 것을 알게 된다.”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목의 뻣뻣함, 두통, 복통과 같은 불편함은 생멸의 지혜에 이르면 없어진다.”(39-40)라고 했다.

 

여기 고질적인 병이 있다. 약을 먹어야만 하는 병을 말한다. 당뇨라든가 혈압과 같은 병도 해당될 것이다. 그런데 책에 따르면 아무리 좋은 약을 먹어도 고칠 수 없는 고질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던 수행자가 현상에 대한 평등의 지혜에 이르면 그 병이 사라지게 된다.”(40)라고 했다. 여기서 현상에 대한 평등의 지혜11단계 지혜로서 도와 과의 전단계이고 범부가 올라 갈 수 있는 최고의 지혜를 말한다.

 

위빠사나 스승에 따르면 위빠사나 수행을 하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수행 효과에 따른 것이다. 물질과 정신으로 구분해서 관찰했을 때 나라고 할만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 병으로 인한 통증도 내것이 아닌 것이 될 것이다.

 

위빠사나 수행은 어쩌면 병을 고치기 위한 수행일지도 모른다. 어떤 병인가? 그것은 우리 몸과 마음으로 나의 것으로 여기는 병을 말한다. 이 병이 있으면 그 떤 질병도 이겨낼 수 없다.

 

질병으로 인한 통증을 내것으로 여길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약에 의존할 것이다. 그리고 의사에게 의존할 것이다. 병원에 자주 가게 되는 일이 많아진다.

 

절에 가면 수행이 저절로 되는 것일까? 병원에 가면 병이 저절로 나아지는 것일 것? 누구도 나의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다. 자신의 안전은 자신이 책임 져야 한다.

 

수행을 하면 자신의 안전은 자신이 책임 질 수 있다. 약도 필요 없고 병원도 의사도 필요 없을 수 있다.

 

사람들은 몸에 병이 있을 때 정신과 물질을 나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면 몸과 마음이 함께 아프게 된다. 그러나 수행자라면 몸이 아파도 마음은 아프지 않는다. 정신과 물질을 분리하여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몸은 아프더라도 마음만은 아프지 말아야 한다. 범부들은 몸이 아파서 마음도 아프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라한은 몸이 아플 뿐 마음은 아프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위빠사나 수행자는 아라한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 상윳따니까야 병실의 경’(S36.7)을 보면 알 수 있다.

 

수행승도 병이 들 수 있다. 부처님은 병실을 방문하여 수행승들이여, 수행승은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리며 때를 기다려야 한다.”(S36.7)라고 말했다.

 

병에 걸린 자는 항상 사띠와 삼빠자나를 유지해야 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 몸과 마음에 대하여 내것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이는 느낌에 대한 것이 크다. 그래서 부처님은 통증과 같은 괴로운 느낌이 일어 났을 때 그것은 조건적인 것이지 조건 없이 생겨난 것은 아니다.”(S36.7)라고 했다.

 

세상에 이유 없이 생겨난 것은 없다. 어떤 것이든지 조건발생한다. 그럼에도 우연론자는 원인과 결과를 부정하고, 무작론자는 행위에 대한 책임이나 과보를 부정하고, 허무론자는 사후세계를 부정한다.

 

이 몸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생겨날 만해서 생겨난 것이다. 이를 조건 발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괴로운 느낌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당연히 조건발생한 것이 된다.

 

중병으로 괴로운 느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그런데 이 몸은 무상하고 형성된 것이며 조건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무상하고 형성된 것이며 조건적으로 생겨난 이 몸을 원인으로 생겨난 괴로운 느낌이 어떻게 항상 할 것인가?”라며 관찰하라고 했다.

 

몸은 조건 발생한 것이다. 통증은 몸을 조건으로 해서 발생한 것이다. 이런 통증은 조건에 조건이 더해져서 발생한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통증이 상주하지 않음을 말한다.

 

통증은 일어날만해서 일어난 것이다. 이런 통증에 대하여 부처님은 괴로운 느낌은 화살이라고 보아야 한다.”(S36.5)라고 말했다.

 

부처님은 왜 괴로움을 화살처럼 보라고 했을까? 이는 통증이 화살처럼 콕콕 찌르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통증이 상주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통증은 화살처럼 콕콕 찌르는 것이다. 계속 아픈 것이 아니다. 이렇게 콕콕 찌르는 통증은 생멸이 있다. 생겨난 것은 반드시 소멸하기 마련이다. 통증을 관찰하면 생멸을 볼 수 있음을 말한다.

 

통증에서 무상을 볼 수 있다. 통증이 상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증은 내것이라고 볼 수 없다. 통증에 대하여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통증은 무상한 것이다. 무상한 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통증은 나의 것이 아니다. 몸은 비록 아파도 마음만은 아프지 않음을 말한다. 그런데 모든 느낌은 사실상 괴로운 느낌이라는 것이다. 이는 경전적 근거가 있다. 이는 어떠한 것이 느껴지든 그것은 괴로움 안에 있다.”(S36.11)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모든 느낌이 괴로운 것이라면 즐거운 느낌도 괴로운 것이다. 이는 부처님이 즐거운 느낌도 괴롭다고 보아야 한다.”(S36.5)라고 말씀하신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왜 그럴까? 즐거운 느낌은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즐거운 느낌은 지금 여기에서 느끼는 행복감이다. 지금 여기에서 조건이 바뀌면 즐거운 느낌은 사라진다. 이렇게 본다면 불만족이 된다. 즐거운 느낌이 영원하지 않아 불만족스러운 것이다. 불만적은 괴로운 느낌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즐거운 느낌도 괴롭다고 보아야 한다.”(S36.5)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부처님은 모든 느낌에 대하여 괴로운 느낌이라고 했다. 그래서 수행승이여, 어떠한 것이 느껴지든 그것은 괴로움 안에 있다는 사실은 모든 형성된 것은 무상하다는 것에 관하여 말한 것이다.”(S36.11)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알 수 있다.

 

느낌은 몸에 기반하고 있다. 몸이 달라지면 느낌도 달라진다. 또한 느낌은 접촉을 조건으로 한다. 접촉의 조건이 달라지면 느낌도 달라진다.

 

어떤 느낌도 조건발생하기 때문에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느낌은 항상 하지 않고 일시적인 것이어서 불만족스럽다. 결국 느낌은 괴로운 것이다.

 

느낌은 무상하기 때문에 괴롭다. 느낌은 무상하기 때문에 내 것이 아니다. 그래서 느낌은 내 것이 아니다. 몸에 병이 들어도 마음만은 괴로워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된다.

 

오늘도 한시간 좌선을 했다. 몸이 편치 않아서 괴로운 좌선이 되었다. 도중에 끝내고 싶었으나 참았다. 자신과의 약속도 약속이다. 마침내 한시간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을 때 해방감을 맛 보았다. 그러나 오늘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모처럼 일감을 맡았다. 일하는 날보다 노는 날이 압도적으로 많은 나날이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방향을 잘 잡아야 하는 일이다. 이런 일에 스트레스 받다 보니 등에 한기가 왔다.

 

이제 방향을 잡았으니 앞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생활의 달인처럼 반복하는 것이다. 산행하는 것처럼 일보 앞만 보고 걷는 것이다. 이렇게 하다 보면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다.

 

 

2023-10-1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