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폭우를 뚫고 체증을 뚫고, 목숨을 건 납품투쟁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0. 19. 14:36

폭우를 뚫고 체증을 뚫고, 목숨을 건 납품투쟁
 
 
참으로 기세가 엄청나다.  백미터 앞이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물폭탄이 쏟아졌다. 몇 초간 앞이 보이지 않았다. 1차로를 지나가던 차 바퀴에서 나온 것이다. 일순간 당황했다. 고속도로 배수관리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납품가는 날이다. 아침 일찍 출발했다. 목적지는 인천 서구 석남동에 있는 인쇄회로기판 제조업체 H사이다.
 

 
아침 6시 40분에 시동을 걸었다. 네비에는 45분이 찍혔다. 제2경인고속도로와 수도권순환도로와 제1경인고속도로를 경유해서 갔다. H사에 도착하니 7시 31분이었다. 50분만에 온 것이다. 이른 아침이라 밀리지 않았다.
 
고객은 늘 급한 것 같다. 이번에는 더 급했다. 물건을 이틀만에 만들어딜라고 했기 때문이다.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시간이다.
 
인쇄회로기판(PCB) 정상납기는 3박4일이다. 이를 1박2일 초단납기로 제작하면 네 배나 비용이 상승된다. 하루 일정 당기면 배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시간은 돈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두 모델을 제작했다. 두 모델 합하니 금액이 백만원이 훌쩍 넘었다. 크기는 손바닥만하다. 이렇게 값이 나가는 것은 금도금을 하고 특수공법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초단납기로 제작하다 보니 고가제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납기는 지켜 주어야 한다. 납기는 생명과도 같다. 설계 단계에서부터 시간이 문제가 되었다. 고객의 요구를 들어 주기 위해서는 주말없이, 밤낮없이 작업해야 한다.
 
마침내 설계가 완료 되었다. 이제 제작만 하면 된다. 그런데 제작도 급하다고 했다. 당장 내일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러나 제작하는 데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고객을 감동시켜야 한다. 고객이 원하는 납기에 맞추어 주어야 한다. 이럴 경우 비용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급행료를 지불해야 한다. 이틀 일정을 당기는데 네 배의 비용을 지불했다.
 
H사에는 7시 31분에 도착했다. 회사 마당에 주차해 놓고 아침을 먹었다. 집에서 준비해 온 고구마와 계란, 빵을 먹었다. 커피도 미리 준비해 왔다. 출하팀 사람들의 출근에 맞추어 기다리고자 했다.
 

 
오전 8시가 다 되었다. 출하팀에 불이 켜져서 들어가 보았다. 아마 밤샘작업하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다. 물건은 다 만들어져 있었다. 파일을 준지 3일만에 만든 것이다.
 
물건은 확보 되었다. 이제 이천에 있는 L사에 가져다 주어야 한다. 네비를 보니 2시간 5분으로 찍혔다. 전날 담당에게는 늦어도 다음날 오전 11시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문자를 보낸바 있다.
 
L사와 거래한지는 10년이 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고객이다. 이 업체가 없으면 매출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 업체가 먹여 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로 뛰는 이유에 해당된다.
 
사업은 상생하는 것이다. 고객사가 잘 되어야 나의 사업체도 잘 된다. 고객사가 망하면 나도 망한다. 이와 같은 운명공동체인 것을 알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폭우를 무릅쓰고 교통체증을 뚫고 달려 가는 것이다.
 
비즈니스는 주고 받는 것이다. 한편에서 일방적으로 이익을 취하면 오래 가지 못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신뢰가 있어야 한다. 신뢰는 다른 것이 아니다. 납기 내에 품질문제 없이 만들어 주면 된다.
 
고객의 납기를 지키기 위해 발로 뛰었다. 마침내 납기에 맞출 가능성이 있게 되자 어제 밤에 담당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담당들은 감동한 것 같았다. 기술담당 남자직원은 “정말 감사합니다, 사장님. 저희도 받고 솔더해서 대구로 바로 뛰어 가야 하는 상황인데 조금 시간 여유가 생기네요.”라고 답신을 보내 왔다. 영업당담 여자직원은 “네, 사장님 감사합니다.”라고 문자를 남겼다.
 
젊은 담당들이다. 한세대 아래 나이에 해당된다. 아들 뻘, 딸 뻘 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비즈니스 하는 데 있어서는 동등한 입장인 것이다.
 
고객을 감동시켜야 한다. 부처님도 고객을 감동시키라고 했다. 이는 앙굿따라니까야 사업의 경을 보면 알 수 있다.
 
초기경전을 보면 놀랍게도 장사나 사업에서 성공하는 방법에 대한 가르침이 있다. 이는 “그가 약속한 것을 의도한 것 이상으로 보시한다." (A4.79)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장사나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 고객은 하늘과도 같다. 고객을 만족시켜야 한다. 만족을 넘어서 흡족하게 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 더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신을 가지는 것에 대하여 부처님은 “그가 어떠한 사업을 하든 열심히 노력을 하면 의도한 것 이상으로 성공한다.”(A4.79)라고 했다.
 
장사나 사업에서 성공하려거든 고객을 감동시켜야 한다. 고객이 생각한 것보다 하나 더 주면 된다. 모든 것이 다 그렇다. 생각지도 않게 더 받았을 때 감동하지 않을 자 어디 있을까?
 
H사는 인천 바닷가 가까에 있다. 인천 서구 북항 근처에 있는 것이다. 인쇄회로기판 제조는 공해를 유발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바닷가 가까이 공단에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속도로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도시를 빠져 나와야 한다. 인천 서구 석남동에서 송내 IC까지 오는데 거의 한시간 걸렸다. 그러나 일단 고속도로만 타면 안심이다.
 
고속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수도권순환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에는 차량으로 가득했다. 오전 8시대이기 때문에 러시아워에 걸린 것이다. 더구나 비까지 세차게 내렸다. 백미터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납품은 자주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택배로 한다. 그러나 급할 때는 직접 뛴다. 일년에 서너번 있다.
 
어느 해인가 폭설이 내렸다. 납품을 해야 하는데 퀵배송 기사가 포기할 정도로 폭설이었다. 그것도 밤중이었다. 기사들은 이런 일에 목숨 걸지 않는 것 같다. 이에 직접 전달하기로 했다. 목숨을 건 납품이 되었다.
 
어느 해인가 폭우가 쏟아졌다. 그 날도 밤중이었다. 퀵배송 기사들도 피하는 폭우였다. 돈 보다 목숨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직접 전달하기로 했다. 생명을 담보로 하는 납품이 된 것이다.
 
납품을 하다 보면 손해나는 일도 종종 있다. 만든 물건에 하자가 있을 때 다시 만들어 주어야 한다. 종종 을에게 떠넘기는 경우가 있다. 담당이 처리하기 곤란한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담당의 요청을 들어 주면 좋다. 담당을 확실히 내편으로 만들 수 있다. 다시 만들어 주는 것이 손해인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익이다. 담당은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담당들에게 잘 보여야 하다. 사장보다 담당이다. 사장 보기는 힘들지만 담당들과는 늘 함께 일한다. 비록 한세대 이상 차이 나는 담당들이지만 나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담당들을 감동시켜야 하는 이유에 해당된다.
 
마침내 양지IC에 이르렀다. 양지를 빠져 나와 십여분 국도를 달리면 L사가 나온다. 그런데 국도변에는 전에 보지 못하던 플레카드가 붙어 있다. 그것은 “추계리 동물화장장 결사반대”라는 플레카드이다. 이곳에 동물화장장이 들어서려고 하는 것 같다.
 

 
L사에는 10시 48분에 도착했다. 어제 밤 문자에서는 늦어도 11시에는 도착할 것이라고 했다. 10분 먼저 도착한 것이다. 담당에게 릴레이 하듯이 샘플을 전달 했다. 그리고 곧바로 사무실로 돌아가기 위해서 차를 몰았다.

안양 사무실에는 12시 3분에 도착했다. 아침 6시 40분에 집을 떠나 인천으로, 이천으로, 그리고 안양으로 왔다. 무려 5시간 20분가량 길에서 보낸 것이다.

 

 
오늘 달린 것에 대한 보상이 필요했다. 얼큰한 순대국밥을 먹었다. 오늘 수고한 것에 대하여 나를 위한 공양을 했다.
 

 
오늘 전달한 물건은 즉시 작업을 할 것이다. 부품을 붙여서 대구로 가져 갈 것이라고 한다. 아마 그곳에서 테스트 하는 것 같다. 테스트가 끝나면 베트남으로 보낼 것이라고 한다.
 
오늘 전달한 샘플은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도면대로 그려 주었을 뿐이다. 그리고 샘플을 제작하여 전달해 주었다. 이렇게 급하게 진행하는 것을 보니 그 회사의 사활이 걸린 것 같다.
 
지난 주말과 이번 주초, 그리고 오늘까지 쉴새 없이 달려 왔다. 폭우를 뚫고 체증을 뚫고 마침내 약속한 시간에 물건을 가져다 주었다.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국가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나는 아직도 현역이다.
 
 
2023-10-1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