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의욕이 없을 때는 시장으로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1. 3. 17:11

의욕이 없을 때는 시장으로
 
 
하고자 하는 의욕이 없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다. 오늘 처리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다. 그러나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모처럼 일감을 맡았다. 3일분량의 일감이다. 잘하면 이번 달 임대료와 관리비를 낼 수 있을 정도의 일감이다.
 
월요일에는 파일을 넘겨 주어야 한다. 주말작업을 해야 한다. 밤낮없이 작업을 해야 한다. 이 나이에 일거리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다.
 
지난주의 일이다. 고객사 담당이 급하다고 하여 손수 물건을 납품했다. 인천에서 만든 것을 안양에서 받았다. 오토바이 퀵기사로부터 릴레이하듯 받은 것이다.
 
받은 물건을 이천 고객사 담당에게 전달해 주었다. 처음으로 영업담당 얼굴을 보았다. 수년동안 전화로만 소통했다.
 
나이가 많은 것은 불리한 것 같다. 나이가 육십 넘어 일을 하다 보니 이삼십대 담당과 만날 일이 있는데 마치 못 볼 것을 보여 주는 것처럼 당혹스럽다.
 
영업담당은 이십대 후반으로 보인다. 한세대 차이 나는 젊은 여성이다. 그런데 목소리와 실제 모습이 잘 일치하지 않는 것 같다. 귀여운 목소리와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영업담당은 나를 처음 보았다. 전화로 수년동안 통화하면서 한번도 보지 못한 것이다. 영업담당은 “처음 뵙겠습니다.”라며 말했다. 아마 담당은 목소리와 생긴 모습이 일치하지 않은 혼란을 겪었을지 모른다. 목소리와 달리 머리는 허연 백발에 가깝기 때문이다.
 
고객사가 원하는 것이라면 뛰어다닌다. 급한 납기는 발로 뛰는 것이다. 이렇게 하다 보니 신뢰가 쌓인 것 같다. 젊은 영업담당과 젊은 기술담당은 믿고 맡기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직도 현역이다.
 
일은 절대적 시간을 필요로 한다. 마치 호미를 들고 밭을 매는 것처럼 절대적으로 일할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요령 부릴 수 없다. 그러나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며칠 전 페이스북에서 본 것이 있다. 의욕이 없을 때는 걸으라고 했다. 나태에 지배 받을 때는 시장에 가라고 했다. 중앙시장에 가기로 했다.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백권당에서 안양중앙시장까지는 네 정거장 거리이다. 1키로가 약간 넘는다. 걸어가기로 했다. 무의욕과 나태, 권태, 게으름, 하품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걷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목적지를 향해서 갔다. 시장에 가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 마음 가짐이 달라진다. 특히 노점에서 좌판을 벌려 놓고 장사하는 노인들을 보면 호사스런 삶에 경각심을 갖는다.
 
우울할 때는 걸으라고 했다. 울적할 때는 시장에 가야 한다. 그렇다고 대형마트나 백화점에 가라는 것은 아니다. 생생한 서민의 삶의 현장에 가야 한다. 얼마나 내가 호강하고 있는지, 얼마나 내가 호사를 누리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항상 배낭을 가지고 다닌다. 요즘 들어 습관화 된 것이다. 배낭을 가지고 다니면 든든하다. 무엇보다 산 것을 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중앙시장에 가는 것도 무언가 사고자 하기 위함이다.
 
시장은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다. 가게가 없어도 노점에서 장사를 할 수 있다. 고작 천원, 이천원 하는 농산물이다. 바람이 부나, 눈이 오나, 추우나, 더우나 마치 도를 닦듯이 앉아 있는 노인들이 있다.
 

 
생생한 삶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두었다. 몰래 찍은 것이다. 사진만 찍고 말면 야박한 것이다. 팔아 주기로 했다. 호박잎 한봉지 2천원, 홍시 6개 2천원, 도너츠 3개 2천원, 합하여 6천원 팔아 주었다.
 

 
배낭이 든든하다. 배낭에는 6천원어치 팔아 준 먹거리가 있다. 이쯤 되면 할 바를 다한 것 같다.
 

 
걸어서 백권당으로 귀환 했다. 한시간 반 돌아 다녔다. 이전과는 기분이 확실히 다르다. 기분 전환도 되었을 뿐만 아니라 착한 일 한 것 같아서 뿌듯했다. 이 기세로 오늘 해야 할 일을 해야겠다.
 
 
2023-11-0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