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콘서트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것이 궁금하다. 북콘서트하면 몇 명이나 올까? 감이 잡히지 않는다.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북콘서트에서 어떤 사람들이 올지 모른다. 과연 나는 북콘서트할 자격이나 있는 사람일까?
이제까지 세 번 북콘서트했다. 매달 네 번째주 토요일에 진행했었다. 8월에는 능인선원 37기법우들 5명, 9월에는 정의평화불교연대 회원들 8명, 그리고 10월에는 담마와나선원 수행자들 10명을 대상으로 했다.
세 번에 걸친 북콘서트는 안면 있는 사람들이다. 수년 또는 십년 넘게 인연 맺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페이스북과 블로그를 대상으로 하는 북콘서트에는 어떤 사람들이 올지 모른다.
사람들은 자신을 노출하기를 꺼려 한다. 어떤 이는 글에서 자신의 사진을 빼달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자신의 이름도 넣지 말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페이스북과 같은 에이스엔에스에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는다.
처음부터 글을 쓴 것은 아니었다. 시절인연이 되어서 쓰게 되었다. 또한 쓸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어서 쓰게 되었다.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철저하게 자신을 숨겼다. 필명으로만 썼다. 당연히 얼굴도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2017년 처음으로 페이스북을 시작하면서 달라졌다.
페이스북에서도 이름과 얼굴을 숨기고자 했다. 그러나 이는 페이스북 정책과 어긋나는 것이다. 이름만 실명으로 알렸다. 그럼에도 나의 모든 것이 드러나는 듯했다.
한동안 페이스북에 얼굴을 알리지 않고 글을 썼다. 어떤 이는 “얼굴을 숨기는 사람과 친구하지 않습니다.”라고 불만을 표출했다. 어떤 이는 더 나아가 “무엇이 두려워 얼굴을 숨깁니까?”라며 비난했다.
얼굴을 알리기로 했다. 인터넷에 글쓰기 하면서 처음 있는 일이다. 실명과 얼굴이 알려졌으니 다 알려진 것이다. 더구나 글에서는 내면적인 이야기도 쓰고 있기 때문에 안팍으로 까발겨진 것이나 다름없다.
페이스북에서는 얼굴을 공개한다. 그러나 블로그에서는 여전히 공개하지 않는다. 페이스북은 공적인 영역이고 블로그는 사적인 영역으로 보기 때문이다.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고 글을 쓴지 6년 되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도 마치 익숙한듯이 말하는 것은 얼굴이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공개하지 않는 매체도 있다. 그것은 메신저이다.
생업이 있는 개인사업자이다. 그러다 보니 업체담당들과 문자로 소통한다. 메신저에 얼굴이 공개된다면 좋을 것이 없다. 왜 그런가? 나이 들어 보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다고 생각한다. 비즈니스를 하는데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나이가 이순이 넘어서까지 생업에 종사하다 보니 젊은 담당들을 주로 상대하게 된다. 그들의 눈에 머리가 허연 늙은이가 보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 부담감을 느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메신저에서는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다.
블로그와 메신저를 제외하고 모든 매체에 얼굴을 공개한다. 페이스북, 카톡, 밴드에는 실명과 함께 얼굴을 공개한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들은 여전히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느 밴드에서 명단을 보았다. 거의 대부분 가명이다. 어떤 이는 ‘1234’라고 쓴 이도 있다. 당연히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가 누군지 모른다. 당연히 그들은 글도 올리지 않는다.
매일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있다. 가능하면 있는 그대로 쓰고자 한다. 불리한 것도 쓰는 것이다. 내면적인 감정도 쓴다. 그러다 보니 나의 모든 것을 보여 주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행위도 엄밀히 말하면 ‘관종’이라는 것이다.
인터넷에 글을 쓰는 행위는 관심종자(관종)가 될 수밖에 없다. 글이라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얼굴사진을 자주 바꾸지 않는다. 자신의 얼굴을 대상으로 하여 ‘셀카놀이’를 하지 않는 것이다.
관종이 되면 인정욕구가 발동된다. 이는 ‘좋아요’ 추천에 목매다는 것을 보면알 수 있다.
글 쓰는 사람은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 주는 사람에 대하여 호의를 갖는다. 반면에 자신의 글을 애써 무시하는 듯한 사람에게는 불편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글은 왜 쓰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글은 자기계발을 위해서 쓴다. 글은 매일 새롭기 때문에 매일매일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글은 독자와 소통하기 위해서 쓴다. 읽어줄 사람을 염두에 두는 글쓰기를 말한다. 글은 관심을 끌기 위해서 쓴다. 관심종자가 대표적이다.
함부로 글을 쓰지 않는다. 내용도 없는 허접한 글을 쓰지 않는다. 사진만 달랑 올려 놓거나 담벼락에 구호 외치듯 하는 글은 쓰지 않는다.
길이 남을 글을 쓰고자 한다. 나중에 글을 모아서 하나의 묶음으로 만들면 책이 된다. 이렇게 만든 책이 현재 107권에 달한다.
책을 백권 만들었을 때 북콘서트를 하고자 했다. 먼저 소속된 모임이나 단체가 대상이 되었다. 그 모임이나 단체에 대한 글을 수년 또는 십년 이상 쓰다 보니 책으로 한권 되었다. 그 책을 대상으로 하여 지난 3개월 동안 세 번 북콘서트를 한 것이다.
11월에 북콘서트를 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없다.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몇 명이나 올지 알 수 없다. 무엇보다 훌륭한 사람들을 오라가라 할 수 있는 처지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돈인 세상이다. 훌륭한 사람들을 북코서트한다고 초대했을 때 시간을 빼앗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또한 훌륭한 사람들을 한군데에 모이게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으로 본다. 오히려 찾아 가야 한다.
글을 올리면 ‘좋아요’아이콘을 눌러 주는 사람들이 있다. 자주 보니 이제 이름이 익숙하다. 이런 분들을 찾아 뵙고 점심이라도 대접하고 싶다. 이런 분들을 어찌 감히 오라가라 할 수 있을까? 북콘서트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다.
2023-11-04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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