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절구커피와 함께 장엄한 하루를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1. 14. 08:06

절구커피와 함께 장엄한 하루를
 
 
오늘도 집에서 일찍 나섰다. 6시 20분에 아파트 현관을 떠났다. 등에 배낭이 있다. 오늘 아침 먹을 것이 들어 있다. 찐계란 하나와 찐고구마 한조각이 들어 있다.
 
이마트 안양점 앞에 전세버스가 있다. 화성이라고 써진 것을 보아 아마 반도체 회사 차 같다. 이른 아침에 일터에 가는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것이다. 대부분 서른살 안팍의 젊은 사람들이 탄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나라 국력이 이정도 됨을 알게 된다.
 
날씨가 춥다. 오늘은 영상 1도로 찍힌다. 내복을 입고 두터운 외투를 입었다. 목에 두르는 목도리를 착용하고 마스크 까지 썼다. 방금 머리를 감았기 때문에 외투에 달린 모자를 썼다.
 
집에서 일터까지는 걸어 간다. 1.3키로미터의 거리로 20분 가량 걸린다. 천천히 걷는다. 가능하면 한발한발 새기며 걷고자 한다. 새기며 걷는 것도 수행이다.
 
백권당에 도착했다. 늘 그렇듯이 식물이 반겨준다. 나에게는 식물은 반려식물이나 다름 없다.
 
반려동물은 유정체이어서 부담스럽다. 목줄을 맨 것이라면 학대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 죽을 때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려식물은 그럴 염려는 없다. 반려식물은 무정물에 가깝기 때문이다.
 
창 밖을 보니 붉은 기운이 있다. 동쪽 하늘이 벌겋게 물든 것 같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오피스텔 18층 꼭대기로 올라갔다. 안양을 사방으로 촬영했다. 장엄한 하늘이다.
 

 
동쪽에 평촌신도시가 펼쳐져 있다. 저 멀리 동쪽에는 청계산이 보인다. 청계산 너머에는 분당이 있다. 너 멀리 남쪽에는 모락산이 있다. 모락산 너머에는 수원이 있다.
 
평촌신도시는 커다란 분지로 형성되어 있다. 너른 들판에 신도시가 건설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보이는 것은 오로지 거대한 아파트 단지뿐이다.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이제 서서히 기지개를 켤 것이다. 또 하루가 시작 되는 것이다.
 

 
북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관악산이 보인다. 관악산 너머에는 서울이 있다. 이번에는 시선을 서쪽으로 돌렸다. 수리산이 있다. 안양의 진산이다. 그래서일까 안양 7동에 있는 회사를 다녔을 때 그곳에 가서 고사를 지냈다. 신제품이 출시 할 때 많이 팔게 해달라고 지내는 고사를 말한다. 공장장이 시켜서 그렇게 한 것이다.
 

 
하루 해가 뜨기 전에 하늘은 벌겋게 장엄된다. 물론 구름이 있어야 하고 청명해야 한다. 큰 빌딩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 온다. 열 병합발전소인 것 같다. 장엄한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미화원을 만났다. 쓰레기를 잔뜩 담은 커다란 통 두 개를 1층으로 나르는 것이다. 미화원에게 말을 걸었다. “3층 담당이 바뀐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제 새로 온지 2주 되었어요.”라고 말했다. 전에 있던 사람은 1년만에 나간 것이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청소도 누군가 해야 한다. 그런데 이곳 오피스텔은 청소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왜 힘들까? 쓰레기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힘들다고 한다. 세 명이서 감당하기 힘든 것 같다.
 
백권당 사무실에 다시 돌아 왔다. 바닥을 닦고자 했다. 미화원이 관리하고 있는 청소함에서 마대자루를 가져왔다. 사무실 구석구석을 닦았다.
 
무엇이든지 혼자 일한다. 일인사업자이고, 원맨컴퍼니이고, 일인사장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혼자 일하다 보니 혼자 쓰레기통도 치우고, 혼자 바닥청소도 하고, 혼자 커피도 타 마신다. 바닥을 닦고 나니 한결 깨끗해진 것 같다. 기분까지 상쾌해졌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다. 두 건의 일을 처리해야 한다. 모처럼 일감이 겹치기로 들어 왔다. 즐거운 비명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 일을 이 곳에서 16년 동안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단골이 생겼다. 오랜 만에 어떤 사장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도 일 하세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왜 이렇게 물었을까? 아마 그것은 하다말다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딱히 할 일이 없다. 이 일은 정년이 없다. 사람을 대면하면서도 하는 일도 아니다. 메일과 전화로도 가능한 일이다. 그러다 보니 오래 있게 되었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임대료와 관리비만 나온다면 언제까지나 할 수 있다.

 
세상에는 힘든 일도 있고 어려운 일도 있고 더러운 일도 있다. 이른다 3D업종을 말한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이런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가치를 부여하면 훌륭한 일이 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면 고귀한 일이 된다. 청소를 하는 것도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면 이 훌륭한 일이 되고 고귀한 일이 된다. 이 세상을 깨끗하게 하는 일보다 더 가치 있고 더 의미 있는 일이 어디 있을까?
 

 
오늘도 하루일과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나이 먹었음에도 찾아 주는 고객이 있어서 살 맛 난다. 일을 잡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무엇보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이제 일을 시작해야 한다. 일이 끝나면 매일 하는 좌선을 해야 한다. 오늘같이 일감이 있는 날은 일을 우선한다. 일이 마무리 되면 좌선도 하고 글도 써야 한다. 오늘 절구커피 맛은 최상이다. 절구커피와 함께 장엄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2023-11-1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