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백권당에 있는 백권의 책을 보면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1. 20. 14:32

백권당에 있는 백권의 책을 보면
 
 
김치냉장고에 김치가 가득하다. 무려 네 박스가 있다. 이 정도면 1년 먹을 수 있다. 김장을 한 것이다.
 
요즘 김장철인가 보다. 마트에서 절임김치 판매행사 한 것을 봤다.
 
김장철을 맞이하여 김장하고자 했다. 장모댁에서 김장하는 것이다.
 
김장 날자를 받아 놓았다. 가서 버무리는 등 김장을 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출발하기 하루 전에 연락을 받았다. 다 해놓았다는 것이다. 와서 가져가라고 한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이다. 김장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 같다.
 

 
김장김치를 가지러 갔다. 다 해 놓은 것을 차로 실어 나르기만 하면 된다. 해마다 얻어 먹는 김장김치의 양은 얼마나 될까?
 
윤회하면서 흘리는 피의 양이 있을 것이다. 과연 얼마나 될까? 경에서는 사대양의 바다보다도 많을 것이라고 했다. 수미산을 둘러싸고 있는 사대양을 말한다.
 
윤회하면서 먹던 젖의 양은 얼마나 될까? 역시 사대양의 바다보다 많을 것이다. 윤회하면서 남긴 뼈무더기는 얼마나 많을까? 쌓아 놓으면 라자가하 베뿔라산보다 더 높을 것이라고 했다.
 
김치를 해 먹지 않는다. 장모가 해 준다. 팔팔년 이후 장모에게 얻어 먹은 김치의 양은 얼마나 많을까? 집채만 하다고 말할 수 있다.
 

 
창고에 식량이 가득 있으면 든든할 것이다. 집에 먹을 것이 잔뜩 있으면 먹지 않아도 배부를 것이다.
 
연탄 때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부엌 한켠에 연탄창고가 있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연탄을 들였다. 창고 가득 시커먼 연탄을 보면 어린 마음에도 든든했다.
 
가난하던 시절 사람들은 겨울나기가 힘들었다. 연탄과 김치는 겨울 나기에 필수품이었다. 창고 가득 연탄이 있고 장독 가득 김치가 있을 때 마음도 풍요로워지는 것 같았다.
 
백권당에 미네랄워터가 있다. 마트에서 산 것이다. 2리터 6개들이 한묶음에 2,450원이다. 노브랜드이어서일까 대단히 저렴하다. 세 묶음을 들여다 놓았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풍요롭다.
 
저축이 있으면 안심된다. 은행에 저축이 충분하면 든든하다. 쓰는 것보다 들어 오는 것이 더 많으면 갈수록 축적된다. 돈 불어 나는 재미로 사는 사람도 있다.
 
김치는 겨울이 지나면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연탄은 겨울이 지나면 바닥날 것이다. 은행에 맡긴 돈은 들어 오는 것보다 나가는 것이 더 많으면 통장은 텅텅 비게 될 것이다. 미네럴워터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어 한 개 밖에 남지 않을 날이 있을 것이다.
 
축적된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자동차에 기름을 가득 채웠어도 주행하다 보면 게이지가 바닥에 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질적인 것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사라지고 만다.
 

 
줄지 않는 것은 없을까? 한번 사 놓으면 그대로 있는 것은 없을까? 책은 한번 사 놓으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책은 누가 가져가지 않는 한 닳아 없어지지 않는다.
 
책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 돈은 배신해도 책만큼은 내편이다. 책장 가득 있는 경전은 오년전이나 십년전이나 그대로 있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 없다. 화재가 나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된다.
 
백권당에 책장이 여러 개 있다. 그 중에 하나는 오늘날 백권당 명칭의 유래가 되는 백권의 책이 있다. 블로그에 쓴 글을 시기별로 또는 카테고리별로 모아서 만든 책을 말한다.
 

 
백권당에는 백권의 책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103권의 책이 꼽혀 있다. 더욱더 엄밀히 말하면 110권이다. 피디에프(pdf)로 만든 것도 책이기 때문이다.
 
백권당에 있는 책도 언젠가 사라지고 말 것이다. 화재로 사라질 수 있다. 필자의 사망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온라인에 있는 pdf는 일단 안심이다.
 
백권당에 있는 책은 나의 분신과도 같다. 지난 17년의 세월이 책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거의 매일 오전일과는 글쓰기로 보냈기 때문에 책은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책은 오프라인에도 있지만 온라인에도 있다. 만져 볼 수 없지만 컴퓨터 전원만 연결되면 볼 수 있다. 더구나 블로그에 누구나 다 가져가라고 pdf로 올려 놓았기 때문에 시공을 초월한다. 이런 블로그도 영원한 것일까?
 
블로그를 다음에서 시작했다. 2005년 당시 다음은 경쟁력 있었다. 경쟁 포털과 시장을 양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수록 경쟁력은 약화 되었다. 경쟁사와 비교하여 3분의 1 또는 4분의 수준에 이르렀다. 이는 키워드광고 할 때 클릭당 단가를 보면 알 수 있다.
 
다음에 있는 블로그는 망했다. 어느 날 블로그를 폐쇄한다고 공지했다. 티스토리리로 옮기라고 했다.
 
다음은 영원할 줄 알았다. 처음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 블로그가 폐쇄될 줄 몰랐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다 보니 상상도 못할 일이 일어 났다. 그렇다면 앞으로 10년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어느 것 하나 영원하지 않는다. 먹는 것은 세월과 함께 사라진다. 아무리 돈을 많이 모아 놓았어도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책은 영원할 것 같지만 어느 때 정리된다. 온라인에 저장되어 있는 자료도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영원히 가져 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인색함을 반드시 이겨서
마음의 티끌을 극복하고 보시해야 하리.
이러한 공덕은 저 세상에서
뭇삶들에게 의지처가 되리.”(S1.32)
 
 
누구나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간다. 제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가져갈 수 없다. 제아무리 가족이 많아도 함께 갈 수 없다. 가져 갈 수 있는 것은 삶의 과정에서 지은 행위(業)뿐이다.
 
행위에는 빠빠(papa)와 뿐냐(puñña)가 있다. 이를 악행과 공덕이라고 말한다.
 
악행이 더 많다면 석양에 산그늘 지는 것처럼 저 세상은 두려운 것이 된다. 공덕이 더 많다면 창고에 식량이 가득한 것처럼 저 세상은 새로운 집이 된다.
 
공덕행은 저승 갈 때 노자돈과 같다. 이런 공덕행에 어떤 것이 있을까?
 
세 가지 공덕행이 있다. 이는 보시공덕, 지계공덕, 수행공덕을 말한다. 이 세 가지 공덕을 쌓으면 악처는 면할 수 있다. 특히 수행공덕을 쌓으면 절대 악처에 떨어지지 않는다.
 
김치냉장고에 김치가 가득하다. 올 겨울은 물론 일년 내내 먹을 수 있는 분량이다. 백권당에는 2리터 여섯 개들이 미네럴워터가 세 묶음 있다. 한달 마실 수 있는 분량이다.
 
김치도 물도 시간이 지나면 바닥난다. 그러나 백권당에 있는 백권의 책은 항상 그대로 있을 것이다. 불이 나지 않는 한, 블로거가 사망하지 않는 한 그대로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책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피디에프로 만든 것도 영원하지 않다.
 
어느 것 하나 영원하지 않다. 그러나 영원하지 않은 것 가운데도 영원에 가까운 것이 있다. 그것은 공덕행이다. 공덕행은 세월이 가도 그대로 있다. 심지어 죽어서도 가져 간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회향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적 재산은 자신의 것이다. 그런데 정신적 재산은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누면 나눌수 커진다는 것이다. 누군가 수희찬탄하면 그 사람 것이 된다.
 
보시공덕, 지계공덕, 수행공덕은 무형의 재산이다. 물질적 재산은 도둑 맞을 수 있고, 불에 탈 수 있고, 악의적 상속자가 탈취해 갈 수 있고, 국가에 귀속될 수 있다. 그러나 무형의 정신적 재산은 도둑도 가져갈 수 없고, 화마도 피해 갈 수 있고, 악의적 상속자가 탈취해 갈 수도 없고, 국가에도 귀속되지 않는다.
 

 
무엇이든지 축적되어 있으면 부자가 된 것 같다. 그러나 세월에 따라 사라져 간다. 그러나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 그것은 정신적 재산이다. 백권당에 있는 백권의 책을 보면 부자가 된 것 같다.
 
 
2023-11-20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