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명사가 될 수 있을까?
세상에 쓰고 싶은 것이 많다. 처음 글쓰기 할 때는 소재에 목말랐다. 그날 일어난 일을 모두 다 쓸 수 없다. 그날 가장 인상적인 사건이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오늘 아침 머리를 감다가 문득 명사에 대한 것이 떠올랐다. 종교전문기자는 왜 명사들만 찾아 다닐까에 대한 것이다.
세상에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이 많다. 요즘은 유튜브 시대라 유튜브에도 명사가 있다. 그러나 종교전문기자가 인정하는 불교명사는 불교언론환경에 노출된 사람이 대상이 되는 것 같다. 또한 출가자나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이 대상이 되는 사람 같다.
‘붓다빅퀘스천’이라는 것이 있다. 불광에서 주최하는 것이다. 여기에 출연하면 불교관련 방송에서도 볼 수 있고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다. 한마디로 명사들만 대상이 되는 곳이다.
도반 중에 붓다빅퀘스천에 출연한 사람이 있다. 출연하기로 결정이 되자 축하의 메세지를 보냈다. “이제 명사가 되었음을 축하드립니다.”라고 말했다.
명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아마도 불교관련 방송에 출연하거나 종교전문기자의 인터뷰 대상이 되면 명사가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명사의 조건을 갖추었는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나는 명사가 될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처음 재가불교단체활동을 할 때의 일이다. 그때 어느 모임에서 각자 소개시간이 있었다. 사회자는 ‘파워블로거’라고 소개했다.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바라던 것인지 모른다.
재가불교단체활동은 오래되지 않았다. 2015년 처음으로 시작했다. 이전에는 집과 일터만 오가며 글만 썼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세상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참으로 쟁쟁한 사람들이 많았다. 학생운동하던 사람들도 많았다. 투옥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들은 노동운동도 했다는 것이다.
학교 다닐 때 학생운동을 하지 않았다. 80년 ‘서울의 봄’ 때 데모대열에 합류하기는 했다. 당연히 감옥에 간 적도 없었다. 당연히 위장취업을 해서 노동운동도 하지 않았다.
운동권과는 반대의 반대의 길을 걸었다. 큰기업에 취업하여 월급생활자로 산 것이다. 이후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회사와 일터를 왕래하는 삶을 20년 살았다. 이후 자영업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지난 시절을 돌아 본다. 학력이나 경력 어느 것도 내세울만한 것이 없다. 다만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 파워블로거라고 했을 때 듣기에 좋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블로거도 명사가 될 수 있을까? 불교관련 방송 등에 출연한다거나 불교계 신문 기자의 취재 대상이 된다든가, 종교전문기자의 인터뷰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아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불교관련 방송을 보면 명사를 초대하는 프로가 있다. 일반불자들도 대상이 되는 프로도 있다. 대체로 신심이 있다고 소문난 불자가 대상이 되는 것 같다. 또한 불교대상이라 하여 상을 받는 사람들도 대상이 된다. 블로거도 해당될까?
글을 쓰다 보면 과시할 때가 있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것도 한두번이 아니다. 여러 번 언급한다면 식상해 할 것이다. 그럼에도 잊을만하면 드러낸다. 그런 것 중의 하나는 ‘넘버원 블로그’에 대한 것이다.
블로그에 글을 쓸 때 자랑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아직까지 제 블로그 누적조회수만큼 많은 블로그를 보지 못했습니다.”라는 말이다. 이는 “내 블로그가 불교계 1등 블로그입니다.”라며 떠들며 돌아다니는 것과 같다.
블로그 자랑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그것은 누적조회수가 말해 준다. 2023년 11월 23일 8시 9분 현재 누적조회수는 8,494,235명에 달한다. 아직까지 이 조회수를 능가하는 불교계의 블로그를 보지 못했다.
블로그 관리자 모드에서 통계를 본다. 매일 천명 안팍이다. 요즘은 천명 아래인 경우가 더 많다. 갈수록 약화 되는 것 같다. 불과 이삼년 전까지만 해도 2천명 안팍이었다. 더 이전에는 사오천명 되었다.
블로그는 나의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2005년 개설이래 하루도 빠지지 않고 관리해 왔다. 2006년 6월 부터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후 거의 매일 올리다 시피 했다.
요즘은 하루에 두 개도 좋고 세 개도 좋다. 그렇다고 허접한 글은 올리지 않는다. 내용과 형식을 갖춘,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은 글을 올린다. 영원히 세세생생 남을 글을 글을 쓰고자 한다. 그러다 보니 함부로 글을 쓰지 않는다.
지금까지 올린 글은 얼마나 될까? 직접 써서 올린 글은 금일 현재 7,407개이다. 생명 같은 글이다. 왜 생명 같은가? 이는 하루일과에서 오전은 글쓰기로 보냈기 때문이다. 글에 시간이 녹아 들어가 있다. 어찌 글을 생명과 같다고 하지 않겠는가?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글은 써 놓은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블로그에 카테고리별로 올려진 글에 대하여 시기별로 또는 주제별로 한데 묶어서 책을 만들고 있다.
현재 책은 110권 만들었다. pdf 파일로 만든 것이다. 책처럼 보이기 위해서 목차를 만들고 서문을 썼다. 책처럼 보이기 위해서 복사전문점에 인쇄와 제본을 맡겼다. 그 결과 현재 백권당 책장에는 103권의 책이 있다.
블로그에 올려진 글은 막아 놓지 않았다. 오른쪽 마우스버튼 클릭을 허용해 놓은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모두 퍼가도 좋다는 것이다.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것은 공유를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어떤 이의 글을 보면 퍼가는 것을 막아 놓았다. 아마 저작권 보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내 글은 막아 놓지 않았다.
블로그에 있는 글만 막아 놓지 않았다. 블로그에는 책도 올려 놓았다. 이제까지 110권 만들었는데 pdf파일을 모두 올려 놓았다. 누구든지 다운로드 할 수 있게 해 놓은 것이다. 그래서 “모두 가져가십시오, 모두 당신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최근 스리랑카 순례기를 만들었다. 작년 12월 1주일 순례한 것을 10개월 기록한 것이다. 이를 책으로 만들어 보니 거의 5백페이지에 달했다. 이를 인연 있는 불자들과 스님들에게 보냈다. 그리고 블로그에 pdf파일을 올려놓았다. 모두 회향한 것이다.
블로그에 글을 쓴지 17년 되었다. 그 결과 대한민국 불교계의 넘버원 블러거가 된 것 같다. 이런 블러거도 명사가 될 수 있을까? 그러나 주류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아마 명사의 조건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명사가 되려면 조건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어떤 조건인가? 나름대로 다음과 같은 기준을 만들어 보았다.
첫째, 사회적 지위가 있어야 한다. 어떤 단체의 장을 맡으면 일단 명사의 조건이 된다. 기업의 최고경영자도 대상이 될 것이다. 선출직이나 임명직의 공직자도 대상이 된다.
둘째, 학력이 있어야 한다. 최소한 피에이치디(Ph.D) 타이틀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온 것도 대상이 될 것이다. 학자이면 명사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본다.
셋째, 수상경력이 있어야 한다. 불교계 관련 모임이나 단체에서 상을 받았다면 명사로서 조건이 될 수 있다. 이에 ‘불교대상’만한 것이 없다.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 사성장군은 불교대상의 영순위가 된다.
넷째, 스님이면 자동적으로 명사의 조건이 될 수 있다. 이는 마치 태생적으로 명문가문에 속하는 것과 같다. 출가자로서 책을 내거나 조금이라도 알려지면 명사가 될 수 있다.
불교계 명사의 조건 네 가지를 나열해 보았다. 이렇게 본다면 나에게는 결여된 것이 많다. 가장 큰 것은 사회적 지위가 없다는 것이다.
불교계에서 대표적 사회적 지위가 있다. 그것은 스님이나 학자를 말한다. 이런 지위를 가지면 명사의 조건 일순위가 된다.
이런 말이 있다. 누군가 뒤에서 “사장님!”하고 부르면 열에 일곱은 뒤돌아 본다고 말한다. 일인사장도 사장인 것이다.
자영업자로 살고 있다. 개인사업자로 원맨컴퍼니의 원맨사장이다. 사회적 지위가 있을 수 없다. 당연히 명사가 되지 못한다. 학력은 학사가 전부이니 역시 명사의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수상경력은 없다. 출가자도 아니다. 어느 모로 보나 명사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나도 불교계 명사가 될 수 있을까? 종종 이런 꿈을 꾼다. 어느 날 나에게도 프로포즈가 들어 오는 것을 말한다. 상을 주겠다든가 방송에 출연해 달라든가, 인터뷰하자고 요청하는 것 등을 말한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설령 그런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단호히 거부할 것이다.
정평불 법회가 있다. 한달에 한번 있는 법회이다. 법사는 회원들이 돌아가며 맡는다. 어느 날 법문요청이 들어 왔다. 글 쓴 것을 보고서 법문을 맡기고자 한 것이다. 이에 단호히 거절했다.
글을 쓰는 것과 법문하는 것은 다르다. 법문하는 것과 웅변하는 것은 다르다. 사람은 각자 나름대로 특기가 있다.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있다. 양자를 모두 가진 재능 있는 사람은 드물다.
글 쓰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렇게 매일 오전에 글을 쓰는 것은 커다란 행복이다. 더구나 써 놓은 글을 책으로 만들어 놓으면 행복은 배가 된다.
글은 얼마든지 쓸 수 있다. 하루종일 쓰라고 해도 쓸 것 같다. 그러나 강단에 서는 것은 자신 없다. 이제까지 한번도 사람들 앞에 서서 강의나 강연, 법문을 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말을 잘 하지 못한다. 이는 직업과도 관련이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를 들어 갔을 때 기계 앞에서만 있었다. 계측기와 컴퓨터 앞에서 개발업무만 20년 하다 보니 말을 못하게 된 것이다. 이는 교단에 서서 말을 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과 대조적인 삶이다.
늘 자조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비주류, 비급, 삼류라는 말이다. 한번도 주류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주류이다. 한번도 에이급이 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비급이다. 한번도 일류가 된 적이 없기 때문에 삼류이다.
명사가 되려면 주류, 에이급, 일류가 되어야 한다. 어느 모로 보나 명사가 될 수 없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인터뷰 요청이 오면 단호히 거부할 것이다. 늘 그렇듯이 비주류, 비급, 삼류 블로거로서 살고자 한다. 오늘도 내일도 오로지 쓸 뿐이다.
2023-11-23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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