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수행자의 일상과 재가수행자의 허물
새날이 밝았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새벽 5시 반이다. 그러나 이미 새벽 3시 반에 잠에서 깨었다. 마하시사야도의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을 읽다가 다시 잠들었다.
해가 짧아졌다. 밤이 길어졌다. 많이 추워졌다. 새벽에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매일 하는 일이다. 오전 6시 이전에는 무조건 일어나야 한다.
일어나서 해야 할 것이 있다. 아침 준비를 하는 것이다. 고구마를 찌고 계란을 찐다. 백권당에서 먹을 것을 준비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샤워를 한다.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몸을 청결히 하면 마음도 깨끗해지는 것 같다.
아침 6시 25분에 집을 나섰다. 일터까지 1.3키로 거리이기 때문에 20여분 걸린다.
아파트 동 현관을 나서니 캄캄한 밤중이다. 그러고 보니 동지가 한달 밖에 남지 않았다. 밤은 깊어지고 낮은 짧아진다.
이마트 안양점을 돌아 경수산업대로를 건넜다. 아침 일찍부터 차들은 쏜살같이 달린다. 화성캠퍼스라고 써 있는 전세버스는 이미 출발했나 보다. 아침 일찍 반도체 회사로 출근 하는 젊은 청년들을 실어 나르는 버스를 말한다.
안양천에 이르렀다. 저 멀리 남쪽 하늘 중천에 유난히 반짝이는 별을 보았다. 저 별 이름은 무엇일까? 혹시 목성 아닐까? 지난날 천장사에서 음력 보름날 ‘달빛 음악회’가 있었다. 그때 중현스님은 달 옆에 유난히 반짝이는 별에 대하여 목성이라고 했다.
일터에 갈 때는 배낭을 맨다. 배낭에는 먹을 것이 들어 있다. 찐계란과 찐고구마를 말한다. 그리고 오늘은 책을 넣었다.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을 보다가 인용하고 싶은 구절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일터에 도착했다. 안양에서 가장 오래된 오피스텔이다. 평촌신도시가 생기기 전에 건축되었을 것이다. 구도시에서 있어서인지 임대료와 관리비가 저렴하다. 싼 맛에 있다 보니 16년 되었다.
오피스텔에 1등으로 도착했다. 아침 7시 이전에 오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미화원들이 아침청소에 바쁘다.
오늘 새벽노을이 장관일 것 같다. 빌딩 18층 꼭대기로 올라갔다. 동쪽 하늘을 볼 수 있다. 평촌신도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해는 아직 뜨지 않았다. 그러나 해뜨기 전조가 있다. 그것은 동녘하늘을 벌겋게 달구는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 일찍 일터에 나오면 상쾌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 같다. 그런데 초기경전에서도 새벽은 칭송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태양이 떠 오를 때 그 선구이자 전조가 되는 것은 바로 새벽이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이 생겨날 때 그 선구이자 전조가 되는 것은 방일하지 않는 것이다.”(S45.54)
태양이 떠 오를 때 전조가 있다. 그것은 동녘의 새벽노을이다. 하늘을 벌겋게 만드는 새벽노을이 발생되면 해 뜰 시간이 머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깨달음에도 전조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불방일(不放逸)이다.
불방일은 압빠마다(appamāda)를 번역한 말이다. 이 말은 ‘watchfulness, vigilance, earnestness’의 뜻으로 부지런함, 늘 깨어있음의 뜻이다. 그래서 압빠마다는 사띠와 동의어로도 쓰인다.
부처님의 마지막 가르침이 있다. 부처님은 열반하기 전에 “압빠마데나 삼빠데타(appamādena sampādethā)”라고 말했다. 이는 “불방일정진(不放逸精進)”(D16)으로 번역된다. 이 말은 “늘 깨어 있어서 원하는 바를 성취하라.”라는 뜻이다.
무엇이든지 전조가 있고 징조가 있다. 마치 태양이 떠오르기 전에 먼저 새벽노을이 있는 것과 같다. 범천이 출현하기 전에 먼저 빛부터 내비치는 것과 같다.
깨달음에도 전조가 있다. 그것은 방일하지 않는 것이다. 늘 깨어 있는 것이다. 항상 정진하는 것이다.
백권당에 도착했다. 열 평 되는 작은 임대사무실이다. 2017년 입주해서 지금까지 내리 16년 있다. 이 곳은 일터도 되고 서재도 되고 명상공간도 된다.
사무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식물이 반겨준다. 먼저 식물상태부터 살핀다. 30개가 넘는 화분은 반려식물과 같다.
아침이 되었으니 식사를 해야 한다. 집에서 가져온 찐계란과 찐고구마 한쪽, 그리 샌드위치 한 개에 치즈를 먹는다. 여기에 꿀물을 곁들인다.
식사를 했으면 커피를 마셔야 한다. 절구질한 원두커피를 마신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절구질해서 만든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최상의 커피이다.
오늘도 하루일과가 시작되었다. 오늘은 평소와 달리 글쓰기부터 먼저 시작한다. 이전에는 아침좌선을 먼저 했었다. 그러나 우안거가 끝났기 때문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일감 마무리 작업이나 글쓰기를 먼저 하기도 한다. 좌선은 모든 일이 마무리 되었을 때 오후에 하고자 한다.
매일 글을 쓴다. 17년동안 매일 오전은 글쓰기로 보냈다. 그러다 보니 글쓰기가 생활화 되었다. 마치 때 되면 밥 먹는 것과 똑같다.
글은 허물이 되기 쉽다. 왜 그런가?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때로 불리한 것도 쓰고 마음에 있는 이야기도 쓴다. 그래서일까 모임에서 어떤 이는 나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글은 진리를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다. 깨달음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입맛 벙긋하면 어긋난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글을 잘 쓴다고 해도 허물이 되고 구업(口業)이 된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다. 매일 아침에 쓰는 행위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숙제하지 않은 것처럼 개운하지 않다.
글로 인하여 비난도 받았다. 그것은 놀랍게도 글을 매일 쓴다고 지적 받았다. 어느 스님은 글을 줄이라고 했다. 매일 쓰지 말고 일주일에 한두편만 쓰라고 충고했다. 그래야 글의 질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글이 길다고 불평했다. 오전 내내 글을 쓰면 A4로 8페이지가량 되는데 아마 읽다가 지쳤을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수행기를 꼭 써야 되는지에 대하여 언급했다. 기도는 골방에서 한다는 말이 있듯이, 수행도 조용히 하는 것이지 떠들썩하게 하는 것 같아 좋아 보지 않음을 말한다.
법구경에 말에 대한 가르침이 있다. 법구경 227번 게송에서는 “침묵한다고 비난하고 말을 많이 한다고 비난하고 알맞게 말한다고 비난하니 세상에서 비난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법구경 Dhp227)라고 했다.
글이 길어도 비난 받는다. 글이 짧으면 내용이 없다고 비난할 것이다. 글을 쓰지 않으면 침묵한다고 비난할 것이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까?
부처님도 비난 받았다. 부처님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외도들은 부처님 잘 되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역시 법구경에 해답이 있다.
“깨어진 놋쇠그릇처럼
그대 자신이 동요하지 않으면,
그것이 열반에 이른 것이니
격정은 그대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Dhp134)
이래도 비난 받고 저래도 비난 받는다. 이럴 때는 바닥에 버려진 깨진 종처럼, 깨진 놋쇠그릇처럼 되는 것이다.
종이 깨져서 바닥에 있으면 아무리 때려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발로 차거나 막대기로 두드려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현명한 자는 어리석은 자의 비난에 동요하지 않는다. 깨진 종처럼, 깨진 놋쇠그릇처럼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비난과 충고는 다르다. 현자의 조언은 충고가 된다. 어리석은 자의 험담은 비난이 된다. 어리석은 자의 비난에 대해서는 땅바닥에 있는 깨진 종처럼, 깨진 놋쇠그릇처럼 반응하지 않아야 한다.
어리석은 자의 칭찬이나 비난은 고려할 것이 못된다. 그러나 현명한 자의 조언이나 충고는 귀담아 들어야 한다. 현명한 자가 칭찬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받아 들어야 한다.
스스로 수행자라고 칭한다. 재가수행자를 말한다. 이런 말에 대하여 불편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재가자가 어떻게 수행자가 될 수 있는지 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수행자는 수행승과 같다. 그런데 누구나 수행승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드시 머리 깍고 가사를 입어야만 수행승 또는 수행자라고 할 수 없다. 청정도론에 따르면 “윤회에서 두려움을 보는 자는 빅쿠(수행승)이다.”라고 했다. 누구나 윤회에서 두려움을 보고 염오한다면 수행자가 될 수 있다.
재가수행자로 살고자 한다. 수행자로 산다면 수행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명상을 한다면 좀더 수행자다운 수행자로서 산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수행자로 살다 보면 비난이 따를 수밖에 없다. 왜 그런가? 청정한 삶을 사는 사람의 허물은 매우 크게 보이기 때문이다.
부처님 당시 꼬살라 국에 어느 수행승이 있었다. 수행승은 오전 탁발이 끝난 다음에 연꽃이 있는 연못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연꽃이 아름다워 향기를 맡았다.
수행자는 어떤 경우에서든지 새김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수행승이 연꽃향기를 맡는 행위에 대하여 이를 지켜 보던 천신이 있었다. 천신은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이 연꽃의 향기를 맡을 때
그것은 주어진 것이 아니네.
이것은 도둑질의 한 가지이니
벗이여, 그대는 향기도둑이네.”(S9.14)
수행승은 졸지에 도둑이 되었다. 아무리 주인없는 연꽃향기일지라도 코를 댄 것은 허락없이 취한 것이나 다름 없다는 것이다.
수행승은 억울했다. 일반 재가자들은 연꽃을 꺽어가기도 한다. 수행승이 연꽃에 코 좀 댔다고 향기도둑으로 내 몬 것은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에 천신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충고했다.
때묻지 않은 사람,
언제나 청정함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머리털만큼의 죄악이라도
구름처럼 크게 보이는 것이네.”(S9.14)
출가수행승과 일반사람은 다르다. 일반사람은 술을 마셔도 되지만 출가자는 술을 마셔서는 안된다, 출가가자 술을 마시면 허물이 되는 것이다. 일반사람은 연꽃을 꺽어서 집에 있는 화병에 담아 두어도 되지만 출가자는 냄새만 맡아도 향기도둑이 된다. 왜 그런가? 출가자는 청정한 삶을 살기로 서원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시민사회단체가 있다. 어떤 단체에서 단체의 장에게서 잘못이 발견되면 여론이 들끓는다. 진보진영의 리더에게서 오점이 발견되면 세상이 떠들썩 해진다. 그러나 이익단체의 리더나 보수진영의 리더에게는 잘못이 발견되더라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왜 그런가? 청정함 때문이다.
시민사회단체의 리더나 진보진영의 리더에게는 엄격한 도덕적 청정을 요구한다. 조금이라도 잘못 되면 그 허물은 구름처럼 크게 보인다. 마찬가지로 청정한 삶을 추구하는 수행자의 허물도 구름처럼 크게 보이기 마련이다.
천신은 수행승의 행위를 지켜 보고 있다. 수행승에게는 마치 수호천사와도 같은 존재이다.
어떤 사람이 출가할 때 우주적 사건이라고 한다. 하늘에 있는 천신들의 관심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천신들은 수행승을 보호하고자 한다. 그런데 수행승이 잘못된 길로 가면 충고해준다는 것이다.
수행승은 무심코 연꽃향기를 맡았다. 수행은 무엇을 잘못했을까? 연꽃향기 좀 맡았다고 해서 향기도둑으로 말하는 것은 억울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향기도둑으로 내몰린 것보다 더 잘못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새김(사띠)을 놓친 것이다.
어느 장로 수행승이 있었다. 제자가 찾아오자 반가운 마음에 손을 들어서 어서 오라고 했다. 제자가 가까이 가자 장로는 손을 다시 드는 것이었다. 이에 제자가 왜 그런 행위를 했는지 물어보았다.
장로는 아무생각없이 무심코 손을 뻗었다. 나중에 이 시실을 알았다. 항상 새김을 유지하고 있었던 장로는 사띠를 놓친 것이다. 그래서 새김을 유지하면서 손을 다시 한번 내뻗친 것이다.
천신은 수행승에게 향기도둑이라고 말했다. 이는 수행승이 새김을 잃어 버렸기 때문에 알려 주고자 한 것이다. 일반사람이라면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행승은 청정한 삶을 살기로 한 사람이다. 그런데 향기도둑으로 내몰렸다. 이를내버려 두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매일 연꽃에 가서 향기를 맡았을 것이다.
무엇이든지 반복적인 행위를 하면 업이 된다. 수생승이 매일 연꽃 향기를 맡는다면 이는 갈애가 된다. 갈애는 집착으로 전개된다. 이렇게 되면 윤회가 회전되어서 청정한 삶을 살 수 없다. 해탈하는데 장애가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천신이 충고해준 것이다.
수행승에게 천신은 마치 수호천사와 같은 것이다. 수행승이 잘못을 했을 때 지적하고 충고해준다. 이런 충고는 받아 들여야 한다.
어리석은 지적은 비난이 된다. 현자의 지적은 충고가 된다. 어리석은 자의 칭찬과 지적은 바닥에 있는 깨진 종처럼 반응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현자의 조언은 해탈과 열반에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자의 칭찬과 충고는 받아 들여야 한다. 청정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티끌만한 허물도 구름처럼 크게 보이는 법이다.
2023-11-22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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