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진실로 나날이 새로워지려면, 재가안거 81일차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0. 20. 10:09

진실로 나날이 새로워지려면, 재가안거 81일차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순 없다. 때로 빵도 먹고 라면도 먹는다. 좌선한다고 하여 위빠사나만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 사마타도 할 수 있다.

 

오늘 한시간 좌선이 끝난 후 이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사마타라 하여 반드시 까시나와 같은 수행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부처님을 계속 생각하는 불수념(佛隨念: Buddhanussati)도 사마타 수행이다. 그렇다면 좌선 중에 담마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도 사마타 수행에 해당되는 것일까?

 

오늘은 재가안거 81일째이다. 이제 안거 해제가 머지 않았다. 90일째 되는 날이 해제날이다. 음력 9월 보름날인 1029일이 공식적 해제날이다.

 

그 동안 줄기차게 달려 왔다. 마치 오토바이 하나에 의지하여 대륙을 횡단하는 자가 어느 정도 목적지에 가까이 가는 것과 같다. 그러나 안거는 내면을 여행하는 것이다. 눈을 감은 상태에서 마음의 문 하나만 열어 놓고 달리는 것이다.

 

좌선을 하다 보면 항상 그 상태 그대로는 아니다. 마치 삶이 변화무쌍한 것처럼 눈을 감은 상태에서 변화가 요동친다. 배의 부품과 꺼짐을 새길 때는 마음이 편안하지만 어느 순간 새김을 잃었을 때 망상에 빠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좌선하면서도 생각할 수 있다. 새김이 있는 상태에서 사유하는 하는 것은 선법이기 쉽다. 새김이 없는 상태에서 일어난 생각은 망상이기 쉽다. 이렇게 본다면 새김이 있는 상태에서 경전이나 논서, 법문을 떠 올린다면 이는 사마타라고 할 수 있을까?

 

청정도론에 따르면 사마타에는 40가지 명상주제가 있다. 까시나 수행은 10가지이고 수념에 대한 것도 10가지이다. 수념은 불수념, 법수념, 승수념 등 해당 되는 담마에 대하여 계속 생각하는 것이다.

 

수념은 언어적 개념에 대한 것이다. 사마타 수행은 개념수행이다. 이렇게 본다면 좌선 중에 언어적 개념에 따른 담마와 관련된 생각이 일어났다면 이를 사마타 수행의 범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좌선 중에 여러 가지 생각이 일어난다. 새김을 놓친 상태에서는 망상이기 쉽다. 망상인줄 알면 힘이 빠진다. 이럴 때는 좌선이 하기 싫어 진다. 그냥 끝내고 싶어진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악마의 속삭임으로 알아야 한다. 다시 주관찰 대상인 배의 부품과 꺼짐을 새겨야 한다.

 

좌선 중에 친구가 생각났다. 그제 친구와 통화한 것이 생각난 것이다. 그때 컴퓨터가 작동이 되지 않아 전화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컴퓨터가 갑자기 켜지지 않았다. 파워 스위치를 눌렀을 때 ~”소리만 나며 부팅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참으로 난감했다.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컴퓨터가 작동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럴 때는 컴퓨터 수리기사를 불러야 한다. 당연히 돈이 나간다. 그런데 나에게는 친구가 있다. 컴퓨터 수리를 해서 먹고 사는 친구를 말한다.

 

친구는 인천에 산다. 대학교 때부터 친구이다. 그 친구는 내 앞번호였다. 그때 당시 공학계열 350명 중에 그 친구는 211번이었고 나는 212번이었다. 성씨 별로 번호를 부여 한 것이다. 이씨는 중후반에 배치 된 것이다.

 

친구에게 전화 했다. 오랜만에 전화 한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을 때나 전화하는 것 같다. 증상을 얘기 했다. 친구는 말만 듣고 감을 잡은 것 같다. 접촉불량이기 쉽다고 말했다.

 

예전에 흑백TV시절이 있었다. 그때 TV가 잘 나오지 않으면 탕탕쳤다. 라디오도 잘 나오지 않으면 탕탕쳤다. 신기하게도 치면 나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컴퓨터 전문가인 친구에 따르면, 컴퓨터도 탕탕치면 동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친구는 하나의 방법을 알려 주었다. 컴퓨터 뚜껑을 열고 메모리카드를 빼었다고 다시 넣으라고 했다. 접촉 부위를 닦아 주면 더 좋을 것이라고 했다.

 

친구 말대로 해 보았다. 놀랍게도 작동되는 것이었다! 접촉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고 나자 개인적인 얘기를 했다.“요즘 어떻게 지내?”라고 물어 보았다.

 

친구는 하루하루 죽지 못해서 사는 것 같다. 세상 사는 것이 재미 없다고 했다.

 

친구는 혼자 살고 있다. 오래 전에 이혼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가기도 전에 혼자가 된 것이다. 딸 둘을 키우며 지금까지 살아 왔다.

 

친구는 종종 외롭다고 말했다. 오년 전에도, 십년 전에도, 이십년 전에도 외롭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그렇다고 사람을 사귀는 것도 아니었다. 마치 방에서만 사는 사람처럼 늘 혼자 지냈다.

 

친구에는 낙이 없는 것 같다. 낙이라면 술과 담배이다. 술은 매일 소주 한병씩 마신다. 담배도 하루 한갑 이상 피우는 것 같다. 술과 담배로 찌든 나날이다. 이런 세월을 수십년 산 것이다.

 

친구는 코로나 시기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아파서 누워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힘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자 마치 고아가 된 듯 해 보였다.

 

친구는 매사에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다. 어느 모임이나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것도 아니다. 종교도 가지고 있지 않다. 오로지 집에서만 산다. 아파트가 컴퓨터 수리 작업실이기도 하다.

 

친구는 요즘 건강이 좋지 않다고 말한다. 밥도 조금 밖에 먹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꾸 죽음에 대하여 생각한다고 말한다. 앞으로 20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이런 건강으로는 자신이 없다고 말한다.

 

친구의 건강과 장래가 염려 되었다.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으면 당장 술과 담배부터 끊으라고 말했다. 친구는 담배가 더 해로운 것 같다고 말했다. 친구는 평생 친구와 같은 술과 담배를 끊을 수 있을까?

 

친구와 통화를 끝내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대학교 1학년 때 만나서 지금까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풀이 죽은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지금까지 친구는 자신의 몸을 학대하며 살았던 것이다.

 

말을 물 있는 곳까지 데려 갈 수 있다. 그러나 물을 먹일 수는 없다. 오래 전부터 친구에게 불교 공부를 해 보라고 했다. 인천에도 불교교양대학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다녀 보라고 했다. 다니다 보면 사람들도 사귈 수 있기 때문에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말을 듣지 않는다.

 

친구는 그 자리에 멈추어 있는 것 같다. 대학교 때 그 의식 그대로인 것 같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나이만 먹은 것이다. 머리가 백발이 다 되었지만 사고방식은 변한 것이 없다. 홀로 고립된 삶의 폐해일 것이다.

 

 

늘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어제 보다 나은 오늘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성찰이 있어야 한다. 글쓰기보다 더 좋은 것이 없는 것 같다.

 

글쓰기를 17년째 하고 있다. 매일 쓰고 있다. 글은 매일 새로운 것이다. 어제의 글과 오늘의 글은 다르다. 이렇게 본다면 매일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글쓰기 보다 새로운 삶은 명상하는 것이다. 명상 역시 어제와 오늘은 다르다. 하루도 똑 같은 날은 없다. 매일 명상을 하면 매일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일신일일신우일신(日新日日新又日新 )이라는 말이 있다. 매일매일 새로운 삶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보다 더 좋은 말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구일신일일신우일신(苟日新日日新又日新)라는 말이다. 여기서 구()자는진실로의 뜻이다. 그래서진실로 날로 새로워지려면,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라는 뜻이 된다.

 

글쓰기 하면 일일신우일신하는 삶이다. 여기에 수행까지 한다면 구일신일일신우일신하는 삶이 된다. 진실로 나날이 새롭게 하는 삶이다. 친구에게도 이런 삶이 될 수 없을까?

 

 

2023-10-20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