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마음의 전구와 찰나삼매, 재가 우안거 86일차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0. 26. 10:15

마음의 전구와 찰나삼매, 재가 우안거 86일차
 
 
순간적으로 멈춤이 있다. 모든 것이 정지된 듯 하다. 그리고 몸과 마음은 안은에 휩싸인다. 밝은 기운에 약간 기쁨도 있고 약간 황홀도 있다. 그러나 오래 가지 않는다. 배의 움직임이 서서히 보인다.
 
배의 부품과 꺼짐이 선명하다. 부품이 시작과 꺼짐이 분명히 보인다. 부품에서 꺼짐으로 전환할 때는 멈춤이 없다. 곧바로 꺼짐이 시작된다. 꺼짐의 시작에서 끝도 선명히 볼 수 있다. 꺼짐의 끝에서는 엉덩이 닿음을 느낀다.
 
오늘은 재가 우안거 86일째이다. 우안거 해제가 이제 사흘 남았다. 음력 9월 보름인 10월 29일(일)이 해제날이다. 우안거 동안 성과는 무엇인가?
 
우안거 해제 즈음하여 10월 22일 탁발법회가 열렸다. 그때 빤냐와로 스님은 이번 우안거에서 결과가 없었다면 안거를 다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안거 결과가 없다. 우안거 내내 극기훈련한 것 같다. 한시간 앉아있기 고행을 말한다. 그러나 한시간버티기는 꼭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되어야 그 다음 단계가 원만히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제 한시간 앉아있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스마트폰에 알람을 한시간 설정해 놓고 앉았을 때 알람이 울릴 때까지 앉아 있는 것이다. 도중에 일어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끝까지 참고 버틴다.
 
위빠사나 수행지침서에 “인내가 열반으로 인도한다.”라는 말이 있다. 일단 앉았으면 한시간 보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참고 견디다 보면 좋을 때도 있다는 것이다.
 
인생을 살고 있다. 일단 태어난 이상 살 수밖에 없다. 도중에 싫다고 그만 둘 수 없다. 그런데 인생을 살다 보면 좋을 때도 있다는 것이다. 마치 날씨 같다.
 
날씨는 늘 같지 않다. 오늘 청명하다고 하여 내일도 맑다는 보장이 없다. 청명한 날도 사흘만 지나면 흐려진다. 다시 사흘 지나면 비가 올 수 있다. 그런데 비가 개인 다음날은 화창하다는 것이다. 이럴 때 살 맛을 느낀다.
 
오늘은 오전 7시 47분에 자리에 앉았다. 평소와 같이 아침을 준비해 와서 먹었다. 찐계란, 찐고구마, 그리고 치즈가 들어간 모닝식빵이다. 여기에 꿀물을 곁들이면 최상의 아침식사가 된다.
 
식사가 끝났다고 하여 곧바로 앉지 않는다. 커피를 마셔야 한다. 절구커피를 마신다. 절구질해서 만든 커피를 말한다.
 
절구질 할 때 커피향이 코를 자극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향내 같다. 그런데 향내 보다 더 좋은 것은 맛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맛 있는 커피이다. 왜 그럴까? 아마 그것은 알갱이가 다양하기 때문일 것이다.
 
절구질 하다 보면 큰 알갱이도 있고 미세한 알갱이도 있다. 이런 알갱이가 조화를 이루었을 때 최상의 향과 맛을 지닌 커피가 되는 것 같다.
 
가능하면 좌선은 오전 9시 이전에 끝내야 한다. 업체 출근 시간이기 때문이다. 좌선이 늦어져서 9시를 넘겼을 때 전화가 올지 모른다. 받을 수도 없고 안 받을 수도 없는 난처한 일이 발생한다.
 
오늘 날씨는 흐리다. 안개도 끼었다. 대체로 우중충한 날씨이다. 이런 날씨는 사람 마음도 우울하게 만든다. 그러나 눈을 감고 명상의 세계의 들어가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전개된다.
 
처음에 자리에 앉으면 자리가 잡히지 않아 불편하다. 배의 부품과 꺼짐을 새기며 앉아 있는다고는 하지만 새김이 분명히 않을 때 번뇌가 스며든다.
 
명상의 최대 적은 잡념이다. 허락도 없이 침입하여 망상의 집을 지을 때 허탈하다. 마치 탈탈 털린 듯 하다. 이럴 때 좌선이 하기 싫어 진다.
 
좌선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 한시간 하기로 스스로 약속하지 않았던가? 약속한 것을 깰 수 없다. 다시 주관찰 대상인 배의 부품과 꺼짐에 마음을 기울인다.
 
억지로라도 배의 부품과 꺼짐을 새겨야 한다. 그러다 보면 좋은 때가 온다. 마치 인생살이에서 고생 끝에 낙이 오는 것과 같다. 그것은 갑자기 환한 느낌과 함께 멈춤으로 다가온다.
 
명상을 하는 맛이 있다. 그것은 번뇌망상에 시달리다가도 마음을 잡고 주관찰 대상에 마음을 기울였을 때 순간적으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환함을 말한다. 이 환함이 있기에 명상 할 맛이 나는 것이다.
 
명상공간에서 형광등은 모두 꺼둔 상태가 된다. 더구나 오늘 같이 꾸물꾸물한 날에는 약간 어둡다. 이런 상태에서 갑자기 환함을 느낀다. 마치 전구불이 켜진 것 같다.
 
마음의 전구불이 켜졌을 때 기회가 된다. 그 환함에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 같다. 평좌한 다리의 닿는 느낌, 엉덩이의 닿는 느낌, 선정인을 한 두 손 등 모두 사라진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마음은 오로지 한순간에 하나의 일밖에 하지 못한다. 한순간에 울었다고 웃었다가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갑자기 환함을 느꼈을 때 마음은 온통 환함에 가 있다. 그 순간 몸과 마음은 안은에 휩싸인다. 기쁨과 희열, 약간의 황홀감을 맛본다. 이런 상태가 계속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 수 없다. 주관찰 대상으로 가야 한다. 배의 부품과 꺼짐을 새기는 것이다.
 
마음의 전구가 켜졌을 때 배의 부품과 꺼짐을 새기면 잘 새겨진다. 이전과 비교되지 않는다. 이전에는 마음이 어두침침한 상태에서 새겼다. 그러다 보니 새김도 선명하지 않다. 그런데 마음의 전구가 켜졌을 때 새기면 다 보이는 것 같다.
 
마음의 전구가 켜진 상태에서 부품과 꺼짐을 새겼다. 부품의 시작과 끝이 선명하다. 꺼짐의 시작과 끝도 선명하다. 부품에서 꺼짐으로 전환할 때 유지는 매우 짧다. 없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꺼짐에서 부품으로 전환할 때는 틈이 있다. 그 틈은 엉덩이 닿음으로 메꾼다.
 
새길 때는 일없이 새겨야 한다. 그렇다면 부품과 꺼짐을 새길 때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측정해 보지 않아서 알 수 없다. 그러나 들어서 알 수 있다. 유튜브 영상에서 빤냐와로 스님은 3.3초 걸린다고 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할 때가 있다. 모든 일이 다 그렇다. 업무도 사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월말정리도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똑같은 일을 반복해도 싫증 나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작은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이 어제와 똑 같은 일상이라도 버틸 수 있는 것은 어제와 오늘은 분명히 다른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참을 수 없다. 변화 없는 똑같은 것을 말한다. 영화 같은 것이다.
 
영화를 보면 처음에는 재미있다. 두 번째 볼 때도 볼만 하다. 세 번째도 봐 줄만하다. 그렇다면 똑 같은 영화를 열 번 보게 한다면 어떻게 될까? 고문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인생이 살만한 것은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이지만 하루도 똑 같은 날은 없다. 만일 똑 같은 영화를 백 번, 천 번 보듯이 일상을 살라고 한다면 살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시간 좌선을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앉으면 주관찰 대상인 배의 부품과 꺼짐을 새긴다. 어느 날은 잘 새겨지고 어느 날은 망상 속에서 보낸다. 그런데 참고 견디다 보면 마음의 전구가 켜질 때도 있다는 것이다.
 
마음의 전구가 켜졌을 때가 기회이다. 환하게 밝은 마음이 되었을 때 주관찰 대상인 배의 부품과 꺼짐을 새겼을 때 선명하다. 이를 백 번이든 이백 번이든 계속 새겼을 때 기쁨이 생겨난다. 명상할 맛이 나는 것이다.
 
오늘 마음의 전구가 켜졌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런 것이 찰나삼매가 아닐까?”라고 생각이 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새김(사띠)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찰나삼매를 순간삼매라고도 한다. 위빠사나 수행에서는 순간삼매가 있어야 법의 성품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이는 대상에 마음이 붙어 버리는 선정삼매와는 다른 것이다.
 
청정도론에 따르면 찰나삼내는 근접삼매와 근본삼매와 함께 주요한 삼매로 간주 되고 있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삼매에 대하여 한국빠알리성전협회(KPTS)에서 발간된 청정도론 주석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해 놓았다.
 
 
“DhpA.I.114; Sdk.9에 따르면, 삼매는 잘못이 없는 것에서 확립된 착하고 건전한 마음의 집중을 뜻한다. 거기에는 세 가지가 있다. 1) 순간적으로 마음에 현전하는 집중은 찰나삼매라고 한다. 2) 다섯 가지 장애를 극복함으로써 감각영역에 나타나는 집중상태는 근접삼매로 불린다. 3) 근본삼매에는 두 가지가 있다. 세간적 근본삼매와 출세간적 근본삼매이다. 미세한 물질적인 세계의 선정과 비물질적인 세계의 선정에 도달한 마음의 강력한 집중상태는 세간적 근본삼매이고, 열반을 대상으로 일어나는 길삼매와 경지삼매와 관계된 집중상태는 출세간적 근본삼매이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KPTS)본 청정도론, 878번 각주)
 

 
찰나삼매는 위빠사나 수행에 대한 것이고, 근접삼매와 근본삼매(본삼매)는 선정수행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도와 과를 이루기 위한 열반의 상태로 들어가려면 순간삼매상태여야 된다는 것이다. 이는 “열반을 대상으로 일어나는 길삼매와 경지삼매와 관계된 집중상태는 출세간적 근본삼매이다.”라는 말로 알 수 있다.
 
찰나삼매는 카니까사마디(khaikasamādhi)를 번역한 말이다. 여기서 카니까는 ‘momentary; temporary; changeable’의 뜻으로 ‘찰나적(那的)’의 뜻이다. 이를 찰나삼매 또는 순간삼매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찰나삼매에 대하여 마하시 사야도의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해 놓았다.
 
 
위빳사나 수행을 하는 수행자가 신심, 정진, 새김, 삼매, 통찰지의 힘이 좋고 균형을 잘 이루게 되면 관찰하고 새기는 것만 계속 이어져 마음이 깨끗하게 된다. 이런저런 대상들을 생각하는 장애들도 중간중간에 끼어들어와 생겨나지 않는다. 그렇게 일정 기간 동안 관찰할 때마다 물질과 정신이라는 대상에만 고요히 집중되는 삼매가 아주 분명하게 생겨 난다. 이러한 삼매를 찰나삼매라고 한다. 관찰하고 새기는 마음 그 한 순간만 머물러 집중하는 삼매라는 뜻이다.”(위빳사나 수행방법론 1권, 155쪽)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에 따르면 찰나삼매에 대하여 “관찰하고 새기는 마음 그 한 순간만 머물러 집중하는 삼매”라고 했다. 이렇게 본다면 배의 부품과 꺼짐을 계속 새겼을 때 찰나삼매가 일어날 수 있음을 말한다.
 
위빠사나수행 초보자이다. 아직 명상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위빠사나 수행 1단계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는 지혜와 2단계 원인과 결과를 아는 지혜 단계에 머물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아마 그것은 찰나삼매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명상을 하다 보면 마치 캄캄한 밤에 전구가 켜지듯이 마음의 전구가 켜질 때가 있다. 이때 잘 보인다. 배의 부품과 새김이 잘 보이는 것이다. 혹시 이런 것도 찰나삼매 아닐까?
 
 
2023-10-2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