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개정판 족보를 받고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1. 30. 08:48

개정판 족보를 받고
 
 
목조, 익조, 도조, 환조, 익숙한 이름이다. 고교시절 국어시간 때 ‘목익도환’으로 외웠다. 이뿐만이 아니다. “셔블기별을 알쎄 하바자 나자가샤”라는 말도 기억난다. 고문시간에 외운 것이다.
 
사촌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년에 한번 모이는 함평사촌모임 이외에는 연락이 없다. 그것도 카톡으로 모임 연락을 받는다. 그런데 전화를 한 것이다. 어떤 일일까?
 
가슴이 철렁했다. 전화가 거의 없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오면 좋지 않은 일이기 쉽상이다. 그러나 안심했다. 형은 족보를 택배로 붙여 주겠다고 했다.
 
그제 택배를 받았다. 두께가 상당한 족보 두 권을 받았다. 인조가죽케이스로 된 것으로 각권당 천페이지가량 된다. 나에게도 족보가 있었던 것이다!
 

 
족보가 있기는 있었다. 수십년 된 것 같다. 사촌형 말에 따르면 이번 것은 증보판이라고 한다. 업데이트된 것이다.
 
족보에는 제목이 있다. 표지에 ‘전주이씨덕천군파 운수군보’라는 글씨가 한자로 적혀 있다. 나는 전주이씨 가문인 것이다. 그 중에서도 덕천(德川)군파이고 운수(雲水)군 계보이다.
 
족보를 열어 보았다. 가장 먼저 하나의 문장이 보인다. 이파리 다섯 개에 한자로 덕덕(德)자가 가운데에 있다. 아래를 보니 작은 글씨로 종문(宗紋)이라고 쓰여있다. 덕천군파 가문의 문장인 것이다.
 

 
다섯 개의 잎은 전주이씨를 상징하는 오얏나무 꽃이다. 이는 덕수궁에서 조선왕조를 상징하는 오얏나무 꽃잎 문장과 일치한다. 다만 차이가 나는 것은 가운데에 덕(德)자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문장은 가문의 상징이다. 일찍이 서양에서는 가문을 나타내는 다양한 문장이 발달되어 왔다. 일본에도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을 볼 수 있다. 일본 전국시대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가문의 문장을 깃발로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에도 문장이 있을까?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족보를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만들었을 것이다. 종친회에서 따로 문장을 만드는 것이다.
 
족보에는 시조(始祖)가 표기 되어 있다. 전주이씨이기 때문에 당연히 목조, 익조, 도조, 환조가 표기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이전도 표기 되어 있다는 것이다. 시조는 신라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시조로부터 목조까지는 18대에 이른다.
 

 
족보에는 전주이씨 계보에 대하여 100페이지가 넘게 설명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직계 계보이다. 족보 제목이 말해 주듯이 덕천군으로부터 시작된다.
 
덕천군은 2대 정종의 아들이다. 계보도를 보니 정종의 아들은 무려 15명이다. 덕천군은 15명 중에서 10번째이다.
 

 
족보에는 덕천군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족보에 따르면 덕천군 후생은 1397-1465년에 걸쳐서 살았다. 정종의 10남으로 어머니는 성빈 지씨라고 한다.
 
족보는 덕천군 족보중에서도 운수군보에 대한 것이다. 운수군은 덕천군의 3남이다.
 

 
나는 어디에 있을까? 족보를 열어 보니 1권 214페이지에 실려 있다. 이번에 안 사실이지만 족보용 이름이 따로 있었다. 족보에는 ‘은용(殷庸)’으로 되어 있다!
 
아마 전에도 알았을 것이다. 호적에 있는 이름 따로 있고 족보에 있는 이름 따로 있는 것이다. 족보에는 은(殷)자 항렬을 맞추기 위해서 은용이라고 했을 것이다.
 
족보를 보니 반가운 이름들이 보인다. 사촌이름이 모두 나와 있는 것이다. 여자도 예외가 아니다. 생년월일까지 있다.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족보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족보는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유튜브에서 이익주 선생은 ‘족보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영상을 제작한 바 있다.
 
족보의 진위여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족보가 있고 이름이 올라가 있다는 것이다.
 
족보에서 나의 위치는 어디쯤 될까? 덕천군이 1세이고 운수군이 2세이다. 운수군 족보이기 때문에 운수군 자손들이 나열되어 있다. 은자 항렬은 18세에 해당된다.
 
족보에서 관심 가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4대가 위인 증조부에 대한 것이다. 증조부의 자손은 모두 기록되어 있다. 모두 항렬에 따른다. 증조부는 ‘상(象)’자 항렬, 조부는 건(健)자 항렬, 부는 하(夏)자 항렬, 그리고 나는 은(殷)자 항렬, 나의 아래 세대는 주(周)자 항렬이다. 중국 고대 왕조에 따른 항렬이다.
 
오늘날 족보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자 항렬 중에 먼 사촌은 적극적이다. 종친 모임에 참여하기도 하고 기부도 한다. 그 결과 오늘날과 같은 족보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 동안 잊고 살았다. 족보를 보미 문장도 있었다. 은용이라는 이름도 있었다.
 
이번에 족보를 보니 정체성이 약간 살아 나는 것 같다. 족보의 진위여부는 차지하고라도 족보가 있다는 것에 약간은 들뜬 기분이다.
 
족보에 따르면 나는 왕손임에 틀림 없다. 그렇다고 누군가 알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행위이다. 가문이 아니라 행위인 것이다. 태생이 아니라 행위인 것이다. 행위에 따라 바라문도 되고 상인도 되고 도둑놈도 되고 살인자도 되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족보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다. 누군가 이야기할 때 덕천군파이고 운수군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족보를 보여 줄 수도 있다. 이런 면으로 보았을 때 족보는 있으면 좋은 것이다.
 
족보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피를 바꾸는 것이다. 범부의 계보에서 성자의 계보로 바꾸는 것이다. 수행을 해서 범부에서 성자로 혈통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수행으로 가능한 것이다.
 
나는 어떻게 여기에 있게 되었는가? 당연히 부모가 있어서 여기에 있게 되었다. 그런데 태어나보니 일가친척도 있었던 것이다. 더 멀리 조상도 있었다. 유전자를 공유하는 것이다.
 
나는 육체적으로 조상들의 유전자를 공유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나만의 독특한 정신적 유산도 있다. 그것은 내가 세세생생 살면서 쌓아 놓은 업이다.
 
나는 과거 어느 생에서 지은 행위로 인하여 여기에 있게 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업이 나의 주인이고 나는 업의 상속자가 된다.
 
나는 두 가지를 가지고 있다. 육체적으로 조상의 유전자를 갖는다. 정신적으로는 업식을 갖는다. 전자를 강조하면 태생의 자만에 빠질 수 있다. 후자를 강조하면 수행자의 삶을 살 수 있다.
 
이번에 개정판 족보를 받았다. 족보를 열어 보니 태생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만하다. 물론 족보의 진위여부는 말하지 않는다. 족보보다 행위가 더 중요하다. 수행을 해서 범부의 계보에서 성자의 계보로 바꾸는 것이다.
 
 
2023-11-30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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