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혼자 살 것인가 더불어 살 것인가?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2. 9. 09:52

혼자 살 것인가 더불어 살 것인가?
 
 
오늘도 백권당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하얀 여백을 맞이 하고 있다. 마치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 나가듯 여백을 채워 나가고자 한다. 어느덧 17년째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다.
 
만시간의 법칙이 있다. 하루 서너시간 집중해서 십년을 하면 프로페셔널이 된다는 법칙을 말한다. 글쓰기 17년이니 십년을 넘었다.
 
매일 오전은 글쓰기로 보냈다. 일상에 보고 듣고 느낀 것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을 쓰는 것이다.
 
전문적 글쓰기는 아니다. 마치 일기처럼, 마치 수필처럼 쓰고 싶은 대로 쓴다. 이런 글에 대하여 ‘인터넷잡문’이라고 칭한 바 있다. 17년 글쓰기를 하고 있는 나는 프로페셔널일까?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자판치는 대로 쓴다. 주제는 정해 놓고 치지만 어디로 튈지 모른다. 속된 말로 ‘잘 가다가 삼천포로 빠진다’라는 말이 있다. 부가적인 것을 설명하다 엉뚱한 길로 빠질 때도 있다.
 
솔직하게 쓰고자 한다. 있는 그대로 쓰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불리한 것도 쓸 줄 알아야 한다. 단점이나 고칠 것도 써야 한다. 그렇다면 비밀은 어찌할 것인가?
 
요즘 유튜브를 보면 책 읽어 주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아나운서처럼 나레이션 하는 것이다.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에이아이(A.I)가 대신 읽어 준다는 것이다. 재미 없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나레이션 영상에서 자주 발견 되는 문구가 있다. 이는 영상을 알리는 제목에서도보인다. 상당수가 ‘혼자 살아라’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친구 다 필요 없다, 혼자 살아라’라고 써 놓은 것이다.
 
책 읽어 주는 영상에서는 친구가 필요 없다고 말한다. 이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곤함 때문일 것이다.
 
나레이션 영상에서 발견 되는 또 하나는 ‘비밀을 말하지 말라’라는 것이다. 이는 비밀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단점이나 불리한 것도 비밀에 해당된다. 비밀을 말 했을 때 득보다는 실이 더 많은 것을 경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나레이션 영상은 일종의 삶의 지혜와 같은 것이다. 마치 노인이 말하는 것 같다. 마치 “내가 오랜 세월을 살다 보니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라고 고백하는 것 같다. 이런 말에 자주 인용되는 철학자는 쇼펜하우어이다.
 
글을 쓸 때 한 가지 원칙이 있다. 그것은 가족에 대하여 쓰지 않는 것이다. 이런 원칙을 가지게 된 것은 처가 당부했기 때문이다.
 
2005년에 블로그를 만들어 2006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를 시작 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처가 알게 되었다. 가족이야기는 절대로 쓰지 말라고 했다.
 
처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본래부터 가족 이야기를 쓰지 않았지만 이후부터도 일체 쓰지 않았다.
 
어떤 이는 가족이야기가 글쓰기 단골 소재가 된다. 배우자와 자식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어떤 이는 손주 이야기를 쓴다.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처자랑하면 칠푼이라는 것이다. 자식자랑 하면 팔푼이가 될 것이다. 손주자랑하면 몇 푼어치나 될까?
 
가족 이야기를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왜 그런가? 가족이 없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설령 가족이 있다고 하더라도 시기와 질투심을 유발하게 만든다. 대개 가족 이야기는 처자랑, 자식자랑, 손주자랑이기 쉽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을 보면 연민을 느낀다. 그러나 행복한 사람을 보면 다르다. 시기와 질투심이 일어날지 모른다. 왜 그런가? 나에게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슬픔은 함께 해도 기쁨은 함께 할 수 없다. 사무량심에서 자애와 연민의 마음을 내는 데 어려움은 없지만 타인의 성공과 번영에 대하여 수희찬탄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의 일이 아니면 무관심하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행태는 에스엔에스에서도 볼 수 있다. 아무리 글을 잘 써도 ‘좋아요’ 또눈 ‘최고에요’이모티콘 누르는 것에 인색한 것이다. 이럴 진대 처이야기, 자식이야기, 손주이야기 해서 하등의 이득 될 것이 없을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가족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부족한 것보다는 자랑이기 쉽다. 그런데 가족이야기를 쓰다 보면 징크스가 있다는 것이다. 가족이 다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가족이야기 쓰는 것을 꺼려 한다.
 
자랑하면 시기와 질투가 따른다. 그래서일까 어떤 이는 배우자 흉보는 이야기를 쓰기도 한다. 이는 다름 아닌 비밀을 폭로하는 것과 같다. 친한 친구라도 절대로 비밀을 말하지 말라는 쇼펜하우어 말에 위배 되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가족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많이 가진 자들일수록, 많이 배운 자 들일수록, 지위가 있는 자들일수록 사생활을 말하지 않는다. 자신과 가족의 프라이버시 보호에 철저한 것이다.
 
어떤 이는 사생활 공개에 거리낌이 없다. 유튜브에서 본 ‘독거노인tv’의 독거노인도 이에 해당된다.
 
독거노인은 나이가 칠십이다. 독거노인은 과거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맛깔 나게 이야기다.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말한다. 너무 재미 있어서 올려진 20여개의 영상을 불과 삼사일만에 다 보았다. 거기에 당연히 가족이야기도 있다.
 
프라이버시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아마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보는사람일 것이다. 현재 식자재 배달 일을 하고 있는 독거노인도 여기에 해당되는 것 같다.
 
독거노인은 과거 이야기를 말한다. 술집을 운영해서 크게 성공한 이야기, 전처와 이혼한 이야기, 애첩 이야기 등 거침이 없다.
 
독거노인 이야기는 재미있다. 부자나 명예를 가진 자, 지위가 있는 자는 결코 할 수 없는 말이다. 가진 것도 없고 지킬 것도 없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기 때문에 프라이버시를 공개하는 것 같다.
 
무언가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것은 재산이 될 수도 있고 명예가 될 수도 있고 지위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이미지관리를 한다. 유리한 것은 드러내지만 불리한 것은 말하지 않는다. 당연히 비밀을 말하지 않는다. 프라이버시 보호에 철저한 것이다.
 
나에게는 지켜야 할 것이 있을까? 재산, 명예, 지위가 낮아서 그다지 지켜야 할 것이 없다. 이럴 경우 불리한 것, 단점, 비밀도 일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능하면 솔직하게 쓰고자 한다. 불리한 것은 감추고 유리한 것만 드러내고자 한다면 무미건조한 글쓰기가 된다. 마치 책 읽어 주는 유튜브 영상과 같이 무미건조한 것이다.
 
글쓰기는 삶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남의 책이나 읽어 주는 꼰대 같은 글쓰기가 되어서는 안된다. 때로 불리한 것도 쓸 줄 알아야 한다. 때로 사생활도 공개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말 못할 비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비밀은 비밀을 지켜 줄 수 있는 사람에게만 말해야 한다. 어떤 사람인가? 이는 “비밀을 털어 놓고, 비밀을 지켜 주고, 불행에 처했을 때에 버리지 않고, 목숨도 그를 위해 버립니다.”(D31.16)라는 가르침에 따른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인터넷 글쓰기에서 자신의 단점에 대하여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비밀을 말해서는 안된다. 비밀은 절친에게 말하는 것이다.
 
절친의 조건은 어떤 것일까? 이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그것은 1)비밀을 지켜 주는 사람, 2) 불행에 처했을 때 버리지 않는 사람, 3) 그를 위해 목숨까지 버릴 사람을 말한다. 이런 친구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는 이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다.
 
절친에는 조건이 있다. 최상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비밀을 말할 수 있고 비밀을 지켜 줄 수 있고 불행할 때 버리지 않고 목숨까지 바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친구는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아마 배우자라면 가능할지 모르겠다.
 
처는 가족이야기를 절대로 하지 말라고 했다. 처 자랑을 하면 시기와 질투를 유발할 것이고 험담을 하면 비밀을 말하는 것이 된다. 이래도 허물이 되고 저래도 허물이 된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다친다는 것이다. 자랑하면 사고가 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에는 처가 큰 의지처가 된다. 옛날과 다른 현상이다. 옛날에는 소가 닭 쳐다 보듯 하며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 했으면 ‘삼십년 전쟁’이라고 표현했을까?
 
요즘 유튜브에서 노년연애에 대한 영상을 보고 있다. 우연히 접하게 되어 흥미롭게 보고 있다. 이혼하고 홀로 된 여인이 운영하는 일종의 중매영상에서 본 것이가장 기억에 남는다.
 
혼자 된 사람들이 있다. 처음부터 싱글인 사람도 있지만 도중에 홀로 된 사람도 많다. 갖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혼자 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어떤 영상에서는 ‘친구 다 필요 없다 혼자 사는 것이 가장 좋다’라는 썸네일이 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혼자 사는 것보다 같이 사는 것이 더 낫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처가 되는 것이 가장 큰 이점일 것이다.
 
과거를 되돌아 본다. 왜 나는 그토록 전쟁아닌 전쟁을 했을까? 아마 자존심 때문일 것이다. 아상이 강하다 보니 전쟁이 된 것이다. 그러나 불교를 만나고 나서부터 누그러졌다.
 
변화는 서서히 진행되었다. 어느 해부터인가 화를 내지 않게 되었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화가 점점 줄어 들다가 마침내 화가 멈춘 것이다. 글쓰기 영향도 컸을 것이다.
 
재작년 3월달의 일이다. 그때 처와 안동 봉정사에 갔었다. 그때 처음으로 봉정사 대웅전에서 함께 삼배했다. 이전에는 겉돌았다. 처가 법당에서 참배 할 때 밖에 있었던 것이다.
 

 
무엇이든지 처음이 어렵다. 그 다음부터는 쉽다. 한번 함께 법당에 들어가게 되자 다음부터는 항상 같이 들어갔다. 마침내 삼십년 전쟁의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이런 것도 자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작고한 최인호 작가의 영상을 우연히 보았다. 작가는 처와 노는 것이 가장 재미 있다고 말했다. 친구들 보다 처가 더 좋다는 것이다. 처와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했다. 이 말에 매우 공감했다.
 
요즘 처와 대화를 자주 나눈다. 저녁에 밥 먹을 때 대화 나누는 시간이 즐겁다. 이렇게 된 데에는 경전에서 본 문구의 영향이 크다.
 
먼저 본 사람이 먼저 치워야 한다. 방바닥에 휴지가 떨어져 있으면 먼저 본 사람이 주어야 한다. 이는 “세존이시여, 저희들 가운데 가장 먼저 마을에서 탁발하여 돌아오는 자가 자리를 마련하고, 음료수와 세정수를 마련하고 남은 음식을 넣을 통을 마련합니다.”(M128)라는 가르침이 잘 말해 준다.
 
맞벌이를 하고 있다. 처 보다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많다. 이런 이유로 저녁은 내가 준비한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렇게 한 것은 “먼저 마을에서 탁발하여 돌아오는 자가 자리를 마련하고”(M128)라는 가르침을 실천 했기 때문이다.
 
먼저 온 사람이 식사 준비한다. 당연히 나중에 온 사람은 설거지 등 뒷정리를 한다. 이는 “그는 자리를 치우고 음료수와 세정수를 치우고 남은 음식을 넣는 통을 치우고 식당을 청소합니다.”(M128)라는 가르침에 해당된다.
 
부처님 가르침은 잘 설해져 있다. 부처님 가르침은 훌륭하다. 특히 화합승가에 대한 가르침을 보면 가족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가장 사랑하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세존이시여, 저는 여기 존자들을 향해 여럿이 있을 때나 홀로 있을 때나 자비로운 신체적 행위를 일으키며, 여럿이 있을 때나 홀로 있을 때나 자비로운 언어적 행위를 일으키며, 여럿이 있을 때나 홀로 있을 때나 자비로운 정신적 행위를 일으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 같이 ‘내가 나의 마음을 버리고 이 존자들의 마음을 따르면 어떨까?’라고 생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래서 저는 제 마음을 버리고 이 존자들의 마음을 따랐습니다. 저희들의 몸은 여러 가지이지만 마음은 하나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몸은 다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입니다.”(M129)
 
 
아,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세상에 이런 가르침도 있었던 것이다. 이런 가르침을 가족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전쟁은 끝났다. 팔팔년 이후 삼십년 전쟁을 했지만 남은 것은 폐허뿐이었다. 그러나 가르침을 접하고 마음이 바뀌었다.
 
글쓰기를 하면서 성찰이 일어났다. 마침내 처와 절친이 되었다. 비밀을 말하고 비밀을 지켜주고 불행에 처했을 때 버리지 않고 목숨까지 버릴 정도의 도반이 된 것이다. 이런 것도 자랑일까?
 
세상에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다. 여러 가지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누구나 결국 혼자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누군가 내편이 되어 주는 사람이 있다면 힘을 받을 것이다.
 
중년에 노년에 홀로 된 사람들이 짝짓기 하는 영상을 보았다. 영상을 보니 청년시절과 다를 바 없다. 나이 들어서도 똑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배우자는 어떤 사이일까? 이는 비밀을 지켜줄 사람, 불행에 처했을 때 버리지 않을 사람, 그 사람을 위해서 목숨까지 버릴 사람일 것이다. 이런 사람은 찾기 힘들다.
 
혼자 사는 것보다 더불어 사는 것이 더 낫다. 유튜브 영상에서 ‘다 필요 없다, 혼자 사는 것이 좋다’라고 주장하지만 더불어 사는 것이 훨씬 더 낫다. 고독하게 살 수는 있어도 고립되어 살면 안된다.
 
혼자 된 사람이라면 지금이라도 좋은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 도움을 주는 친구, 즐거우나 괴로우나 한결 같은 친구, 유익한 것을 가르쳐 주는 친구, 연민할 줄 아는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친구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은 절친, 베스트프렌드를 만드는 것이다. 절친과 같은 배우자를 만드는 것도 좋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그것은 비밀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사람, 비밀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 불행에 처했을 때 버리지 않을 사람, 목숨도 그를 위해 버릴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어디 있을까?
 
 
2023-12-0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