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좌선 중에 나른함에 대하여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2. 13. 09:42

좌선 중에 나른함에 대하여

 

 

천삼백만원을 맡겼는데 이자가 칠십팔만원 붙었다. 새마을금고(MG)에 일년 맡긴 것이다. 이율은 육프로짜리이다. 마치 공돈이 생긴 것 같다. 돈이 돈을 번 것 같다. 돈이 일한 것 같다. 인생에 있어서 이자 붙는 삶은 없을까?

 

오로지 저축만 한다. 예금도 하고 적금도 한다. 식비를 제외한 수입의 대부분은 저축한다. 시간 지나면, 때가 되면 이자로 보상된다. 주식하는 삶과 비교된다.

 

어떤 이는 주식한다고 말한다. 이럴 때 하는 말이 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왜 주식에 실패하는가? 그것은 욕망을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눈앞에 이익에 급급하여 욕망의 노예가 된다. 그것은 초단타매매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오늘날 주식은 게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홈트레이딩시스템 프로그램을 깔아 놓고 단타매매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개장에서 폐장 때까지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한다.

 

주식에 미친 자들은 오로지 돈이다. 오로지 등락에만 관심이 있다. 날씨에 따라 마음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오르락내리락하는 그래프에 따라 마음이 바뀐다.

 

주식은 오래 전에 그만두었다. 계산해 보니 17년된 것 같다. 주식을 하면 할수록 손해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신이 황폐화 되었다. 마치 폐인처럼 되어 갔다.

 

주식을 하지 않는다. 내 의지로 그만 둔 것은 아니다. 가진 것이 모두 털렸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전재산을 날린 것은 아니다.

 

주식에서 욕망을 보았다. 욕망의 노예가 되었을 때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황폐화 되지를 똑똑하게 보았다.

 

주식시장은 쳐다 보지도 않는다. 주식채널 가까이 가지도 않는다. 주식자체를 완전히 손절한 것이다. 이는 욕망의 손절이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마셔도 마셔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 같은 것이다. 주식시장은 인간의 욕망이 투영된 투기의 장이다. 이런 장에서 벗어났을 때 욕망도 내려 놓았다. 그런데 욕망 하나 내려 놓으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주식을 하면 남는 것이 없다. 하면할수록 까진다. 빚까지 내서 하기도 한다.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는 한 백전백패가 되기 쉽다. 반면에 돈도 안되는 글은 일단 써 놓으면 남는다. 자꾸 달아나려는 돈과 비교된다.

 

이제까지 축적된 글은 7,400개가 넘는다. 이것이 내 재산이다. 누구도 가져갈 수 없고 불에 타지도 않는 정신적 재산이다. 이는 다름아닌 축적하는 삶이다. 공덕이 되는 삶이다. 공덕마일리지 붙는 삶이다.

 

글을 쓰면 마음이 청정해진다. 마음이 더러워진 상태에서는 글을 쓸 수 없다. 돈독이 올라 욕망으로 가득 찬 상태에서 글을 쓸 수 없다.

 

주식에 눈 먼 자들은 이익이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오로지 이익만 추구한다. 그러다 보니 보시하는 삶은 꿈도 꾸지 못한다. 탐욕으로 사는 삶은 불선업이 될 수밖에 없다.

 

주식은 장부상에 있는 것이다. 컴퓨터에서 숫자놀음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숫자에 기뻐하고 숫자에 슬퍼한다. 지나고 나면 허망한 것이다. 귀중한 시간만 축낸 것이다.

 

사람들은 퇴직하고 나서 할 일이 없을 때 주식을 한다. 주변에서 많이 보았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주식하지 말라고 한다. 해봐서 아는 것이다. 다만 욕망을 콘트롤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해도 될 것이다.

 

욕망으로 살면 불선업을 짓는 것이다. 주식에 눈이 멀어 모니터만 쳐다 보는 삶은 불선업의 삶이 된다. 공덕을 짓기는커녕 이제까지 지은 공덕도 모두 까먹는 삶이 되기 쉽다. 적자인생을 말한다.

 

주식을 손절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때가 2006년이다. 이후 오로지 글만 썼다. 매일 그날 하루에 있었던 가장 인상적인 것 하나를 썼다. 이런 세월을 17년 살아 왔다. 그 동안 글이 엄청나게 축적되었다.

 

글을 쓰면 마음이 청정해진다. 이런 것도 공덕마일리지를 적립하는 것과 다름 없을 것이다. 이자에 이자가 붙어 복리의 마일리지가 축적되는 것과 같다.

 

요즘 마트에 가면 포인트가 적립된다. 생활에 꼭 필요한 먹거리 등 생필품을 살 때 포인트가 생기는데 이를 모아 놓으면 나중에 큰 금액이 된다. 마치 이자 같은 것이다.

 

포인트는 물건을 살 때만 적립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공덕행을 할 때도 포인트가 적립된다. 이를 공덕포인트 또는 공덕마일리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재산에는 물질적 재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 재산도 있다. 믿음, 계행, 보시, 배움, 지혜 등의 정신적 재산을 말한다. 공덕행을 하는 것은 정신적 재물을 축적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덕행을 하면 할수록 점점 불어난다는 사실이다. 마치 포인트 적립되는 것과 같다.

 

공덕에는 크게 세 가지 공덕이 있다. 보시공덕, 지계공덕, 수행공덕을 말한다. 여기서 수행공덕은 사마타수행공덕과 위빠사나수행공덕으로 나뉜다.

 

가장 수승한 공덕은 위빠사나수행공덕이다. 이는 경전적 근거가 있다. 어떤 것인 것인가? “단지 손가락 튕기는 순간이라도 무상에 대한 지각을 닦는다면, 그것은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A9.20)라는 가르침이다.

 

보시하고 지계하는 삶은 아름답다. 더 아름다운 것은 수행하는 삶이다. 보시공덕과 지계공덕과 비할 바 없이 공덕이 크다. 찰나생찰나멸에서 무상을 지각했을 때 그 공덕은 헤아릴 수 없이 큼을 말한다.

 

수행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글 쓰는 삶도 훌륭하지만 더 훌륭한 것은 수행하는 삶이다. 하루에 한시간이라도 좌선하는 삶을 산다면 그 공덕은 매우 클 것이다.

 

매일 글을 쓰고 있다. 글 쓰는 것도 공덕이 되는 삶이다. 왜 그런가? 글쓰기하면 마음이 청정해진다는 것이다. 이는 글쓰기 삼매에 들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대개 오전 일찍 쓴다. 글쓰기 삼매에 빠지면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A4로 여섯 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이 된다. 더 나가면 점심 때까지 쓴다. 이럴 경우 A4로 여덟 페이지가량 된다.

 

무엇이든지 마음을 집중하면 삼매가 된다. 글을 읽는데 빠져 있다면 독서삼매가 될 것이다. 뜨개질하는데 시간가는 줄 모른다면 뜨개질삼매가 될 것이다. 글쓰기하면 당연히 글쓰기삼매가 될 것이다.

 

글이 완성되면 인터넷에 올린다. 이때 일시적으로 강한 성취를 느낀다. 일을 마쳤을 때 느끼는 성취감과 똑 같은 것이다. 그러나 오래 가지는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약간은 허탈해지기도 하다.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

 

요즘은 글쓰기 하고 난 다음에 좌선에 들어간다. 불과 이삼주전까지만 해도 좌선을 먼저 했었다. 그러나 잘 집중 되지 않았다. 그런데 글쓰기를 하고 난 다음 좌선을 하니 달라졌다. 집중이 잘 되는 것이었다.

 

명상은 집중에 달려 있다. 마음을 대상에 집중해야 삼매가 생겨난다. 예전에는 집중하기 위해서 몇 가지 방법을 썼다. 행선과 암송을 말한다.

 

좌선하기 전에 행선을 하면 효과적이다. 왜 그런가? 행선에서 형성된 집중을 좌선으로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암송하는 것이다.

 

암송은 집중을 요한다. 외운 것을 기억해 내야 하기 때문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암송의 효과를 보았다. 빠다나경(Sn3.2, 정진의 경)을 암송하고 난 다음 행선에 임했을 때 달랐다. 무려 스물다섯 개나 되는 경을 암송하고 난 다음 행선하면 새김이 잘 되었다. 암송에서 형성된 집중을 그대로 행선으로 가져 간 것이다.

 

마하시전통에서는 좌선과 행선을 병행한다. 좌선을 한시간 하면 반드시 행선도 한시간 하라고 한다. 그런데 행선에서 형성된 집중을 좌선으로 가져가면 매우 효과적이라는 사실이다. 속된말로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이다.

 

집중과 관련하여 최근에 발견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글쓰기 하고 난 다음에 좌선에 임하는 것이다. 실제로 시행해 보니 암송으로 형성된 집중이나  행선으로 형성된 집중보다도 훨씬 더 강력했다. 반을 먹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먹고 들어가는 것과 같다.

 

글 쓰는 것은 고도의 집중을 요한다. 글은 집중하지 않으면 쓸 수 없다.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집중이기 때문이다. 이런 집중을 내버려 둘 수 없다. 두세 시간 글쓴 것에 대한 집중을 그대로 좌선에 가져 가는 것이다.

 

암송에 의한 집중은 고작 십분이다. 행선에 의한 집중은 이삼십분 정도이다. 그런데 글쓰기로 인한 집중은 한시간 이상 두세 시간인 경우가 많다. 이렇게 형성된 집중을 좌선으로 가져가면 몇 분 되지 않아 최상의 안락한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요즘에는 자리에 앉는 것이 즐겁다. 특히 글쓰기 한 다음에 자리에 앉으면 성공확률이 거의 백프로이다. 명상시간이 기다려진다. 살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어떤 이는 돈 버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한다. 유튜브에서 본 어떤 전업투자자는 주식에서 한건이 터지자 만세를 불렀다. 돈벼락 맞는 장면을 보여 준 것이다. 그러나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을 것이다.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괴롭다. 하루하루 주가차트만 바라보고 사는 삶은 불행한 삶이다. 무엇보다 불선업의 삶이라는 것이다. 매일매일 욕망으로 살아갔을 때 그것은 불선업의 바벨탑을 쌓는 것이나 다름없다.

 

천수경에서도 탐애중죄금일참회라는 말이 있다. 탐욕은 열 가지 악행 중의 하나인 것이다. 설령 그가 큰 돈을 벌었더라도 욕망으로 번 것이라면 불선업만 잔뜩 쌓아 놓은 것이 된다.

 

주식을 하지 않는다.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 욕망을 제어할 줄 안다면 해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저축을 한다.

 

주식은 오래 전에 손절했다. 그대신 저축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자는 부수적으로 따라 오는 것이다. 그러나 은행 이율은 낮다. 그나마 새마을금고가 가장 좋다.

 

새마을금고 금리는 올해 초에 6프로까지 올라 갔다. 현재는 4.5프로가 최상이다. 시중은행은 3프로대 후반이다. 그럼에도 저축한다. 원금이 보장되고 때가 되면 이자가 붙는다. 돈이 돈을 버는 것이다. 그러나 수행공덕만 못하다.

 

요즘 날이 밝으면 은근히 기다려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명상공간에 한시간 앉는 것이다. 그런데 막바로 앉으면 번뇌망상으로 괴롭다. 그러나 어느 정도 집중이 이루어지고 난 앉으면 반은 접고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글쓰기에서 형성된 집중을 그대로 가져 가는 것이다. 오전 열 시대가 가장 좋다.

 

 

오늘도 한시간 앉을 것이다. 어제도 앉았고 그제도 앉았다. 이제 좌선하는 것이 생활화 되는 것 같다. 마치 밥 먹듯이 생활화 된 것이다. 이렇게 좌선시간이 은근히 기다려지는 것은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자리에 앉으면 불과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다른 세상에 가는 것 같다. 그것은 몸의 나른함에서부터 온다.

 

온 몸이 나른해지면 몸은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몸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 모른다. 이럴 때는 일부로 몸을 움직여 보기도 한다.

 

몸이 나른해지면 정신도 나른해지는 것 같다. 마치 절정에 이른 후에 나타나는 나른함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나른함은 꽤 오래 지속된다는 것이다. 이런 나른함은 확실히 감각적인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여기 맛있는 음식이 있다. 보는 즐거움도 있고 씹는 즐거움도 있다. 목구멍을 넘기는 순간 최상의 즐거움을 맛본다. 그러나 목구멍을 넘기는 것으로 끝이다. 매우 짧게 끝난다. 그러나 좌선에서 나른함은 한시간 내내 지속된다.

 

좌선은 집중에 달려 있다. 앉자마자 집중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호흡을 관찰한다. 그러나 글쓰기에서 형성된 집중을 가져가면 호흡관찰이 생략된다. 곧바로 나른함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이런 나른함에서는 통증도 반갑다는 것이다.

 

앉아 있다 보면 몸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그런데 한시간이 다가 올수록 몸에 변화가 생긴다. 다리에서 서서히 느낌이 오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느다란 통증이다. 어떤 때는 강한 통증이 오기도 한다. 마치 송곳으로 찌르듯이 아픈 것이다.

 

좌선 말미에 통증이 왔다. 송곳으로 찌르듯이 생멸을 반복한다. 이런 통증을 객관적으로 바라 본다. 몸과 마음을 분리해서 바라 보는 것이다. 허벅지에서는 통증을 느낄지 모르지만 마음으로까지 전이되지 않는다. 어떤 때는 시원하다. 꼬챙이로 쿡쿡 쑤시는듯한 통증이 마치 마사지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인생을 육십년 이상 살았다. 요즘 같은 백세시대에는 오래 산 것이 아니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지만 기대수명까지 오래 남았다. 이 남은 기간에 무엇을 해야 할까?

 

한평생 감각만을 추구하는 삶을 산 사람이 있다. 그가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었어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한평생 탐, , 치로 살았다면 동물적 삶을 산 것이나 다름 없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 오계를 지키는 삶이다. 더 나은 삶은 공덕이 되는 삶이다. 이는 다름 아닌 축적되는 삶이다.

 

공덕의 마일리지가 축적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은행에 돈을 맡기면 이자가 붙듯이 공덕의 포인트를 쌓아야 한다. 보시하는 삶, 지계하는 삶, 수행하는 삶을 살면 공덕도 쌓고 마일리지도 축적된다. 저 세상에 갈 때 든든한 노자돈이 될 것이다.

 

 

2023-12-1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