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생산적인 사람이 되고자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2. 16. 09:27

생산적인 사람이 되고자
 
 
지금 시각은 오전 7시 24분, 진눈깨비 내리는 날 아침이다. 토요일 아침임에도 백권당에 일찍 왔다.
 
세상은 아직 어두움 속에 싸여 있다. 동지가 머지 않았다. 이제 어둠은 절정을 치닫고 있다.
 
어느 것이든지 절정에 이르면 내려 와야 한다. 주식도 시세분출하고 나면 그 순간부터 고꾸라진다. 이제 동지가 되면 음의 기운은 서서히 약해지고 양의 기운은 서서히 강해지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 이 시각 이불 속에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주말 휴일이라 마음껏 쉬어도 될 것이다. 그러나 매일 쉬는 사람들은 하루 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때 갈 데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아침 6시가 되면 무조건 일어나야 한다. 6시 넘어서까지 누워 있으면 게으른 것으로 본다. 6시 넘어서까지 이불 속에 있는 것은 자신이 용납하지 않는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일어나자 마자 해야 할 일이 있다. 먼저 온수를 받아 놓는다. 그 다음에 아침을 준비한다. 고구마와 계란을 삼는 것이다. 백권당에 가서 먹을 것이다.
 
고구마와 계란은 가스로 삼는다. 가스 타이머를 20분으로 세팅해 놓는다. 그 사이에 샤워를 한다. 면도를 하고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는다.
 
샤워를 하면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이전과 이후가 180도 달라지는 것이다. 찌뿌둥했던 마음은 활기찬 마음이 된다.
 
백권당까지는 걸어가야 한다. 옷을 두툼하게 입는다. 목을 두르는 목두르기를 착용한다. 마스크를 쓴다. 가방에는 아침에 먹을 고구마와 계란을 넣는다. 여기에 ‘위빳사나 수행방론’도 넣는다.
 
배낭이 묵직하다. 이렇게 배낭을 메고 다닌다. 살 것이 있으면 담아서 좋다. 이제 배낭 메는 것이 생활화 되었다.
 
스마트폰을 보니 영상 1도의 날씨이다. 추운 날씨임을 알 수 있다. 더구나 강수확률이 90%이다. 이럴 때는 우산을 준비해야 한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닫혔던 문이 갑자기 열렸다. 앞집 남자가 탄 것이다. 내 나이 또래로 보인다. 백발에 바바리 입은 모습이다. 큰 키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간단히 인사만 한다.
 
도시에서는 이웃과 교류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맞은 편에 사는 사람들은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대화하는 사이는 아니다. 마주치면 인사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외모에도 신경 써야 한다. 외모를 잘 가꾸는 것도 경쟁력일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옷도 단정하게 입어야 한다. 자세도 바르게 해야 한다. 이런 면으로 보았을 때 앞집 남자는 신사처럼 보인다.
 
어둠 속에서 눈이 왔다. 우산을 썼다. 외투에 달린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장갑을 꼈다. 이렇게 무장하니 든든하다. 어둠 속에서 혼자 걷는다.
 
세상이 고요할 때 혼자 터벅터벅 걷는다. 발걸음이 가볍다. 남들 자는 시간에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니 승리자가 된 것 같다.
 

 
안양천 징검다리가 잠겼다. 어제 비가 와서 잠긴 것이다. 이럴 경우 무지개다리로 우회해야 한다. 어둠 속 안양천에 눈이 내린다.
 
도로에서 청소부를 보았다. 눈 내리는 도로에서 무엇인가를 줍고 있다. 자세히 보니 낙엽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다. 자신이 해야 할 바를 다하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을 깨끗이 하는 것이다.
 

 
세상은 아직도 어둡다. 오피스텔 18층에서 바라본 동쪽 하늘은 7시가 넘었음에도 밤이나 다름 없다. 눈 내리는 밤이다. 수도권전철 1호선이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하얀 여백을 대하고 있다. 매일 밥 먹듯이 글쓰기 하고 있다. 누군가 이런 일을 하지 말라고 말한다면 나는 죽음목숨과도 같다. 글을 씀으로 인하여 살아 있음을 지각한다.
 
오늘은 무엇을 써야 할까? 걸어 오면서 이미 생각해 놓았다. 그것은 ‘생산적인 사람’에 대한 것이다.
 
늘 생산적인 사람이 되고자 한다. 이는 소비적인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제조업마인드에 기반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들어간 직장은 제조업체였다. 생산라인이 있어서 매일 양산이 이루어지는 공장에 들어간 것이다. 이후 직장을 여러 번 옮겼지만 제조업체였다.
 
제조업은 물건을 만들어 내는 업종을 말한다. 재료를 투입해서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이다. 이런 업종에서 잔뼈가 굵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이다. 원재료를 들여와서 가공하여 수출하는 것이다. 자동차와 반도체가 대표적이다. 이런 제조회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나라는 부강해진다.
 
제조업체에서는 개발을 담당했었다. 구체적으로 ‘셋톱박스’를 개발했다. 개발된 것은 양산이 되어서 수출되었다. 외화를 벌어 들인 것이다. 이런 일을 이십년 하다 보니 제조업에 대한 프라이드가 생겨나게 되었다.
 
프라이드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긍정적인 것이고 또 하나는 부정적인 것이다. 자부심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자신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하지만, 부정적으로 작용하면 자만이 되어서 남을 깔보게 된다.
 
제조제일은 생산제일이라는 말과 동의어가 된다. 제조업 프라이드가 강화되면 비제조업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제조업 아닌 것은 모두 소비집단으로 보는 것이다.
 
양극단은 좋지 않다. 부처님의 중도의 가르침에도 어긋난다. 그럼에도 제조업마인드가 뼛속까지 박혀 있다 보니 비생산적인 것을 보면 하찮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이들은 여행을 즐겨 한다. 해외에 나가서 살다시피 한다.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나라에 가서 살고, 뜨거운 여름에는 선선한 나라에 가서 산다. 이런 것을 보았을 때 비생산적인 일이라고 본다. 소비만 하는 집단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유한계층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다. 그저 놀고 먹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여행을 즐기는 사람, 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도 이에 해당된다.
 
대부분 사람들은 감각을 즐긴다. 먹고 마시고 노는데 있어서는 열심이다. 제조업마인드로 본다면 비생산적인 사람들이고 소비만 하는 집단으로 보인다. 이 사회와 국가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자만이 생겨나게 된다.
 
이 사회와 이 나라를 아름답게 만들고자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 생산적인 일보다 소비적인 일이 더 많은 사회가 되었을 때 그 사회나 그 나라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신입사원시절 교육받은 것이 평생 가는 것 같다. 그것은 사업보국(事業報國)이라는 말이다. 이 말을 단순히 해석하면 ‘사업을 해서 나라를 이롭게 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심오한 뜻이 있다. 이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이 사회와 국가에 보탬이 된다.”라고 재해석할 수 있다.
 
사업보국 이념으로 살고 있다. 이를 달리 말하면 소비적인 일을 지양하겠다는 말과 같다. 늘 자신을 향상시키는 삶을 살겠다는 말과 같다.
 
사업보국 자세로 하루를 임하고 있다. 오늘도 생산적인 일을 하고자 한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생산적인 일일 것이다.
 
글을 쓰면 인터넷에 올려 놓는다.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동시에 게재 하는 것이다. 이렇게 올려 놓으면 누군가 보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글쓰기는 생산적인 일임에 틀림 없다.
 
최근 책을 하나 만들었다. 스리랑카 순례기를 말한다. 작년 1주일 스리랑카 순례했는데 10개월에 걸쳐서 썼다. 거의  500페이지에 달한다.  
 
스리랑카 순례기를 쓰면서 힘을 받은 것이 있다. 그것은 순례기를 활용하겠다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불교환경연대 이해모 선생을 말한다.
 
이해모 선생에게 순례기 pdf파일을 보냈다. 이해모 선생은 놀랍게도 pdf파일을 책으로 만들었다. 이번에 스리랑카 순례 하는 팀에게 선물로 주고자 한 것이다.
 

 
생산적인 일에는 글쓰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향상시키는 것은 모두 생산적인 일이 된다. 마음을 계발하는 것도 생산적인 일이다.
 
매일 경전을 읽는다. 머리맡에서 읽는다. 경전을 읽는 것도 생산적인 일이다. 마음에 드는 경이 있으면 외운다. 경을 외우는 것도 생산적인 일이다. 외운 경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매일 암송한다. 암송하는 것도 생산적인 일이다.
 
매일 수행한다. 매일 행선과 좌선을 한다. 특히 좌선은 매일 한시간 앉아 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매일 한시간 앉아 있는 것도 생산적인 일이다.
 
여기 감각을 즐기는 자들이 있다. 눈이나 귀나 감촉으로 지금 여기서 행복 또는 즐거움을 찾는 자들을 말한다. 이들이 보기에는 글쓰기, 경외우기, 암송하기, 행선하기, 좌선하기는 쓸데 없는 짓으로 보일 것이다. 시간낭비로 보기도 할 것이다. 더 나아가 비생산적인 일로 보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현재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본다면 일을 하는 사람이 가장 아름답다.
 
일하는 사람에 대한 범주는 넓다. 일반적으로 노동하는 것을 일한다고 본다. 그래서일까 어떤 바라문 출신 농부가 탁발 온 부처님에게 물었다. 농부는 “수행자여, 나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에 먹습니다. 그대 수행자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에 드십시오.”(Sn.1.4)라고 말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일하는 것은 미덕이다. 반대로 놀고 먹는 것은 악덕이다. 바라문 농부는 부처님에게 놀고 먹는 것에 대하여 비난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바라문이여,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에 먹습니다.”(Sn.1.4)라고 말했다.
 
수행자도 일을 한다. 어떤 일을 하는가? 마음의 밭을 계발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이 씨앗이고 감관의 수호가 비며 지혜가 나의 멍에와 쟁기입니다. 부끄러움이 자루이고 정신이 끈입니다. 그리고 새김이 나의 쟁깃날과 몰이막대입니다.”(Stn.77)라고 말했다.
 
매일 한시간 좌선한다. 이 글이 끝나면 좌선할 것이다. 글 쓰면서 형성된 집중을 그대로 좌선에 가져 가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새김이 금방 확립된다. 최상의 안락과 평화의 상태가 된다. 이런 것도 일을 하는 것이 된다.
 
주말인 토요일 오늘도 이부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샤워를 하고 무장을 하면 기분이 새롭다. 오늘도 일하러 가는 것이다. 일감이 있으면 일을 하고 일감이 없어도 일을 한다.
 
글쓰기도 일하는 것이다. 경전을 읽는 것도 일하는 것이다. 경을 외우고 경을 암송하는 것도 일하는 것이다. 행선을 하고 좌선을 하는 것도 일하는 것이다. 자신의 정신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도 일하는 것이다.
 

 
소비적인 사람보다 생산적인 사람이 되고자 한다. 사업보국의 이념으로 살고자 한다. 내가 하는 행위가 사회와 나라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글을 쓰다 보니 날이 밝았다. 바깥에는 눈이 펑펑 내리고 있다.
 
 
2023-12-1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