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따뜻한 남쪽나라로
오늘 영하 1도이다. 어제보다 무려 5도가 낮다. 스마트폰 첫 화면을 보니 ‘한파주의보 해제’라고 떠 있다.
연일 강추위가 계속되고 있다. 이틀 전에는 무려 영하 10도가 되었다. 체감온도는 이보다 더 낮다. 외출하기에 무리가 따른다. 뜨뜻한 아랫목이 그립다.
요즘 따뜻한 남쪽나라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에스엔에스에서 본 것이다. 패키지 관광여행이 아니라 살러 가는 것이다. 이른바 한달살이, 두달살이, 세달살이에 대한 것이다.
남쪽나라로 떠나는 사람들은 유한계층임에 틀림 없다. 삶의 여유가 있어서 떠나는 것이다.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아마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것이다.
산업화시대에 농촌에서 이농현상이 있었다. 떠날 사람은 다 떠났을 때 “무지랭이들만 남았다.”라고 했다. 해마다 겨울철이 되면 남쪽나라로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 남아 있는 사람들은 무지랭이가 되는 것 같다.
남쪽나라는 따뜻하다. 이는 미얀마와 스리랑카에서도 알 수 있다. 아열대 지방에 위치한 나라는 항상 여름이었다.
아열대지방은 지상낙원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는 계절적 영향에 따른다. 건기에는 살만한 것이다. 건기가 끝나고 혹서기가 시작되었을 때, 찜통 같은 더위가 시작 되었을 때 지옥이 될 것이다.
미얀마와 스리랑카에 오래 있지 않았다. 미얀마는 수행하기 위해서 갔다. 스리랑카는 성지순례하기 위해서 갔다. 모두 보름 이내 기간이다.
건기에 남쪽나라는 살기에 좋다. 미얀마에 갔었을 때 계속 있고 싶었다. 날씨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불교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코로나 이전에는 해마다 수행하기 위해서 두 달, 세 달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미얀마 담마마마까 명상센터)
스리랑카는 항상 여름인 나라이다. 우기와 건기가 뚜렷한 동남아 나라들과는 차이가 있다. 마치 미국의 하와이 같아서 유럽 사람들이 휴양지로 찾는 다고 한다. 한달살이, 두달살이, 세달살이 하는 것이다.
여행을 많이 하지 않았다. 일년에 한번은 성지순례하기로 발원했기 때문에 몇 개 나라를 가보았다. 이제까지 가 본 데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은 스리랑카였다.
스리랑카에는 신성도시가 있다. 아누라다푸라, 폴론나루와, 캔디를 말한다. 이 중에서 아누라다푸라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불상 등 유적이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이곳에서 한달살이, 두달살이 하면서 보내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해 보았다.
(루완엘리세이야 대탑, 아누라다푸라)
(아누라다푸라 게스트 하우스)
생업이 있는 개인사업자이다. 정년이 없는 일을 하기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 없다. 일주일 시간 내기도 힘들다. 최장 이주일 시간 내보았다. 이러다 보니 한달살이, 두달살이, 세달살이는 꿈도 꾸지 못한다.
나에게 남쪽나라 한달살이, 두달살이, 세달살이는 사치이다.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한다. 이에 대한 보상심리로 국내 여행을 한다. 자연휴양림에서 하루나 이틀 보내는 것이다.
(통나무집, 대관령 자연휴양림)
에스엔에스에서 어떤 이는 계절을 반대로 살아간다. 추운 겨울철이 되면 따뜻한 남국에 가서 살아간다. 무더운 여름철이 되면 이번에는 북쪽으로 가서 산다. 한국에 사는 것은 봄철과 가을철뿐이다.
겨울은 겨울답게 보내야 한다. 당연히 여름은 여름답게 보내야 한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그렇다면 겨울에 따뜻한 나라에 가서 살고, 여름에는 차가운 나라에 가서 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면역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다.
인생에도 사계절이 있다. 젊음은 봄과 같다. 장년은 여름과 같다. 노년은 가을과도 같다. 죽음은 겨울과도 같다.
인생에는 과정이 있다. 청소년기 때는 사춘기가 있다. 청년기 때는 열정이 있어서 연애를 한다. 중년기 때는 열심히 일해서 재산을 모은다. 노년기 때는 결실의 계절로 인생과 자연과 우주에 대해서 관조하는 시간을 갖는다.
연애는 젊었을 때 한다. 청년 시절에 연애를 하지 못한 사람은 중년 시절에 연애를 할 수 있다. 이는 자연스럽지 않다. 마치 뜨거운 여름에 땀을 흘리지 않는 것과 같고, 추운 겨울에 추위를 이겨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인생에도 면역이 있다. 젊은 사람은 젊은이답게 사는 것이다. 연애도 하고 배우자도 찾는 등 열정적으로 사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생략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중년 시기에 늦바람이 불지 모른다. 이는 자연스럽지 않다.
추울 때는 추운 대로 보내야 한다. 겨울철에 추위가 극심하면 다음해 농사가 잘 된다고 한다. 병충해가 예방되는 것이다. 이는 자연의 면역력에 해당된다.
여름과 겨울을 날 수밖에 없다. 견디어 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여름이 더 좋을까 겨울이 더 좋을까? 나의 경우에는 겨울이 더 좋다. 여름은 정말 견디기 힘들다.
여름에는 땀을 흘린다. 땀을 흘린 만큼 면역력은 강화된다. 겨울에는 추위를 견딘다. 추위를 견딘 만큼 역시 면역력은 강화된다. 이런 과정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면역력 약화로 연결될 것이다.
추운 겨울날 따뜻한 남쪽나라로 갈 처지가 못된다. 그러나 남쪽나라 보다 더 매력적인 나라가 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이다. 눈을 감고 앉아 있으면 이지(異地)의 나라로 간다.
어떤 이는 오토바이 여행을 꿈꾼다. 오토바이 한대에 의지하여 대륙을 횡단하는 꿈을 꾸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오토바이를 타고 있어야 존재감을 느낄 것이다.
오토바이를 타면 질주본능이 생겨날 것 같다. 거친 오프로드를 달려 가는 것은 타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달리는 것에는 차량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명상하는 것도 달리는 것이다.
매일 한시간 자리에 앉는다. 요즘은 글쓰기가 끝나면 앉는다. 이는 글쓰기 하면서 형성된 집중을 그대로 가져 가고자 하는 것이다. 두세 시간 글을 쓴 다음에 자리에 앉으면 몇 분 지나지 않아 이지의 나라에 가게 된다.
명상에서 한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분명한 사실은 시간과 함께 달리는 것이다. 탈 것으로 달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또한 명상하는 것은 외국여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내면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도 여행은 여행인 것이다.
해마다 겨울이 오면 사람들은 따뜻한 나라로 떠난다. 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여유 있는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난다. 따듯한 남쪽나라에서 한달, 두달, 세달 보내는 것이다. 그러다가 따뜻한 봄이 되면 다시 돌아 온다. 마치 철새 같다.
사람들은 여름이 되면 시원한 나라로 떠난다.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 되면 유한계층 사람들은 하나 둘 북쪽나라로 떠난다. 시원한 북쪽나라에서 한달, 두달, 세달 보낸다. 그러다가 선선한 가을이 되면 다시 돌아 온다. 역시 철새 같다.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 떠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생업이 있는 사람들은 한달살이, 두달살이, 세달살이는 꿈도 꾸지 못한다.
사람들은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대로 살아간다. 무지랭이처럼, 붙박이 새처럼 살아간다. 그럼에도 꿈을 꾼다. “언젠가 나도 철새처럼 살아 보겠다.”라고.
2023-12-19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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