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매일 네 개의 서브루틴이 돌고 있는데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2. 28. 09:37

매일 네 개의 서브루틴이 돌고 있는데
 
 
지금 시각 오전 7시 31분, 청소를 하고 나니 몸과 마음이 상쾌하다. 마대자루를 이용하여 백권당 바닥을 닦았다. 서른 개가 넘는 화분에 물을 주고 나니 바닥이 지저분해졌다. 걸레질을 하고 나니 깨끗해졌다. 이런 것도 일상이다.
 
누구에게나 일상이 있다. 가장 기본적인 일상은 먹고 자는 것이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배설도 없지 않을 수 없다.
 
누구나 먹고 배설하고 자는 행위를 반복한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그런데 이런 일상은 동물도 같다는 것이다. 사람도 동물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행위를 반복한다.
 
일상은 반복하는 것이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다. 내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나이가 들고 늙고 병들고 결국 죽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죽음을 향해서 간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죽음은 확실하다. 그런데 삶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대수명을 말하지만 오늘 단절될 수도 있다. 나의 삶은 불확실하지만 나의 죽음은 확실한 것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천년만년 살 것처럼 방일하며 살아 간다. 감각을 즐기는 삶을 말한다. 마치 구덩이에 빠진 자가 줄에 매달려 떨어지는 꿀을 핥아 먹는 것과 같다. 그런데 그 줄도 쥐가 갉아 먹고 있다는 것이다.
 
줄은 언제 끊어질지 모른다. 밤낮이 지남에 따라 줄은 끊어지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달콤한 꿀맛에 빠져 줄이 끊어지는 지도 모른다. 아니 알고는 있지만 애써 모르는 채 할 수도 있다.
 
나의 죽음은 언제일까? 죽어서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런 의문에 경전을 열어 본다. 확실히 답이 있다. 죽어서 사는 방법이 있는 것이다. 이런 맛에 경전을 읽는다.
 
나에게는 네 개의 루틴이 돌아가고 있다. 이를 서브루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서부루틴이 있으면 메인루틴이 없지 않을 수 없다.
 
나에게 있어서 메인루틴은 일상이다. 아침이 되면 일어나서 샤워하고 아침 먹을 것을 준비하는 것부터 메인루틴은 시작된다.
 
백권당까지는 걸어간다. 백권당에 도착해서 쪄 온 고구마와 계란을 샌드위치 한조각과 함께 먹는다. 그리고 오늘 해야 할 일을 한다. 서브루틴을 하는 것이다.
 
현재 서브루틴은 글쓰기, 경전읽기, 명상하기, 그리고 빠알리어공부하기이다. 이 네 개의 서부루틴은 매일 반복된다.
 
지금 글을 쓰고 있다. 매일 의무적으로 하나의 글을 쓰는 것이다. 쓰긴 쓰되 글같이 써야 한다. 누구니 공감하는 글을 글을 써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은, 의미와 형식을 갖춘 글을 써야 한다. 이것이 첫 번째 서브루틴이다.
 
나의 두 번째 서브루틴은 명상하기이다. 글을 쓰고 나면 글쓰기에서 형성된 집중을 명상에 활용하는 것이다. 글쓰기도 집중이기 때문에 글을 쓰다 보면 글쓰기삼매가 된다. 글을 쓰면서 형성된 집중을 그대로 좌선으로 가져 가는 것이다.
 
세 번째 서브루틴은 경전을 읽는 것이다. 머리맡에 경전이 있어서 읽는다. 논서와 함께 읽는다. 현재 머리맡에는 쌍윳따니까야 통합본과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이 있다. 잠자리에 들기 전이나 잠에서 깨었을 때 읽는다.
 
나의 네 번째 서브루틴은 빠알리공부하는 것이다. 이제 십일 되었다. 매일 오후에 한시간 이상 공부한다. 매일 한과 이상 진도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빠알리문법 줌강의를 잘 듣기 위한 예습에 해당된다.
 
메인루틴은 기본이다. 이는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일상을 말한다.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동물들도 이런 일상을 살아간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창조적 행위를 하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글쓰기, 명상하기, 경전읽기, 빠알리어공부하기가 해당된다.
 
컴퓨터에 메인루틴이 있다. 메인루틴은 순환구조로 되어 있다. 프로그램이 스스로 돌아가게 만든 것이다. 마치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것과 같은 일상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컴퓨터는 메인루틴에 인터럽트가 걸리면 서브루틴이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전자제품 개발자 출신이다. 직장 다닐 때 셋톱박스(Set top box)를 개발했었다. 그런데 셋톱박스에는 원칩마이콤(CPU)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프로그래머는 프로그램을 짤 때 메인루틴과 함께 서브루틴도 짠다. 평소에는 메인루틴이 돌아가지만 인터럽트가 걸리면 서브루틴이 작동된다. 이는 메인루틴에서 어떤 반응이 들어 오는지 첵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메인루틴에 인터럽트가 걸리면 서브루틴이 작동된다. 메인루틴 돌아가는 것이 멈추고 서브루틴으로 넘어 가는 것이다. 서브루틴을 수행하고 나면 다시 메인루틴으로 복귀한다. 마치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본래 루틴으로 되돌아 오는 것이다. 일상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요즘 일상에서 가장 높게 비중을 두는 것이 있다. 그것은 빠알리어공부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새로운 일상이다. 또한 새로운 서부루틴이다. 기존 세 개의 서브루틴에서 하나가 더 추가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일상이 바빠졌다.
 
빠알리어 문법강좌는 매주 수요일 열린다. 매주 수요일 저녁 8시부터 9시 반까지 백도수 선생이 지도한다. 현재 카톡방에는 31명이 들어와 있다.
 

 
어제 두 번째 빠알리 강좌가 열렸다. 줌으로 열리기 때문에 저녁을 먹고 참여한다. 집에서 스마트폰으로도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좀더 집중하기 위해서 백권당으로 간다.
 
백권당에는 빠알리어수업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줌 강좌를 노트북으로 듣는 것이다. 더구나 노트북에는 대형 모니터가 연결되어 있다. 설계용 모니터이다. 이렇게 대형 모니터를 이용해서 줌 강의를 듣다 보면 집중이 더 잘된다.
 
이번에 빠알리어 공부하면서 다짐한 것이 있다. 그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이번에 빠알리 기초문법을 마스터하겠다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벼르던 것이다.
 
외국어 배우기가 쉽지 않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남의 나라 말 배우는 것이라고 본다. 영어를 그토록 오래 배웠건만 잘 하지 못한다. 짧은 영어로 몇 마디 할 뿐이다.
 
외국어 중에 할 수 있는 것은 영어와 일어이다. 영어는 누구나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배웠다. 일어는 필요가 있어서 배웠다. 기술직에서는 필수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빠알리어는 왜 배우는가?
 
한때 중국어를 배워보고자 했다. 이유는 중국이 뜰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중국과 관련 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막연하게 앞으로 중국어를 배워 놓으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느 언어이든지 필요성이 있어야 배운다. 중국어를 배워 놓으면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는 분발되지 않았다. 결국 배우지 못했다. 그러나 빠알리어는 달랐다.
 
매일 의무적으로 경전읽기를 하고 있다. 머리맡에 놓고 읽는다. 이런 세월이 삼년 되었다. 그런데 빠알리경전을 읽다 보면 빠알리어와 친숙해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사부니까야는 모두 완역되었다. 그것도 두 종류의 번역서가 있다. 이렇게 본다면 굳이 빠알리어를 배우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럼에도 배워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것은 빠알리 원문을 접하면 의미가 더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빠알리어로 경과 게송을 외운 바 있다. 지난 십 년 이상 수많은 경과 게송을 외웠다. 그러나 문법을 모르고 외웠다. 단지 단어의 의미만 알고 외웠다. 단수와 복수, 격변화 등 문법적 사실을 모른 채 생째배기, 우격다짐, 막무가내로 외웠던 것이다.
 
빠알리어 공부하는 것은 문법을 체계적으로 배워 보기 위한 것이다. 이번에 ‘고요한 소리’에서 빠알리문법 강좌가 개설된 것은 나에게 있어서 절호의 찬스와 같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그래서 줌 강의를 앞두고 매일 예습을 했다.
 
빠알리공부한지 이제 십일 되었다. 어제 11과까지 예습을 마쳤다. 가면 갈수록 어려워 지는 것 같다. 그리고 복잡해지는 것 같다. 어제 11과에서는 현재분사에 대해서 예습했다.
 
무엇이든지 처음 하면 쉽지 않다. 처음부터 쉬운 것은 없다. 특히 어학은 매우 어렵다. 그것은 모르는 것 투성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단어가 생소하다. 단어를 먼저 외워야 한다. 그리고 문법적 구조를 익혀야 한다.
 
어제 두 번째 줌 강의가 열렸다. 31명 중에서 23명이 들어 왔다. 3과까지 진도가 나갔다.
 
3과는 도구격에 대한 것이다. –a로 끝나는 명사에서 도구격 단수는 –ena로 변하고, 복수는 –ehi로 변한다. 그래서 “-의해서”, “-와 함께”의 뜻이 된다.
 
백도수 선생은 매우 친절하다. 줌으로 강의하는 것이지만 진정성이 느껴진다. 초심자들이 따라 올 수 있도록 배려 해 준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단어 외우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백도수 선생은 하나의 그림을 보여 주었다. 단어를 시각적으로 외우게 하기 위한 것이다. 산을 오르내리는 것도 시각적으로 설명했다. 산에 오르는 것에 대하여 아루하띠(āruhati)라 했고, 내려가는 것을 오르하띠(oruhati)라고 했다.
 
그림에는 나무가 그려져 있다. 나무는 룩카(rukkha)이다. 집은 위하라(vihāra), 거지는 야짜까(yācaka), 밥은 오다나(odana), 발우는 빳따(patta)이다. 이는 거지가 사람이 사는 집에 가서 밥 빌러 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백도수 선생은 빠알리어를 잘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첫 번째는 단어를 많이 아는 것이라고 했다. 단어를 알면 문법적 구조가 금방 드러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단어를 세트로 익히라고 했다. 이는 시각적으로 익히는 것을 말한다. 하나의 상황을 설정해 놓고 관련된 단어를 익히는 것을 말한다.
 
매일 빠알리 교재를 예습하고 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한시간 이상 시간을 내고 있다. 내년 3월 6일 강의가 종료될 때까지 일상이 될 것 같다. 그런데 백번 예습하는 것보다 한번 듣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다.
 
백도수 선생 강의를 듣다 보니 교재에 없는 이야기를 이것저것 듣게 되었다. 그 중에 하나는 어떻게 하면 문장을 빨리 파악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백도수 선생은 먼저 동사를 보라고 했다. 동사를 보고 난 다음에 목적을 보고 그 다음에 주어를 보라고 했다.
 
빠알리 문장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기본은 주어와 목적어와 동사이다. 나머지는 이 세 가지를 보완하는 것이다. 단수, 복수, 도구격, 탈격, 여격 등과 같은 문법은 부가적으로 번역되는 것이다.
 
매일 빠알리어 예습을 하고 있다. 오후에는 예습하는 날이다. 그런데 진도가 나갈수록 예습하는 시간은 점점 길어진다는 사실이다. 어제는 두 시간 넘게 예습했다. 이는 연습문제 풀 때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어제 줌 강의 시간은 복습시간이나 다름 없었다. 이미 예습이 11과 현재분사까지 나간 상태에서 3과 도구격에 대한 것을 들었을 때 복습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어떻게 해야 공부를 잘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예습과 복습에 달려 있다. 특히 언어는 예습을 철저히 해야 한다. 빠알리문법공부도 이와 다르지 않다. 연습문제를 풀어 봄으로써 확실히 내 것이 된다.
 
어제 11과를 예습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공부에는 나이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연습문제를 풀면서 애를 쓰다 보니 마치 중고교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공부를 하면 젊어지는 것 같다. 새로운 것을 알고자 노력할 때 학생이 되는 것 같았다. 빠알리어 문법을 예습하다 보니 나이를 잊어 버렸다. 오로지 공부하는 나만 있을 뿐 나이 든 나는 없었다.
 
어제 빠알리어 문법 예습하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젊게 살려거든 공부해야 된다.”라고.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공부하다 보면 나이를 잊어 버리기 때문이다. 오로지 익히기 위해서 애쓰다 보면 공부하는 나만 있게 된 것이다.
 
요즘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다. 내가 몇 살인지 모르겠다. 거울을 보면 나이 들어 보이지만 공부하다 보면 나이를 잊어 버린다. 글쓰기 할 때도, 명상할 때도, 경전을 읽을 때도 나이를 잊어 버린다.
 
매일 일상을 살고 있다. 배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일상이다.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동물에게도 있다. 이런 일상은 ‘메인루틴’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이 동물과 차별화 되기 위해서는 서브루틴이 있어야 한다. 나에게 있어서는 글쓰기, 명상하기, 경전읽기, 빠알리어공부하기가 서브루틴이 된다. 무려 네 개가 매일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네 개의 서브루틴이 매일 돌고 있다. 네 개의 루틴을 돌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 버린다. 나의 나이도 잊게 된다. 이럴 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 같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글을 써서 뭐에 써먹느냐고 말할지 모른다. 돈 도 안되기 때문일 것이다. 글쓰기로 오전일과를 다 보내는 것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즐기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어떤 이는 명상에 대하여 뭐에 써먹자고 하느냐고 말할지 모른다. 매일 오전 한시간 좌선하는 것에 대하여 시간낭비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돈도 되지 않는 것이다. 그 시간에 유튜브나 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어떤 이는 경전보는 것에 대하여 어떤 이익이 있어서 보느냐고 말할지 모른다.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하는 책을 본다든가 신문이나 월간지 등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을 보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른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어떤 이는 빠알리공부하는 것에 대하여 시간낭비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 시간에 중국어 등 외국어를 배우 것이 더 실용적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매일 네 가지 서브루틴을 반복하고 있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른다. 아마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계속 될 것 같다. 이런 루틴은 돈이 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돈인 세상에서 글쓰기, 명상하기, 경전읽기, 빠알리어공부하기와 같은 일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매일 똑 같은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나에게는 네 가지 서브루틴도 함께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다. 그러다 보니 부지런하지 않을 수 없다. 눈만 뜨면 백권당으로 달려 와서 하루일과를 시작하는 것이다.  
 
삶은 불확실하다. 반면에 죽음은 확실하다. 오늘 죽을지 모른다. 이럴 진대 가만 있을 수 없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정신적 향상을 이루어야 한다. 정신을 계발해야 한다. 정신적 재물을 축적하는 것이다. 다음 생을 위한 노자돈이 된다.
 
 
2023-12-2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