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새해에도 죽기살기로 온몸으로 달리고자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2. 31. 10:52

새해에도 죽기살기로 온몸으로 달리고자

 

 

겨울비 내리는 촉촉한 아침이다. 오늘은 올해 마지막날이다. 마치 삶의 끝자락을 보는 것 같다. 마치 절망의 끝을 보는 것 같다. 우중충한 날씨에 하늘은 잔뜩 흐려 있고 비까지 뿌리고 있다. 죽음의 침상에 누워 있는 자는 어떤 생각이 들까?

 

오늘도 어김없이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섰다. 오늘 올해의 끝자락이고 일요일 아침임에도 아파트를 박차고 거리로 나선 것이다. 일년 삼백육십오일 계속 되고 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눈이 오나 한결 같다. 토요일이라고 해서 일요일이라고 해서 쉬고 공휴일이라서 쉬지 않는다.

 

오늘 올해의 마지막날 평소와 다름 없이 샤워를 하고 아침에 먹을 것을 준비했다. 옷을 두껍게 입었다. 방한복을 입었다. 모자가 달린 방한복이다.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거리이다. 백권당까지 1.3키로 20여분 걸어야 한다. 목에는 목티를 둘렀다. 마스크를 했다. 장갑을 끼었다. 등에는 배낭을 맸다. 이런 모습을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셀프촬영 했다.

 

 

외투 입고 투구쓰면 마음이 새롭다는 군가가 있다. 백권당으로 향하는 아침 길은 가볍다. 마음도 새롭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다. 일년 삼백육십오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주말없이 휴일없이 반복되는 일상이다. 마침내 오늘 그 끝자락에 이르렀다. 올 한해 나는 어떤 성과를 이루었는가?

 

옛날에는 한해를 보내는 행사를 할 때 망년회라고 했다. 잊어 버리고 싶은 마음에서 망년이라고 했을 것이다. 요즘에는 송년회라고 한다. 한해를 보내는 입장에서 나의 올 한해는 어떤 것인가?

 

매년 이맘때 송년을 맞는다. 뒤돌아 보면 늘 아쉬움이 크다. 더 잘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부끄럽고 창피한 것도 있다. 그럼에도 매년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다. 그것은 습관으로 성취된다.

 

좋은 습관을 들이고자 한다.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낼 수 없어서 자신을 옭아 매는 습관을 만들고자 한다. 대표적으로 글쓰기, 책만들기, 경전읽기, 수행하기, 빠알리어공부하기를 들 수 있다.

 

첫째, 나 자신을 옭아매는 습관 하나는 글쓰기이다.

 

매일 하루에 한 개 이상 글을 쓴다. 하루도 빼먹지 않는다. 하루 빠지고 이틀 빠지다 보면 나중에 쓰지 않게 된다. 관성의 법칙에 지배 받는 것이다.

 

올 한해 나는 몇 개의 글을 썼을까? 매일 쓰기로 했으니 365개는 되어야 할 것이다. 블로그 통계를 보니 올 한해 나는 585개의 글을 썼다. 그것도 장문이다. 일상에 대한 이야기, 수행에 대한 이야기, 여행에 대한 이야기 등 갖가지 주제로 글을 썼다.

 

나에게 있어서 글쓰기는 일상이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잠을 자듯이 하는 것이다. 밥 먹듯이 글을 쓴 것이다. 그것도 의미와 형식을 갖춘 글이다. 이런 글이 쌓이고 쌓여서 엄청나게 축적되었다. 2006년 이후 지금까지 쓴 글은 7,453개에 달한다.

 

둘째, 나 자신을 옭아매는 습관 하나는 책만들기이다.

 

작성된 글은 블로그에 고스란히 보관 되어 있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작성된 글을 책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올해는 몇 권을 만들었을까?

 

나의 삶의 흔적은 블로그에 있다. 블로그 책만들기카테고리에는 그동안 만든 책이 pdf파일로 올려져 있다. 누구나 다운 받아 갈 수 있는 것이다. 현재 116권까지 만들었다.

 

올해 만든 책은 81권부터 116권까지 35권이다. 현재 2019년 쓴 것까지 만들었다. 앞으로 4년 것을 더 만들어야 한다. 한달에 서너권만 만들어도 올해 안에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책은 시기별로 또는 카테고리별로 만든다. 시기별로 만든 것은 일상에 대한 것과 담마에 대한 것이다. 카테고리별로 만든 것은 여행기나 수행기 등과 같이 주제별로 만든 것이다.

 

올해 책 만들기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이 있다. 그것은 스리랑카순례기이다.

 

여행을 가면 후기형식으로 반드시 기록을 남긴다. 여행기가 쌓이고 쌓이면 책이 된다. 202212월 스리랑카 순례 갔었을 때 기록도 그랬다.

 

스리랑카 순례기는 거의 십개월 걸쳐서 작성되었다. 스리랑카의 불교뿐만 아니라 역사와 문화 등 전반적으로 알아야 했다. 더구나 순례기는 미주현대불교에 연재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에 따라 마음의 부담도 컸다.

 

스리랑카 순례기는 47개의 글에 534페이지 달했다. 책을 조기에 만들게 된 동기가 있다. 그것은 광주불교환경연대에서 스리랑카 순례용으로도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스리랑카 순례기에 도움을 준 사람들이 많다. 김규현 선생은 자신의 저서 불국기를 보내 주었다. 책이 완성 되었을 때 메일로 pdf를 발송했다. 또한 순례를 함께 한 스리랑카사람 혜월스님과 뉴욕에 살고 있는 김형근 선생에게도 pdf를 발송했다. 스리랑카 사람들 돕기 운동을 하고 있는 탄경스님에게도 발송했다.

 

셋째, 나 자신을 옭아매는 습관 하나는 경전읽기이다.

 

매일 경전과 논서를 읽고 있다. 요즘은 쌍윳따니까야위빳사나 수행방법론을 읽고 있다. 경전읽기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 머리맡에 놓고 읽는다.

 

경전은 매일 읽어야 한다. 그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각주까지 빠짐없이 읽어야 한다. 맛지마니까와 디가니까야는 완독했다. 두 경전은 일년 반에 걸쳐서 읽었다.

 

경전은 매일 조금씩 읽는다. 하루에 한두 경이나 두세 페이지가 고작이다. 경전은 소설 읽듯이 읽을 수 없다. 한번 읽고 잊어 버려서는 안된다. 경전을 읽을 때는 새기며 읽어야 한다.

 

경전읽기도 요령이 있다. 형광메모리펜 칠을 하며 읽는 것이다. 이렇게 칠해 놓으면 다음에 읽을 때 도움이 된다. 칠한 부분만 읽으면 된다. 이렇게 읽다 보면 온통 노랑칠 투성이가 된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분홍색이 칠해져 있다.

 

경전은 잠자기 전과 잠에서 깨어 났을 때 읽는다. 잠 자기 전에 읽으면 잠자리도 편한 것 같다. 유튜브를 보다가 혼란된 마음으로 자는 것과 다르다. 잠에서 깼을 때도 경전을 펼친다. 진리의 말씀을 접하는 순간 마음이 청정해지는 것 같다.

 

경전은 머리맡에 있기 때문에 가장 편한 자세로 읽는다. 스탠드 불을 켜고 돋보기 안경을 쓰고 읽는다. 보통 삼사십분 읽는다.

 

셋째, 나 자신을 옭아매는 습관 하나는 수행하기이다.

 

수행은 오래 전부터 해 왔다. 본격적으로 한 것은 2020년 백권당에 명상공간을 만들고 나서부터이다. 매일 한시간씩 앉아 있겠다고 발원했다. 그러나 잘 지켜지지 않았다.

 

수행을 습관화 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려면 매일 해야 한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앉아야 하는 것이다. 마침 그럴 기회가 왔다. 올해 테라와다 우안거 때 재가안거를 해 보기로 한 것이다.

 

우안거는 731일부터 928일까지 88일동안 행했다. 재가안거이기 때문에 백권당 명상공간에서 행했다. 매일 아침 한시간 앉아 있는 것을 목표로 했다.

 

우안거 기간 동안 수행기를 작성했다. 한시간 좌선이 끝나면 곧바로 후기를 작성했다. 후기는 거의 두세 시간 걸려 작성했다. 작성된 후기는 책으로 만들었다. 이는 90개의 글에 684페이지에 달했다.

 

수행은 반드시 좌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행선도 수행이고, 암송하는 것도 수행이다. 또한 경을 외우는 것도 수행이다. 모두 집중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수행은 어떤 것인가? 글쓰기도 수행의 범주에 속하지만 예외로 한다. 나에게 있어서 수행은 행선하기, 좌선하기, 경외우기, 암송하기, 이렇게 네 가지가 해당된다. 이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경외우기인 것 같다.

 

올해 빠다나경을 외웠다. 수타니파에 실려 있는 정진의 경’(Sn3.2)을 말한다. 부처님이 악마의 군대와 싸워서 이긴 경을 말한다. 이 경은 모두 25개의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빠알리어로 모두 다 외웠다.

 

빠알리 경을 외울 때는 대단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또한 대단한 결심을 필요로 한다. 죽기살기로 외워야 한다. 빠다나경도 그랬다. 202228일부터 외우기 시작해서 414일날 다 외웠다. 66일 걸려 외운 것이다.

 

어렵게 경을 외웠다. 외운 것을 잊어 버리지 않기 위해서 암송했다. 매일 암송했다. 그런데 암송하면 집중이 잘 되는 것이었다. 암송하면서 형성된 집중을 행선에 적용했다. 행선에서 형성된 집중을 좌선에 적용했다.

 

셋째, 나 자신을 옭아매는 습관 하나는 빠알리어공부하기이다.

 

빠알리어공부하기는 오래 되지 않았다. 빠알리문법강좌가 1220일 시작되었으므로 이제 11일 되었다.

 

빠알리어 문법은 꼭 배우고 싶었다. 마침내 시절인연이 되어서 접하게 되었다. 사단법인 고요한소리에서 줌강연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강사는 백도수 선생이다.

 

요즘 매일 빠알리어 공부를 하고 있다. 빠알리어 문법 교재를 예습하고 있다. 매일 한과 진도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12주 강좌로 36일에 끝난다.

 

빠알리어는 일상이나 다름 없다. 경전을 보다 보면 매번 빠알리어를 접한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문법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문법적 지식이 없이 빠알리 경을 외웠다.

 

빠알리어 공부하는 것도 습관이다. 매일 한과씩 한시간 이상 예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어제는 14과 미래형 동사를 보았다. 미래형은 어근이나 어간에 ‘–(i/e)ssa’를 첨가하여 형성된다. 인칭에 따라 활용은 달라진다.

 

빠알리어 문법은 한번 보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반드시 연습문제를 풀어 보아야 한다. 빠알리어 문장을 우리말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때 단어에서 막힌다. 그럴 경우 빠알리사전을 찾아 보아야 한다.

 

무엇이든지 처음 배우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어학이 그렇다. 기본적으로 외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모르는 단어는 외워야 하고 문법규칙도 외워야 한다. 무엇보다 문장으로 외우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렇게 삼개월 공부하고 나면 성과가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을 옭아매는 네 가지를 나열해 보았다. 모두 습관들이기 위한 것이다. 매일 해야 한다. 매일 해야 관성에 의해서 하게 된다.

 

올해도 끝자락이다. 평상시와 다름 없음에도 심리적으로는 파장 분위기이다. 그러나 내일은 달라질 것이다. 심리적으로 새로운 마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관성에 의해서 흘러간다. 좋은 습관에 따른 관성이다. 매일 글쓰기하고, 매일 명상하고, 매일 경전을 보고, 매일 빠알리공부하는 나날이다.

 

올해도 작년과 다르지 않다. 또한 작년 전과도 다르지 않다. 글을 쓰는 것에 있어서는 십년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수행을 본격화 한 것이다.

 

이제까지 글쓰기 위주로 살아 왔다. 올해 들어서 수행이 추가 되었다. 특히 우안거를 하면서 일상이 되었다. 하루에 한시간 의무적으로 앉아 있는 것이다.

 

아침에 백권당으로 와서 글을 쓴다. 두세 시간 쓴다. 오전 7시부터 10시까지는 글 쓰는 시간이다. 글을 쓰고 나면 좌선을 한다. 10시에서 12시 사이가 된다. 오후에는 빠알리어공부를 한다.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두 시간 가량 시간을 낸다. 잠자기 전과 잠에서 깨어 났을 때는 경전과 논서를 본다. 각각 삼사십분가량 본다. 이것이 나의 일상이다.

 

현재 일상에서 네 개의 서브루틴이 돌고 있다. 글쓰기, 수행하기, 빠알리공부하기, 경전읽기는 밥 먹듯이 하고 있다. 내년에도 계속된다. 나를 옭아매는 네 가지 습관이다.

 

올 한해를 돌아 본다. 잘한 것도 있고 못한 것도 있다. 네 가지 습관들이는 것은 사실상 목숨 걸고 한 것이다.

 

글을 쓸 때 온 힘을 다해서 썼다. 기진맥진할 때까지 탈진할 때까지 썼다. 죽기살기로 썼다.

 

수행도 죽을 힘을 다 했다. 경을 외울 때는 밤낮으로 외웠다. 산행할 때도 한발한발 옮길 때마다 외웠다.

 

좌선할 때 한시간 버티는 것도 죽을 힘을 다해 버텼다. 다리에 통증이 왔을 때 풀지 않고 지켜 보았다. 그 결과 통증이 나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탐욕과 성냄과 같은 불선법도 나의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는데 아직 그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것 같다.

 

요즘 빠알리어 공부를 하고 있다. 나이 먹어서 공부하고 있다. 매일 의무적으로 공부하고 있다. 이것도 죽기살기로 하고 있다.

 

무엇이든지 죽음을 각오하고 임해야 한다. 죽기살기로 해야 한다. 바라밀은 본래 목숨걸고 하는 것이다.

 

십바밀에서 승의적 초월의 길(paramatthapāramī)이 있다. 승의적 초월의 길은 목숨 걸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시를 해도 목숨을 보시하는 것은 승의적 초월의 길의 보시이다.”(Jat.I.73)라고 했다. 자신의 목숨을 바칠 정도로 보시해야 함을 말한다.

 

빠라맛타빠라미(최상바라밀)는 목숨 걸고 하는 것이다. 죽기살기로 하는 것이다. 한번 하기로 마음 먹었으면 죽기살기로 해야 한다. 이는 결정바라밀 (adhiṭṭhāna-pāramī) 에서 그들의 생명의 파괴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는 결정이 승의적 초월의 길의 결정이다.”(청정도론 Vism.9.124 각주테리가타 의석 서문 17번 각주) 라고 설명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여러모로 부족한 것이 많다. 부끄럽고 창피한 것도 많다. 이렇게 글로 쓴다는 것은 커다란 허물이다. 하나의 과정으로 본다. 어느 시기에 이르면 멈출 것이다.

 

오늘은 어제와 다름 없는 하루이다. 내일도 오늘과 다름 없는 하루가 될 것이다. 해가 바뀐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지는 것은 없다. 지금까지 해 왔던 방식대로 하면 된다.

 

대부분 사람들은 인생을 쉽게 산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마치 천년만년 살 것처럼 방일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인생 머 별거 있어? 술이나 마시자구.”라며 감각을 즐기며 살아간다. 오래 살면 살수록 불선업만 쌓여 갈 것이다.

 

가르침을 접한 사람들은 함부로 살지 않는다. 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않는다. 오늘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하루를 일생처럼 사는 것이다. 죽기살기로 사는 것이다.

 

부끄러움 없는 생을 살고자 한다. 언제 어느 때 최후를 맞이할지 알 수 없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부끄러움 없이 살고자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습관을 들여야 한다. 꾸살라 담마(kusala dhamma), 착하고 건전한 법을 행하는 것이다. 죽기살기로 온몸으로 행해야 한다.

 

오늘도 신나게 자판을 두들겼다. 이제 끝내야 할 시간이다. 글을 인터넷에 올리고 나면 한시간 좌선을 해야 한다. 오후에는 한시간 이상 빠알리어문법 예습을 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 전에는 경전을 보아야 한다. 내일 새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새해에도 죽기살기로 온몸으로 달리고자 한다.

 

 

2023-12-3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