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방탄복 같은 외투를 선물 받았는데

담마다사 이병욱 2024. 1. 10. 09:25

방탄복 같은 외투를 선물 받았는데
 
 
옷이 몸에 착 달라붙는다. 요새 만든 옷들은 첨단을 달리는 것 같다. 요즘 같은 같은 날씨에 마치 방탄복 같은 옷이다.
 
매일 걸어서 일터에 간다. 1.3키로 20분 거리를 걸어 간다. 겨울철에는 무장을 단단히 해야 한다. 방탄복과 같은 외투를 입는다.
 
외투에는 모자가 달려 있다. 목티를 하고 마스크를 한다. 장갑을 끼고 걷는다. 이렇게 무장하면 영하 10도 이하에서도 문제 없다.
 
옷을 하나 선물 받았다. 처가 사준 것이다. 생일선물로 방탄복 같은 외투를 사준 것이다. 입어 보니 몸에 착 감긴다. 두툼한 솜털이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외투가 깃털처럼 가볍다. 영하 10도에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첨단을 달리는 옷이다.
 

 
어제 밤에 눈이 왔나 보다. 길에 눈이 쌓여 있다. 이제 눈 보는 것은 일상이 된 듯 하다. 춥고 외로운 겨울에는 눈이 있어야 한다. 하얀 눈을 보면 마음까지 포근해지는 것 같다.
 

 
길을 걸으면서 생각해 보았다. 오늘 따라 몸의 컨디션이 최상이다. 어제 밤까지만 해도 괴로웠다. 그것은 왼쪽 허벅지 부위에 통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릎이 아픈 것은 사오일 되었다. 그때 오전 좌선을 끝내고 일어서는데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 며칠 지나면 낫겠거니 했다. 그러나 통증은 무릎에서 허벅지 위쪽으로까지 번져 같다.
 
통증은 마치 옮겨 다니는 듯 했다. 특정한 부위에서 콕콕 찌르는 듯 했다. 며칠 지나면 물러가겠거니 했다. 몸의 항상성을 믿기 때문이다.
 
통증은 가시지 않았다. 낮에는 잊어 버린다. 글을 쓴다거나 빠알리 공부를 한다거나 좌선할 때는 잊어 버린다. 아마 대상에 집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저녁에 집에 있으면 통증이 나타난다.
 
통증 위치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마치 바늘로 찌르는 듯이 특정 부위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다가 옮겨 간다.
 
통증을 지켜 보기로 했다. 위빠사나 수행은 지켜 보는 수행이기도 하다. 통증을 제3자적 입장에서 보기로 한 것이다. 육체적 통증이 정신적 괴로움으로 연결되지 않고자 한 것이다.
 
통증이 계속 되자 겁이 났다. 이러다가 평생 통증과 함께 사는 것이 아닌지 염려 되었다. 이렇게 생각되자 다급해 졌다. 유튜브에서 통증과 관련된 것을 찾아 보기 시작했다.
 
유튜브를 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대상포진이 아닌가?”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는 갑자기 발목 부위에 수포가 생겼기 때문이다. 오돌토돌한 것이 다섯 개가 그룹이 되어서 발생되었다. 다음날이 되자 두 그룹이 되었다.
 
수포를 보자 겁이 났다. 대상포진인 것 같았다. 유튜브를 찾아 보았다. 그러나 대상포진 위치는 상체에서 발생한다. 무릎 위 허벅지 부위의 통증과는 다른 것이다. 더구나 발목 부위에 수포가 생겼다.
 
대상포진에 걸린 자는 다시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면역이 된 것이다. 대상포진은 거의 삼십년 전에 걸렸었다. 그때 어깨에 왔었는데 마치 지옥 같은 고통을 겪었다. 이후로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병원에 가는 수밖에 없다. 피부과에서 약을 타 먹는 것이다. 그러나 밤중이다. 한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다. 그것은 스스로 고쳐 보자는 것이다.
 
병원에 가지 않는다. 감기에 걸렸을 때나 이가 아플 때 간다. 일체 건강진단도 받지 않는다. 비난 받을 일이다. 그러나 스스로 몸관리 한다. 자신에게 남아 있는 번뇌는 자신이 가장 잘 알듯이, 자신의 몸은 자신이 가장 잘 안다고 여긴다.
 
감기약을 타 오면 다 먹지 않는다. 약봉지가 남아 있다. 그런데 요즘 약봉투에는 약에 대한 설명이 있다는 것이다. 살펴 보니 항생제와 알러지 약이 있다.
 
자기 전에 스스로 선택한 약을 먹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통증이 사라졌다! 마치 목표물에 ‘정밀타격’한 것 같다. 아무리 피부연고를 발라도 통증은 여전했는데 항생제 한알과 알러지약 한알에 정밀타격 된 것 같다. 그러나 오늘 낮에 병원에 가서 처방 받고자 한다.
 
허벅지 통증은 왜 왔을까? 좌선을 해서 온 것일까? 그런 정황도 있다. 그날 한시간 좌선을 했었는데 왼쪽 다리가 무척 저렸다. 거의 마비되다시피 했다. 자세를 바꾸어 피를 돌게 한 다음 한시간 마쳤다. 좌선 때문인지 모른다.
 
모든 병은 면역력 약화에서 올 수 있다. 그러나 원인 없이 생겨나기도 하는 것 같다. 운이 없으면 병에 걸리는 것일까?
 
한달 전에는 가려움증으로 고생했다. 발목 부위와 손목 부위가 가려운 것이다. 아마 겨울철 피부건조증 영향인 것 같았다. 바디로션을 며칠 바르니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감기에 걸리면 시간이 해결해 준다. 몸은 복원력이 있어서 원래 상태로 되돌아 가는 것이다. 그러나 증상이 계속 되면 두려운 마음이 된다. 평생 갈 것 같은 공포를 말한다.
 
건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일생 중에 건강한 상태는 많지 않다. 늘 아픈 상태인 것 같다. 마치 돌아가며 아픈 것 같다. 그런데 중병에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중병에 걸리면 목숨이 위태롭다. 평생 치료해도 낫지 않는다면 절망할 것이다. 질병으로 인한 고통은 괴로운 것이다. 몸이 괴로우면 분노가 일어난다. 지옥과 같은 고통이 계속될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건강하다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된다. 언제 어떻게 발병할지 모른다. 이런 것에 대하여 어떤 이는 ‘운’으로 설명한다.
 

 
유튜브에서 본 것이 있다. 그 사람은 의사출신 경제학자이다. 그 사람 말에 따르면 성공은 운이 80프로라고 했다. 이렇게 본다면 실력이나 노력은 20프로밖에 되지 않는다.
 
성공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운이 좋았을 뿐이죠.”라는 말이다. 이런 말은 빌 게이츠도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왜 한결같이 성공의 조건으로 운을 말하는 것일까?
 
부자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이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보다 성공적인 삶을 살기 쉽다. 왜 그런가?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한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자나라에 태어난 것 자체가 운이라는 것이다.
 
부자나라에 태어나면 50프로는 먹고 들어 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출발선상부터 다른 것이다. 마찬가지로 부자집에서 태어났다면 역시 50프로는 접고 간다고 볼 수 있다.
 
운이 좋은 또 하나 요인이 있다. 그것은 디엔에이(DNA)이다. 좋은 형질의 유전자를 물려 받았을 때 30프로를 먹고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래서 부자집에서 좋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이미 80프로를 먹고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흔히 개천에서 용 난다고 한다. 옛날에는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부와 지위도 세습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운이 80프로이고 환경은 20프로라고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흔히 운칠기삼(運七技三)을 말한다. 그런데 이런 말이 미신이 아님을 말한다. 의사출신 경제학자에 따르면 부자나라에서 좋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것 자체가 운이라는 것이다. 나머지 20프로는 환경적 요인에 대한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 보았자 20프로가 한계라는 말이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을 운에 맡긴다면 운명론자가 될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면 운이 따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운한 사람도 있다.
 
마이클 조던은 세계적인 농구선수이다. 그와 같은 재능을 가진 농구선수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그가 유명해진 것은 운이 좋은 것으로 본다. 하필 그때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빌 게이츠는 세계적인 사업가이다. 그와 같은 재능을 가진 사람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럼에도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은 것으로 본다. 하필 그 시절에 사업하기 좋은 환경에 있었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운이 좋았을 뿐이죠.”라라는 말이다. 대단히 겸손한 말이다. 그러나 경솔한 자들은 자신의 실력으로 성공한 것이라고 말한다.
 
불운한 사람도 많다. 담배를 피지 않았음에도 폐암에 걸린 사람이 있다. 이런 경우 불운하다고 말할 수 있다. 걸어가다가 넘어질 수 있다.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심하게 다친다면 어떻게 될까? 불운하다고 할 수 있다.
 
일평생 건강하게 무탈하게 사는 것은 누구나 희망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장 한시간 후의 일을 알 수 없다. 어떤 사건이나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이럴 때 랏타빨라의 출가이유를 떠올려 본다.
 
랏타빨라는 장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인도 여러 명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감동해서 출가했다. 출가이유를 보면 “1) 이 세계는 불안정하여 사라진다, 2) 이 세계는 피난처가 없고 보호자가 없다. 3) 세상에는 나의 것이 없고 버려져야 한다. 4) 이 세계는 불완전하며 불만족스럽고 갈애의 노예상태이다.”(M82)라고 하여 네 가지 이유를 들었다.
 
이 세계는 불안정한 것은 틀림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산천초목삼라만상이 불안정한 것은 아니다. 저 바위산은 항상 그대로 있다. 변하는 것은 자기자신이다. 시각이나 청각 등 자신이 만든 세계가 불안정한 것이다.
 
이 세계는 피난처도 없고 보호자도 없다고 했다. 운이 없으면 괴로움을 겪는다. 다행히도 운이 좋으면 행복을 맛볼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괴로움으로 원위치 된다.
 
없던 병이 갑자기 생겨날 수 있다. 병이 일어날 만 해서 일어난 것이다. 그럼에도 발병하는 것은 우연에 따른 것일 수도 있다. 마치 길을 가다가 간판이 떨어져서 다치는 경우와도 같은 것이다. 이런 때 불운하다고 말한다.
 
이 세계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언제 어떤 병이 생겨날지 모른다. 그래서 이 세계는 나의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내 것이 아니다.
 
이 몸과 마음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내 뜻대로 된다면 나의 몸, 나의 마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내 것이 아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아 불만이다. 그래서 “갈애의 노예상태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허벅지 통증에서 해방되었다. 어제 밤에 정밀타격한 것이 효과를 보았다. 마치 코로나에는 코로나약을 쓰면 즉효약이 되듯이 고통스러웠던 통증을 잡은 것이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또다시 불운이 닥칠지 모른다.
 

 
늘 겸손해야 한다. 자랑하거나 나대면 불운이 찾아 오는 것 같다. 이렇게 글로 표현하는 것도 위험한 행위에 해당된다.
 
추운 겨울날 남쪽나라에 가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여름에는 서늘한 북쪽나라에서 한철을 보낸다. 한국에 있는 때는 봄과 가을뿐이다.
 
어떤 이가 남쪽나라에서 소식을 알렸다. 날씨도 따뜻하고 살기 좋다고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저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등 감각을 즐기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에 “여기 한국은 매우 춥습니다.”라고 글을 남겼다.
 
어떤 이는 가족자랑을 한다. 처와 자식 이야기를 한다. 손주 이야기는 대놓고 한다. 가족이 없는 사람 입장에서 본다면 시기와 질투를 유발할 수 있다.
 
가능하면 가족이야기를 쓰지 않으려고 한다. 처의 부탁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하지 않을 수 없을 때도 있다. 옷 이야기 같은 것이다. 마치 방탄복 같은 외투를 선물 받았을 때 쓰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이런 것도 허물일 것이다.
 
가족 이야기는 가족자랑으로 비추어지기 쉽다. 그런데 가족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상한 징크스가 있다는 것이다. 가족이 다치는 것이다. 가족에게 불운이 닥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가족이야기를 쓰지 말라는 것 같다.
 
흔히 운칠기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느 의사출신 경제학자에 따르면 이제는 운팔기이(運八技二)가 된다. 환경을 극복하여 성공에 이를 확률은 20프로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운이 있는 사람일까? 그렇게 큰 운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크게 성공을 이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경제적 관점에서 본 것이다. 스물두 평 아파트가 고작이다. 차는 경차이니 운이 있는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운을 바꾸어 보고자 한다.
 
운은 어떻게 올지 모른다. 그것은 행운이 될 수도 있고 불운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노력해야 한다. 주어진 20프로 환경에 올인하는 것이다. 내가 매일 장문의 글을 쓰고, 매일 한시간 좌선을 하고, 매일 한시간 이상 빠알리공부를 하고, 매일 머리맡에 있는 경전과 논서를 읽는 이유에 해당된다.
 
 
2024-01-10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