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생일선물로 받은 돈봉투

담마다사 이병욱 2024. 1. 15. 09:14

생일선물로 받은 돈봉투
 
 
내가 편하니 세상이 편한 것 같다. 잠을 잘 잤다. 몸도 마음도 편안하다. 이런 날은 흔치 않다. 세상에 평화가 온 것 같다.
 
몸이 아프면 괴롭다. 몸이 아프면 모든 것이 싫어진다. 몸이 아프면 세상도 아픈 것 같다.
 
어느 페이스북친구가 글을 하나 올렸다. 글을 보니 “마음이 번거로우면 세상이 번거롭고, 마음이 밝고 깨끗하면 세상 또한 밝고 깨끗해진다.”라는 구절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말이다.
 
구절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출처를 물어 보았다. 페친은 하나의 링크를 알려 주었다. 들어가 보니 ‘잡아함경 제19:267경’에 실려 있다.
 
한역경전에 실려 있는 게송은 상윳따니까야에도 실려 있다. 상윳따니까야 ‘가죽끈에 묶임의 경’(S22.100)이 바로 그것이다. 유사한 게송을 보면 “수행승들이여, 마음이 오염되므로 뭇삶이 오염되고 마음이 청정해지는 까닭으로 뭇삶이 청정해진다.”(S22.100)라는 가르침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세상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 중에 하나는 자신이 만든 세상이다. 자신의 눈과, 귀, 코 등 여섯 가지 감역으로 만든 세상을 말한다.
 
몸이 불편하면 세상만사가 다 귀찮다. 몸이 가벼우면 세상사는 맛을 느낀다. 자신의 몸과 마음이 평안하면 세상도 평안한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사람들이 불행한 처지에 있다면 나는 어떤 마음 상태가 될까?
 
유마경에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라는 말이 있다. 대승보살 사상을 잘 표현한 말이다. 이와 유사한 말은 니까야 도처에 있다. 그것은 사무량심, 즉 자애, 연민, 기쁨, 평정의 마음으로 나타난다.
 
몸이 그다지 건강한 편은 아니다. 몸에 장애가 없는 날보다 어딘가 불편한 날이 더 많은 것 같다. 최근에는 왼쪽 허벅지 부위에 통증이 와서 불편했다. 간헐적 통증으로 삶의 질이 떨어진 것이다.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 병원에 가서 약처방을 받았다. 약은 효과가 있었다. 약을 한번 먹었음에도 통증은 싹 가셨다. 드라마틱한 반전이다.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 몸이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살아가면 된다. 근심 없기를 바라지도 말아야 한다. 근심이 있으면 근심 있는 대로 살아가면 된다. 문제는 집착하는 마음이다.
 
몸은 날씨 같은 것이다. 날씨가 변화무쌍하듯이, 오늘 건강하다가도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 오늘 컨디션 좋다고 자만 해서는 안된다. 건강을 남용하면 반드시 과보를 받는다.
 
어제 생일잔치를 했다. 음력으로 성도절이 생일이다. 며칠 당겨서 일요일에 한 것이다. 아들이 올 수 있는 날에 치른 것이다.
 
생일잔치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니다. 마트에서 장 본 것을 집에서 차려 먹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봉투를 하나 받았다. 생일을 축하는 봉투를 말한다. 봉투를 열어 보니 신사임당 그림이 그려져 있는 지폐가 여러 장 들어 있다. 누가 얼마를 주었는지 파악해 보았다. 장모가 4장, 처가 2장, 아들이 4장을 주었다.
 
사람들은 돈을 좋아한다.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러 가지 선물이 있지만 가장 무난한 것은 돈봉투라고 본다.
 
돈봉투를 받으니 마음이 뿌듯해졌다. 받은 만큼 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봉투도 좋지만 카드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페이스북에서 어느 노작가가 올린 글을 보았다. 연말 끝자락에 아내로부터 받은 손편지를 공개했다. 이를 보고서 “아름답습니다.”라는 댓글을 남겼다.
 
돈봉투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손편지 역시 마음을 담은 것이다. 돈봉투와 손편지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좋을까? 당장 좋은 것은 돈봉투일 것이다. 그러나 돈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손편지는 버리지 않는 한 오래 남는다.
 
백권당 사무실에는 손으로 쓴 카드가 있다. 페이스북친구 임진규 선생이 보내 준 카드와 불교학자 조준호 선생이 준 카드이다. 글로서 인연 맺은 사람들이다. 내 글을 보고서 감사의 마음을 전한 것이다.
 

 
작년에 북콘서트를 세 번 했다. 책을 백권 낸 것에 대한 기념이고 동시에 해당 단체의 기록에 대한 기념이기도 하다. 그런데 부작용이 생겼다. 사람들이 돈봉투를 가져오고 선물을 가져 온 것이다.
 
돈봉투는 서랍장에 그대로 있다. 필요할 때 돈을 꺼내 썼다. 봉투는 버리지 않았다.
 
봉투를 모아 놓았다. 봉투에는 이름이 적혀 있다. 돈은 사라졌지만 이름은 남아 있다. 버리지 않으려고 한다.
 

 
북콘서트에 참여한 사람들은 오랫동안 인연 맺은 사람들이다. 특히 글로서 인연 맺은 사람들이다. 그래서일까 어떤 이는 돈봉투에 플러스하여 꽃다발 등 갖가지 선물을 했다.
 
꽃다발은 사람 마음을 환하게 만든다. 더구나 꽃다발에는 “항상 담마다사님 응원합니다”라는 글을 남겨 놓기도 했다.
 

 
어떤 이는 난(蘭) 화분을 선물했다. 봉투대신 식물로 선물한 것이다. 아마 내가 식물 좋아하는 것을 아는 것 같았다. 지금도 식물을 보면 그 사람 얼굴이 떠 오른다.
 

 
늘 받기만 하는 것 같다. 내가 해 준 것은 별로 없다. 기회가 되면 선물하려 한다. 어떤 것이 좋을까? 아마 손편지만한 것이 없을 것 같다.
 
나도 작가일까? 어떤 이는 작가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등단해서 작가 증명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블로거에 지나지 않는다.
 
블로그에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다. 글 쓰는 것은 일상이다. 손편지 쓰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엇이든지 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먼저 결심을 해야 한다. 가족들에게 돈봉투를 받았으니 나도 돈봉투를 주어야겠다. 더 좋은 것은 손편지를 쓰는 것이다. 카드를 하나 사서 간단하게 축하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인터넷에 가족이야기를 쓰는 것은 늘 조심스럽다. 왜 그런가? 가족이 없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배우자가 없는 사람도 있고 자식이 없는 사람도 있고 부모가 없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있음에도 가족이야기를 쓴다면 불편해 할지 모른다.
 
인터넷에 글을 쓰는 행위는 허물이 되기 쉽다. 아무리 조심해서 쓴다고 해도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고 누군가에는 불편한 마음이 된다. 가장 좋은 것은 글을 쓰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 언젠가는 글을 그만 쓰는 날이 올 것이다.
 
오늘 컨디션이 좋아서 몸도 마음도 평안하다. 이렇게 글을 쓰고 난 다음 좌선을 하면 잘 될 것 같다. 글쓰기 하면서 형성된 집중을 그대로 좌선으로 가져 가면 매우 효과적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매일 똑 같은 일상이다. 요즘은 네 가지 서브루틴이 돌아간다. 오전에는 글쓰기와 명상하기로 보낸다. 오후에는 빠알리어공부를 한다. 잠자기 전과 잠에서 깨었을 때는 경전과 논서를 본다.
 
사람들은 날씨에 영향 받는다. 사람들은 주가지수에 영향 받는다. 또한 사람들은 그날의 컨디션에 영향 받는다. 그러나 전천후(全天候)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날의 몸 상태에 관계 없이 매일 꾸준히 의무적으로 하는 일을 해야 한다.
 
네 가지 일은 일상이다. 밥 먹듯이 하는 것이다. 하루에 글 하나는 반드시 써야 한다. 기분이 좋으면 쓰고 기분이 좋지 않으면 쓰지 않는 것이 아니다. 매일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것이다.
 
하루에 한시간 좌선을 해야 한다. 명상하다가 그만 두고 싶을 때도 있지만 한시간 채우는 것은 자신과의 약속이다. 그런데 6개월 때 매일 한시간 명상을 하다 보니 이제 생활화가 된 것 같다. 어떤 날은 황홀경을 맛보기도 한다. 이런 맛에 명상을 하는 것인지 모른다.
 
빠알리 공부는 매일 해야 한다. 요즘은 오후에 공부하고 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시간이 길어진다. 두세 시간 하는 것이 보통이다. 빠알리공부를 하다 보면 오후가 다 간다. 어제까지 빠알리 교재 빠알리 프라이머 26과까지 진도가 나갔다. 예습한 것이다. 총 32과이니 이제 6과 남았다.
 
매일 머리맡에 있는 경전과 논서를 읽는다. 하루도 빠짐 없다. 오늘 새벽에 본 것 중에 인상에 남는 것이 있다. 그것은 ‘비파의 비유에 대한 경’(S35.246)에서 본 성냄의 종류에 대한 것이다. 이는 욕망, 탐욕, 성냄, 혐오를 말한다.
 
성냄에도 강약이 있다. 주석에 따르면, 찬다(chanda: 慾望)는 새로 일어난 약한 갈애이고, 라가(raga: 貪慾)는 반복해서 일어나는 강한 갈애이고, 도사(dosa: 忿怒)는 새로 일어난 약한 분노이고, 빠띠가(paigha: 嫌惡)는 반복해서 일어나는 강한 분노라고 했다.
 
네 가지 성냄은 그 뜻이 다르다. 그래서 찬다와 라가는 갈애와 관련 있어서 찬다는 ‘소갈애’가 되고 라가는 ‘대갈애’가 된다. 또한 도사와 빠띠가는 분노와 관련 있어서 도사는 ‘소분노’가 되고 빠띠가는 ‘대분노’가 된다. 이렇게 본다면 라가와 빠띠가가 최악이라고 볼 수 있다.
 
매일매일 좋은 날이 되고자 한다. 그날의 몸 상태에 따라 기분이 달라진다면 세상사에 휘둘리는 것과 같다. 몸과 마음이 편하면 세상이 편한 것 같다. 내 마음이 청정해지면 세상도 청정해지는 것 같다.
 
오전에 글쓰기를 하고 명상을 하고 나면 세상이 밝아져 보인다. 백권당에 있는 식물도 달라 보인다. 더욱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상태는 오래 가지 않는다.
 
오후에 점심을 먹고 나면 유튜브를 본다. 요즘은 정치관련 유튜브를 본다. 불과 한달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은 없었다. 정치의 계절이 온 것 같다.
 
이데올로기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마치 위빠사나 수행에서 제3자의 위치에서 정신과 물질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듯이 객관적으로 보아야 한다. 빠져 들면 태워지게 된다. 멀리 하면 방관하게 된다. 적절하게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날마다 좋은 날이 되어야 한다. 날마다 향상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몸의 컨디션이 좋으나 좋지 않으나 전천후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편하면 세상이 편하다. 내가 아프면 세상도 아픈 것 같다.
 
나만 잘 먹고 잘 살 순 없다. 내가 편하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다. 세상사람들이 아프면 나도 아픈 것이다. 그렇다고 노심초사해서는 안된다. 다만 연민의 마음을 낼 뿐이다.
 
어제 생일 선물을 받았다. 봉투를 받았다. 참으로 흐뭇했다. 가족의 생일 날에는 손편지를 쓰려고 한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사람들은 돈을 좋아한다. 돈이 좋다고 하지만 손편지나 손카드는 어쩌면 돈봉투보다 더 나은 것인지 모른다.
 
손카드를 책장 한켠에 전시해 놓고 있다. 일년도 넘은 것도 있다. 손카드를 보면 늘 흐뭇하다. 책상 서랍에는 작년 북콘서트 때 받은 돈봉투가 있다. 돈은 사라졌지만 이름이 적힌 봉투는 남아 있다. 봉투를 볼 때 마다 감사의 마음이 절로 일어난다.
 
가족으로부터 돈봉투를 받았다. 나에게는 거금이다. 서랍장에 놓고서 점심 때 먹고 싶은 것을 사먹고자 한다.
 

 
선물은 주어서 기쁘고 받아서 기쁘다. 이 세상에서 선물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자애수행 최종단계는 선물하는 것이다. 선물은 원한 맺힌 자의 마음도 녹일 수 있다.
 
선물을 받는 자는 고개를 숙이게 되어 있다. 선물 받은 자는 선물을 기억한다. 그리고 선물을 잘 간직한다. 선물을 볼 때 마다 그 사람을 생각한다. 이것이 선물의 힘이다.
 
선물은 자애의 마음이다. 선물은 사무량심의 실천인 것이다. 선물은 사람의 마음을 흐뭇하게 만든다.
 
 
2024-01-1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