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극단적 미니멀라이프

담마다사 이병욱 2024. 1. 21. 08:43

극단적 미니멀라이프의 실천
 
 
“잘 키우셨네요.” 화분을 건네주면서 들은 말이다. 내가 보아도 잘 키웠다. 잎사귀가 무성한 것이 탐난다.
 
화분을 차 뒷좌석에 실어 주었다. 판매자의 서비스에 해당된다. 여인은 돈을 건넸다. 스파티필름 한화분 값은 4천원이다.
 
집안에 갑자기 미니멀라이프 바람이 불었다. 며칠 전부터 처는 불필요한 물건을 버리기시작했다. 유튜브에서 아파트 풍수에 대한 것을 본 것이다. 집안에 잡다한 것이 있으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집에 화분이 여러 개 있다. 화분을 줄이기로 했다. 처는 당근마켓에 화분을 내놓았다. 내놓은지 몇 분 지나지 않아 거래가 체결되었다.

오늘 아침 일터로 가는 길에 스파티필름 화분을 전달해 주었다. 처의 심부름을 한 것이다. 마치 잘 키운 딸을 시집 보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무실에 화분이 많다. 열 평 되는 사무실에 화분이 30여개 된다. 그 중에는 큰 것도 많다. 행운목, 여인초, 인도고무나무, 떡갈고무나무는 키 높이에 해당된다. 아파트 풍수에 따르면 사람 키 보다 높으면 좋지 않다고 한다. 기를 빼앗아 간다는 것이다.
 
오래된 화분이 많다. 백권당 사무실은 2007년 말에 입주 했기 때문에 그 역사만큼이나 오래 된 것도 있다. 그 중에 아레카야자가 있다.
 
아레카야자는 현재 집에 가져다 놓았다. 집에는 자잘한 화분이 많은데 좀더 큰 것을 가져다 놓은 것이다. 크기는 가슴 높이에 달한 것 같다.
 

 
아레카야자는 십년 이상 키웠다. 어느 해인가 과천 서울대공원 식물원에서 사 온 것이다. 마치 모종처럼 생긴 작은 화분에 있던 것이다. 한 개에 천원 했다.
 
천원짜리 식물은 이제 1미터 이상 자랐다. 이런 것을 화원에서 산다면 4-5만원 할 것이다. 10년 이상 정성을 다해서 키운 것이다.
 
스파티필름은 여러 개 있어서 팔았다. 그러나 아레카야자는 오로지 한 개 있기 때문에 집에 두기로 했다. 미니멀라이프에서 살아 남은 것이다.
 
집에는 버릴 것이 많다. 옷이나 이불 등 버릴 것 많다. 신발 등도 정리해야 한다. 책은 오래 전에 버렸다. 아파트 평수가 작다 보니 쌓아 놓을 공간이 부족하다.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게 된 것은 유튜브 아파트 풍수에 대한 영상을 보고 나서부터이다. 옷이나 신발 등 쓰지 않는 것은 과감히 버리기로 한 것이다. 책상과 의자도 버리려고 한다. 좁은 집에 자리만 차지 하고 있는 것 같다.
 
쌓아 두기 보다 버려야 한다. 쓸데 없는 것은 처분해야 한다. 꼭 필요한 것만 남겨야 한다. 이것 저것 버리고 나면 후련하다. 아쉽기는 하지만 버리고 나면 넓어지는 것 같다. 마음도 깨끗해지는 것 같다.
 
버릴 것은 물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찌꺼기도 버려야 한다. 그 사람에 대한 미움, 증오, 혐오, 원한의 감정도 버려야 한다. 그러나 잘 버려지지 않는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미니멀라이프는 버리기를 생활화 하는 것이다. 생활화 하는 것은 일상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일상은 밥 먹듯이 하는 것이다.
 
버리기도 밥 먹듯이 해야 한다. 물건을 버리고 버려야겠다는 마음까지 버려야 한다. 그러나 가장 버려야 할 것은 자기자신이다. 이는 ‘내가 있다’라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다.
 
나를 버려야 한다. 나만 버리면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버리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천오백년전에 부처님은 나를 버리라고 했다. 무아(無我)의 가르침이 바로 그것이다.
 
초기경전에서 수도 없이 접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는 말이다. 이 말은 오온이 나의 것이 아님을 말한다. 이 몸과 마음이 내것이 아닌 것이다. 물론 느낌, 지각, 형성, 의식도 내 것이 아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쓸모 없는 것을 버리는 것은 소극적인 미니멀라이프의 실천이다. 자신이 가장 아끼는 것을 버리는 것은 적극적 미니멀라이프의 실천이다. 버려야 겠다는 마음까지 버리는 것은 최상의 미니멀라이프의 실천이다. 더 나아가 자신까지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이는 다름 아닌 극단적 미니멀라이프의 실천이다.
 
요즘 집에서 버리기 운동을 하고 있다. 불필요한 것은 당근마켓에 내다 판다. 옷가지 등 불필요한 것은 헌옷 수거함에 버린다. 이렇게 버리고 나면 후련해진다. 집도 넓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자기자신을 버리는 것만 못할 것 같다.
 
불교인이라면 극단적인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해야 한다. 어떻게 실천하는가? “오온은 나의 것이 아니고 오온은 내가 아니고 오온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2024-01-2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