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한 만년필

담마다사 이병욱 2024. 2. 18. 09:47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한 만년필
 
 
스윽 스윽 잘 써질 줄 알았다. 힘을 주어야 한다. 그때부터 써지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써 보는 만년필이다.
 
서랍을 정리하다가 만년필을 발견했다. 언제적 만년필이었던가? 잘 기억 나지 않는다. 아마 15년은 넘은 것으로 본다. 누군가 선물한 것이다. 그러나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한때 만년필을 사용했다. 아마 2010년 이전이었을 것이다. 불교에 정식으로 입문하여 막 관심을 보일 때 사경을 했었다. 금강경 사경을 여러 번 했다. 대승기신론을 한자로 사경하기도 했다. 이 밖에 천수경 등을 사경했다. 이백자 원고지에 사경했다. 지금도 버리지 않고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한때 나의 삶의 흔적이다.
 
만년필을 보자 활용하고 싶었다. 펜을 쓸 일이 없지만 만들어서라도 쓰면 된다. 가장 좋은 것은 카드에 손편지를 쓰는 것이다.
 
손카드의 위력을 알고 있다. 손카드를 받아 보았기 때문이다. 접이식 카드 안쪽에 글을 써 놓았는데 짤막하지만 울림이 있다. 글을 잘 보고 있다는 감사의 메세지에 대한 것이다.
 
손카드는 잘 보관하고 있다. 경전이 있는 책장 위에 펼쳐 놓았다. 이런 경우는 없었다. 수없이 감사의 댓글을 받았지만 손편지카드를 받아 본 것은 좀처럼 볼 수 없는 일이다.
 
실 가는데 바늘이 있어야 한다. 만년필만 있으면 뭐하나? 잉크가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 잉크는 큰 문구점에 있을 것 같았다. 대로 건너편에 알파문구가 있다. 예상대로 잉크가 있었다. 두 가지 선택이 있다. 검은색과 청색을 말한다. 잠시 고민하다가 블랙으로 정했다.
 
잉크가격은 얼마나 될까? 전혀 짐작할 수 없다. 한병에 9천원이다. 적정한 가격이라 본다. 잉크를 쓰는 사람이 거의 없는 현실에서 잉크를 구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행운인 것 같다.
 
만년필 성능테스트를 해야 한다. 하도 오래 전에 써 보아서 다 잊어 먹었다. 그러나 몸은 알고 있는 것 같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만년필을 뚜껑을 열고 몸체 중간을 돌려서 분해 했다. 사이펀 원리로 잉크를 빨아 들여야 한다.
 

 
만년필로 글을 써 보았다. 그러나 잉크가 나오지 않았다. 종이 위에 올려 놓으면 스윽스윽 글이 나올 줄 알았다. 힘을 주어야 했다. 손끝에 힘을 가하니 잉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동안 너무 편리하게 산 것 같다. 볼펜을 비롯하여 갖가지 펜은 사용하는데 불편이 없다. 왜 그런가? 종이에 올려 놓고 스윽스윽 움직이면 글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예상하고 만년필을 종이에 올려 놓고 움직였으나 글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만년필은 아날로그 감성이 농후하다. 그래서인지 요즘 작가들은 만년필을 거의 쓰지 않는 것 같다. 아마 대부분 작가들은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 글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지금도 아날로그시대의 대명사와 같은 만년필을 쓰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아날로그형 인간인가 디지털형 인가? 처음에는 아날로그형 인간이었다. 지금은 디지털형 인간으로 바뀌었다. 세월에 따라 시대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컴퓨터를 이용하여 밥벌이를 하고 있다면 디지털형 인간이라고 볼 수 있다. 정보통신과 인터넷이 발달한 현시대에 에스엔에스와 같은 가상공간에서 놀고 있다면 디지털형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만년필을 보자 쓰고 싶었다. 마치 자동차가 있으면 운전하고 싶어 지는 것과 같다. 조폭의 주먹이 근질근질한 것과 같다. 잉크를 산 것도 글을 써보고자 한 것이다.
 
만년필로 무엇을 써야 할까? 옛날처럼 사경을 해야 할까? 그럴 단계는 지났다. 사경하면 무언가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뿌듯하기도 하지만 번뇌에서 해방되지는 않는다. 다만 쓴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에 눈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것이다.
 
만년필로 일기를 쓸 수도 있다. 두꺼운 고급 노트를 하나 장만해서 매일 쓰는 것이다. 잘못 쓰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두 줄로 긋고 다시 쓰면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낙서장이 될 수도 있다. 나만 볼 수 있는 것이 된다.
 
중학교 시절 때 일기를 썼다. 2년 동안 쓴 것 같다. 교과서 사이즈의 두툼한 노트를 구입해서 거의 매일 썼다. 아마 자극 받아서 썼을 것이다. 누군가 일기 썼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한번 써볼까?”라는 마음이 발동했었던 같다.
 
중학교 때 쓴 일기는 지금 없다. 아주 오래 전에 버렸다. 왜 버렸는지 알 수 없다. 보관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때 일기를 쓸 때 사진도 오려 붙였다는 사실이다. 지나간 교과서에 있는 사진을 오려 붙여서 배경으로 사용한 것이다. 오늘날 블로그에 글을 쓸 때 사진을 첨가하는 것과 같다.
 
매일 글을 쓰고 있다. 매일 두 시간 가량 투자하여 장문의 글을 쓴다. 컴퓨터로 쓰는 것이다. 그것도 손가락 몇 개를 이용하여 놀라운 신공을 발휘한다. 이른바 독수리 타법으로 두 시간에 A4로 4-5장 쓴다.
 
자판을 두들겨 작성된 글은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동시에 게재 된다. 그런데 컴퓨터 글쓰기가 오래 되다 보니 이제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이 흰 여백에 글자로 “탁, 탁”하며 박히는 것 같다. 이제 글쓰기가 완전히 숙달되어서 말하는 것과 다름 없는 것이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디지털형 인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펜으로 글을 쓸 일이 별로 없다. 공부모임이나 강연에서 노트할 때 이외에는 쓸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만년필을 보자 쓰고 싶어졌다. 그렇다고 중학교 때처럼 만년필로 일기를 쓸 수 없다.
 
만년필의 활용하고자 한다. 가장 좋은 것은 사인하는 것이다. 책에 서명하는 용도로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 왜 그런가? 만년필은 강약이 있기 때문이다. 눌러서 쓰면 글이 강하게 보인다. 글씨의 강약 조절이 가능한 것이다. 이런 것이 마치 예술작품처럼 보인다. 마치 그림을 그리는 것 같다. 만년필로 글쓰기 하면 예술적 감성이 살아나는 것 같다.
 

 
만년필을 활용 용도는 많다. 가장 기대 되는 것은 손카드를 작성하는 것이다. 접이식 손카드 안쪽에 짤막한 글을 쓰는 것이다. 가장 먼저 가족에게 시행해보고자 한다.
 
사람들은 좋아하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에게 선물하고자 한다. 대개 먹거리가 대부분이다. 봉투를 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값진 선물은 아마도 손편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삼월에 처와 아들 생일잔치가 있다. 그 때 만년필로 쓴 카드손편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좋아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존경하는 사람에게 만년필로 쓴 카드손편지를 보내 보자.
 
 
2024-02-1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