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박복한 자의 오대의무

담마다사 이병욱 2024. 2. 19. 11:02

박복한 자의 오대의무
 
 
흙탕물을 뒤집어 썼다. 외투와 바지에 튀긴 것이다. 순식간에 벌어졌다. 흙탕물이 사방에 튀었다. 지나가던 승용차가 물웅덩이를 지나감에 따라 마치 분수처럼 퍼진 것이다. 오늘 아침 버스정류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오늘 아침은 버스타고 가기로 했다. 매일 백권당으로 걸어간다. 주말도 예외가 없다. 오늘 월요일 아침 늦게 일어났다. 비도 추적추적 내린다. 겨울비이기는 하지만 봄을 재촉하는 봄비처럼 보인다.
 
비산사거리 이마트 정류장에서 일터까지는 십여분 걸린다. 오늘처럼 힘든 날은 버스타고 가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정류장 대기석에 흙탕물이 잔뜩 묻어 있었다. 도로를 보니 패여 있다. 아마 패인 물웅덩이에 차가 지나감에 따라 대기석이 오염된 것으로 본다.
 
가까이 있으면 흙탕물을 뒤집어 쓸 것 같았다. 멀리 피했다. 안전하다고 여기는 지점에 서 있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쏜살같이 지나가던 승용차에서 흙탕물이 분수처럼 퍼진 것이다. 이에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앞에 있는 아가씨는 정통으로 맞았다. 출근길 잘 차려 입은 옷이 흙탕물벼락을 맞은 것이다.
 
흙탕물벼락은 충분히 예상한 것이었다. 그러나 설마 여기까지 튀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승용차를 원망할 수 없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으니 도로를 원망해야 한다. 더 나아가 도로를 관리하는 관청을 탓해야 한다. 그런 한편 운으로 여겼다. 재수없게 흙탕물벼락을 맞은 것이다.
 
사람들은 운을 말한다. 일이 잘 풀리면 운이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 잘 풀리지 않으면 불운이라고 말할 것이다. 정말 운은 있는 것일까?
 
이제까지 운을 믿지 않았다. 자신만 열심히 노력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 보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현재 나의 위치를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왜 이 자리에 있게 되었을까? 나는 미국에 있지 않고 왜 한국에 있게 되었을까? 미국에 있다면 더 좋은 환경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나는 왜 특정 지역에서 특정 부모에게서 태어났을까? 좀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다면 현재 보다 더 나은 위치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내가 여기에 있게 된 것은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다. 태어나 보니 여기에 있게 되었다. 여기에서 이런 조건으로 살아가는 것도 운이라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흔히 ‘운칠기삼’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기술이 있어도 운을 당해낼 수 없음을 말한다. 이를 어떤 이는 명리학으로 설명할지 모른다. 사주에 따라 어느 정도 운명이 결정되어 있음을 말한다.
 
이제까지 한번도 점을 본 적이 없다. 당연히 사주를 본 적도 없다. 점이나 사주는 나와 무관한 것이라고 여겼다. 한번 태어났으면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운은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정진산행에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산행 멤버 중에 한사람은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그 중에 하나가 ‘위도참사’라고 했다.
 
위도참사는 잘 알려져 있다. 공무원들이 위도로 놀러 가다가 배가 전복되어 죽은 사건을 말한다. 일반사람들도 많이 죽었다. 그런데 그분에 따르면 그날 섬으로 가지 않고 산으로 갔다고 한다. 산행 총무이어서 산으로 간 것이다. 만약 섬으로 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람의 운명은 알 수 없다. 언제 어느 때 어떤 사고가 날지 알 수 없다. 천정이 무너져서 죽기도 하고 땅이 꺼져서 죽기도 한다. 실제로 그런 사건이 있었다. 신입생 환영회장에서 강당 천정이 무너져 여러 명 죽었고, 공연 중에 바닥에 있는 환기 구조물이 무너져서 여러 명 죽었다. 이런 것도 운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학자는 운은 80프로라고 말한다. 왜 80프로인가? 이는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가 차지하는 것이 50프로이고 좋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것이 30프로라고 했다. 사람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운이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80프로는 자신도 모르게 결정되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운이 80프로라면 남는 것은 20프로에 지나지 않는다. 좋지 않은 운을 타고 태어난 사람은 20프로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운명을 극복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20프로 이상은 힘든 것이다.
 
선진국에 태어났으면 운이 좋은 것이다. 아프리카와 같은 빈곤한 나라에 태어났다면 운이 없는 것이다. 여기서 50프로가 결정된다. 좋은 부모 밑에서 태어났으면 30프로를 먹고 들어 가는 것이다. 최악은 빈곤한 나라에서 좋지 않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남는 것은 20프로 밖에 없다. 20프로 기회밖에 없는 것이다.
 
운을 운운하는 것은 비불교적이다. 부처님은 운명론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정도 운명론적으로 말한 것도 있다. 그것은 태어남에 대한 것이다. 한번 형성된 것의 중요성을 말한다. 어떤 것인가? 그것은 정법(正法)과 관련이 있다.
 
지금은 정법시대인가? 자신 있게 정법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부처님 가르침이 전승되어 오고 있고, 팔정도 수행이 있고, 사향사과와 열반이 있으면 정법시대로 보는 것이다. 이런 정법시대에 태어난 것은 행운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은 정법시대이다. 석가모니 부처님 가르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법시대는 오래가지 못한다. 후대로 내려갈수록 오염되어서 사라져 버린다. 그런데 초기경전을 보면 정법시대는 매우 짧다는 것이다.
 
부처가 출현하면 정법시대가 된다. 과거 출현 했던 모든 부처님이 설한 가르침은 똑 같았다. 이는 쌍윳따니까야 ‘인연의 모음’(S12)의 ‘부처님의 품’에서 확인된다. 과거 출현 했던 일곱 부처님의 깨달음은 한결같이 똑같았다는 것이다. 이는 다름아닌 연기법이다. 그래서 과거부처님은 모두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생겨나고”(S12.2)로 시작되는 연기법을 설했다.
 
정법시대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깜깜한 암흑천지가 될 것이다. 정법이 사라지면 사향사과와 열반이 없기 때문에 윤회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음 부처가 출현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것도 한량없는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한 부처가 출현하려면 사아승지십만겁동안 십바라밀을 닦아야 한다. 이는 부처가 되기로 서원한 보살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현겁에서는 무려 네 명의 부처가 출현했다는 것이다. 까꾸산다, 꼬나가마나, 깟싸빠, 고따마 부처를 말한다. 더구나 미래 멧떼이야(미륵) 부처가 출현할 것이라고 한다. 한 우주기에서 무려 네 명의 부처가 출현 했고 앞으로 한 부처가 더 출현할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현재의 우주기에 대하여 ‘행운의 겁’이라고 말한다.
 
현재 행운의 겁 시대에 살고 있다. 더구나 정법이 살아 있는 시대에 살고 있어서 행운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정법이 머무는 기간은 매우 짧기 때문에 대부분 존재들은 불운의 시기에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좋지 않은 시기의 경(Akkhaa sutta)’(A8.29)을 보면 알 수 있다.
 
1) 지옥에 태어나는 것
2) 축생으로 태어나는 것
3) 아귀로 태어나는 것
4) 수명이 긴 신의 무리들에 태어나는 것
5) 변방에 야만인으로 태어나는 것
6) 사견을 갖는 것
7) 지혜 없이 태어나는 것
8) 정견을 구분 못하는 것
 
지옥에 태어나면 정법을 접할 수 없다. 설령 정법을 접한다고 하더라도 수행을 할 수 없다. 이에 대하여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에서는 “아버지도 없이, 가족도 없이, 친구도 없이, 오직 혼자서 매우 힘들게 크나큰 고통들에 울부짖으며, 신음하며, 단 1분, 단1초의 틈도 없이 고통당해야 한다. 그때에 위빳사나를 수행할 기회는 당연히 없다.”(1권, 228쪽)라고 했다.
 
지옥에 태어나면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는다. 너무 고통스럽고 너무 괴로워서 정법이 있어도 무용지물이다. 이런 지옥고에 대하여 맛지마니까야 천사의 경에서는 “그에게 악업이 다하지 않는 한, 그는 죽지도 못한다.”(M130)라고 했다.
 
죽지 못해 사는 인생이 있다.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을 때 지옥과 같은 삶을 살 것이다. 그러나 지옥보다는 인간이 더 나을 것이다. 아무리 인간세상이 지옥과 같다고 할지라도 1분, 1초의 틈도 없이 괴로움만 당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 틈이 있기 때문에 그 틈에 공부하고 수행하면 되는 것이다. 그 틈은 다름 아닌 20프로에 해당될 것이다. 인간에게는 희로애락이 있어서 윤회를 벗어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이 된다.
 
빈곤한 나라에 태어나면 기회는 적을 것이다. 선진국에 태어나면 기회는 많을 것이다. 이는 운에 달려 있다. 그런데 부처님도 좋지 않는 시기에 태어나면 정법을 만날 수 없다고 했다. 이는 아마도 불운한 것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지옥이나 아귀와 같은 악처에 태어나거나, 무색계 천상처럼 수명이 긴 신의 무리들에 태어나는 것이나 변방에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천상에 태어나고자 한다. 보시하고 지계하면 욕계천상에 태어날 가능성이 클 것이다. 그러나 천상에서는 오로지 즐거움만 있기 때문에 정법이 있어도 공부하거나 수행할 맛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왕족과 같은 부자가 감각을 즐기기에 바쁜 것과 같다. 감각을 즐기기에 바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갈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욕계천상도 좋은 환경은 아니다.
 
선정 수행한 자들은 색계나 무색계 천상에 태어난다. 그런데 이들 천상의 존재들은 매우 오래 산다는 것이다. 한 우주기 이상을 사는 것이다. 특히 무색계 천상에 태어나면 설령 정법시대가 되어도 불운에 처하게 된다. 왜 그런가? 무색계 존재는 오로지 정신으로만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들을 수 없다. 보고 듣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가르침을 설해도 알아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좋지 않은 시기에 ‘수명이 긴 신의 무리들에 태어나는 것’이 들어 있다.
 
지금은 정법시대이다. 그러나 지구촌 변방에 태어나면 정법이 있는 줄 조차 모를 것이다. 아마존 오지에 태어나 한평생 그곳에서 고립되어 산다면 정법을 접할 기회가 없을 것이다. 불운하다고 볼 수 있다.
 
선진국과 같은 중앙에 태어나면 행운일 것이다. 더구나 정법이 살아 있다면 더욱더 행운이다. 그러나 사견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숙명론, 신의론, 우연론과 같은 사견에 사로 잡혀 있다면 설령 정법이 바로 옆에 있어도 무용지물이 된다. 이 또한 불운한 것으로 좋지 않은 시기에 해당된다.
 
정법이 살아 있는 시대에 중앙에 태어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지혜가 없다면 불운한 것이다. 지혜가 부족해서 가르침을 알아 들을 수 없다면 불운한 것이다.
 
정법이 살아 있는 시대에 중앙에서 태어나고 지혜를 갖춘 자로 태어난다면 행운이다. 이는 80프로의 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정견을 구분할 줄 모른다면 좋지 않은 시기에 태어나는 것과 다름 없다. 정견인 것과 정견 아닌 것을 구별하지 못했을 때 엉뚱한 길로 빠질 수 있다.
 
점이나 사주를 보지 않는다. 운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 어느 정도 운을 인정하는 편이다. 그것은 “하필이면 왜 이 모양 이 꼴로 태어났을까?”라며 의문하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강아지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축생으로 태어났다면 본능만 있기 때문에 정법이 있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일 내가 지혜가 없는 아둔한 자로 태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정법이 있어도 무용지물일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지금 여기에서 정법을 만난 것은 행운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그리고 이 사람이 중앙지역에 태어나 지혜를 갖추어 둔하지 않고 어리석지 않아 잘 설해진 것과 잘못 설해진 것을 구분할 줄 안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청정한 삶을 사는데 단 하나의 올바른 시간, 올바른 시기이다.” (A8.29)라고 했다.
 
오늘도 긴 글을 썼다. 백권당에 와서 자판을 두들기면 힘이 난다. 아픈 것도 잊어 버린다. 요즘에는 좌선도 하고, 빠알리어 공부도 하고, 경전도 읽고, 책 만들기도 하고 있다. 다섯 가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나에게 주어진 20프로를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복이 있는 사람인가 박복한 사람인가? 요즘 이런 생각을 해본다. 그다지 복이 있는 것 같지 않다. 아마 전생에 바라밀공덕과 관련 있을 것이다. 더구나 발목 잡는 것도 있다. 나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나에게 남은 것은 20프로에 지나지 않는다.
 
운이 있는 사람이 있고 운이 없는 사람이 있다. 중앙에 태어나고 지혜를 갖추어 태어난 자는 운이 있는 자이다. 이는 달리기를 할 때 80프로를 먹고 들어 가는 것과 같다. 반면에 박복한 자는 20프로에 의지해야 한다.
 
어느 정도 운명은 결정되어 있다. 이 모양 이 꼴인 것은 결정 되어 진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 있을 수 없다. 나에게 주어진 20프로를 활용해야 한다. 누가 보든 말든 글을 쓰고, 좌선을 하고, 빠알리 공부를 하고, 경전을 읽고, 책 만들기를 하는 이유에 해당된다. 박복한 자의 오대의무이다.
 
 
2024-02-1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