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근불가원

정치 유튜버에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는지도

담마다사 이병욱 2024. 2. 29. 09:50

정치 유튜버에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는지도

 

 

고요한 백권당의 아침이다. 절구질한 커피를 마주하고 있다. 한가로운 시간이다. 오전 9시까지는 내 시간이다. 앞으로 1시간 22분 남았다. 글 하나 나올 시간이다.

 

요즘 아픈 데는 없다. 몸이 아프면 세상만사가 귀찮아 진다. 몸이 아픈 상태에서 수행을 할 수 없다. 몸이 아픈 상태에서 일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글 쓸 때만큼은 펄펄 날아 다닌다.

 

작년 여름 때 몸에 한기가 있었다. 등이 싸늘한 것이 늘 불편했다. 두세 달 지속되었다. 몸에 열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자 없어졌다. 혹시 코로나가 아니었는지 의심해 본다.

 

몸이 가벼우면 살 맛이 난다. 여기에다 햇살이라도 비추면 살아 있는 것이 축복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 노인들 건강은 건강이 아니라고 하지 않던가? 국가에서 인정하는 노인이 되려면 이 해를 넘겨야 한다.

 

백권당에 오면 늘 살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보리수 나무이다. 작년 봄에 페이스북 친구에게 선물 받은 것이다. 정성을 다해서 키우고자 했다. 그러나 잎이 하나 둘 지면서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보리수에서 싹이 나왔다. 앙상한 가지에서 싹이 움튼 것이다. 분갈이 한 후에 일어난 일이다. 아마 때가 되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보리수는 잎이 졌다가 다시 난다고 한다. 보리수 싹 나는 것을 보는 재미도 있다.

 

 

오늘 아침 백권당으로 걸어 오는 길에 평론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요즘 총선철을 맞이 하여 유튜브에서 정치평론을 보는데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본 것이다.

 

정치관련 글은 가능하면 쓰지 않으려 한다. 정치블로그가 아니라 불교블로그이기 때문에 불교와 관련된 글로 한정하고자 한다. 그러나 생활속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은 모두 훌륭한 글의 소재가 된다.

 

정치관련 카테고리를 별도로 만들었다. 과거에 써 놓은 정치관련 글을 한데 모은 것이다. 주로 지난 대선 때 글에 대한 것이 많다. 민주진보 진영을 응원한 글이다. 이런 글은 독자의 다양성 측면에서 본다면 손해이다. 보수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여성 국회의원이 있다. 그녀는 감점 받게 되자 탈당했다. 그런데 마구 악담을 퍼부었다는 것이다. 이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마치 주화입마가 된 것처럼 보인다. 마치 초등학생이 때 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전직 판사라고 하는데 인격은 사회적 지위와 비례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공천심사에서 낮은 점수를 받으면 퇴출 대상이 된다. 어떤 이는 겸허히 받아 들인다. 어떤 이들은 격렬하게 반발한다. 선수가 높은 의원은 이제 그만 할 때도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입에 칼을 물며 마구 찌른다. 선수가 높다고 해서 다 인격자는 아님을 알게 되었다.

 

요즘 선거철에 유튜브를 자주 보게 된다. 전에 없던 일이다. 재작년 그 날 이후 일체 뉴스를 보지 않았다. 정치관련 유튜브도 끊었다. 정치와 담을 쌓고 산 것이다. 그런데 선거철이 다가오자 슬금슬금 정치관련 유튜브를 보게 되었다. 이제는 매시간 보고 있다. 선거철이 가까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선거철이 되면 편이 갈린다. 총과 칼만 들지 않았을 뿐이지 전쟁하는 것과 다름 없다. 룰을 만들어 놓고 선거로 승부를 가리는 것이다. 이럴 때 국론은 분열된다. 그러나 중간층이 없지 않을 수 없다.

 

중간층을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구도가 3:4:3에서 중간층은 4에 해당된다고 말한다. 중간층에서 반 이상이 한편으로 기울면 승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체적으로 정권중간평가로 보기 때문에 민주진보진영이 승리할 것으로 예측한다.

 

자주 보는 정치유튜브가 있다. 정치유튜브에 인기평론가가 없지 않을 수 없다.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면 자주 보게 된다. 그러나 무논리에 치우쳐져 있다면 멀리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최동석 소장 유튜브를 자주 보게 된다. 독일에서 인사조직론을 공부한 학자 유튜버이다. 구독자도 많지 않고 조회수도 많지 않다. 본래 바른 말하는 유튜브는 인기가 없는 것 같다.

 

최동석 소장 유튜브를 보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최동석 선생의 명쾌한 지적에 공감하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최동석 선생의 바램대로 간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자격자를 걸러 내는 것이다.

 

유튜브에서 수많은 평론가를 본다. 방송에서도 평론가를 본다. 이들 평론가들은 평론을 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대개 자신이 속한 진영의 이익을 대변한다. 그러다 보니 험담을 하기도 하고 때로 중상모략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누구나 평가자가 될 수 있다. 대개 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뒷담화하기 쉽다. 세상에 뒷담화처럼 재미 있는 것이 이 세상에 있을까? 마치 우물가에서 잡담을 하는 것과 같다.

 

구경 중에 구경은 사람 구경이라고 한다. 공항 대합실에서 대기할 때 사람들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런데 삼삼오오 모여서 그 사람 이야기를 할 때 신이 난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초기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은 잡담을 소개하고 있다.

 

 

그 무렵 유행자 붓따빠다는 많은 유행자의 무리와 함께 앉아서 시끄럽게 왁자지껄 큰 소리로 떠들며 여러 가지 잡담, 예를 들어 왕에 대한 이야기, 도적에 대한 이야기, 대신들에 대한 이야기, 군사에 대한 이야기, 공포에 대한 이야기, 전쟁에 대한 이야기, 음식에 대한 이야기, 음료에 대한 이야기, 의복에 대한 이야 기, 침대에 대한 이야기, 꽃다발에 대한 이야기, 향료에 대한 이야기, 친척에 대한 이야기, 수레에 대한 이야기, 마을에 대한 이야기, 부락에 대한 이야기, 도시에 대한 이야기, 지방에 대한 이야기, 여자에 대한 이야기, 영웅에 대한 이야기, 도로에 대한 이야기, 우물가에서의 이야기, 망령에 대한 이야기, 사소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 세계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 바다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시시비비 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D9)

 

 

디가니까야 뽓따빠다의 경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외도들이 공개토론장에서 모여 왁자지껄하며 잡담을 나누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부처님 당시에도 사람들은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이는 잡담 중에 왕에 대한 이야기나 대신들에 대한 이야기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오늘날 같으면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나 정치인에 대한 이야기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요즘 유튜브 시대이다. TV 뉴스는 보지 않지만 유튜브로 정치관련 소식은 듣는다. 또한 정치유튜브에서 정치평론가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과 같다. TV는 일방적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보지 않을 권리도 있다. 그러다 보니 유튜브에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정치평론가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우리 편 이야기할 때는 공감하지만 비판할 때는 보지 않게 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편중된다. 일종의 가스라이팅당하고 있는지 모른다.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다. 판사가 판결을 하지만 오판도 많다. 왜 그럴까?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헌법에 문제가 있음을 알았다. 그것은 판사의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라는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판사는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고 말다. 왜 판결이 이상하게 나오는지 이유가 되는 것 같다. 판사의 재량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 수 있음을 말한다. 이런 것은 고쳐야 한다. 최동석 소장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판결은 판사의 양심에 따른다. 그러다 보니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판결이 될 수 있다. 이는 판사의 직무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해 놓았기 때문에 발생된 것이다.

 

정치평론가는 자신이 속한 진영을 옹호한다. 상대방 진영은 가차 없이 깍아 내린다. 이런 경우 평론이라기 보다는 음해에 가깝다. 때로 중상모략을 한다. 명백히 양심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르는 것이다.

 

남을 험담하고 음해하고 중상모략하는 행위는 팔정도의 정어(正語)에 어긋나는 것이다. 이는 거짓말(musāvādā)을 하고, 이간질(pisunā)을 하고, 욕지거리(pharusā)를 하고, 아첨(samphappalāpā)하는 말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정어를 어겼을 때 어떤 결과가 될까?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악처에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평론가는 구업(口業)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람에 대하여 평가하다 보면 거짓말도 하게되고, 이간질도 하게 되고, 욕지거리도 하게 되고, 아첨도 하게 된다. 도덕적으로 금하는 것을 서슴없이 자행하는 것이다. 실제로 유튜버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부처님은 평가자가 되지 말라고 했다. 이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아난다여그것에 대하여 평가하는 자가 이와 같이 ‘이 사람에게 그 성품이 있고저 사람에게도 그 성품이 있다어째서 그들 가운데 하나는 열등하고 하나는 탁월한가.’라고 말한다면그것은 그에게 오랜 세월 불익과 고통이 된다. (A6.44, A10.75)

 

 

사람들 성향은 다양하다. 그 사람에 대하여 안다고 하더라도 모르는 것이 더 많다. 그 사람과 오랫동안 대화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그 사람과 오랜 세월 함께 살아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사람에 대하여 평가한다면 크게 다칠 수 있다.

 

평론가는 사람에 대하여 평가한다. 특히 정치인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말을 한다. 그렇다면 평론가는 그 정치인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정치인의 마음 속에 들어가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나름대로 평가한다. 그러나 팔정도의 정어를 어기는 것이 되기 쉽다. 그래서 타인에 대하여 열등한 것과 탁월한 것을 말하는 것에 대하여 그에게 오랜 세월 불익과 고통이 된다.”(A6.44, A10.75)라고 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찌든 자가 타인을 평가했을 때 과연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까?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려거든 부처님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사람을 평가하는 위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여래를 제외하고 그 차이를 누가 알겠는가그러므로 아난다여사람들에 대하여 평가자가 되지 말라사람들에 대하여 평가하지 말라아난다여사람들에 대하여 평가하면 자신을 해치는 것이다아난다여나 또는 나와 같은 자만이 사람에 대하여 평가할 수 있다.(A6.44, A10.75)

 

 

부처님은 완전한 존재이다. , , 치로 대표 되는 모든 번뇌가 소멸된 자이다. 아라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처럼 부처님과 같은 인격을 가진 자가 사람을 판단한다면 모두 수긍할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여래를 제외하고 그 차이를 누가 알겠는가?”라고 말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이는 사람마다 개성이 있음을 말한다. 이는 다름 아닌 다양성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자신의 삼촌을 비난하는 재가의 여신도에 대하여 재가의 여신도 미가쌀라, 어리석고, 슬기롭지 못하고, 아낙의 지혜를 가진 어리석은 여자는 누구인가? 사람의 다양성에 대하여 어떠한 앎을 지니고 있는가?”(A6.44, A10.75)라고 말했다.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려면 먼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그것은 지혜에 대한 것이다. 사람에 대한 다양성에 대한 앎을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다양성을 안다는 것은 매우 높은 정신적 능력에 해당된다. 상대방 보다 탁월한 정신적 능력을 갖추었을 때 그 사람을 꿰뚫어 보는 것이다.

 

범부가 범부를 평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범부의 눈으로 판단하려 할 것이다. 돼지의 눈에는 돼지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범부가 자신보다 더 높은 정신능력을 가진 자를 평가하면 어떤 벌어질까? 아마 돼지의 눈에는 부처도 돼지로 보일 것이다.

 

범부는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다. 아무리 완벽하게 판단한다고 해도 완전하지 않다. 마치 판사가 양심에 따라 판결을 내리는 것과 같다. 가장 정확한 판단은 번뇌가 소멸된 자가 판결하는 것이다. 번뇌가 소멸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는 자아개념이 없음을 말한다. 그래서 무아의 성자가 말하는 것은 진리라고 말할 수 있다.

 

평론가 되려면 최소한 성자의 흐름에는 들어야 할 것이다. 성자의 흐름에 들면 유신견이 타파되기 때문에 자신을 내 세우지 않는다. 오온에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몸과 느낌, 지각, 형성, 의식에 대하여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알게 되는 것이다. 자아개념을 타판한 자만이 정확한 판결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범부가 범부를 평가하면 재앙이 일어난다. , , 치에 물든 자가 평가를 했을 때 제대로 된 평가가 될 수 없다. 평가는 지혜로운 자가 해야 한다. , , 치가 옅은 자가 평가하면 그래도 나을 것이다. 자아개념이 없는 성자의 흐름에 든 자가 평가한다면 제대로 평가할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평가자는 부처님이라고 볼 수 있다. , , 치가 완전히 소멸된 무아의 성자가 평가하면 어긋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진리의 흐름이 이 사람을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정치의 계절이 왔다. 그 동안 TV도 보지 않고 정치유튜브도 보지 않았는데 마치 오랜만에 참전한 느낌이다. 이 과정에서 마주 치는 자가 있으니 그것은 정치유튜버이다.

 

유튜버도 유튜버 나름이다. 최동석 소장 같은 경우 배울 것이 많다. 많이 배웠기 기도 하지만 정신적 능력이 높은 것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유튜버들은 팔정도의 정어를 어기고 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고, 이간질을 하고, 욕설을 하고, 아첨을 한다. 부처님은 그에게 오랜 세월 불익과 고통이 된다.”라고 했다.

 

오늘도 유튜브를 볼 것이다.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공중파 방송이나 종편방송은 보지 않는다. 그 대신 유튜브에서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어쩌면 정치 유튜버에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 총선 때까지 계속 될 것 같다. 정치의 계절이 왔나 보다.

 

 

2024-02-2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