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죽을 것처럼 절망스러운 나날일지라도

담마다사 이병욱 2024. 3. 1. 09:41

죽을 것처럼 절망스러운 나날일지라도
 
 
오늘이 공휴일인지 몰랐다. 어제 저녁 이런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나에게는 공휴일은 없다. 누가 알려주든 말든 가는 곳이 있다.

자영업자에게는 주말도 없고 공휴일도 없다. 그야말로 월, 화, 수, 목, 금, 금, 금인 것이다. 2007년 이래 거의 매일 하루도 빠짐 없이 눈만 뜨면 백권당으로 향한다.
 

 

 
17년째 계속 되는 일상이다. 아침에 출근해서 글을 쓰고 일감이 있으면 일을 하는 일상이다. 요즘에는 좌선, 빠알리어 공부, 경전과 논서 읽기, 그리고 책 만들기가 추가 되었다.
 
늘어나는 것은 글이다. 매일매일 쓰다 보니 매일매일 축적된다. 일년이면 365개의 글이 생긴다. 십년이면 3,650개가 될 것이다. 하루에 두 개 또는 세 개 쓰는 날도 있기 때문에 더욱 더 늘어난다.
 
그 동안 쓴 글이 산을 이루었다. 마치 쌍윳따니까에서 ‘사람의 경’을 연상케 한다. 그 경에는 “일 겁의 세월만 윤회하더라도 한 사람이 남겨 놓는 유골의 양은 그 더미가 큰 산과 같이 되리라고 위대한 선인께서는 말씀 하셨네.”(S15.10)는 게송이 있다.
 
한 존재가 죽으면 유골을 남긴다. 삶을 거듭할수록 유골의 양도 많아질 것이다. 일겁을 윤회한다면 유골의 양이 산을 이룰 것이라고 했다. 아마 수미산보도 더 높을 것이다.
 
무엇이든지 무한개념에 대입하면 천문학적으로 된다. 그래서일까 쌍윳따니까야에서는 윤회하면서 흘린 피의 양이 사대양의 물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윤회하면서 흘린 눈물의 양도 사대양의 물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윤회하면서 마신 젖의 양도 사대양의 물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사대양은 수미산을 둘러싸고 있는 대양을 말한다.
 
윤회하는 삶을 살고 있다. 윤회하면서 먹은 음식의 양은 얼마나 될까? 아마 수미산 보다 더 높을 것이다. 윤회하면서 배설한 똥은 얼마나 될까? 아마 수미산보다 더 높을 것이다. 그렇다면 윤회하면서 쌓은 업은 얼마나 될까?
 
윤회하면서 악업을 쌓았다면 수미산 보다 더 높을 것이다. 윤회하면서 선업을 쌓았다면 역시 수미산 보다 더 높을 것이다.
 
한평생 살면서 먹은 음식의 양은 얼마나 될까? 아마 저기 동산보다 더 높을 것이다. 한평생 살면서 배설한 똥은 또 얼마나 될까? 저기 저 동산보다 더 높을 것이다.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밥만 먹고 살 수 없다.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자손만 남기는 것으로 해야 할 일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다. 좀 더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은 정신적 재물이다.
 
매일 글을 쓰고, 좌선을 하고, 빠알리 공부를 하고, 경전을 읽고, 책 만들기를 하는 것은 정신적 재물을 축적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축적되면 산을 이룬다는 것이다.
 
한 존재가 남겨 놓은 업은 산을 이룬다. 매일 글을 쓰는 것도 업을 짓는 것이다. 그런데 책으로 만들어 놓으면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적 재물과 물질적 재물이 된다.
 
세상을 살면서 밥만 먹고 배설하며 살 수 없다. 동물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이에 글쓰기만한 것이 없다. 한 존재가 이 생을 살면서 매일 남겨 놓은 글이 블로그에 가득하다. 책으로 만들어 놓으니 책장에 가득하다. 한 존재의 몸부림이다.
 

 
오늘도 어김 없이 백권당으로 향했다. 스마트폰을 보니 영하 3도이다. 오늘이 3월 1일인데 영하의 날씨인 것이다. 절기상으로 이미 봄이 되었음에도 바깥 날씨는 여전히 겨울이다.
 
사람들은 봄을 기다린다. 그런데 여러 단계의 봄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것인가?
 
동지가 되었을 때 봄이 시작된 것이나 다름 없다. 이는 다름 아닌 심리적인 봄이다. 어둠이 절정에 달했을 때 동지를 정점으로 기울어지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입춘이다. 이는 절기상으로 봄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2월 4일의 바깥 날씨는 여전히 춥다. 다음으로 계절상으로 봄이다. 이는 3월에 해당된다. 바로 오늘 3월 1일부터 봄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춥다.
 
진정한 봄은 언제일까? 그것은 꽃과 관련이 있다. 꽃이 피면 본격적으로 봄이 시작되는 것이다.
 
남녘에서는 꽃소식을 전한다. 남쪽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매화꽃이나 동백꽃을 에스엔에스(SNS)에 올려 놓는다. 그러나 중부지방에서 나무 가지는 여전히 앙상하다.
 
봄이 되려면 좀 더 있어야 한다. 개나리가 필 때 본격적인 봄이라 말할 수 있다. 삼월 중순은 지나야 한다. 그러나 사월이 되어야 완전한 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겨우내 앙상한 가지에서 새싹이 나기 시작할 때 진정한 봄이 시작된다.
 
봄이 왔다. 그토록 고대하던 봄이 왔다. 심리적 봄, 절기상의 봄을 지나 계절상의 봄이 온 것이다. 아직 꽃도 피지 않고 새싹도 나지 않았지만 봄은 개학과 함께 온다.
 
신학기가 시작되면 봄이 된 것이나 다름 없다. 심리적 봄, 절기상의 봄보다 더 강력한 봄이다. 신학기가 되면 마치 꽃이 피고 새싹이 나는 것처럼 활력이 넘친다. 이렇게 본다면 봄은 신학기와 함께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동안 봄을 기다렸다. 동지와 입춘을 보내고 계절상의 봄이라고 볼 수 있는 신학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봄은 생명이다.
 
봄에는 생명으로 넘쳐난다. 마치 죽은 듯이 지내던 것들이 하나 둘 깨어 난다. 땅 속에서 마치 용수철처럼 튀어 나오는 것도 있다. 앙상한 가지에서는 꽃이 피어 “나는 죽지 않았다, 나는 살아 있다.”라며 존재를 과시하는 것 같다.
 
나이가 들어 형편없이 늙어 버린 노인이 있다. 노인은 이 겨울이 지나면 봄을 볼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한다. 왜 그런가? 노인의 건강은 건강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에서 종종 듣는 얘기가 있다. 이는 “어제까지 밥 잘 잡수시던 분이 오늘 아침에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라는 말이다. 이렇게 본다면 내일을 장담할 수 없다.
 
봄은 축복의 계절이다. 인고의 세월을 견딘 자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것과 같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자에게 보상으로 따르는 것이다. 중병에 걸린 자가 병고를 이겨내고 살아 있음을 만끽하는 것과 같다.
 
이제 따뜻한 나라에서 겨울 한철 보낸 사람들도 돌아 올 것이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꿈과 같은 계절을 고국에서 보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추위와 더위를 감내 해야 한다.
 
이고득락(離苦得樂)이라는 말이다. 이는 “고생 끝 행복시작!”라는 말과 같다. 봄은 인고의 시기를 견디어 낸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봄날은 너무나 빨리 지나가 버린다.
 

 
흘러가는 세월을 꽁꽁 붙들어 매고자 한다. 글 쓰는 것 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글에 시간이 녹아 있다. 책장 가득히 꼽혀 있는 책을 보면 지나간 세월을 꽁꽁 붙들어 매 둔 것 같다.
 
매번 반복되는 일상이다. 매일 글을 쓰고, 매일 좌선을 하고, 매일 빠알리어 공부를 하고, 매일 초기경전과 논서를 읽고, 매일 책 만들기 작업을 한다. 일감이 있으면 일을 한다.
 
일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다. 일감이 있어서 마우스를 클릭할 때 마음이 안정된다. 수입이 있어서 좋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업보국(事業報國)이다. 사업을 함으로 인하여 이 사회와 나라에 보탬이 되었을 때 “나는 살아 있다. 나는 아직까지 현역이다.”라고 생각한다.
 

 
오늘 아침 찬란한 태양을 보았다. 이제까지 눈이 오거나 비가 오는 등 흐린 날만 계속되다가 모처럼 쾌청한 날이다. 날씨는 영하로 춥지만 봄이 오는 것을 막지 못한다.
 
매일 해는 떠오른다. 죽을 것처럼 절망스러운 나날일지라도 하루 밤 지나고 나면 깨끗이 잊어 버린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떠 오른다.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 있기 때문에 봄을 맞이한다. 오늘부터 본격적인 봄이다.
 
 
2024-03-0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