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차 맛 어때?”라는 말이 절로, 2024년 서울국제불교박람회

담마다사 이병욱 2024. 4. 5. 11:18

차 맛 어때?”라는 말이 절로, 2024년 서울국제불교박람회
 
 
해마다 연중행사가 있다. 일년에 한번 있는 것이다. 불교박람회도 그 중에 하나이다.
 
서울과 수도권에 사는 것에는 혜택이 있다. 각종 행사가 열렸을 때 가보는 것이다. 이는 서울과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몰려 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서울국제불교박람회가 열렸다. 2024년 올해 박람회는 4월4일(목)부터 4월7일(일)까지 학여울역에 있는 세텍(SETEC)에서 열린다. 그 첫째 날에 가보았다.
 

 
목적지는 순탄하지 않다. 전철과 지하철을 세 번 갈아 타야 한다. 금정역에서 한번 갈아타고, 사당역에서 두 번 갈아타고, 교대역에서 세 번 갈아탄다. 네 개의 노선에 세 번 환승하는 것이다. 그래도 넉넉히 한 시간 반 잡아야 한다.
 
불교박람회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박람회가 처음 시작될 때부터 가보았다. 아마 15-16년 된 것 같다. 가서 본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반드시 기록을 남겼다. 블로그에 글과 함께 사진을 남긴 것이다. 어느 해에는 동영상도 남겼다.
 
요즘 책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과거에 써 놓은 글을 시기별로 또는 카테고리별로 묶어서 책으로 만드는 것이다.
 
책은 판매용이 아니다. 책을 쓰기 위한 목적으로 글을 쓴 것이 아니라 써 놓은 글을 모아 놓은 것이기 때문에 판매용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책으로 만들어 놓는 것은 기록으로 남기기 위함이다.
 
블로그에는 삶의 흔적이 있다. 2006부터 써 놓은 글을 말한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고 했다. 2018년 이후 써 놓은 글을 대상으로 하여 책을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123권 만들었다.
 
책은 고통스런 삶의 흔적이다. 어느 책이든지 작자의 애환과 노고가 들어가 있다. 이렇게 본다면 책은 고통스러운 삶의 흔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책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다. 글을 써서 세상에 내놓았다는 것은 사람들 전체의 재산과 같다. 이른바 공공재, 공공재산인 것이다.
 
책은 내 것이 아니다. 글이 인터넷에 올려진 순간 내것이 아니듯이 세상사람들을 향해 낸 책은 나의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의 것이다. 블로그에 pdf파일을 올려 놓은 것도 공공재로서 재산이기 때문이다. 모두 퍼가라고 올려 놓은 것이다.
 
불자들의 잔칫날
 
세텍에는 정오가 넘어서 도착했다. 점심은 박람회장에서 먹기로 했다. 지난 수년간 다녀봐서 안다. 박람회장 야외에는 먹거리장터가 있다.
 

 
불교박람회는 불자들의 잔칫날과도 같다. 또한 불교인들의 축제와도 같은 날이다. 대개 부처님오신날을 한달 앞두고 열린다.
 
잔칫날에 먹거리가 없지 않을 수 없다. 야외 공터에는 텐트가 쳐져 있어서 전통시장 분위기가 물씬 난다. 그곳에 가면 점심을 먹을 수 있다.
 

 
무엇을 먹어야 할까? 김밥 부스에는 긴 줄이 형성되어 있다. 아마 가격이 싸기 때문일 것이다. 비빔밥 부스가 한산해 보였다. 한그릇에 만원이다.
 

 

 
불교박람회는 불자들에게 잔칫날이고 축제의 현장이다. 그래서일까 스님들도 꽤 눈에 띈다. 어쩌면 스님들이 주인이 되는 날인지 모른다.
 

 
사람 사는 곳에서 불교를 보기가 힘들다. 절이 있기는 있지만 거대한 규모의 성당이나 교회와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 없다.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에서도 불교는 보기 힘들다. 그러나 불교박람회장에서만큼은 불자들의 세상이다.
 
박람회장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1관은 불교산업과 관련된 것이고, 2관은 불교문화와 관련된 것이고, 3관은 불교생활과 관련된 것이다. 1관부터 보기로 했다.
 
선엽스님과 함께
 
1관에 가면 차를 마실 수 있다. 차는 불교산업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차뿐만 아니라 차기 등 갖가지 불교와 관련된 용품을 볼 수 있다.
 
요즘 마트에 가면 시식코너가 있다. 불교박람회장도 예외가 아니다. 차를 소개하는 부스에 가면 차를 시음할 수 있다.
 
불교박람회장에 가면 인심이 넉넉하다. 누구나 차를 마실 수 있다. 마치 “오는 손님 막지 않고 가는 손님 잡지 않는다.”라는 말을 연상케 한다. 아무 부스에나 가서 앉아 있으면 차가 나온다.
 
세 곳에서 시음했다. 첫 번째로 찾아 간 곳은 선엽스님 부스이다.
 

 

대나무차를 마셨는데
 
두 번째로 찾아간 부스에서는 대나무차를 마셨다. 놀랍게도 대나무도 차의 재료가 된다는 것이다. 카페인이 전혀 없다고 한다.
 
대나무 차 맛은 어떨까? 무미건조한 것이 특징이다. 무색, 무취하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다른 말로 깔끔한 것을 말한다.
 

 
이 세상에 차의 재료가 아닌 것이 없다. 어느 해인가 질경이로 차로 만든 것을 보았다. 이렇게 본다면 부처님의 주치의 지바까가 말한 것처럼 “약이 되지 않는 푸성귀는 없다.”라는 말이 실감난다.
 

 
갖가지 종류의 차가 있다. 국화도 차의 재료가 된다. 노란 국화를 말려 뜨거운 물에 넣으면 국화 특유의 맛이 난다. 목련차도 있다. 목련이 피기 전에 봉우리를 따서 말린 것이다. 고욤잎차도 있다. 고욤잎차를 따서 말린 것이다. 감잎차와 비슷한 것이다.
 
이 세상에 약이 되지 않는 푸성귀는 없다. 길가 잡초도 약이 된다. 하물며 대나무잎도 차의 재료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김덕진 선생과 함께
 
산업관에 있는 모든 부스에서 차를 시음할 수 없다. 세 번에 그쳤다. 마지막으로 찾아 간 곳은 김덕진 선생이 있는 부스였다.
 
김덕진 선생은 페이스북친구이다. 작년 6월 차박람회 때 처음 봤다. 그동안 페이스북에서만 보다가 오프라인에서 본 것이다.
 

 
김덕진 선생은 이번은 두 번째이다. 첫 번째 만남은 초면이지만 두 번째 만남은 구면이라 아니할 수 없다.
 
차는 훌륭한 대화의 매개체이다.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커피를 마시고 나면 일어서야 하지만 차를 마시면 계속 리필된다.
 
커피를 마시면서 대개 30분 안팍이다. 차를 마시면서 주거니 받거니 대화하다 보면 세 시간 말할 수 있다.
 
김덕진 선생은 내 글을 읽어 주는 사람이다. 긴 글을 대부분 읽는다고 했다. ‘좋아요’ 등과 같이 공감표현을 하지는 않지만 읽고 있었던 것이다!
 
오래 앉아 있을 수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 김덕진 선생은 하동에 올 일 있으면 꼭 들르라고 했다.
 
불교문화관 아수라상을 보고
 
2관에 들어가 보았다. 불교문화관을 말한다. 불상이나 불화 등 갖가지 불교문화에 대한 것이 전시되어 있다.
 
불교에는 문화가 있다. 타종교에도 문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문화만큼 풍부한 것이 아니다. 불교에는 불상, 불화 등 갖가지 작품이 있는데 이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던 것이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지 1700년 가량 되었다. 그 역사만큼이나 수많은 불교문화재가 있다. 우리나라 문화재의 70프로 가량은 불교문화재라고 한다.
 
불교박람회를 가장 불교박람회답게 만드는 것은 아마 2관 불교문화관일 것이다. 불교문화를 전문으로 하는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 ‘아수라’라는 작품이 눈에 띈다.
 

 
아수라는 선처일까 악처일까? 초기불교에서는 악처로 본다. 지옥, 축생, 아귀와 함께 사악처로 본다. 그러나 대승에서는 아수라가 악처로 보지 않고 선처로 보기도 하는 것 같다.
 
아수라는 일종의 싸움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아수라는 일종의 조폭과도 같은 부류라고 볼 수 있다. 왜 그런가?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그러므로 강력한 처벌로 현자는 어리석은 자를 눌러야 하네.”(S11.4)라고 했다.
 
아수라의 리더십이 있다. 이는 다름 아닌 폭력의 리더십이다. 힘으로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아수라와 반대편에 있는 제석천은 관용의 리더십이다. 이는 “참으로 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힘 없는 자에게 인내하네. 그것을 최상의 인내라 부르네. 힘 있는 자는 항상 참아내네.”(S11.4)라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여기 힘 없는 사람이 있다. 대개 서민이기 쉽다. 힘 없는 서민은 힘 있는 자에게 저항하기 힘들다. 힘으로 제압하려 하기 때문이다. 마치 5공화국시절처럼 철권으로 통치하는 것이다. 이는 다름 아닌 아수라의 리더십이다.
 
아수라의 리더십은 폭력적이다.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한다. 마치 조폭의 주먹이 근질근질한 것과 같다. 오늘날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검찰권력을 보는 것과 같다.
 
제석천의 리더십은 인내에 있다. 그것은 약자에 대한 인내이다. 아수라의 리더십은 약자에게 인내를 강요하지만 제석천의 리더십은 강자가 인내하는 것이다. 이는 힘 없는 자에게 인내하는 것과 같다.
 
힘 없는 자도 저항할 수 있다. 먹고 살기 힘들어질 때 저항하는 것이다. 또한 불공정할 때도 저항한다. 아수라의 리더십을 가진 권력자라면 무자비하게 탄압할 것이다. 화물연대가 파업 했을 때 깨부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의사들이 저항할 때도 파업연대 깨부수듯이 대처하는 것도 아수라의 리더십에 해당된다.
 
전시관에서 본 아수라는 여성형상이다. 전라의 육체풍만한 여성을 아수라 상으로 만든 것이다. 여성 아수라도 있을까?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작품으로 본다.
 
탄경스님에 대한 기시감
 
2관에서 사람을 만났다. 탄경스님을 본 것이다. 못 본체 하면서 지나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번 만난 인연도 있고 무엇보다 내 글에 ‘좋아요’등 공감표현을 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아는 체 했다.
 
스님은 나를 알아 보았다. 아마 그것은 페이스북에 내 얼굴이 노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프로필에 얼굴사진을 올려 놓은 것이다.
 

 
탄경스님은 낯 익다. 작년 6월 아산 유원대에서 열린 ‘제1회 세계불교문화축전’에서 한번 뵌 적이 있다. 그때 스님은 음식 보시를 했다. 다나 밥차를 가지고 와서 참가자들에게 점심식사를 제공한 것이다.
 
오늘 아침 이런 생각이 들었다. 탄경스님이 ‘기시감’이 있는 것이다. 탄경스님을 능인선원에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모습도 똑같고 법명도 똑같다. 그때 분명히 그 스님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오늘 아침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다. 어느 블로거가 2006년에 올린 글에서 탄경스님 이름이 나왔다. 이는 능인선원 이성학 기자가 YBA청년불교대학 수료식에 대하여 쓴 글을 올린 것이다.
 
불교에 입문한 것은 2004년의 일이다. 그때 당시 사십대 중반이었다. 그때 금강회 지도법사가 있었는데 탄경스님이었다.
 
탄경스님은 경상도 억양의 말을 했다. 그리고 말이 거칠었다. 몸집이 크고 시원시원했다. 조폭을 깍두기라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
 
그동안 잊고 있었다. 탄경스님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생소했었다. 페이스북에서 스님의 활동에 대하여 알고 있었는데 옛날 그 스님인줄 몰랐다.
 
사람에 대하여 잘 파악하지 못한다. 조용길 선생도 그랬다.
 
2004년도의 일이다. 그때 불교에 처음 입문해서 교육을 받았다. 일주일에 두 번 교육받은 것이다. 원장스님과 동국대 교수가 교육했다.
 
능인선원 법당은 매우 넓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초등학교 운동장만하다. 그때 수백 명 앉아 있었다. 주로 뒤에서 들었다. 그러다 보니 강사가 잘 보이지 않았다. 동국대 교수도 잘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동국대 교수가 인연 있는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으로 교수의 아함경이야기를 들었는데 낯익은 얼굴이었다. 능인선원 교수인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는 순간 “아, 중학교 때 그 교법사였구나!”라고 알게 되었다.
 
사람 알아 보는 눈이 어두운 것 같다. 조용길 선생을 30년만에 알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알아 보지 못했으나 분명히 중학교 때 그 선생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눈이 어두웠다. 탄경스님은 2005-2006년 무렵 능인선원에서 금강회 지도법사로 있었던 것이다.
 
탄경스님은 이미 나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작년 6월 유원대에서 밥차를 끌고 왔는데 내가 다가가자 “이병욱씨!”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그때 스님이 능인선원 그 스님인줄 몰랐다. 오늘 아침까지도 몰랐다.
 
오늘 걸어 오면서 “혹시 그 스님 아닐까?”라며 생각했다. 큰 키에 체구가 당당하고 목소리가 걸걸하고 시원시원한 것을 특징으로 하는 그 스님이 틀림 없다. 글을 쓰는 도중에 인터넷으로 확인 한 것이다.
 
공부가 다 끝났으면 봉사를 해야지요.”
 
어제 탄경스님을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 동안 스님이 하는 일이 궁금했다. 밥차를 끌고 다니면서 봉사를 하는 것이 잘 이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스님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한다. 스님의 페이스북 글을 읽어 보면 하루에도 남으로 갔다가 북으로 갔다가 동으로 갔다가 서로 간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스리랑카, 네팔 등 국제적이다. 대체 스님은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 것일까?
 
우리나라 스님들은 못하는 것이 없다.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그림이면 그림 등 못하는 것이 없다. 이럴 때 드는 의문이 있다. 이는 “대체 공부는 언제 하려는 것일까?”에 대한 의구심이다. 해야 할 공부가 많은데 본분사보다는 부업에 열중하는 모습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탄경스님은 밥차를 끌고 다닌다. 이곳저곳에서 먹을 것을 보시한다. 이제 해외까지 영역이 확장되었다. 이런 스님에 대하여 “저 스님은 공부가 다 끝났을까?”라고 의문했다.
 
스님과 서서 짧게 대화를 나누었다. 스님은 “공부가 다 끝났으면 봉사를 해야지요.”라고 말했다. 이 말에 모든 의문이 다 풀렸다. 스님은 공부를 다 마쳤기 때문에 밥차를 끌고 다니는 것이다.
 
스님과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사진을 찍을 때까지만 해도 스님이 능인선원 그 스님인줄 몰랐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막연하게 그 스님일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을지 모른다.
 
다기 세트를 구입하고
 
204년 서울국제불교박람회를 둘러 보았다. 매년 이맘 때쯤이면 연례행사처럼 가는 곳이다. 그리고 기록을 남긴다. 거의 15-16년 되는 것 같다. 기록을 모아 놓으면 책으로 한 권 될 것 같다.
 
예전에는 한번 둘러 보는 것으로 끝났다. 절대로 돈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해부터인가 물건을 사기 시작했다. 싱잉볼도 박람회장에서 샀다. 법복도 박람회장에서 구입했다. 올해는 다기세트를 샀다.
 

 
백권당 사무실에는 다기 세트가 풍부하다. 재활용품이다. 이는 ‘아름다운 가게’나 ‘굿윌스토어’와 같은 재활용품 가게에서 싸게 산 것이다. 그러나 격이 떨어졌다. 너무 싸구려 같다.
 
접대용 다기 세트를 갖추고자 했다. 아주 작은 자사호를 비롯하여 아주 작은 찻잔 같은 것이다. 그러나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사호 가격은 10만원이다. 20만원짜리도 있다. 가장 싼 중국산은 5만원이다.
 
원하는 다기 세트를 발견했다. 3관 입구에 있는 부스에 있는 것이다. 가격표를 보니 3만5천원이다. 자사호를 포함하여 찻잔이 여섯 개이다. 더구나 다탁까지 제공된다. 이를 눈으로 찜 해 놓았다.
 

 
다기 세트를 구입했다. 고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만족할 만하다. 가격이 착한 것이다. 중국산으로 ‘정품다구(精品茶具)’라고 쓰여있다. 마치 횡재한 것 같다. 이 만한 가격에 이런 다구는 보지 못했다. 손님이 오면 자신 있게 내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차 맛 어때?”라는 말이 절로
 
오늘날 불교박람회는 국제화 되었다. 처음 박람회가 열릴 때까지만 해도 국내용이었으나 점차 규모가 확대 되었다. 이제는 중국이나 네팔 등 전세계 국가에서도 참가하고 있다.
 

 
박람회장에 가면 차를 마셔야 한다. 어느 부스에 가든지 무료로 시음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불교이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 것이다.
 
불교박람회장에 가면 차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 세상에서 접할 수 없는 진귀한 차도 맛 볼 수 있다. 커피가 아무리 맛있기로 차의 은은한 맛에 따라가지 못한다. 세상에 이런 차도 있었던 것이다! “차 맛 어때?”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2024-04-0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