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냐나띨로까 스님의 생애’ 읽기 시동을 걸고
봄비 내리는 촉촉한 백권당의 아침이다. 이런 날은 커피가 제격이다. 절구질해서 만든 절구커피 한잔에 삶의 활력이 돈다.
어제는 글을 쓰지 못했다. 글의 소재가 없을 때, 글의 주제를 정하지 못했을 때 쓸 수가 없다. 이런 때는 억지로 써서는 안된다. 하루 정도 쉬는 것도 괜찮다.
어제는 몹시도 침울했다. 또한 절망감이 들었다. 왜 그랬을까? 곰곰이 따져 보니 비교 때문이다. 남과 비교해서 부족하고 결핍하다고 느꼈을 때 침울해지는 것 같다.
사람의 마음은 마치 날씨처럼 변덕스럽다. 어제 침울했던 마음은 아침이 되자 사라졌다. 비 오는 아침임에도 새로운 기분이다. 따스한 절구커피 한잔에 마음이 녹아 내렸다. 무엇보다 경전에서 본 부처님 가르침이 크다.
매일매일 조금씩 상윳따니까야를 읽고 있다. 머리맡에 있어서 손만 뻗으면 책을 잡을 수 있다. 지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스탠드 불을 켠다. 그리고 돋보기 안경을 쓰고 노랑 형광메모리펜을 쥔다.
니까야를 읽으면 마음이 충만된다
니까야를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마치 약을 먹은 것처럼 즉각 반응을 보인다. 몇 줄 읽지 않아 이전마음과 전혀 다른 마음이 되어 버린다. 새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칠해 둔다.
“몸을 고요히 하고 마음을 잘 해탈하여
형성 없이 집 없이 새김을 갖추고
동요 없이 표류 없이 혼침 없이
가르침을 알고 사유를 넘어 선정을 닦는다네.”(S4.25)
이 게송은 악마의 딸 아라띠의 질문에 대한 부처님의 답이다. 아라띠는 “다섯 거센 흐름을 건너고 여섯 번째도 건넜는가?”라며 물어 보았다. 여기서 다섯 흐름은 안, 이, 비, 설, 신의 감각적 쾌락을 뜻한다. 그렇다면 여섯 번째 건넘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럴 때는 각주를 보아야 한다. 주석에 따르면 개념적 대상을 건넜는지 물어 본 것이다.
위빠사나 수행에서 빤냣띠라 부르는 개념을 대상으로 하면 안된다. 위빠사나 수행에서는 빠라맛타라 부르는 실재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 이처럼 실재를 대상으로 하기 위해서는 선정삼매에 빠져서는 안된다. 네 가지 선정과 같은 삼매를 말한다. 왜 그런가? 선정삼매는 개념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불교수행은 선정삼매를 닦기 위한 것은 아니다. 선정삼매를 닦더라도 위빠사나 수행을 하지 않으면 도와 과를 이룰 수 없다. 그래서 부처님은 “형성 없이 집 없이 새김을 갖추고” 라고 말하면서 “사유를 넘어 선정을 닦는다네.”라고 말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선정에 도달하지 않고서도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대한 상념을 제거시킬 수 있음을 말한다.
게송에서 와 닿는 구절이 있다. 이는 “형성 없이 집 없이 새김을 갖춘다. (asaṅkhārano satimā anoko)”라는 말이다. 여기서 형성 없이는 아상카라를 번역한 말인데 무위의 뜻이다.
불교에서 무위는 도가에서 말하는 자연무위 같은 것은 아니다. 불교의 무위는 세 가기 행위의 유위적 조작을 떠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업을 형성하는 것들[身, 口, 意]에 대한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고 생각하는 유위적 조작을 떠나는 것이다.”(Srp.I.187)라고 했다.
한마디 말에 감동 받는다. 주석을 통해서 또 한번 감동 받는다. 무위를 뜻하는 아상카라가 업을 짓는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기쁨이 일어난다. 더구나 업 짓는 것에 대하여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며 유위적 조작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것을 알았을 때 마음은 충만 된다.
함이 없는 함이 있다는데
사람들은 모든 문제가 나에게 있음을 알고 있다. 나로 인해서 모든 문제가 생겨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경계에 부딪치면 무너진다. 그것은 아마도 개념적으로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체험적으로 알려면 수행을 해야 할 것이다.
어떤 스님은 개와 함께 산다. 산중에서 홀로 사는 스님은 개가 친구인 것 같다. 그래서일까 개를 사람 취급한다. 그런 개가 새끼를 뱄다.
개는 어떻게 새끼를 갖게 되었을까? 스님의 페이스북에서 추론할 수 있다. 개가 발정기가 되었을 때 아마 목줄을 풀어 준 것 같다. 돌아 다니는 수컷개와 교미가 되었음에 틀림 없다.
생명이 태에 들면 폭발적 성장을 한다. 세포 한 개가 두 개가 되고, 두 개는 네 개가 된다. 몇 달 지나면 새끼가 나올 것이다. 스님은 이런 과정을 즐기는 것 같다. 스님은 개가 새끼를 배서 강아지가 나오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라고 했다.
스님은 자유롭게 살고자 한다. 그래서 무위를 강조한다. 자연의 흐름대로 사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의 말씀도 자연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개가 발정기가 되었을 때 새끼를 갖게 한 것도 어쩌면 자연의 흐름으로 보는 것 같다.
스님의 처소에는 머지 않아 개떼로 우글거릴 것이다. 홀로 사는 스님의 일상에 변화가 생길 것이다. 이런 것도 자연스러움의 과정일까? 이런 것도 무위의 일일까?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 불교에도 불교가 없을 수 있다. 특히 한국불교가 그런 것 같다. 겉으로는 불교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외도사상인 것이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무위사상이다.
무위는 도가사상에서 근원 한다. 그런데 외도의 사상에도 무위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내가 이러한 계행이나 금계나 고행이나 청정행으로 아직 익지 않은 업을 익게 하고 이미 익은 업을 감내하여 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나에게 부과된 윤회의 괴로움과 즐거움은 끝나거나 증가하거나 감소되거나 더하거나 덜함이 없다. 예를 들어 실타래를 던지면 풀려질 때까지 굴러가는 것처럼 어리석은 자나 슬기로운 자나 똑같이 유전하고 윤회하다가 마침내 괴로움을 끝내게 된다.”(M76)라는 막칼리 고쌀라의 사상을 말한다. 이를 윤회청정설이라고 한다.
막칼리 고쌀라의 윤회청정설에 따르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해탈과 열반을 위해서 애를 쓸 필요도 없다. 수행을 하지 않아도 마치 잠에서 깨는 것처럼 먼 훗날 저절로 해탈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무위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심산유곡에서 신선처럼 사는 사람들이 무위를 말한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함이 있다고 말한다. 함이 없는 함이라고 말한다. 이런 논리라면 어리석은 자나 현명한 자의 구별이 없게 된다. 수행할 필요도 없다. 마치 잠에서 깨는 것처럼 해탈하여 윤회가 끝날 것이기 때문에 자연의 흐름대로 사는 것이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졸릴 때 자면 되는 것이다.
무위를 뜻하는 아상카라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아상카라는 열반과 동의어이기 때문에 업을 짓지 않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며 유위적 조작을 하지 않는 것이 아상카라인 것이다.
니까야를 만나지 않았다면
내가 만약 니까야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이것이 외도의 가르침인지 모르고 불교라고 믿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니까야를 만난 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한국에서 니까야는 아직도 생소한 것 같다. 노비구니스님 중에는 “니까야가 뭐꼬?”라며 말하는 스님도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 대부분 스님들도 니까야가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설령 니까야라는 말을 들었더라도 읽어 본 사람들은 드물 것이다. 스님들이 이럴진대 신도들은 오죽할까?
니까야가 번역되어 나온지 20년이 넘었다. 한국 최초의 니까야 번역은 1999년이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 선생이 상윳따니까야 일부를 번역한 것이 시초이다. 현재는 사부니까야가 완역되었고 쿳다까니까야도 대부분 번역되었다.
냐나띨로까 스님의 생애
한국불교의 역사는 1700년이나 된다. 그러나 초기불교의 역사는 매우 짧다. 특히 빠알리니까야 번역의 역사는 고작 25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독일에서 빠알리니까야 번역의 역사는 백년이 넘었다는 것이다.
흔히 우물안 개구리라는 말이 있다. 한국에 있으면 한국불교가 최고인 것으로 안다. 그러나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려 보면 한국불교의 위상은 초라하다. 특히 번역의 역사는 매우 일천하다. 독일과 비교하면 매우 초라한 것이다.
불교를 접하고 나서 놀란 것이 있다. 그것은 불교가 유럽이나 미국에서 인기 있는 종교라는 사실이다. 기독교가 득세하고 있는 한국에서 불교는 낡은 것이라는 이미지가 있으나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불교는 새로운 것이라는 사실이다.
최근 책을 하나 선물 받았다. 그것은 ‘냐나띨로까 스님의 생애’라는 제목의 책이다. 미주현대불교 편집자 김형근 선생이 보내 준 책이다. 미주현대불교에 스리랑카 순례기를 일년 넘게 연재하고 있는데 이런 인연으로 보내 준 것 같다.
냐나띨로까, 이름은 수없이 들어봤다. 독일출신 테라와다 스님이다. 또한 니까야 경전번역자이다. 그런데 이번에 김재성 선생이 번역하여 세상에 책이 나온 것이다.
책 읽기를 즐겨 하지 않는다. 니까야경전만 읽다 보니 책 읽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니까야경전은 고전 중에서 고전이기 때문이다. 온갖 인류의 지혜가 담겨 있어서 다른 책을 읽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냐니띨로까의 일대기에 대한 책을 보자 마음이 달라졌다.
책을 읽을 때는 머리맡에 놓고 읽는다. 냐나띨로까 스님의 일대기 역시 머리맡에 놓고 읽기로 했다. 어제부터 시동 걸었다.
오늘날 불교지식인들이라면 니까야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현재 한국에는 두 종류의 니까야번역서가 있어서 선택이 자유롭다. 그런데 니까야 번역이 있기까지 유럽 사람들의 역할이 컸다는 것이다. 그 중에 한사람이 냐니띨로까이다.
초기불교에 관심 있는 불자라면 빅쿠보디를 알 것이다. 니까야를 영역한 스님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빅쿠보디의 스승의 스승이 냐나띨로까라는 사실이다. 이는 책에서 빅쿠보디가 김재성 선생에게 보낸 추천사에서 “따라서 저는 냐나뽀니까 스님을 저의 영적 아버지라고 생각하며, 그의 스승이었던 냐나띨로까 스님은 저의 영적 할아버지입니다.”(26쪽)라고 표현한 것에서 알 수 있다.
한국불교에서 스승과 제자는 특별한 관계이다. 마치 세속에서 부자지간이나 같다. 유럽출신 스님들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본다면 빅쿠보디는 냐나뽀니까의 상좌가 되고, 냐나띨로까의 손상좌가 된다.
냐나띨로까 스님의 생애는 유럽의 불교역사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이는 스님이 1904년 26세의 나이로 출가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두 번째 출가자라고 한다. 그런데 냐나띨로까 스님의 출가는 니까야 번역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냐나띨로까는 독일출신이다. 스님은 앙굿따라니까야. 밀린다팡하, 뿟갈라빤냐띠(인시설론), 위숫디막가(청정도론)을 번역했다. 경서와 논서를 번역한 것이다. 이 중에서도 청정도론 번역에 주목한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청정도론이 완역되었다. 7년전의 일이다. 그때 당시 전재성 선생은 청정도론 번역에 앞서 냐나띨로까의 청정도론 독일어판을 보여 주었다. 그렇다면 냐나띨로까의 청정도론은 언제 독역되었을까?
한국빠알리성전협회본 청정도론에 따르면 냐나띨로까는 1937년부터 1940년까지 13년동안 청정도론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 선생은 해제에서 “그가 무려 13년에 걸쳐서 심혈을 기우려 완간한 이 책은 특히 의식과 형성의 상관관계의 복잡성을 구조적 분석을 통해 법수적으로 체계화했다는 데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커다란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67쪽)라고 표현해 놓았다.
전재성 선생에 따르면 냐나띨로까는 우리가 상상 이상의 사람이다. 단순히 출가하여 수행승으로 삶을 마치지 않고 경전을 번역하여 알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논서에도 매우 밝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마음에 대한 법수를 체계화한 것에서 알 수 있다. 마치 마음의 지도를 만든 것 같은 작업을 한 것이다.
냐나띨로까 스님의 생애를 보면 1부에 독일불교가 소개 되어 있다. 이 부분을 읽어 보면 독일이 우리나라 보다 초기불교를 백년 이상 또는 백오십년 이상 앞서 받아들인 것을 알 수 있다.
불교 영향 받은 쇼펜하우어, 바그너, 니체
요즘 유튜브에 쇼펜하우어의 글이 유행인 것 같다. 글 중에는 ‘다 필요 없다, 혼자 살아라’라는 류의 글이 대유행이다. 마치 처세학을 보는 것 같다. 또한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소개하는 유튜브에서는 고뇌하는 철학자로 묘사 되어 있다. 인간을 괴로운 존재로 보는 것이다. 이는 마치 불교의 고성제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쇼펜하우어는 불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그의 철학에는 불교가 녹아 들어가 있다. 그러나 완전한 것은 아니다. 유럽에 불교가 막 소개 되기 시작할 때 받아 들인 것이다. 그러다 보기 불교에 대하여 염세주의 또는 비관주의로 보았다.
독일불교 역사에 있어서 또 하나 놀라운 일이 있다. 그것은 독일의 음악가 바그너도 불교 추종자였다는 사실이다. 이는 바그너가 1856년 오페라 승리자(The Victor)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상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여기서 승리자는 부처님을 뜻한다.
부처님은 왜 승리자일까? 이는 부처님이 “나는 모든 것에서 승리한 자, 일체를 아는 자”(M26)라고 선언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이런 부처님의 이미지는 영웅이다.
바그너의 승리자에 대하여 검색해 보았다. 먼저 바그너의 불교와의 인연에 대한 것을 보면 “바그너 자신의 종교에 대한 관점은 독특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존경했지만, 그는 유대인이 아닌 그리스 혈통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간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이스라엘의 신은 예수의 아버지인 그 신과 다르고, 십계명은 기독교의 교훈에 있는 자비와 사랑을 결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바그너는 또한 불교에 매료되었고, 여러 해 동안 불교 오페라인 "승리자"(Die Sieger)를 구상했고, 이것은 붓다의 마지막 여행을 비유한 Sârdûla Karnavadanaan에 기초할 계획이었다.”(위키백과)라고 설명되어 있다.
바그너가 구상하고 한 오페라 승리자는 부처님의 마지막 여행에 대한 것이었다. 마치 디가니까야에서 마하빠리닙바나경(D16)이 연상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다름 아닌 생과 사의 승리에 대한 것이다. 부처님의 열반은 불사이며 동시에 불생이기 때문이다.
바그너 음악은 후대 악용 되었다. 나치에 의해 전용된 것이다. 이는 “히틀러는 바그너 음악의 숭배자였고, 바그너의 음악과 독일인 국가(1871년 이전에는 형식적인 정체성이 없었던 국가)에 대한 히틀러 자신의 영웅적인 신화를 융합할 길을 물색했다.”라는 설명에서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나치의 뉘른베르크 집회는 매번 마이스터징거 서곡 연주로 문을 연 것이 대표적이다.
오늘날 니체의 철학은 잘 알려져 있다. 시대를 앞서간 인물인 니체는 백 년 후에 자신의 저작물이 인정받을 것이라고 했다. 니체 역시 불교에 매료 되었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말했다. 아니 니체는 신을 죽여 버렸던 것이다. 이런 배경에는 어쩌면 불교가 있었는지 모른다. 이는 니체에 대하여 “철학자 니체조차도 자신이 헬레니스트이지만 그의 안티그리스도에서 불교가 기독교보다 백 배는 더 현실적이라고 말한다.”(51쪽)라고 표현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래서일까 니체는 “불교는 우리가 역사상 유일하게 아는 실증주의적 종교이다.”라고 말했다.
소설 데미안과 맛지마니까야
냐나띨로까 스님의 생애를 보면 독일불교의 역사가 간단히 소개 되어 있다. 19세기 중반에 불교가 소개 되었는데 처음에는 대승불교이었다가 차츰 테라와다불교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책에서는 기성종교인 기독교와 비교된 장면도 발견된다. 이는 냐나띨로까에 대하여“이기적인 기독교의 사랑 대신에 그는 불교의 자애(metta) 즉 모든 중생에 대한 보편적인 선한 의지의 감정을 옹호했다.”(51-52쪽)라고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불교는 낡고 오래되고 케케묵은 이미지이다. 그래서일까 미국에서 기독교가 들어 왔을 때 삽시간에 퍼졌다. 이는 기독교가 문명의 종교라는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정반대로 기독교가 낡고 오래되고 케케묵은 이미지였다. 반대로 불교는 매우 합리적이고 문명적인 종교로 인식되었다. 그 결과 수많은 철학자들이 불교를 받아 들였다. 이는 경전이 번역되어서 소개된 영향이 매우 크다.
독일에서 불교는 칼 오이겐 노이만의 영향이 크다. 이는 노이만이 1892년에 불교선집을 출판했고 다음 해에 법구경을 번역해서 출판했기 때문이다. 이런 저작물은 아마 그때 당시 독일 지성인들에게 강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노이만은 맛지마니까야, 테라가타, 테리가타, 수타니파타, 디가니까야를 독역했다. 이 중에서 맛지마니까야는 1902년에 완역되었다. 우리나라보다 무려 백년이 빠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번역은 세계적인 문호 헤르만 헤세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 중에 데미안이 있다. 데미안은 맛지마니까야 병아리부화비유가 모티브가 되었다.
병아리부화비유는 맛지마니까야 16번경인 ‘마음의 황무지에 대한 경’에 실려 있다. 이는 “수행승들이여, 또한 수행승이 이와 같이 용맹을 수반하는 열다섯 가지 조건을 성취하면 그는 껍질을 깨고 나올 수 있으며, 올바로 깨달을 수 있으며, 위없는 안온을 얻을 수 있다.”(M16)라는 내용을 말한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이 발표된 것은 1916년이다. 젊은 헤르만 헤세가 삼촌 집에서 맛지마니까야를 보고 영감을 얻어 소설 데미안을 쓴 것이다. 소설에서 “거듭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상을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했는데 이 말은 “그는 껍질을 깨고 나올 수 있으며, 올바로 깨달을 수 있으며, 위없는 안온을 얻을 수 있다.”(M16)라는 부처님 가르침과 일치한다.
독일 불교역사는 유럽 불교역사
독일의 불교역사는 유럽의 불교역사와도 같다. 영국에 리스 데이비스에 의한 빠알리성전협회가 있기는 하지만 독일에서 활발한 번역이 이루어졌다. 칼 오이겐 노이만을 비롯하여 빌헬름 가이거, 칼 자이덴슈튀커, 그리고 독일출신 스리랑카 수행승 냐나띨로까가 잘 알려져 있다.
빌헬름 가이거는 상윳따니까야 1권을 독역했다. 칼 자이덴슈튀커는 우다나(감흥어)와 이띠웃따까(여시어경)를 독역했다. 그리고 냐나띨로까는 앙굿따라니까야, 밀린다팡하, 뿍갈라빤냐띠, 위숫디막가를 번역했다.
오늘날 빠알리경전 번역은 빅쿠보디의 영역이 잘 알려져 있다. 빅쿠보디는 미국인으로 스승은 냐나뽀니까이다. 냐나뽀니까의 스승은 냐나띨로까이기 때문에 빅쿠보디에게 있어서 냐나띨로까는 할아버지뻘 된다. 그러나 빅쿠보디는 생전의 냐나띨로까를 만나지 못했다. 냐나띨로까는 1957년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빠알리경전 번역의 맥은 빅쿠보디가 계승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런데 빠알리어 번역에 영역이나 독역, 일역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에도 두 종류의 번역서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와 초기불전연구원의 번역서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의 전재성 선생은 독일에서 유학했다. 유학시절 거지성자로 알려져 있는 페터 노이야를 만나고서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다. 그때 당시 페터 선생은 노이만과 냐나띨로까가 독역한 경전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재성 선생은 사부니까야를 완역했다. 그리고 쿳다까니까야 대부분을 번역했다. 현재 밀린다팡하를 번역 중에 있다. 독일에서는 이미 백년 전에 번역되었던 것이다.
불교인이라면 경전에 근거해야
한국불교에서 불교의 이미지는 낡고 오래되고 케케묵은 이미지이다. 이렇게 된 것은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이 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알면 불교는 더 이상 낡고 오래되고 케케묵은 이미지가 될 수 없다. 마치 19세기 독일에 처음 불교가 소개 되었을 때처럼 신선한 이미지가 될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은 잘 전승되어 왔다. 오늘날 쉽게 원음을 접할 수 있다. 이는 선각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런 행복을 오늘날 한국에서도 누리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여전히 니까야는 낯선 것이다.
아직까지 한국불교에서는 니까야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일까 불교 아닌 것이 불교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윤회청정설이다.
스님은 개와 함께 산다. 개는 한두달 지나면 새끼를 날 것이다. 이렇게 되었을 때 고요한 산중에는 강아지로 가득할 것이다. 이른바 개판이 되는 것이다.
스님은 자유를 바란다. 무엇이든지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다른 말로 자연스럽게 살아야 한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무위를 말한다. 개가 새끼를 갖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무위를 말한다. 함이 없는 함이라는 것이다. 이런 논리를 적용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하는 것이 된다. 배가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면 된다. 현명한 자나 어리석은 자나 똑 같은 것이 된다. 이는 다름 아닌 윤회청정설이다.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을 알려면 초기경전을 보아야 한다. 경전을 보지 않으면 윤회청정설과 같은 사견에 지배 받게 된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사람도 사견이 된다.
불교인이라면 경전에 근거해야 한다. 경전에 근거해서 말하고 경전에 근거해서 써야 한다. 무위라는 것도 함이 없는 함이 아니라 짓지 않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며 유위적 조작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아상카라, 즉 무위인 것이다.
2024-04-16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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