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다팡하 교정작업 참여
수행자를 만나는 것은 기쁜 일이다. 수타니파타 ‘망갈라경’(Sn.2.4)에서도 “수행자를 만나서 가르침을 서로 논의하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Stn.265)라고 했다.
어제 한 수행자를 만났다. 진월스님이다.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데 한국에 오셨기 때문이다.
스님이 만나자고 했다.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일년 삼백육십오일 백권당에 찾아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또한 만나자고 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럼에도 스님이 만남을 요청한 것이다.
인사동에서 스님을 만났다. 스님이 잘 아는 ‘심우방’이라는 이름을 가진 전통찻집에서 만났다. 나이가 여든이 넘어 보이는 자상한 얼굴의 여주인이 반겨 주었다.
스님과의 대화는 오후 3시부터 두 시간 가량 진행되었다. 가벼운 이야기 위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법담이나 수행담은 하지 않았다. 일상적인 삶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했다.
스님을 만났을 때 봉투를 전달했다. 오만원권 두 개를 넣었다. 능력껏 준비한 것이다. 그리고 종이에다 “건강하시고 아름답고 행복하시고 장수하시길 기원합니다.”라는 문구를 만년필로 썼는데 이 것도 함께 넣어서 전달했다.
스님은 내게 선물을 했다. 그것은 스님이 지은 법구경 ‘깨침의 노래’이다. 이 책은 한문과 영문으로 된 것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3, 4, 5조의 운율로 되어 있다.
3, 4, 5조는 세 글자, 네 글자, 다섯 글자 운율로 된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법구경 1번 게송을 보면 “마음은(3) 모든 것의(4) 뿌리와 같고(5)/ 모든 일(3) 앞서가는(4) 머리와 같네(5)”라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3, 4, 5조를 유지한 것이다.
진월스님은 어떤 분일까? 법구경 ‘깨침의 노래’ 서문을 읽어 보니 스님의 출가이유가 실려 있다.
스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시기 막연한 호기심에 해인사를 방문했다고 한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서 출가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하여 “전생의 숙연”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스님은 1968년 가야산 해인총림에 입산했다.
수행자의 삶을 살면 다음 생에서도 수행자의 삶을 살 가능성이 높다. 이는 청정도론 오픈테마와 다름 없는 “계행을 확립하고 지혜를 갖춘 사람이 선정과 지혜를 닦네.”(S1.23)라는 게송에서도 알 수 있다.
부처님 당시에 어떤 이는 부처님 게송 하나만 듣고서도 깨달았다. 이를 약설지자(略設知者)라고 한다. 또는 생이지자(生而知者)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지혜는 갖추고 태어나는 것이다.
사람은 생긴모습만큼이나 마음의 성향도 다양하다. 그 중에는 태어날 때부터 갖춘 자도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 청정도론에서는“지혜를 갖춘 자는 세 가지 원인에 의한 업생적 결생의 지혜”(Vism.1.7)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전생에 무탐, 무진, 무치의 수행을 한 자가 이 세 가지를 원인으로 해서 금생에 태어나는 것이다.
출가수행자는 일반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무엇보다 머리를 깍았다는 것에 존경한다. 왜 그런가? 일반사람들은 머리 깍을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세속적 욕망의 포기와도 같다. 설령 계행이 엉망인 스님이라고 해도 머리를 깍은 것 하나만 해도 충분히 예경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스님은 재가자가 수행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높이 평가했다. 생업을 가진 자가 글도 쓰고 좌선을 하는 등 수행자의 삶을 사는 것에 대하여 타인의 귀감이 될 것이라고 했다.
어제는 사월 두 번째 금요니까야모임이 있는 날이다. 진월스님과의 만남이 끝나자 고양시에 있는 한국빠알리성전협회로 향했다. 진월스님은 전재성 선생에 주라고 경옥고를 맡겼다.
이것저것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 많다. 글도 의무적으로 쓰고, 경전도 의무적으로 읽는다. 좌선도 의무적으로 하고 책도 의무적으로 만든다. 금요니까야모임도 의무적으로 참석한다.
사월 두 번째 니까야모임에는 의무적으로 참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고정멤버이다. 여기에 새로운 사람들이 있다. 새로운 사람들 대부분은 한두 번 나오다가 만다. 이번 모임에서는 장계영, 홍광순, 유경민, 방기연, 안진현, 김종선,이경수 선생이 참석했다. 이경수 선생은 처음 왔다.
이번에 전재성 선생은 밀린다왕문경을 완역했다. 팔개월 걸려서 번역했다고 한다. 그러나 완역했다고 하여 다 끝난 것은 아니다. 교정작업이 남아 있다.
전재성 선생은 교정본을 준비 했다. 세 권이다. 금요니까야모임 멤버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다. 이번 번역 교정에는 본인을 비롯하여 장계영, 안진현 선생이 참여한다.
무엇이든지 하나의 과제를 완성하면 후련하다. 전재성 선생도 마음이 후련해 보이는 것 같았다. 밀린다왕문경 번역을 마쳤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래서일까 평소와 다르게 활기가 넘쳐 보였다.
전재성 선생은 모임이 시작되자 삼십분가량 밀린다왕문경에 대하여 설명했다. 약 800페이지정도 되는 분량이라고 한다. 빠알리원문을 번역한 것은 한국에서 최초라고 했다.
전재성 선생은 밀린다왕문경을 번역하면서 놀란 것이 많았다고 한다. 그 중에 하나는 그리스와 문명교류에 대한 것이다. 놀랍게도 부처님 탄생 이전에도 인도와 그리스와 문명적 교류가 있었다는 것이다!
서양철학의 시발점은 그리스이다. 그런데 그리스철학은 불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 중에 하나가 피로니즘(Pyrronism)이다.
전재성 선생에 따르면 피론은 고대 그리스의 고행자였다. 이는 인도의 고행주의에서 영향 받은 것이다. 철학자들이 알렉산더를 찬양할 때 오로지 피론만이 비판했다고 한다.
서양철학의 원류는 그리스이고, 그리스철학의 원류는 인도라고 볼 수 있다. 그 중에 하나가 판단중지에 대한 것이다. 감각기관은 정확하지 않아서 판단을 유보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있는 그대로 현상을 보는 것이다. 이를 서양철학에서는 현상학이라고 말한다.
전재성 선생에 따르면 이번에 밀린다왕문경을 번역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동서양이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인도문명과 이집트문명과 그리스문명이 고립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고대에도 활발히 교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리스에서 플라톤 등과 같은 철학자들도 윤회를 믿고 있었다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전재성 선생으로부터 들은 것 중에 몰랐던 사실도 있다. 밀린다팡하에서 메난드로스왕은 인도를 지켜준 구세주와도 같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스키타이와 같은 북방민족의 침입으로부터 인도침입을 막아 준 것이다.
밀린다왕문경 교정본을 열어 보았다. 제목은 ‘밀린다팡하’로 되어 있다. 미리 써 놓은 ‘머리말’을 보니 한별병원 최훈동 원장의 권유로 번역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밀린다팡하는 불교에 있어서 가장 흥미진진한 철학적 대화라고 한다. 오래전부터 불교인들에게는 고전으로 알려졌는데 특히 미얀마에서는 쿳다까니까야에 포함시켜 놓았다.
전재성 선생의 머리말에 따르면 밀린다팡하는 흥미 있는 주제가 많다. 대표적으로 윤회하는 영혼의 주체문제 같은 것이다. 서양에서는 영혼의 윤회를 말하지만 불교에서는 무아윤회를 말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 등에 대하여 대화 했을 때 수행승 나가쎄나가 언제나 승리했다는 것이다. 어떤 것인가? 윤회에 대한 다음과 같은 대화가 있다.
[밀린다 왕]“존자 나가쎄나여, 그대가 ‘윤회’라고 말하는 그 윤회는 어떠한 것입니까?”
[나가쎄나] “대왕이여, 이 세상에 태어나 이 세상에서 죽어서 이세상에 죽은 뒤에 다른 곳에 태어난 자는, 저 세상에서 태어나 저 세상에서 죽어서 저 세상에 죽은 뒤에 다른 곳에 태어납니다. 대왕이여, 이와 같이 윤회가 있습니다.”
[밀린다 왕]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나가쎄나] “대왕이여, 어떠한 사람이라도 망고 열매를 먹고 씨앗을 심으면, 그곳에서 커다란 망고 나무가 생겨나고 열매를 맺으면, 그때 그 사람이 거기서도 망고 열매를 먹고 씨앗을 심으면, 거기서도 커다란 망고나무가 생겨나 망고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 나무들의 끝은 시설되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이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태어나 이 세상에서 죽어서 이 세상에 죽은 뒤에 다른 곳에 태어난 자는, 저 세상에서 태어나 저 세상에서 죽어서 저 세상에 죽은 뒤에 다른 곳에 태어납니다. 대왕이여, 이와 같이 윤회가 있습니다.”
[밀린다 왕] “존자 나가쎄나여, 현명하십니다.”
(Mil.77, 밀린다팡하 제3장)
밀린다팡하는 두 달 이후에 출간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두 달 이내에 교정을 마쳐야 한다. 사무실 책상에 놓고 틈만 나면 열어 보아야 한다. 오자, 탈자, 그리고 표현이 이상한 것 등을 잡아 내야 한다.
교정작업을 하면 노트를 하게 된다. 교정과정에서 새기고 싶은 구절이 많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컴퓨터에 자판을 쳐서 ‘교정노트’를 만들었으나 이번에는 구글 번역기를 이용하려 한다.
구글번역기를 애용하고 있다. 번역용도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저장용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사진 찍듯이 촬영하면 텍스트가 복사 되는데 이를 블로그에 가져다 붙이기만 하면 된다.
교정을 하게 되면 의무적으로 경전을 읽게 된다. 경전읽기에 이것 보다 더 좋은 찬스는 없다. 금요니까야모임에 참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름이 성전에 올려진다는 것이다. 가문의 영광이라 아니할 수 없다.
2024-04-27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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