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근불가원

이젠 점심시간이 두렵지 않다

담마다사 이병욱 2024. 6. 3. 13:39

이젠 점심시간이 두렵지 않다
 
 
최근 몇 개월 나에게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그것은 보수 유튜브를 즐겨 듣는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오늘 오전 마무리 작업을 했다. 밀린 일을 처리하고자 속도전 했다. 보통 일터에 오자마자 글을 써야 하나 그렇게 하지 않고 일부터 손에 잡은 것이다.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을 때 머리를 식히고자 했다. 이럴 때 공원에 간다. 가까이 있는 명학공원이다.
 
유월의 햇살이 따사롭다. 이제 초여름이 되었다. 싱그럽고 상쾌한 공원의 오전이다. 축구장 만한 넓이를 가진 공원길을 돌기 시작했다.
 
공원을 돌 때 가만 있지 않는다. 페이스북도 하고 유튜브도 듣는다. 페이스북 글을 읽어 보고 ‘좋아요’를 눌러 준다.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또한 짤막한 댓글도 단다.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요즘 유튜브를 볼 때 주로 보수 것을 본다. 자주 보는 것은 조갑제, 정규제, 문갑식이다.

조갑제와 정규재는 처음부터 반윤이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친윤이었지만 반윤으로 돌아선 것도있다는 것이다. 문갑식tv가 그렇다.
 
오늘 명학공원을 돌면서 하나의 보수 유튜브를 들었다. 그것은 ‘카메라출동’이다. 구독자는 고작 2.52만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꼽힌 것은 옳은 말을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가장 뼈아픈 것이 있다. 그것은 측근이 배신하는 것이다. 보수유튜브의 배신도 이에 해당될 것이다. 유튜브 카메라출동도 처음에는 윤을 지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총선이 참패에 이르자 돌아선 것 같다.
 
오늘 카메라출동에서 이상로는 윤석열의 어퍼컷에 대하여 이야기 했다. 이를 ‘우리를 비참하게 만든 윤석열의 사기 어퍼컷’이라는 제목을 달아 유혹했다.
 
보수측 유튜브를 들어 보면 공통 레파토리가 있다. 그것은 윤이 잘 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전정권에 대한 적폐청산이라 한다. 그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것은 문재인을 잡아 쳐 넣고 이재명을 잡아 쳐 넣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수유튜브는 분노한다. 오늘 명학공원에서 들은 것 중 일부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속았어요 우리는. 우리는 윤석열 후보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이렇게 어퍼컷을 날릴 때 저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 주면 우리국민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해줄 수 있을 것처럼 우리가 믿었습니다. 저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면 하늘의 별과 달을 다 따줄 것 같은 포즈였습니다. 여기에 속은 겁니다. 사기였어요. 여러분, 사기였습니다. 해준 거 뭐가 있어요? 윤석열이 해준 것이 뭐가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어요.”(카메라출동, 우리를 비참하게 만든 윤석열의 사기 어퍼컷, 이상로의 아침뉴스, 13-17분 부분)
 
 
유튜브는 속았다고 말했다. 그것도 보수유튜버가 보수층 사람들을 향해서 “사기였어요. 여러분, 사기였습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요즘 보수 유튜브를 듣다 보면 점차 반윤으로 돌아서고 있는 것 같다. 노골적으로 윤을 비판한다. 대선 때 윤석열의 어퍼컷 모션을 보고서 시원하게 날려 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윤은 검사시절 사람 잡는 선수였다. 보수층 사람들은 윤이 대통령이 되면 문재인, 이재명을 잡아 가두기 기대했었던 것 같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 것이다. 이제 분노로 표출된 것 같다. 새로 선출된 국민의 힘 국회의원 모임에서 어퍼컷을 날린 것에 대하여 기대할 것이 없다는 식으로 말한 것이다.
 
윤은 야당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보수층 사람들이 돌아서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아니 반은 돌아 선 것 같다.
 
윤의 몰락이 머지 않았다. 여론을 주도하는 보수 유튜버가 돌아선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지는 21%이고 반대는 70%에 달한다. 국민대다수가 반대하는 것이다.
 
왜 똑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이명박이 집권 했을 때 실망했었다. 그때도 뉴스를 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오래 가지 않았다.
 
똑 같은 일은 또 있다. 전두환이 정권을 잡았을 때이다. 그 때가 1980년 5월이다.
 
전두환이 5.17로 정권을 잡았을 때 TV뉴스를 보지 않았다. 신문도 보지 않았다. 이명박 때도 그랬다. 지금도 그렇다. 이십대 때부터 지금 육십대 때까지 똑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한 때 역사의 발전을 믿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결국 앞으로 굴러 갈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설령 일보후퇴할지라도 이보전진을 위한 것으로 보았다. 전두환 때 실망이 극에 달했다. 그러나 1987년 6월에 해 냈다. 민중이 승리한 것이다. 이것으로 끝난 줄 알았다. 이후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명박이 대통령 되었을 때 실망했다. 다시 역사가 후진 하는 것 같았다. 더구나 박근혜로 이어졌다. 마침내 문재인이 되었을 때 이보전진하는 것처럼 보였다.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엄청나게 실망했다.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라는 말이 와 닿지 않았다.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전두환 때부터 윤석열에 이르기까지 변화를 지켜 보았다. 이십대 때부터 육십대에 이르기 까지 역사를 보니 역사의 진전에 대하여 의문을 갖게 되었다.
 
역사는 정말 발전하는 것일까? 지난 역사를 보면 발전하고 있음에 틀림 없다. 노예제에서 봉건제로, 봉건제에서 민주제로 발전해 온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전두환, 이명박, 윤석열 같은 사람이 출현하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 해야 할까?
 
한국의 정치는 역동적이다. 또한 한국의 정치는 드라마틱하다. 이에 대하여 어떤 이는 한국의 민주주의의 발전이라고 말한다. 전세계적으로 여에서 야로, 야에서 여로, 또는 보수에서 진보로, 진보에서 보수로 정권교체가 평화롭게 이루어지는 나라는 드물다는 것이다.
 
나는 보수인가 진보인가? 이승만과 박정희를 받아 들이지 않는 한 나는 보수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진보인가? 김대중, 노무현을 받아 들이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진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에서 진보는 진정한 의미에서 진보가 될 수 없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진보는 성장할 수 없다. 이렇게 본다면 민주당이나 국힘은 모두 보수정당의 범주로 보아야 한다.
 
이념으로 나라가 갈리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내편과 네편으로 갈렸을 때 긴장과 갈등, 대립은 피할 수 없다. 심하면 폭력적 사태가 발생된다.
 
이념적으로 민주당이다. 유권자가 된 이래 이제까지 한번도 보수측 정당에 표를 주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일까 보수측이 정권을 잡으면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을 겪는다. 이런 것도 이념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의 발전을 믿는다. 그러나 요즘은 유보적이다. 왜 그런가? 인간은 욕망으로 세팅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욕계에 살고 있다. 삼계 가운데 욕망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오온에 집착된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에 욕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욕망이 있는 한 욕계를 떠날 수 없다. 갖가지 욕망 중에는 권력욕도 있다.
 
중국 고대왕조를 보면 똑 같은 행위가 반복된다. 우리나라 왕조도 다르지 않다. 그것은 다름 아닌 권력욕에 따른 권력투쟁이다.
 
권력은 부모와 자식간에도 나눌 수 없다고 한다. 초기경전을 보면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권력을 찬탈하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현상은 어느 나라에서나 어느 시대에서나 있었다. 현대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권력욕은 과거에도 있었다. 아들이 아버지 권력을 찬탈하는 일은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
 
부처님은 역사를 어떻게 보았을까? 초기경전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디가니까야 ‘세계의 기원에 대한 경(aggaññasutta)’(D27)이 그것이다. 세상이 생겨난 것에 대하여 맛에 대한 갈애로부터 시작 되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계급이 생겨난 것에 대해서는 탐욕으로 설명되어 있다.
 
인간에게 탐욕이 있는 한 결코 욕망의 세계를 넘어설 수 없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먼 미래에도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현재에서 보는 것처럼 미래에도 별다름이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 틀림 없다. 그러나 혁명적인 발전은 있을 수 없다. 탐욕의 뿌리를 뽑아 버리기 전에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은 욕망의 세계를 떠나라고 했다. 어떻게 떠나는가? 이는 초기경전 도처에서 볼 수 있는 염오, 이욕, 해탈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수행승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이와 같이 보아서 물질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느낌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지각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형성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의식에서도 싫어하여 떠 난다. 싫어하여 떠나면 사라지고, 사라지면 해탈한다. 그가 해탈할 때 ‘해탈되었다’는 궁극의 앎이 생겨나서, ‘태어남은 부서졌고, 청정 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은 다 마쳤으니,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S22.12)
 
 
부처님은 욕계를 떠나라고 했다. 욕계에 남아서 감각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다. 초기경전 도처에서 이 욕계를 “싫어하여 떠나 사라져라.”라고 말한 것이다.
 
대선이 끝난지 2년이 넘었다. 그날 이후 뉴스를 보지 않았다. 집에서는 TV케이블을 아예 빼 버렸다. 인터넷 뉴스도 보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전달 되는 뉴스를 일방적으로 차단한 것이다.
 
세상과 인연 끊고 살기가 쉽지 않다. 뉴스를 보지 않고자 했으나 식당에 가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뉴스 채널에서 흘러 나오는 윤과 관련된 뉴스는 죽어도 보기 싫었다. 그 결과 뉴스가 있는 식당을 피하게 되었다.
 
뉴스를 피해 다닌지 오래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피해 다니지 않는다. 뉴스가 있는 식당에도 들어 간다. 더 이상 뉴스가 두렵지 않은 것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뉴스를 피해 다닐 때는 윤과 관련된 뉴스가 많았다. 그것도 길게 뽑아 내었다. 참으로 고역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총선이후 변화된 것이다.
 
어떤 현상이든지 항상하지 않다. 이 세상에 무상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던 윤과 관련된 뉴스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이제는 더 이상 점심시간이 두렵지 않다.
 
 
2024-06-0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