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일하면서 수행하고 수행하면서 일하기

담마다사 이병욱 2024. 7. 30. 11:39

일하면서 수행하고 수행하면서 일하기

 

 

집중의 효과는 대단했다. 오늘 아침 여덟 시 반부터 아홉 시 반까지 한시간 집중했다. 가장 난해한 수정작업을 한 것이다. 그것도 여섯 모델이다. 명상에 따른 집중의 힘이다.

 

재가우안거 11일째이다. 아침 글쓰기 유혹을 뿌리치고 자리에 앉았다. 행선을 끝낸 다음에 방석에 앉은 것이다. 삼십분 집중하기로 했다.

 

집중이 늘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조금만 방심해도 생각이 치고 들어 온다. 명칭을 붙여 보기도 한다. “부품, 부품, 부품, 꺼짐, 꺼짐, 꺼짐, 닿음, 닿음, 닿음,…”이라고 명칭 붙여 보았다.

 

배의 부품과 꺼짐을 관찰한다. 마하시방식 위빠사나이다. 복부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은 몸관찰에 해당되고 풍대(風大)에 대한 것이다.

 

몸관찰을 하면 정신과 물질, 물질과 정신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동시는 아니다. 시차는 있다. 배의 부품은 물질에 대한 것이고, 이런 부품을 아는 것은 정신에 대한 것이다. 배의 부품과 꺼짐, 그리고 엉덩이 닿음을 관찰함으로 인하여 정신과 물질을 새기는 것이다. 여기서 새김은 빠알리 용어 싸띠(sati)를 말한다.

 

어떻게 해야 새김이 분명해질 수 있을까? 마음이 대낮같이 밝으면 새김이 명료해질 수 있다. 소음이 나지 않으면 역시 새김이 명료해질 수 있다.

 

이번 재가우안거에서는 삼십분 앉아 있기로 했다. 본래 한시간 앉아 있어야 하나 한시간은 너무 길다. 선원에 들어가 집중수행한다면 한시간 앉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생업이 있는 재가수행자에게는 한시간은 너무 길다. 삼십분이 적당하다.

 

한시간은 지루하다. 작년 재가우안거 때 한시간 앉아 있었다. 마치 인내력 테스트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삼십분은 금방 지나가는 것 같다.

 

삼십분 좌선 내내 집중 되는 것은 아니다. 생각이 치고 들어 올 때 좌선을 포기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집중이 잘 되어서 다른 상태가 되면 싹 달아난다. 그 상태로 있고 싶어 진다.

 

망상은 명상하는데 있어서 최대의 적이다. 처음 자리에 앉았을 때 망상에 시달린다면 명칭을 붙여 보는 것도 좋다. 마하시 사야도도 초보자에게 장려 하는 방식이다. 명칭을 붙이면 생각이 치고 들어 오는 것을 어느 정도 방지한다.

 

명상한지 오래 되었다. 시기적으로는 2008년에 처음 했다. 이후 간헐적으로 하다가 사오년전부터는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코로나가 막 시작 되는 해에 사무실 공간을 두 개로 나누었다. 칸막이를 이용하여 창측 공간은 책상과 집기를 놓았다. 출입문 쪽 공안은 명상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자리를 만들어 놓으니 아무 때나 앉을 수 있게 되었다.

 

명상에 대한 이론은 알고 있다. 위빠사나 16단계 지혜가 대표적이다. 각단계 명칭은 외우다시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이론으로 이해하는 것과 실제로 해보는 것은 다른 것이다.

 

테라와다불교에서 명상과 관련하여 강조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교학과 실천과 통찰에 대한 것이다. 이를 빠알리어로 빠리얏띠, 빠띠빳띠, 빠띠웨다라고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빠리얏띠이다. 바르게 이해한 것을 바르게 실천하는 것은 빠띠빳띠이다. 바르게 실천하면 통찰이 있게 되는데 이를 빠띠웨다라고 한다.

 

위빠사나 16단계 지혜 중에서 가장 기본은 1단계와 2단계이다.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는 지혜와 조건을 파악하는 지혜를 말한다. 이 두 가지가 되어 있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

 

정신과 물질을 구분해야 한다. 정신은 정신이고 물질은 물질인 것이다. 행선을 할 때 발을 움직이는 것도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여 파악하기 위한 것이고, 좌선할 때 배의 부품과 꺼짐을 관찰하는 것도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여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마하시 방식은 철저하게 몸관찰위주이다. 느낌이나 마음을 주로 관찰하는 것이 아니다. 몸을 이용하여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여 파악하는 것이다.

 

명상이 오로지 마음만을 관찰한다면 어떻게 될까? 몸관찰은 되지 않는다. 명상이 오로지 느낌만 관찰한다면 어떻게 될까? 역시 몸관찰이 되지 않는다. 행선에서 발의 움직임을 새기는 것도 몸관찰에 대한 것이고, 좌선에서 배의 부품과 꺼짐을 새기는 것도 몸관찰에 대한 것이다.

 

위빠사나 16단계 수행의 꽃은 무엇일까? 아마도 4단계 생멸의 지혜일 것이다. 이 지혜에 이르면 수행에 있어서 큰 진전을 이룬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위빠사나 몇 단계에 있을까? 십여년 앉아 있어 보았지만 늘 제자리 걸음인 것 같다. 그런 한편 생멸의 지혜에 대한 꿈이 있다.

 

생멸의 지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하여 마하시 사야도는 정신과 물질의 처음과 끝을 보는 것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새길 때마다 계속해서 새겨지는 물질-정신 대상들의 처음과 끝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아리야와사법문, 233)라고 한 것이다.

 

생멸의 지혜는 정신과 물질의 처음과 끝을 분명히 아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이 깊게 남았다. 이는 이론적으로 이해한 것이다. 빠리얏띠에 해당된다. 이론적으로 안 것을 실천하면 빠띠빳띠가 된다. 실천해서 통찰했다면 생멸의 지혜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것은 빠띠웨다가 된다.

 

이론적으로 아는 것과 실제로 해서 아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생멸의 지혜가 정신과물질의 처음과 끝을 분명히 아는 것이라면 이를 명상을 통해서 보아야 한다.

 

마하시 사야도에 따르면 생멸의 지혜에 이르면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마하시 사야도는 이 단계에서는 빛도 경험합니다.”라고 말했다. 니밋따와 같은 마음으로 만들어 내는 물질(현상)도 볼 수 있음을 말한다.

 

빛을 본다는 것은 수행이 큰 진전 되었음을 말한다. 빛을 보는 등 열 가지 위빠사나 경계가 있기는 하지만 정진을 한 자에게만 보여지는 일종의 증표와 같은 것이다.

 

좌선을 할 때 배에 집중한다. 눈을 감고 가만 앉아 있으면 배가 불룩불룩한다. 이것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밝으면 더욱더 분명해진다. 마음이 어두어지면 생각이 치고 들어 온다. 마음을 밝게 할 필요가 있다.

 

좌선을 하다보면 순간적으로 마음이 밝아 질 때가 있다. 마치 어두운 방에 전구가 켜지는 것과 같다. 이런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마음을 그쪽으로 두는 것이다.

 

마음이 밝아 지면 기회가 된다. 계속 밀어 부쳐야 한다. 그러다 보면 훤해 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마치 개미가 지나 가는 것도 볼 수 있을 정도로 훤함을 보았을 때 배의 부품과 꺼짐을 보면 새김이 선명해질 것이다. 부품과 꺼짐의 일어남과 사라짐도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이론 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오늘 아침 삼십분 좌선을 끝내고 일을 했다. 명상에서 형성된 집중을 업무에 적용하고자 한 것이다.

 

일감이 있으면 일을 한다. 수정이 들어와도 해 주어야 한다. 이번에 들어 온 수정은 까다로운 것이다. 회로도가 수정되었기 때문이다.

 

인쇄회로기판설계로 먹고 산다. 인쇄회로기판을 영문 이니셜로 ‘PCB’라고 한다. PCB설계 해서 먹고 사는 것이다.

 

PCB설계를 하려면 도면이 필요하다. 고객으로부터 회로도를 받아서 진행한다. 회로도 수정이 있을 때 가장 까다롭다.

 

 

어떤 일이든지 노우하우가 있다. 자신만 알고 있는 비법이 있는 것이다. 인쇄회로기판설계업도 비법이 없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회로도 수정에서 능력이 발휘된다.

 

회로도수정은 PCB도면 수정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과정이 매우 복잡하다는 것이다. 이런 기법은 교육기관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다.

 

여기 어려운 기술이 있다. 장인만 알고 있는 기법이고 노우하우이다. 제자들은 스승으로부터 이런 기술을 배우고자 한다.

 

유명 식당이 있다. 그 식당만의 독특한 맛이 있어서 맛집으로 불리운다. 그런데 이 비법을 개발한 사람은 자식에게도 알려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이가 들어 그만 두게 되었을 때 자식이나 며느리에게 비법을 알려 줄 것이다.

 

어느 회사이든지 장인이 있기 마련이다. 나이 지긋한 장인이 있어서 중심을 잡아 나간다. 회사가 존속하는 것은 장인이 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어느 회사이든지 키맨은 있는 것이다.

 

인쇄회로기판 설계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하나의 기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것은 회로수정기법이다. 이 기법 하나로 이제까지 먹고 살고 있다.

 

2006년 말 어느 인쇄회로기판설계 업체에 들어갔다. 더 이상 취직이 되지 이것저것 해 보다가 안되어서 잠시 삼개월 있었다. 그때 사십대 중반이 지난 나이에 월급 130만원 받고 일 했다. 그때 배운 기법을 기반으로 2007년 창업해서 지금까지 17년동안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일하면서 수행하고 수행하면서 일한다. 이런 삶을 산지 17년 째이다. 그 동안 고객사도 생겼다. 처음에는 키워드 광고해서 영업을 했으나 이제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몇 개 고객사가 있어서 주문을 주는 것이다.

 

사업은 확장되지 않았다. 2007년 일인사업자로 시작 했을 때와 다름 없다. 한번도 직원을 두지 않았다. 직원을 둘 정도로 일감이 많지 않은 것이다. 간신히 유지할 수 있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일인사업자가 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시간부자가 되었을 때 글쓰기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일하면서 글 쓰고 글 쓰면서 일하는 나날이 되었다. 지금은 어떤가?

 

어제 납품이 있었다. 납품된 것이 문제가 있어서 다시 만들어 주었다. 이런 경우 고스란히 손실이다. 그럼에도 납기는 지켜 주어야 한다.

 

사업에 있어서 납기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이는 신뢰와도 직결된다. 품질문제가 발생되었을 때 잘잘못을 따지기도 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납기이다. 원하는 날자에 가져다 주어야 계속 주문하게 될 것이다.

 

급하면 발로 뛰어야 한다. 어제가 그랬다. 인쇄회로기판을 일박이일 단납기로 제작진행 했는데 인천에서 이천까지 가져다 주어야 했다.

 

퀵서비스 기사를 기다리다 보면 시간이 지체될 수 있다. 오후 6시 전후로 가져다 주어야 한다. 이천 고객사는 이 샘플을 받아서 저녁에 제작한 다음에 다음날 베트남으로 보낼 것이라고 했다.

 

어제 오후 세 시에 글쓰기가 끝났다. 천장사 다녀 온 이야기를 쓴 것이다. 저녁 6시까지는 물건을 가져다 주어야 한다. 퀵서비스 기사를 기다리다 보면 오후 7시가 넘을 것 같았다. 그대로 있을 수 없었다. 인천 북항 근처 석남동으로 차를 몰았다.

 

인천에서 오후 450분에 물건을 수령했다. 이천에 있는 R사까지 1시간 10분 걸리는 것으로 네비가 찍혀 있었다. R사 담당에게 620분 약간 넘어서 도착할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담당은 조심해서 오십시오.”라고 말했다. 급하게 오지 말라는 것이다. 사고를 염려한 것이다.

 

물건은 수령되었다. 이제 전달하기만 하면 된다. 마치 속도전 하는 것 같았다.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인쇄회로기판제작업체는 인천 서구에 있다. 인천 시내를 가로 질러 제2인 경인 문학 인터체인지까지 가야 한다. 이 과정에 길이 막혔다.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속도가 났다. 평소에 다니지 않던 일차로를 이용하여 제한 최고속도까지 달렸다. 도중에 영동고속도로로 갈아 탔다.

 

시속 100키로를 유지하며 쉬지 않고 달렸다. 양지 인터체인지에서 빠져 나와 고객사에 도달했을 때 오후 6시 반이 되었다. 납기를 맞춘 것이다. 목숨을 건 질주를 했다.

 

지금 시간을 보니 1117분이다. 순간적으로 멍했다. 글쓰기도 속도전 했는데 오전인지 오후인지 잠시 햇갈렸다. 오전 11시 대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점심시간이 가까이 왔다. 이런 것도 집중이라면 집중일 것이다.

 

일하면서 수행하고 수행하면서 일한다. 마치 예비군에 대하여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한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재가수행자는 안거도 하고 일도 한다. 이렇게 나이 먹어서도 일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하는 일 없이 무위도식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것이다. 설령 일감이 없다고 하더라도 가만 있지 않는다. 글을 쓸 수도 있고, 책을 만들 수도 있다. 무엇보다 수행이다.

 

수행은 일상이 되어야 한다. 아침에 삼십분 좌선으로 시작하지만 이를 점심과 저녁으로 확대 해야 한다. 현재 점심 먹고 오후에 한차례 더 앉아 있는다. 그러나 저녁에 앉아 있기 힘들다.

 

저녁에도 앉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수행이 일상이 될 수 있다. 저녁에 들떠서 앉아 있지 못하는 이유는 유튜브 영향이 크다. 정치관련 유튜브를 보다 보면 마음이 혼란스러워진다.

 

오랜 세월 혼자 일해 왔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내리 17년 앉아 있다. 처음에는 일하면서 글 쓰고 글 쓰면서 일했다. 요즘은 수행이 추가 되었다. 특히 재가우안거 기간에는 일하면서 수행하고 수행하면서 일해야 한다.

 

 

2024-07-30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