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와나선원

일주일에 한번은 비워주는 것도, 일요포살날 오후금식하기

담마다사 이병욱 2024. 8. 5. 10:58

일주일에 한번은 비워주는 것도, 일요포살날 오후금식하기
 
 
가슴에 땀이 주루루 흘러 내린다. 아침임에도 체감온도는 30도가 넘는다. 더구나 습도는 80프로에 가깝다. 가슴골에 땀이 흘러 내릴 때 밀폐된 공간은 마치 한증막 같다.
 
재가우안거 17일째이다. 오늘도 변함 없이 자리에 앉았다. 행선을 십여분 한 후에 평좌했다. 삼십분 앉아 있어야 한다.
 
방석에 앉아 있는다고 해서 명상이 다 잘되는 것은 아니다. 한편의 드라마를 본 듯 할 때도 있다. 그 짧은 순간에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것이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배의 부품과 꺼짐에 집중해 본다.
 
좌선이 끝나면 글을 쓴다. 글 쓰는 것은 일상이다. 밥 먹는 것과 똑같다. 사람이 밥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듯이 글을 쓰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여기에 이제 명상을 추가한다.
 
글을 쓸 때 뉴스를 보지 않는다. 정치나 사회 관련 뉴스를 보았을 때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마음이 혼탁한 상태에서는 글이 나올 수 없다.
 
명상이 끝난 후에 글을 쓴다. 글쓰기 최상의 조건이 된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뉴스를 보지 않고 글을 쓰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다. 마음이 청정한 상태에서 쓰는 글은 진실에 가깝다.
 
오늘 글쓰기 주제는 정해져 있다. 아침 백권당 오는 길에 생각해 둔 것이다. 제목을 ‘일주일에 한번은 비워내야, 일요일 만큼은 출가수행자처럼 오후금식을’이라고 정했다.
 
글을 쓸 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제목을 정해놓고 쓰는 것과 글을 쓴 다음에 제목을 정하는 것을 말한다. 오늘은 전자가 되었다.
 
담마와나선원 포살법회
 
어제 담마와나선원에서 포살법회가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잘 볼 수 없었다. 올해 들어서 거의 보름단위로 시행되고 있다. 한국테라와다불교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일까?
 

 
포살 없는 승가를 상상할 수 없다. 매달 보름 단위로 포살 하게 되어 있다. 남방 테라와다 승가에서는 당연히 시행하는 것이다.
 
한국테라와다불교는 창립된지 오래 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2009년에 출범했다. 이제 15년된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시마홀’ 하나 없다는 것이다.
 
시마홀은 출가승들이 포살하는 포살당이다. 미얀마 국제선원에서는 어느 선원이나 포살당이 있어서 보름마다 포살을 행한다. 실제로 2019년 담마마마까 선원에서 포살하는 것을 보았다.
 
포살 없는 승가를 상상할 수 없다. 승가에 포살이 없다면 성자도 출현하지 않을 것이다. 보름에 한번씩 모여서 계목을 합송하고 허물을 참회하는 자리가 있어야 성자가 출현할 수 있다.
 
불자들은 법회의식에서 삼귀의한다. 삼귀의에서 세 번째 의지 하는 것은 승가이다. 스님이 아니라 승가공동체를 말한다.
 
한국불교에서는 스님에게 귀의한다. 승보에 대하여 스님으로 보기 때문이다. 승보를 스님으로 보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스님이 스님에게 귀의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자자와 포살이 없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승가공동체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스님에게 의지하기 때문이다.
 
승가는 출가자의 공동체이다. 어떤 공동체이든지 규칙이 있어야 한다. 승가공동체 역시 규칙이 없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바로 율장이다. 율장에 근거하여 승가공동체가 유지된다.
 
2024년 8월 4일 담마와나선원에서 포살법회가 열렸다. 우안거가 시작되고 나서 처음 열린 포살법회이다. 음력으로는 7월 1일이다. 한국불교로 말하면 초하루 법회가 되는 것이다.
 
포살법회가 열리면 상가스님들이 참가한다. 이날 포살법회에서는 빤냐와로스님을 비롯하여, 빤냐완따스님, 위무띠스님, 떼짓따라스님, 빤냐왐사스님, 떼자사미스님, 케마짜라스님, 웃따마시리스님, 나타난다스님, 악가삿도스님, 냐냐시리스님, 디라왐사스님, 이렇게 열두 분의 상가스님들이 참석했다.
 

 
한국테라와다불교 스님들은 얼마나 될까? 담마와나선원에 자주 다니다 보니 얼굴과 이름은 파악된다. 그런데 나오지 않는 스님들도 있다는 것이다. 올해부터 보름단위로 포살이 행해지고 있는데 남방가사를 두른 스님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오후불식을 피하려 했지만
 
법회는 늦게 시작되었다. 오전 10시에 시작되었어야 하나 10시 37분에 시작되었다. 포살법회의식에 따라 진행되었다.
 
포살법회에서는 팔계를 받는다. 일반법회에서는 오계를 받지만 포살날은 특별한 날이라서 여덟 가지 포살계를 받는 것이다.
 
포살계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오후불식에 대한 것이다. 저녁에 밥 먹는 것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오후불식에 대하여 낭송하지 않았다.
 
어떤 법회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은 포살계는 선택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일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지키지 못할 항목은 낭송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오후불식이 대표적이다.
 
포살계는 매우 엄격하다. 하루를 출가자처럼 보내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포살팔계를 받아야 한다. 이는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도 알 수 있다.
 
 
생명을 죽이지 말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지 말고
거짓말을 하지 말고, 취기있는 것을 마시지 말고
순결하지 못한 것을 삼가고 성적교섭을 금하라.
그리고 밤의 때 아닌 때에 식사하지 말라.

화환과 향수를 사용하는 것을 피하고
낮은 침대, 바닥에 누워야 하리.
이것이 포살일에 지켜야 하는 계율이네.
괴로움을 종식시킨 부처님이 설하신 것이네.”(A3.70)

 
 
포살팔계는 매우 엄격한 것이다. 오계와 비교 되지 않는다. 불사음계에 대한 것을 보면 ‘순결하지 못한 것을 삼가고 성적교섭을 금하라.’라고 되어 있다. 재가자라도 팔계를 받으면 그날 만큼은 배우자와 잠자리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포살팔계는 출가자처럼 사는 것이다. 일종의 하루출가에 대한 계라고도 볼 수 있다. 이는 경에서 “나도 바로 오늘 낮 오늘 밤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버리고”(A3.70)라는 말로 알 수 있다.
 
포살계는 딱 하루만 지키는 계이다. 그래서 경에서는 “오늘 낮 오늘 밤”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포살계가 ‘하루 낮 하루 밤 계’임을 말한다.
 
포살계는 대체로 오전에 받으면 그 다음날 오전까지 효력이 지속된다. 다음날도 포살을 지내고자 한다면 그날 오전에 새로 받아 지녀야 한다. 그래서 위빠사나선원에서 집중수행 들어가면 매일 새벽 포살팔계를 받아 지닌다. 출가수행자는 자동으로 매일매일 유지된다. 다만 보름에 한번 모여서 계목을 합송할 뿐이다.
 
포살팔계는 오계에다 세 가지가 플러스 되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밤의 때 아닌 때에 식사하지 말라’라는 오후불식이 있다. 그런데 오후불식 하나만 제외하고 다른 것은 모두 지킬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날 “위깔라보자나 웨라마니 식까빠당 사마디마니(때 아닌 때 먹는 것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니겠습니다.)”라고 합송하지 않았다.
 
선원에서 집중수행 할 때 가장 지키기 어려운 것이 오후불식이다. 낮 12시가 넘으면 다음날 해 뜨기 전까지 일체 먹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녁에 배고플 때 어떻게 견디어 내야 할까?
 
선원에서는 주스가 준비 되어 있다. 저녁에 주스타임이라 해서 오랜지 주스 등을 마시는 것이다. 꿀도 허용된다. 미숫가루도 허용되기도 한다. 씹지 않고 마시는 것은 허용되는 것이다.
 
빤냐와로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다. 스님은 포살에 대해서 법문했다. 포살은 보름에 한번 있어서 일년이면 이십 번 한다고 했다. 그런데 재가자의 포살은 이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포살은 빠알리어로 우뽀사타(uposatha)라고 한다. 우뽀사타는 재일(齋日) 또는 포살(布薩)이라고 한역된다. 포살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불경에 나타난 고대인도의 역법에 따르면, 인도의 일 년은 삼 계절 - 겨울, 여름, 우기 - 로 나뉘며, 각 계절은 4개월씩 계속된다. 4개월은 8개의 보름단위의 기간(pakkha)으로 나뉘고, 세 번째와 일곱 번째는 14 일로 구성되고 나머지는 15일로 구성된다. 신월이나 보름달이거나 반달[상현이나 하현]의 날이 특별히 길조인 것으로 여겨진다. 불교에서는 이런 날에 포살의식(懺悔儀式)을 행한다. 보름날과 신월의 포살일에는 수행승들이 자신들의 의무계을[戒本]을 외우고, 일반신도들은 설법을 듣거나 수행을 하기 위해 승원을 방문한다.”(앙굿따라니까야 3권 308번 각주, 한국빠알리성전협회)
 
 
이 설명은 한국빠알리성전협회본 앙굿따라니까야에 실린 각주를 옮긴 것이다. ‘포살덕목의 경’(A3.70)에 있는 것이다.
 
포살은 출가자의 포살과 재가자의 포살은 다르다. 출가자는 보름에 한번 모여 빠띠목카라는 의무계율(계본)을 합송하는 것이다. 그런데 재가자는 한달에 두 번이 아니라 네 번이라는 사실이다. 초하루와 보름 사이에 한번 더 있고, 또한 보름과
초하루 사이에 한번 더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신월, 상현, 보름, 하현이 된다.
 
오후금식을 회피하고자 했다. 어느 스님의 말을 듣고 선택적으로 적용하고자 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날 오후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러나 빤냐와로 스님의 법문을 듣고 달라졌다.
 
빤냐와로 스님에 따르면 계는 완전히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포살팔계를 예로 든다면 선택적으로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오후에 먹고 싶어서 오후에 먹지 않는 계만큼은 지키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있을 수 없음을 말한다.
 
빤냐와로 스님의 설명을 듣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오후에 먹지 않는 계를 지키고자 한 것이다. 오후에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기 싫어서 낭송하지 않았으나 잘못된 것임을 알았다.
 
하마터면 소치기포살이 될 뻔
 
집안 행사가 있다면 팔계는 선택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모임이 있다면 오후불식은 선택적 적용이 된다. 그러나 단지 먹는 즐거움을 위해서 선택적으로 적용한다면 ‘소치기포살’이 될 것이다.
 
소치기포살이란 무엇인가? 이는 앙굿따라니까야 ‘포살덕목의 경(uposathagasutta)’(A3.70)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비싸카여, 어떠한 것이 소치기의 포살입니까? 비싸카여, 예를 들어, 소치기가 저녁 무렵 주인에게 소를 돌려주면서 ‘오늘 소는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서 물을 마셨는데, 내일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서 물을 마실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비싸카여, 이 세상의 어떤 사람은 ‘나는 오늘 이러저러한 단단 하거나 부드러운 음식을 먹었다. 나는 내일 이러저러한 단단하거나 부드러운 음식을 먹을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그는 탐욕에 의해서 탐착에 가득 찬 마음으로 하루를 보냅니다. 비싸카여, 소치기의 포살은 이와 같습니다. 비싸카여, 이와 같이 보낸 소치기 의 포살에는 커다란 과보, 커다란 공덕, 커다란 광명, 커다란 충만이 없습니다.”(A3.70)
 
 
하마터면 소치기포살이 될 뻔 했다. 저녁에 먹을 욕심에 오후금식을 낭송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생업이 있는 자는 오후금식에 대하여 선택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먹어야 노동할 수 있다. 육체적 노동이든 정신적 노동이든 힘이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할 일 없이 먹는 재미로 오후금식에 대한 계를 낭송하지 않았다면 소치기포살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일요일은 재가자의 포살날
 
오늘날 사람들은 양력을 쓰고 있다. 양력에서 일요일은 일주일에 한번 쉬는 날이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주일이라 하여 교회나 성당에 갈 것이다. 절에 다니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어제 오전 청파동 담마와나선원 가는 길에 일단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가는 것을 보았다. 교회가는 사람들이었다. 일요일 절에 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절에서는 음력이 익숙하다. 음력 초하루날은 길일이나 다름 없다. 음력 보름도 길일이다. 그러나 음력은 사회생활하는 사람에게는 불편한 것이다. 일요일 법회 하는 이유가 된다.
 
담마와나선원에서는 매주 일요일 오전에 법회가 있다. 그래서일까 빤냐와로 스님은 일주일에 한번, 즉 일요일을 재가자의 포살날로 하라고 했다.
 
일요일은 어떤 날인가? 대부분 쉬는 날로 알고 있다. 거의 대부분 행사는 토요일에 치루어진다. 일요일에 모임 있는 경우는 드물다. 직장인들은 일요일날 늦잠 자며 쉬는 날로 보고 있다.
 
종교인들은 일요일 종교행사에 참여할 것이다. 불교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불교에서 음력을 쇠기는 하지만 한국테라와다불교 담마와선원에서는 이제 일요일 법회하는 것이 정착된 것 같다.
 
출가자에게 포살은 한달에 두 번 있다. 신월과 보름날에 치루어진다. 음력으로 지내는 것이다. 그러나 재가자의 포살은 일주일에 한번 있게 된다. 물론 양력으로 치루어진다. 그렇다면 재가자는 일요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일요일은 마음 편히 쉬는 날이다. 모임은 대부분 토요일 열린다. 이렇게 본다면 재가자가 일요일 하루 포살을 지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후에 먹지 않는, 즉 저녁밥을 먹지 않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배고픈 것도 한때
 
어제 저녁에 밥을 먹지 않았다. 오후불식을 지킨 것이다. 그러나 오후금식은 쉽지 않다. 매일 먹던 행위를 하지 않으니 반응이 오는 것이다.
 
저녁에 밥 먹을 때가 되었을 때 배가 고팠다. 밥 시간이 지났을 때 배가 심하게 고팠다.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했다. 미숫가루가 생각났다.
 
저녁 여덟 시에 미숫가루 탄 물과 마주 했다. 그러나 속이 미식거려서 마실 수가 없었다. 평소 먹지 않던 것을 먹으려 하니 속이 받지 않은 것이다. 꿀물을 타마심으로 인하여 해소했다.
 
좌선하다 보면 가려울 때가 있다. 간지러울 때도 있다. 손을 대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럴 때 “심리적인 것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다.
 
밤중에 오줌이 마려운 것도 심리적인 것일지 모른다. 오후에 졸리운 것도 심리적인 것일지 모른다. 오후금식한다고 하여 저녁밥을 먹지 않았을 때 배고픈 것도 심리적인 것일지 모른다.
 
배고픈 것도 한때이다. 꿀물을 타마시자 어느 정도 배고픔은 가셨다. 다른 것에 신경 쓰자 배고픔은 잊어 버렸다. 잠을 잘 때 더 이상 배고픔은 없었다.
 
일주일에 한번쯤은 비워 주는 것도
 
오후불식은 다음날 해 뜰 때까지 해야 한다. 일출시간이 되면 먹을 수 있다. 미얀마 선원에서는 오전 5시 50분부터 죽 등 부드러운 음식을 먹는다.
 
오늘 오전 백권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어제 정오 때부터 계산한다면 19시간만에 먹은 것이다. 찐계란 하나, 고구마와 감자 자른 것 각 하나씩 해서 세 쪽 먹었다.
 

 
저녁 한끼 굶는다고 해서 큰일 나는 것은 아니다. 매일 세 끼를 먹는데 일요일 저녁 한끼 먹지 않는다고 해서 건강에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주일에 한번쯤은 비워 주는 것이 건강에 도움 될지 모른다.
 
사람들은 채워넣기에 바쁘다. 저녁은 반드시 먹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수행자들은 저녁을 먹지 않는다.
 
오후에 금식하면 여려 이점이 있다. 부처님은 금식하는 것에 대하여  “수행승들이여, 나는 밤에 음식을 먹지 않는다. 밤에 음식을 먹지 않기 때문에 병이 없고 건강하고 상쾌하고 힘이 있고 안온한 삶을 즐긴다.”(M70)라고 했다. 오후 금식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오후금식하면 여유가 있는 것 같다. 밥 한끼 먹지 않는 것이 삶에 여유를 주는 것은 밥 준비 하지 않는 것이다. 밥 먹는 시간을 갖지 않아서 여유가 있다. 무엇보다 무탐이라는 사실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탐욕으로 살아간다. 부자는 더 큰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부를 축적하는데 있어서 만족은 없다. 먹는 것에서도 만족이 없을 것이다.
 
가난한 자나 부자나 하루 세 끼 먹는다. 부자라고 하여 하루 열 끼, 백 끼 먹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욕망으로 살아간다. 더 나아가 탐욕으로 살아간다.
 
탐욕은 결코 충족되지 않는다. 아무리 마셔도 갈증만 나는 것과 같다. 그러나 탐욕을 버리면 채울 수 있다. 오후금식 했을 때 욕망이 없어서 마음이 충만되는 것이다.
 
포살은 여덟 가지 계목에 대한 것이다. 여덟 가지 가운데 가장 지키기 힘든 것은 오후에 먹지 않는 것이다. 먹는 즐거움으로 사는 사람이라면 포살계를 받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재가의 포살은 일주일에 한번이다. 일요일 저녁만큼은 먹지 않는 것이다.
 
선원에서 만난 사람들
 
어제 대구에서 마하나마님 왔다. 대구 지역에서 한국테라와다불교 재가운영위위원회 회장도 참석했다. 재가남자법우들과 기념 사진을 찍었다.
 

 
담마와나선원 밴드에 글을 올리고 있다. 재가우안거 하는 것에 대하여 드문드문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글을 사람들이 보는 것 같다. 어느 남자법우는 두 번, 세 번 본다고 했다. 하나의 글을 여러 번 읽는 것이다. 이에 감사를 표했다.
 
글은 재가자만 보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스님들도 보는 것 같다. 어느 스님이 가까이 다가와서 “글 잘 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어제 점심은 밖에서 먹었다. 코로나 이후 이제까지 늘 선원에서 먹었다. 재가자는 자리가 협소해서 법당에서 먹었다. 주로 김밥이었다. 그런데 어제는 숙대 본캠퍼스 가까이 있는 식당에서 먹었다.
 

 
불교에 공양청이 있다. 스님들을 초청해서 식사를 대접하는 것이다. 본래 집에서 대접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식당에서 공양청하는 것이 보통이다.
 

 
어제 포살법회에서 외국인도 한명 왔다. 키가 큰 서양 여자이다. 한국말은 못한다. 어떻게 오게 되었을까? 태국에서 한국스님을 만나서 이런 법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밖에서 점심공양이 끝나고 선원에 다시 갔다. 선원 3층에서 사람들이 모여 커피를 마셨다. 그때 미한씨 부부가 왔다. 미한씨는 미얀마사람이다. 한국인 처와 함께 왔다.
 
미한씨는 한국수행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한국의 스님이나 재가자 등 수행자들이 미얀마에 갈 때 안내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미한씨는 한국수행자들과 인연이 깊다. 처음에는 거해스님 깝삐야를 했다고 한다. 90년대 초반이니 30년 된 것이다. 이후 한국 수행자들을 대상으로 가이드 역할을 했다.
 

 
일요일 만큼은 출가수행자처럼
 
어제 뜨거운 여름 이었다. 오후 2시 온도는 36도였다. 스마트폰에 체감온도는 39도로 찍혔다. 습도는 52프로였다. 폭염경보가 발동할 정도였다. 외출을 삼가는 경보이기도 하다. 오늘 아침에도 뜨거웠다.  좌선을 하는데 땀이 주르르 흘렀다.
 
어제 오후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어느 시점이 되었을 때 전혀 배고프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부처님이  “수행승들이여, 그대들도 밤에 음식을 먹지 않음으로써 병이 없고 건강하고 상쾌하고 힘이 있고 안온한 삶을 즐기기 바란다.”(M70)라는 말이 틀림 없는 것 같다.
 
이번 안거에 목표가 있다. 하루 삼십분 이상 좌선하는 것이다. 현재 오전과 오전에 한번 앉아 있는다. 그러나 저녁에 앉아 있기가 쉽지 않다.
 
야간좌선에 도전하고자 한다. 저녁이 되면 마음이 혼탁해져서 앉아 있을 수 없지만 시도해 보고자 한다. 이렇게 되면 오전, 오후, 야간 좌선이 된다.
 
하나 더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일요일 저녁밥을 먹지 않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번 일요일 저녁만큼은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이다. 일요일 만큼은 출가수행자처럼 살아 보는 것이다.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2024-08-0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