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한끼 안 먹었다고 해서
저녁 한끼 안 먹었다고 해서 큰일 나는 것은 아니다. 저녁식사를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후에 금식해도 삶에 지장이 없다. 오히려 정신은 더 맑아진다.
재가우안거 45일째이다. 어제 9월 1일 담마와나선원에서 한국테라와다불교 포살법회가 있었다. 빤냐와로 스님을 비롯하여 열두 분의 상가스님이 참여했다. 재가불자들도 포살법회에 참여하여 재가포살팔계를 받았다.
팔계는 오계와 다르다. 오계에다 세 개의 계가 플러스 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지키기 힘든 것은 저녁에 먹지 않는 것이다.
이날 하루만큼은 스님처럼
오계는 불자라면 항상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포살팔계는 하루낮하루밤 계에 지나지 않는다. 하루만 지키는 계인 것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이날 하루만큼은 스님처럼 살기 위한 것이다.
테라와다불교에서 출가수행자들은 오후에 먹지 않는다. 이는 팔계에서 여섯 번째 항목인 “때 아닌 때에 먹는 것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니겠습니다. (vikālabhojana veramaṇī sikkhāpadaṁ samādiyami)”라며 합송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팔계에서 오후불식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지키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한 가지 지키기 어려운 것은 저녁을 먹지 않는 것이다. 육체노동이든 정신노동이든 일을 하는 사람들은 평일에 저녁을 먹지 않으면 힘을 낼 수 없다.
오후불식 또는 오후금식은 일요일 하루만큼은 지킬 수 있다. 매주 일요일 법회에 나간다면 포살계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일요일 하루만큼은 출가수행자처럼 살아 볼 수 있는 것이다.
선원에서 제공된 김밥
한달만에 저녁밥을 먹지 않았다. 한달 전에 있었던 포살법회 때 오후에 먹지 않았다. 올해 우안거 들어서 두 번째로 저녁밥을 먹지 않았다.
포살법회 때 선원에 가면 점심을 제공한다. 열두 시까지는 마쳐야 한다. 포살법회에서 팔계를 받아 지니면 정오 때부터 다음날 해뜨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먹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마시는 것은 허용된다.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한다. 스님과 함께 “위깔라보자나 웨라마니 식카빠당 사마디야미 (때 아닌 때에 먹는 것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니겠습니다)”라며 합송했기 때문에 때 아닌 때에 먹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선원에서 점심 때 김밥을 제공했다. 선원이 작고 가난해서 식사를 제공하지 못한다. 상가 스님들에게는 탁발공양식으로 상을 차리지만 재가불자는 2층 법당에서 김밥을 먹는 것이다.
김밥을 먹으면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김밥을 피하고 떡이나 과일 나물 등을 집어 먹었다. 가능하면 많이 먹으려고 했다. 오후에 먹을 수 없기 때문에 배에 집어 넣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넣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다.
마트에서 망고주스를
저녁은 각오 해야 했다. 점심 때 많이 먹지 않았다. 저녁 때 배가 심하게 고플 것이 예상되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한 것이 있다. 그것은 주스를 사는 것이다.
마트에서 망고주스를 한병 샀다. 가능하면 원액 농도가 짙은 것이다. 오랜지 주스도 있지만 가격이 몇 백원 저렴해서 구입했다. 저녁에 식사 대용이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저녁에 백권당으로 향했다. 백권당에서 유튜브를 보면서 망고주스를 마셨다. 그러나 양이 차지 않았다. 이럴 때는 꿀물이 좋다.
2018년 12월 31일의 일이다. 그때 미얀마에 갔었다. 담마마마까 선원에 집중수행하러 간 것이다. 선원에서는 매일 팔계를 받아지니기 때문에 오후에 먹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각자 오후에 마실 것을 준비 했다. 미숫가루 준비한 사람도 있고 선식을 준비한 사람도 있었다. 모두 마실 수 있는 것이다. 씹어 먹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미얀마 경험이 많은 사람은 ‘꿀’을 준비 했다.
오후불식 또는 오후금식에 꿀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다. 백권당에 꿀이 있다. 아침에 매일 먹는 것이다. 꿀을 진하게 탔다. 머그컵에 가득 넣고 마셨다. 이것으로 한끼 훌륭한 식사가 되었다.
식사(食事)가 대사(大事)라 하는데
저녁에 사무실에 가면 대부분 유튜브를 본다. 그러나 어제는 달랐다. 오후금식을 한 상태에서 배에는 든 것이 거의 없었다. 저녁을 먹지 않으니 일이 줄어 든 것 같았다.
흔히 ‘식사대사(食事大事)’라고 말한다. 먹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일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루에 대사를 세 번 치룬다. 아침, 점심, 저녁을 빠지지 않고 먹는 것이다. 그런데 오후에 저녁을 먹지 않는다면 몹시 허전하다는 것이다.
하루 세끼 대사 가운데 하나만 치루지 않아도 일이 줄어 든 것 같다. 마치 명절날 명절을 치루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다. 저녁 한끼 먹지 않음으로 인하여 번거로움이 줄어 든 것이다.
저녁에 좌선을 하기로 했다. 백권당에 명상공간을 만들어 놓았지만 주로 아침에 이용한다. 요즘에는 점심을 먹고 나서도 이용한다. 그러나 저녁에 좌선하는 경우는 없었다.
처음으로 저녁좌선을
어제 처음으로 저녁좌선을 했다. 백권당에 명상공간을 만든지 4년 만의 일이다. 먼저 불을 껐다. 좌선할 때 늘 형광등을 끄고 한다. 그런데 저녁은 너무 캄캄하다는 것이다.
저녁에는 방석에 않기가 쉽지 않다. 왜 그럴까? 마음은 이미 오염될 대로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유튜브 영향이 크다. 무엇보다 저녁에는 좌선할 마음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둠과도 관련이 있다.
저녁에 불을 끄면 캄캄해진다. 그때 두려움을 느낀다. 어둠 속에서 앉아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렇다고 형광등을 켜고 할 수 없다. 이제까지 불을 끄고 행선하고 좌선하는 것이 생활화 되었기 때문이다.
어제 처음으로 저녁에 방석에 앉아 보았다. 명상공간은 캄캄하다. 눈을 감고 있으면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칸막이 건너편 책상에는 컴퓨터가 켜져 있다. 모니터 불빛으로 인하여 그나마 조금 덜 어두운 상태가 되었다.
소음에서 자유롭지 않아
종종 이런 생각을 해본다. 빈집에서 명상을 해보는 것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도 해당된다. 이는 소음과 관련이 있다.
사무실 명상공간은 소음에서 자유롭지 않다. 도로 바로 옆에 있어서 차 지나가는 소리로 시끄럽다. 전철 지나가는 소리는 천둥치는 것 같다. 가장 듣기 싫은 것은 오토바이 파열음과 폭탄음이다.
산속에 있는 암자는 조용하다. 깊은 산중에 있는 암자에서 앉아 있는 꿈을 꾸어 본다. 또 한편으로는 빈집이나 폐가를 꿈꾼다. 이는 유튜브 영향이 크다.
유튜브에 빈집을 보여주는 채널이 있다. 사람이 살다가 떠난 산속 빈집이다. 마치 유령이나 귀신이 나올 것 같은 폐가도 보여준다. 빈집이나 폐가를 볼 때마다 “저런 곳에서 명상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아마 소음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음에서 벗어나고 싶다. 소음 없는 곳에서 마음껏 앉아 있고 싶다. 가장 이상적인 공간은 아마도 사막의 동굴일 것이다.
명상하기 좋은 천불동(千佛洞)
2013년의 일이다. 그때 실크로드성지순례를 갔었다. 돈황에서 투루판을 거쳐서 우르무치에 이르는 2주일간의 여정이었다. 그때 끝 없는 황량한 사막을 보았다.
사막에는 나무가 없었다. 산맥이 있는데 풀한포기 나지 않는 불모지대였다. 생명이라고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적막강산이었다. 그런 곳이 수행하기 좋은 장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음에 시달리다 보니 때로 이런 생각도 해본다. 그것은 달나라와 화성에서 명상하는 것이다. 달에 ‘고요의 바다’라는 지명이 있는데 그곳에서 앉아 있으면 명상이 잘 될 것 같았다.
달이나 화성과 유사한 지형이 있다. 그것은 2013년 실크로드순례 때 본 고비사막의 지형이다. 생명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는 척박한 지형이다. 마치 달나라의 고요의 바다와 같은 지형이다. 이런 곳에 ‘천불동(千佛洞)’이 있다.
돈황에 가면 돈황석굴이 있다. 막고굴이라고도 한다. 사막 가운데 절벽이 있는데 수많은 동굴이 있어서 천불동이라고 한다. 투루판에 가면 베제크리크 천불동도 있다. 그 옛날 수행승들이 수행하던 곳이다.
사막의 천불동에서 수행하면 명상이 저절로 될 것 같다. 완벽한 고요의 바다에서 명상하는 것이기 때문에 도와 과를 빨리 이룰 것 같다. 그러나 생명으로 충만한 곳에서는 명상이 잘 되지 않을 것 같다.
한국에서 암자는 산속 깊은 곳에 있다. 사찰 순례할 할 때 암자에 가보면 생명으로 충만하다. 설령 동굴에 앉아 있다고 하더라도 새소리, 바람소리, 벌레소리, 물소리로 인하여 방해받는다.
명상하기 좋은 것으로 사막의 동굴만한 곳이 없을 것 같다. 그곳에는 생명이 없다. 생명으로 충만한 푸른 산속과 대조적이다. 생명이라고는 흔적도 없는 척박한 지형에서 앉아 있으면 명상이 저절로 될 것 같다.
폐가에 앉아 있는다면
도시에서 명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소리가 문제이다. 눈을 감고 앉아 있어도 귀의 문은 막을 수 없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은 한가한 곳에 가서 수행하라고 했다.
대념처경에 수행처에 대한 설명이 있다. 이는 “여기 수행승이 숲으로 가고 나무 밑으로 가고 한가한 곳으로 가서 앉아 가부좌를 틀고 몸을 바로 세우고 얼굴을 앞으로 새김을 확립하여 새김을 확립하여 숨을 들이쉬고 새김을 확립하여 숨을 내쉰다.(D22)”라는 가르침이다. 부처님은 나무밑이나 한가한 곳으로 가서 수행하라고 했다. 사람이 사는 번잡한 곳을 피하라는 말과 같다.
초기경전을 보면 수행처에 대한 또 하나의 정형구가 있다. 부처님은 “여기 텅 빈 빈 집들이 있다. 아난다여, 방일하지 말고 명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그대에 대한 나의 가르침이다.”(M152)라고 했다. 여기서 빈 집은 오늘날 ‘폐가’에 해당될 것이다.
폐가에 대한 꿈이 있다. 빈 집에서 명상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유령이 나올 것 같은, 귀신 나올 것 같은 폐가에 누가 앉아 있을 수 있을까? 백권당에서 저녁에 불을 끄고 앉아 있는 것도 두려운 것이다.
수행자가 두려움을 느낄 때
어제 백권당에서 저녁에 처음으로 저녁 좌선을 했다. 아침과 점심 좌선과 마찬가지로 30분 좌선 했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눈을 감고 앉아 있는 것이 두렵기는 했지만 배의 부품과 꺼짐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수행자가 산속에서 수행하다가 두려움을 느끼면 산에서 내려오게 된다는 말이다. 빈집이나 폐가에서 수행하던 사람이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면 그날로 내려 가게 될 것이다. 도시의 밤에 불을 끄고 앉아 있을 때 두려움을 느꼈지만 산속이 아니라 안심했다.
초기경전에 숲에서 수행하는 수행승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경에서는 “숲은 집중하지 않으면, 수행승의 마음을 빼앗아 갑니다.”(M4)라고 했다. 숲은 두려움과 공포가 있음을 말한다.
숲이나 빈집에서 집중이 없으면 두려움과 공포가 일어날 것이다. 폐가에서도 집중이 없으면 공포가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경에서는 두려움과 공포가 일어나는 원인에 대하여 몸과 마음이 청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탐욕으로 가득한 자, 분노로 가득한 자, 이득과 명예와 칭송을 바라는 자 등은 숲에서 홀로 견딜 수 없을 말한다.
캄캄한 저녁에 저녁좌선을 처음으로 했다. 이번 우안거 기간 동안에 저녁좌선을 하기로 했는데 그날이 어제가 되었다. 이제 한번 물꼬를 텄으니 계속 앉아 있을 것 같다.
“앉아 있는 것이 가장 쉬웠어요.”
공부 잘하는 학생이 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공부하는 것이 가장 쉬웠어요.”라는 말이다. 명상한다고 앉아 있다 보니 앉아 있는 것이 가장 쉬운 것이다.
저녁에 유튜브를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런 한편 피곤하기도 하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이 힘든 것이다. 그런데 저녁에 불을 끄고 방석에 앉아 있으니 세상에 이것보다 더 편한 것은 없는 것 같았다.
오후불식인 상태에서 명상을 하면
어제 저녁밥을 먹지 않고 저녁좌선을 했다. 배에는 점심 때 먹은 작은 분량의 음식은 모두 소화되었다. 저녁에 먹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 소화시킬 필요가 없다. 그래서일까 빤냐와로 스님은 오후금식하는 것에 대하여 찬탄했다.
오후에 먹지 않으면 몸이 가볍다. 주스나 꿀을 마셔서 허기는 가신 상태이다. 이렇게 몸이 가벼우니 마음도 가벼운 것 같다. 이런 상태에서 좌선에 들어가니 몸과 마음이 편안했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은 오후불식에 대하여 “수행승들이여, 나는 밤에 음식을 먹지 않는다. 밤에 음식을 먹지 않기 때문에 병이 없고 건강하고 상쾌하고 힘이 있고 안온한 삶을 즐긴다.”(M70)라고 했다.
오후불식은 부처님 당시부터 있었다. 이는 부처님이 “오라. 여기 그대들도 밤에 음식을 먹지 않길 바란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도 밤에 음식을 먹지 않음으로써 병이 없고 건강하고 상쾌하고 힘이 있고 안온한 삶을 즐기기 바란다.”(M70)라고 말씀하신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오후에 먹지 않으면 건강에도 좋고 수행하기에도 좋다는 부처님 말씀이다.
오늘 아침에 간단히 식사를 했다. 어제 정오 때부터 무려 18시간 만에 배를 채운 것이다. 그렇다고 진수성찬을 먹지 않았다. 집에서 준비해 온 찐 감자 한쪽, 찐 고구마 한쪽, 찐 계란 하나, 그리고 양배추 생으로 된 것 한조각, 여기에다 꿀물을 곁들였다.
수행자는 저녁을 먹지 않는다. 특히 출가수행자는 오후에 일체 먹지 않는다. 이렇게 오후에 금식하는 것은 욕망을 줄이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식탐을 줄이는 것이다.
인간의 갈애 중에 가장 강한 것은 먹는 것이다. 어제 팔계를 받고 오후불식을 했는데 나도 모르게 먹을 것에 손이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팔계를 받아 지녔기 때문에 다음날 해뜨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먹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삼키는 것은 가능하다. 주스나 꿀물은 삼기는 것이다. 약도 가능하다. 약은 씹어 먹는 것이 아니라 삼키는 것이다.
오후불식인 상태에서 명상을 하면 명상이 더 잘 되는 것 같다. 저녁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욕망은 일단 제어된 것이다. 숲속이나 나무밑, 빈집, 폐가에 있어도 욕망이 제어 되었다면 견딜만할 것이다. 그러나 한번 욕망이나 분노의 불길에 휩싸인다면 그날 밤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다섯 가지 둘랍바(dullabha)에 대하여
어제 담마와나선원 탁발포살법회에서 빤냐와로 스님은 ‘둘랍바(dullabha)’에 대하여 법문했다. 미리 배포한 프린트물을 보면서 다섯 가지 둘랍바에 대하여 설명했다.
빤냐와로 스님이 말한 다섯 가지 둘랍바는 초기경전에 근거한 것이다. 찾아 보니앙굿따라니까야에 ‘발견하기 어려운 경’에 유사한 내용이 있다. 이는 “수행승들이여, 이렇게 오신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음 님의 출현도 세상에서 발견하기 어렵다. 여래가 설하신 가르침과 계 율을 설하는 사람도 세상에서 발견하기 어렵다. 베푼 은혜에 감사하 는 사람도 세상에서 발견하기 어렵다.”(A3.112)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세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빤냐와로 스님이 말한 다섯 가지 둘랍바는 주석에 있는 것이다. 오부니까야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상윳따니까야 유게편 주석라고 한다. 상윳따니까야 사하가타왁가 아타까따에 실려 있는 것이다. 스님이 준 프린트물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bhikkhave, appamādena sampadetha,
dullabho buddhuppādo lokasmiṁ, dullabho manussattapațilābho, dullabhā saddhāsampatti, dullabhā pabbajjā, dullabhaṁ sadhammassavana”nti.
“비구들이여! 게을리하는 일 없이 잘 행하세요. (사띠를 갖추고 해야 할 것을 이루세요.)
붓다가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은 얻기 어려운 일이다.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얻기 어려운 일이다.
신심으로 충만해지는 것은 얻기 어려운 일이다.
출가하는 것은 얻기 어려운 일이다.
올바른 법을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섯 가지 둘랍바가 있다. 다섯 가지 이루기 어려운 일을 말한다. 그것은 1)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고, 2)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어려운 일이고, 3) 신심으로 충만해지기 어려운 일이고, 4) 출가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고, 5) 정법을 만나기 어려운 일이다.
다섯 가지 둘랍보 가운데 출가는 재가자와 관련이 없다. 그래서일까 빤냐와로 스님은 출가하는 것에 대하여 매우 희유한 일이라고 했다. 부처님도 전생에 수행승으로 산 것은 아홉 번에 지나지 않다고 했다.
어제 포살법회에 참여한 열두 분의 상가 스님들은 희유한 스님들이다. 왜 그런가? 정법이 살아 있는 시대에 출가 했다는 것은 대단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빤냐와로 스님은 과거 부처님이 재세 했던 때나 과거 부처님의 정법이 살아 있던 시기에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행은 바라밀공덕의 힘이 있어야
빤냐와로 스님은 법문에서 바라밀행을 강조했다. 선업 짓는 것보다 바라밀행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해탈과 열반 때문이다.
선업을 지으면 천상에 태어난다. 어느 종교에나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도 선업공덕을 쌓으면 천상에 태어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불교는 천상에 태어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해탈과 열반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바라밀 공덕을 쌓아야 한다.
빤냐와로 스님에 따르면 수행은 힘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힘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차고 나가는 힘이다. 이때 바라밀공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현생이든 전생이든 바라밀공덕을 쌓아 놓았다면 그 힘으로 치고 올라 갈 수 있음을 말한다.
빤냐와로 스님은 포살법문에서 30여분 동안 많은 이야기를 했다. 오늘날은 유튜브 시대이기 때문에 유튜브를 보면 스님의 포살법문을 들을 수 있다.
물질 따로 정신 따로 새겨야
오늘 아침 삼십분 좌선 했다. 밖의 소음은 여전했다. 다섯 감각의 문을 닫아 놓고 오로지 마음의 문 하나만 열어 놓고 앉아 있었으나 귀의 문으로 들어 오는 소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선원에서 배운 대로 배의 부품과 꺼짐을 새겼다.
일상이 수행이 되어야 한다. 발을 내딛을 때도 무심코 디뎌서는 안된다. 팔을 뻗을 때도 무심코 뻗어서는 안된다. 새김이 있어야 한다. 정신과 물질, 물질과 정신을 새겨야 한다.
행선할 때 몸을 시체로 보아야 한다. 발은 의도가 있어야 움직인다. 마음의 암시가 몸의 암시가 되어서 발을 떼는 것이다. 이때 발을 떼는 것은 물질에 대한 것이다. 또한 발을 떼는 것을 아는 것은 정신에 대한 것이다. 알아지는 물질과 아는 정신, 이 두 가지를 새겨야 한다. 끊임 없이 지속적으로 새겨야 한다.
명상한다고 앉아만 있으면 ‘멍때리기’가 되기 쉽다. 마하시 방식의 위빠사나 수행자라면 배의 부품과 꺼짐을 새겨야 한다. 배의 모양이나 형태를 보지 말고 움직임만 보아야 한다.
배가 부푸는 것은 물질에 대한 것이다. 배가 부푸는 것을 아는 것은 정신에 대한 것이다. 물질 따로, 정신 따로 새기는 것이다. 물질과 정신을 구분하여 새기는 것이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끊임 없이 새기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얼마든지 앉아 있을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곳이다.
저녁 한끼 안 먹었다고 해서
어제 처음으로 야간좌선을 했다. 한번 하기가 어렵다. 그 다음부터는 쉬워진다. 나중에는 일상화 되는 것이다. 저녁에 유튜브 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삼십분이라도 앉아 있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야간좌선을 계속할 수 있을까? 빈집이나 폐가에서도 밤에 앉아 있을 수 있을까?
지금 이시각 오전 10시 37분이다. 어제 저녁을 먹지 않았더니 몹시 배가 고프다. 일찍 한식부페식당에 가서 밥을 먹어야겠다. 일주일에 한번쯤 저녁을 굶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자꾸 쌓기만 하는 것보다 한번쯤 비워 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몸과 마음이 가볍다. 저녁 한끼 안 먹었다고 해서 큰일 나는 것은 아니다.
2024-09-02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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