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마친 것 것처럼 홀가분
점심약속도 약속이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 자기자신과의 약속도 약속이다. 삼십분 좌선하기로 했으면 앉아 있어야 한다.
오늘 재가우안가 27일째이더. 오늘은 8월 15일 광복절이기도 하다. 또한 오늘은 기일이기도 하다. 부모님 기일이 삼주 차이가 나서 오늘 치루기로 했다.
삼남매가 모였다. 반년 또는 일년만에 만남이다. 기일이 있어서 만나는 것도 된다. 이렇게 본다면 기일은 만남의 날도 된다.
행사가 있으면 생활패턴은 깨진다. 일상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 매일 아침 일찍 백권당에 나와서 행선과 좌선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루 일과 시작했으나 예외가 되는 날이 있다.
우안거기간 동안 삼십분 앉아 있기로 했다. 오후 다섯 시가 넘어서 집을 나섰다. 백권당에 도착하여 행선을 하고 좌선을 했다. 밀린 숙제를 하는 것 같았다.
수행은 명상홀에서만 해야 할까? 집중수행 들어가면 커다란 명상홀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행선도 하고 좌선도 한다. 유튜브에서 수행지도 하는 채널을 보면 함께 명상하는 장면도 볼 수 있다.
기도는 골방에서 하라는 말이 있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에서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관음정근 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합송하면 더 잘될지 모른다. 신묘장구대다라니 철야기도 할 때 함께 소리 내어 합송하면 기도하는 맛이 날지 모른다. 혼자서는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 무엇을 할까? 감각적 대상에 가 있기 쉬울 것이다. 매혹적인 형상이나 아름다운 소리에 마음이 가 있는 것이다. 특히 TV나 유튜브에 몰입 되어 있을지 모른다.
골방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빈방에서 혼자 좌선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지향하는 목적이 없다면 마음은 늘 감각 대상에 가 있기 쉽다.
명상을 생활화 하고자 한다. 명상을 밥 먹듯이 하는 것이다. 매일 밥을 먹듯이 명상도 매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결심을 해야 한다.
우안거 날 것을 결심했다. 음력 유월 보름부터 구월 보름까지 삼개월 동안 출가수행자처럼 안거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명상을 해야 한다. 매일 삼십분 이상 의무적으로 앉아 있기로 했다.
오늘 기일을 맞이 하여 오전과 낮 시간을 보냈다. 오후 다섯 시가 되자 여유가 생겼다. 집에 있으면 유튜브나 보고 있을 것이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사무실은 무척 덥다. 공휴일에는 냉방이 되지 않는다. 체감온도는 35도가 넘는다. 습도는 70프로가 넘는다. 끈적끈적한 날씨이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주룩주룩 난다. 오늘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마하시 방식에서는 행선과 좌선은 동등하다. 행선 없는 명상은 상상할 수 없다. 먼저 사무실 불을 껐다.
명상할 때는 불을 끈다. 창이 북동 방향이라 형광등을 끄면 어둑해진다. 명상할 때는 이런 분위기가 좋다. 밝은 형광등 아래 보다 어두침침한 것이 좋다. 마치 동굴 속에 있는 것 같다.
행선을 먼저 했다. 수년 동안 해 오던 것이다. 발을 떼고, 들고, 밀고, 내리고, 딛고, 누르는 여섯 단계 행선이다.
발을 떼기 전에 먼저 의도를 알아차려야 한다. 의도가 없다면 발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몸은 마치 나무토막과 같다. 정신기능이 있어야 움직인다.
의도가 있어서 발이 움직인다. 발을 떼는 것도 의도 있기 때문이다. 발을 떼는 것은 물질적 현상이다. 풍대에 의한 것이다. 풍대의 운동성 의해 발이 움직이는 것이다.
행선을 하면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정신과 물질이 구분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고 또한 조건발생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발이 들려진 것은 물질에 해당되고 이를 아는 것은 정신적인 현상이다. 두 가지를 모두 새기는 것이 위빠사나이다. 이는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여 새기는 것이다.
발을 들 때 의도가 있어서 든다. 이때 의도는 원인이고 드는 것은 결과이다. 이는 다름 아닌 조건발생이다. 의도가 없다면 발을 들 수가 없을 것이다.
냉방도 안되는 밀폐된 공간은 무덥다. 습기가 많아서 무더운 것이다. 온도와 습도가 높은 밀폐된 공간에서 움직이면 땀이 날 수밖에 없다. 행선하면 할수록 땀이 났다. 이십분 가까이 행선하다 자리에 앉았다.
좌선에 들어 갈 때 ‘오늘도 잘 할 수 있을까?’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해 본다. 어떤 날은 삼십분 내내 망상에서 보내다가 끝내는 때도 있다.
집중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똑 같은 행위를 반복적으로 했을 때 집중이 된다. 배의 부품과 꺼짐을 반복적으로 새겼을 때 어느 순간 분리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좌선을 할 때 자세는 ‘평좌’이다. 이 자세가 가장 안정적이다. 두 손은 ‘선정인’ 자세이다. 두 손을 마주해서 왼손의 손가락 네 개를 오른손의 손가락 네 개위에 올려서 포개 놓는다. 두 엄지는 서로 닿을락말락하게 붙인다. 스리랑카 선정인 불상에서 볼 수 있다. 부처님도 이와 같은 선정인 자세였을 것이다.
배의 부품과 꺼짐을 반복적으로 새겼을 때 어느 순간 몸의 감각을 느끼지 못한다. 아는 마음만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때 몸이 있는지 확인해 본다. 허리가 바로 서 있다. 무엇보다 선정인 한 것에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마음은 늘 대상에 가 있다. 일상에서 마음은 늘 감각대상에 가 있는 것이다. 좌선할 때 마음은 늘 배의 움직임에 가 있다. 배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지속적으로 새기다 보면 어느 때 몸의 감각이 사라진다. 선정인 손의 감각도 느끼지 못한다. 몸과 마음이 따로따로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몸과 마음이 따로따로인 것 같을 때, 몸과 마음이 분리 된 것 같을 때 집중이 잘 된 것이다. 한번 집중이 되면 탄탄해진다. 여간 해서는 잘 무너지지 않는다.
오늘도 삼심분 좌선을 했다. 오늘 기일이어서 하루를 쉴 수도 있었지만 명상하기위해서 나왔다. 누가 보아 주는 사람도 없지만 오늘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다. 삼십분 좌선을 마치니 숙제 마친 것처럼 홀가분했다.
2024-08-15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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