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권 국내성지순례 IX 2021-2023
방금 좌선을 마쳤다. 삼십분 앉아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명상을 하고 나면 마음이 산뜻하다. 설령 망상속에서 보냈다고 할지라도 해낸 것이다.
매일 행선과 좌선을 한다. 출가한 스님이나 수행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삼십분명상은 가소로운 것일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생업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는 매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다. 그것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상대는 자기자신이다. 백만대군을 물리치는 것보다 자신을 이기는 것이 더 어렵다. 매일 의무적으로 해야 습관이 된다.
한번 습관 들이면 여간 해서는 바꾸기 힘들다. 왜 그런가? 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술 좋아하는 사람은 매일 술을 마신다. 관성으로 마시는 것이다. 매일 의무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매일 밥 먹는 것처럼 쓰게 된다.
매일 글을 쓰고 있다. 하루도 빠질 날 없다. 하루 게을리 하면 다음 날도 빠지기 쉽다. 한번 두번 빠지다 보면 나중에는 쓰기 싫어 진다. 마치 모임에 한번 두번 빠지다 보면 나가기 싫은 이치와 같다.
글은 쌓이고 쌓였다. 그날 가장 인상 깊었던 것 가운데 하나를 선정해서 쓴다. 매일 쓰다 보니 산을 이루었다. 그렇다고 블로그에 저장만 해놓고 있을 수 없다.
삶에는 결실이 있어야 한다. 수행자의 삶에 도와 과라는 결실이 있어야 하듯이, 재가의 삶을 사는 자도 눈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결실이 있어야 한다. 글 쓴 것을 책으로 만드는 것도 이에 해당된다.
책을 하나 만들었다. 이번에 만든 책은 사찰순례에 대한 것이다. 시리즈로 만들고 있는데 이번에 만든 것은 아홉 번째 책이다.
책의 제목은 ‘143 국내성지순례 IX 2021-2023’라고 이름 붙였다. 143번째 책이다. 모두 40개의 글에 291페이지에 달한다. 참고로 목차는 다음과 같다.
목차
1. 도심속의 위빠사나 수행처, 백련선원 개원법회에 참석하고
2. 감악산 출렁다리와 범륜사 묵밥
3. 한국불교 불기(佛記)모순 이대로 괜찮은가?
4. 백운사에 등 하나 달고
5. 두상없는 수리사 미륵불의 합체현상
6. 일몰같은 내 인생이여, 천장사 제비바위 낙조
7. 천장사 가을밤 달빛정진
8. 아산 마하위하라 까티나축제 현장에서
9. 선암사에서 차 한잔 안마시면 서운하겠네
10. 불일암에 앉아서
11. 성원정사에서 받은 입춘대길
12. 잿더미가 된 삼막사 요사체-종무소를 보고
13. 봉정사에서 탑돌이 했는데
14. 희방사역인가 소백산역인가
15. 불성사의 백년된 부엌
16. 붓다의 날에 만난 한국마하시선원의 일창스님
17. 땅끝 하늘끝 달마고도 도솔암에서
18. 백장암발 선방문화가 널리 확산되기를
19. 천장사 반철법회에 참석하고자
20. 천장사와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자
21. 천장사 도반들과 안면도에
22. 대곡사 순례법회의 날에
23. 오체투지를 위빠사나로 하기, 대곡사 순례법회
24. 기쁨으로 충만된 담마까야, 법신사 태국절 까티나축제
25. 개태사에 양초공양 하나 올리고
26. 3년만의 성원정사 합동천도재
27. 성도절 열린선원에서
28. 천장사 도반 모임은
29. 인제 용화선원 대중공양 가는 날에
30. 일체의 앎이 끊어진 자리, 인제 용화선원
31. 천장사 방생법회 가는 날에
32. 사람을 살리는 방생, 천장사 금강 방생법회
33. 성주사지에서 주춧돌 명상을
34. 석굴암 본존불 앞에서
35. 석문의 연속 향일암
36. 사라진 헤인사 학사대 전나무
37. 천장사 도반들과 우정어린 부처님오신날을
38. 처마와 처마가 맞닿아 있는 구인사
39. 카페 같은 현진스님의 마야사
40. 천장사 달빛음악회
책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동안 국내 사찰순례한 것에 대한 기록이다. 어느 절에 가든지 반드시 기록을 남긴다. 풍부한 사진도 곁들인다.
책을 만들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이 있다. 그것은 사진을 편집하는 것이다. 특히 사찰순례와 같은 여행기에는 수많은 사진이 들어가는데 나중에 책으로 만들 때 사이즈를 줄여서 배치하는 것이 가장 큰 일에 해당된다.
글을 쓸 때 사진을 곁들인다. 여행기는 사진을 설명하는 식이 되기 쉽다. 그러다 보니 사찰순례와 같은 여행후기에는 수많은 사진이 올라가게 되는데 나중에 책으로 만들 때 시간을 빼앗는 편집작업이 된다.
힘들면 쉬어 가면 된다. 오늘 하지 못했으면 내일 하면 된다. 사진이 많은 글은 일없이 쉬엄쉬엄 하면 된다. 매일 조금씩 편집하다 보면 어느 날 다 했음을 알게 된다. 참고로 목차는 다음과 같다.
갖가지 제목의 글이 있다. 이런 제목의 글을 남기는 것은 어쩌면 집착인지 모른다. 마치 흘러가는 시간을 붙들어 매두기 위한 것인지 모른다.
시간을 붙들어 맬 수 있을까? 여행후기를 남긴다고 해서 지나간 시간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기 싫었다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집념하면 성과를 낼 수 있다. 굳이 쓰지 않아도 될 여행기를 쓰는 것도 집념의 산물이다. 부정적으로 말하면 집착이다. 흘러가는 시간을 멈추게 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어느 날 마라(악마)는 나이 든 바라문수행자 모습을 하고서 젊은 수행승 앞에 나타났다. 마라는 콜록거리며 “존자들은 젊고 머리카락이 아주 검고 행복한 청춘을 부여받았으나 인생의 꽃다운 시절에 감각적 쾌락을 즐기지 않고 출가했습니다. 존자들은 인간의 감각적 쾌락을 즐기십시오. 시간에 매인 것을 쫓기 위해 현재를 버리지 마십시오.”(S4.21)라며 게송으로 말했다.
초기경전에서 마라는 늘 부처님의 가르침과 반대편에 서 있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당화 하기 위해서 마라가 등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마라는 젊은 수행승들을 유혹한다. 젊은 수행승이 욕망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젊은 시절은 자만으로 살기 쉽다. 이른바 젊음의 자만, 건강의 자만, 삶의 자만을 말한다. 그럼에도 머리가 칠흑같이 젊을 때 출가하여 사는 수행승이 있다. 마라의 표적이 된다.
마라는 향락을 누리지 않고 고행하며 사는 젊은 수행승을 유혹한다. 젊어서는 감각을 즐기는 삶을 살아도 됨을 말한다. 수행을 하려거든 늙어서 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과연 마라의 말을 믿어도 될까?
시절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젊어서는 감각을 즐기는 삶다가 노년에 수행을 해도 된다고 하지만 그때 가봐야 한다. 내일 죽을지 어떻게 아는가?
젊어서 즐기는 삶을 살라고 말하는 것은 악마의 속삭임이나 다름 없다. 누군가 “젊은 시절이 그대를 지나치지 않도록 향락을 누리고 사십시오.”라고 말한다면 악마가 말하는 것과 같다.
이삼십년전에는 환갑잔치를 했었다. 아마 대부분 사람들은 나이 드신 어른에게 “즐겁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십시오.”라고 말했을 것이다. 덧붙여서 “이제부터는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고 다니고 싶은데 마음대로 다니면서 사십시오.”라고 말할지 모른다. 감각을 즐기는 것을 행복으로 아는 것이다.
여기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열심히 일한 만큼 감각을 즐기기도 한다. 감각을 즐기는 것을 행복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젊은 시절, 청춘은 다시 돌아 오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유행가 가사 가운데 “노새 노새 젊어서 노새 늙어지면 못노나니” 라는 말이 있다. 젊었을 때 놀자는 것이다. 건강이 나빠지면 놀지도 못하기 때문에 힘이 있을 때 최대한 감각을 즐기는 삶을 살자고 말한다. 악마의 속삭임이라고 볼 수 있다.
젊은 수행승은 바라문 수행자의 말을 듣고서 악마임을 알아 보았다. 수행승은 “성직자여, 우리들은 시간에 매인 것을 쫓기 위해 현재를 버리지 않습니다.”(S4.21)라고 말했다.
악마는 수행승에게 ‘시간에 매인 것을 쫓기 위해 현재를 버리지 말라’라고 충고했다. 이에 수행승은 ‘시간에 매인 것을 쫓기 위해 현재를 버리지 않습니다’라며 맞받았다. 여기서 ‘시간에 매인다’라는 말은 어떤 뜻일까?
시간에 매인다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것에 머물러 있는 것을 말한다. 빅쿠보디는
“do not abandon what is directly visible in order to pursue what takes time”라고 영역했다. 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을 추구하기 위해 직접 보이는 것을 버리지 마세요.”라고 번역된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목전에 분명한 것을 제쳐두고 시간이 걸리는 것을 추구하지 마십시오.”라고 번역했다.
나이들아 콜록거리는 모습의 바라문은 마라가 변신한 것이다. 마라가 젊은 수행승을 보고서 젊은 시절은 감각적 쾌락을 누리는 삶을 살라고 했다. 이는 ‘바라문인생사주기’에 대한 것이다.
고대인도에서 바라문은 인생을 사주기로 살았다. 학습기, 가주기, 임서기, 유행기를 말한다. 콜록거리는 바라문 수행자는 유행기를 사는 자에 해당된다.
바라문 수행자는 부처님의 제자인 젊은 수행승에게 충고한다. 황금 같은 청춘시절에는 가주기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이는 젊은 시절 감각적 욕망을 마음껏 즐기는 삶을 말하기도 한다. 수행은 늙어서 해도 된다는 것이다.
젊은 수행승은 악마의 속삭임을 알게 되었다. 젊은 수행승은 “우리는 시간에 매인 것을 쫓기 위해 현재를 버리지 않습니다.”(S4.21)라고 말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바라문인생사주기대로 살지 않겠다는 것이다.
초기경전, 즉 니까야를 보면 ‘브라흐마짜리야(brahmacariya)’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이 말은 바라문인생사주기에서 ‘학습기’에 해당되는 말이다. 또한 이를 ‘범행기’라고도 한다. 브라흐마짜리야에 대하여‘청정범행’이라고도 번역한다.
부처님의 제자들은 학습기에 해당될 때 출가했다. 가주기의 삶을 살지 않는 것이다. 학습기 때 출가했다면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는 학습기가 평생 이어지는 것임을 말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청정한 삶을 지향한다. 이는 학습기가 죽을 때까지 유지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브라흐마짜리야, 즉 청정한 삶을 산다고 말한다.
부처님 당시 바라문은 사성계급의 정점에 있었다. 바라문들은 지배계급이었다. 바라문들은 바라문인생사주기대로 살았다. 학습기가 지나면 가주기로 사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어 가업을 잇는 삶이다. 수행자로서의 삶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한 다음에 살아도 늦지 않다고 보았다.
인생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안전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바라문인생사주기로 산다는 보장은 없다. 왜 그런가? 내일 죽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일 일은 알 수 없다. 이런 때 수행은 늙어서나 하는 것이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노년의 그날까지 산다는 보장은 없다. 이렇게 본다면 수행은 지금 여기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젊은 수행승은 “우리는 시간에 매인 것을 쫓기 위해 현재를 버리지 않습니다.”(S4.21)라고 말했다. 이 말은 “시간이 걸리는 것을 추구하기 위해 직접 보이는 것을 버리지 않습니다. (We have abandoned what takes time in order to pursue what is directly visible)” (S4.21)라는 말과 같다.
시간은 한번 지나지 오지 않는다. 시절도 한번 지나면 오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초기경전에는 시간과 관련된 게송이 여러 개 있다.
천신은 젊은 수행승에게 충고했다. 천신은 “수행승이여, 시절이 그대를 지나치지 않도록 향락을 누리고 나서 걸식하시오.”(S1.20)라고 말한 것이다. 보통사람들처럼 젊은 시절에 가정을 이루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라는 것이다.
젊은 수행승은 천신의 충고를 받아 들이지 않았다. 수행승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했다.
“그대가 말하는 시절을 나는 모르네.
그 시간은 감추어져 있고 볼 수도 없으니,
시절이 나를 지나치지 않도록
나는 향락없이 걸식하며 사네.”(S1.20)
천신이 말하는 시절과 수행승이 말하는 시절은 다르다. 여기서 시절은 깔로(kālo)를 번역한 말이다. 천신이 말하는 시절은 ‘청춘의 시절(yobbanakalā)’을 말하고, 수행승이 말하는 시절은 ‘죽음의 시간(maraṇakalā)’을 말한다.
청춘의 시절은 눈에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의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음을 말한다. 내일 죽을지 모른다.
사람의 운명은 알 수 없다. 가장 확실한 것은 죽음이다. 그래서 죽음의 게송을 보면 “나의 삶은 불확실하지만 나의 죽음은 확실하다.(jīvitaṃ me ānīyataṃ maraṇaṃ me nīyataṃ)”라고 했다.
나의 삶이 불확실한 것은 내가 언제 죽을지 모름을 말한다. 그러나 죽는다는 사실 그 자체는 확실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젊은 시절에는 감각을 즐기는 삶을 살다가 수행은 늙어서 해도 된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책을 한권 만들었다. 그날 있었던 감명 깊었던 것 하나를 쓴 것을 모으니 축적되었다. 이제 시절인연이 되어서 또하나의 책으로 나오게 되었다. 출판되지 않는 책이다.
인터넷 블로그에 피디에프(pdf)파일을 올려 놓는다. 누가 이런 책을 볼까? 그럼에도 올려 놓는 것은 시간을 붙들어 매놓기 위한 것이다. 하루 일과 가운데 오전이 고스란히 글에 녹아 있다. 시절이 나를 지나치지 않도록 글을 썼다.
2025-01-14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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