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권당

144권 강연회 II 2019-2023

담마다사 이병욱 2026. 1. 13. 18:54

 

144권 강연회 II 2019-2023

 

 

나답게 사는 것은 무엇일까? 오늘 새벽 고민해 봤다. 나로서 나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숙고하다 보니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오늘날 유튜브는 없어서는 안될 정보의 보고이다. 대부분 쓰레기에 지나지 않지만 그 중에는 유익한 것도 없지 않다. 어떤 젊은 여성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것이 그랬다.

 

유튜브는 알고리즘에 의해 보여진다. 요즘 정치에 관심 가졌더니 온통 정치에 대한 것만 뜬다. 어쩌다가 다른 것이 보이는데 그 가운데 젊은 여성작가의 영상을 접하게 되었다.

 

작가는 일류명문대를 나왔다. 그러나 원하지 않는 학과를 들어갔다. 학과보다는 학교이름을 더 중시한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혹했다고 한다. 취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잘 나가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서른이 다 되도록 변변한 직장 하나 잡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세칭 인기학과를 졸업한 친구들은 저 멀리 앞서 나갔다는 것이다.

 

작가는 잘 나가는 친구들을 따라잡기 위해서 고군분투했다. 그것은 돈벌기로 나타났다. 돈만 월등히 번다면 충분히 보상이 되고도 남는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작가는 백수로 산 육년 동안 천권의 책을 읽었다. 책을 읽고서 깨달은 것은 ‘나답게 살자’라는 것이었다. 잘 나가는 친구들을 부러워하지 않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것’이다.

 

젊은 작가의 말에 지극히 공감했다. 어쩌면 나에게 해당되는 말인지 모른다. 남과 비교했을 때 ‘자격지심’이 생겨난 것을 말한다. 이럴 때 ‘나답게 살자’라는 말에 크게 위안이 되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아마 그것은 자신의 자존(自尊)과 관계된 일일 것이다.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으면 자격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비교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다.

 

자존과 관련하여 글을 쓴 바 있다. 유튜브에서 김태형 소장의 이야기를 듣고 녹취해서 쓴 것이다. 이런 것도 강연을 듣고 썼다고 말할 수 있다.

 

매일매일 글쓰기를 하고 있다. 하루 일과 가운데 오전은 글쓰기로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에 강연과 관련된 글을 모아 하나의 책을 만들었다. 그 글 가운데에는 김태형 소장의 자존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 있다. 참고로 책의 목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목차)

 

1. 북한특수가 희망, 하석태 선생의 남북관계 70년사와 전망

2. 우리가 직접 만들자, 연성수선생의 국민개헌운동

3. 사회적 분노를 어떻게 할 것인가, 치바나 쇼이치(知花昌一) 스님

4. 이것만이 진리라고 했을 때, 최진석선생의 유튜브강연

5. 인간을 실존적 존재라고 하는데, 김필영선생의 5분 뚝딱 철학

6. 달동네가 아닌 산동네인 이유, 황석영의 GMC풀강연

7. 세상 보는 눈이 달라졌다면, 김필영선생의 5분 뚝딱 철학

8. 우주의 존재이유에 대하여, 김필영선생의 5분 뚝딱 철학

9. 자현스님의 스끼다시불교론

10. 숭고함에 대하여, 김필영선생의 5분 뚝딱 철학

11. 권위 있는 학자스님이 말했다고 하여, 자현스님의 붓다로드

12. 사는게 재미없다면, 고미숙 선생의 글쓰기강연

13. 명진스님의 십년공부도로아미타불

14. 동의보감의 지혜와 삶의 비전, 고미숙 선생의 유튜브 강연

15. 여성은 세컨드(Second)가 아니다, 불교와 페미니즘

16. 팔경법 극복을 위하여, 불교와 페미니즘

17. 우리는 왜 지식생산자로 살아야 하는가?

18. 김정빈선생 유튜브채널을 발견하고

19. 인영사과(人營四科)비판

20. 글쓰기의 거룩함과 통쾌함

21. 한반도 왜와 일본 왜는 어떻게 다른가?

22. 덕과 유사한 꾸살라

23. 자존감(自尊感)이 낮은 것은

24. 인간을 실존적 존재라고 하는 것은

25. 북한을 모르면 북맹(北盲)

26. 인생은 존재인가 사건인가?

27. 자본주의는 왜 무한질주 할까?

28. 바람과 사자와 연꽃의 노래, 고미숙 선생의 청년붓다 1강

29. 태자가 젊은 나이에 출가한 이유는, 고미숙 선생의 청년붓다 2강

30. 왜 고행을 하는가? 고미숙 선생의 청년붓다 3강

31. 항마촉지인의 의미, 고미숙 선생의 청년붓다 4강

32. 후진불가 법의 수레바퀴, 고미숙선생의 청년붓다 5강

33. 홀로 존재할 수 없다, 고미숙 선생의 청년붓다 6강

34. 자아는 이데올로기와 같은 것, 고미숙 선생의 청년붓다 7강

35. 우정의 수행공동체, 고미숙 선생의 청년붓다 8강

36. 죽음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37. 동의하기 힘든 즉문즉설 스님의 윤회관

38. 붓다 빅퀘스천 강연 현장에서

 

 

 

이번에 만든 책 제목에 대하여 ‘144 강연회 II 2019-2023’이라고 이름 붙였다. 144번째 책으로 강연에 관한 두 번째 책이다. 모두 38개의 글이 실려 있고 330페이지에 달한다.

 

강연회 글이라 하여 강연회에 참가해서 쓴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유튜브를 보고 공감했다면 이를 녹취해서 글로 만든다. 목차에 있는 대부분의 글은 이렇게 쓰여졌다.

 

자존과 관련된 글이 있다. 목차 23번의 ‘자존감(自尊感)이 낮은 것은’(2021-08-23)이라는 제목의 글이 그것이다. 이 글은 나답게 사는 것과 관련된 글이다.

 

불행은 비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자신의 자존이 낮은 것은 남과 비교했을 때 열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존심을 세우고자 한다.

 

자존과 자존심은 다른 것이다. 자존은 자기자신을 스스로 높이는 것을 말하고, 자존심은 남에게 굽히지 않고 스스로를 높이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자존은 일반적인 것이고, 자존심은 특수한 것이 된다. 또한 자존은 자기(self)에 대한 것이고 자존심은 자아(ego)에 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융의 분석심리학에 따르면 ‘자기(self)’와 ‘자아(ego)’는 다른 것이다. 자기는 전체에 대한 것이고 또한 완성에 대한 것이다. 반면 자아는 일부에 대한 것이고 미완성에 대한 것이다. 자기는 자존과 같은 개념이고, 자존심은 자아와 같은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존심이 강한 자는 자아개념이 강한 자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지고는 못산다. 남보다 잘나고 똑똑하고 뛰어나야 한다. 당연히 지위도 높아야 하고 재산도 많아야 하고 학벌도 높아야 한다. 그러나 늘 좌절한다. 왜 그럴까?

 

이 세상에는 나보다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 당연히 나보다 지위가 높고 명성이 있고 재산이 있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을 비교대상으로 삼는다면 나는 영원히 열등감에 사로잡혀 살아가게 될 것이다.

 

자존심으로 살면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왜 그런가? 나보다 나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상대방보다 더 낫다고 여기지 않는다면 나는 여전히 불만족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사회는 대체로 자존감이 낮다고 볼 수 있다. 왜 그런가? 돈 때문이다. 자본의 논리가 사회를 지배했을 때 사회구성원의 자존감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는 돈이 최고로 평가 받는다. 돈으로 서열이 정해진다. 저 사람이 나보다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면 자존심이 상한다. 저 사람이 나보다 너른 평수에 살면 자존심이 상한다. 저 사람이 나보다 조금이라도 돈이 많으면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돈이 적은 자는 자존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비교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열등적 자만이 생겨난다. 반면에 돈이 많은 자는 우월감을 느낄 것이다.

 

상대방 보다 더 큰 차를 타고 너른 평수에 산다면 승리자처럼 생각할 것이다. 이른바 우월적 자만에 따른다. 그래서 “내가 누군데” 또는 “내가 누군데 감히”라며 우월적 자만이 생겨난다. 부자의 자만, 배운 자의 자만, 가문의 자만도 이에 해당된다.

 

자존감이 낮은 사회는 자만으로 살아가는 세상이다. 남과 비교하여 더 나으면 우월적 자만으로 살아가고, 남과 비교하여 조금이라도 낮으면 열등적 자만으로 살아간다.

 

여기 나보다 돈이 많은 자가 있다. 그도 열등적 자만을 가지기 쉽다. 왜 그런가? 그 사람보다 돈이 더 많은 자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 세상에서 제1의 부자를 제외하고 모두 불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는 자본주의의 한계에 해당된다.

 

나는 자본주의의 체제하에서 살고 있다. 돈이 우선 되는 세상이다. 그러나 돈과 자본은 다른 것이다. 이는 목차 26번 ‘자본주의는 왜 무한질주할까?’(2022-01-16)라는 글에서 밝혀 놓았다. 고미숙 선생의 유튜브 강연을 듣고 녹취해서 쓴 것이다.

 

고미숙 선생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화폐(돈)와 자본, 이렇게 두 가지 키워드로 정리된다. 왜 그런가? 여기서 화폐는 ‘욕망’을 나타내는 것이고 자본은 ‘증식’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화폐와 자본은 같은 듯하면서도 다르다. 둘 다 욕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화폐는 욕망 그 자체에 대한 것이고, 자본은 그 욕망이 무한질주 하는 증식에 대한 것이다.

 

힘이 있으면 힘을 행사하고 싶어진다. 조폭의 주먹이 근질근질한 이유에 해당된다. 돈이 많아지면 힘이 생긴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의 힘을 행사하려 하는 것이다. 이는 자본의 증식으로 나타난다. 아파트를 한채 가진 자가 두채 가지려 하고, 10억 가진 자가 100억을 가지려 하는 것과 같다.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다. 욕망은 탐욕으로 나타난다. 남의 것을 빼앗으려 하는 것은 탐욕이다. 돈이 이만큼 있을 때 더 불려 나가고자 하는 것은 탐욕의 마음이 작동된 것이다. 그래서 “자본은 증식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자본은 증식을 목적으로 한다. 사람들은 자본의 증식을 위해서 맹목적으로 달려간다. 만족이 없는 삶이다. 모두가 돈의 노예가 되어 살아 갈 때 자본주의의 세상에서는 이 세상에서 제1의 부자 한사람을 제외하고 자존감이 낮은 삶을 살게 될 수밖에 없다.

 

돈이 서열화 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남이 나보다 조금 더 가졌다면 나의 자존감은 무너진다. 내가 돈이 아무리 많아도 나보다 조금 더 가진 자가 있다면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다. 영원히 불만족한 삶이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은 “자기를 남과 비교하여 동등하다거나 열등하다거나 우월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Stn.799)라고 말했다.

 

사람을 돈으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사람을 돈으로 평가하는 세상은 자존감이 낮은 세상, 불만으로 가득한 세상이 된다. 이럴 때는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돈으로 평가하지 않고 가치로 평가하는 것이다. 어떤 가치인가? 그것은 “그 사람이 이 사회에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가?”로 따지는 것이다. 사회적 가치로 사람을 평하가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사람을 평가할 수 없다.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려 한다면 돈 가진 것으로 평가하기 쉽다. 그러나 사람은 돈 가진 것으로 매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사람의 가치는 사회가 평가한다.

 

그 사람은 돈이 많다. 어떤 과정으로 돈을 벌었는지 알 수 없다. 그 사람이 돈이 많다고 하여 존경하고 존중해야 할까? 어떤 이는 돈 많은 이에 대하여 열등적 자만을 느낄지 모른다. 돈 모은 과정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부동산이나 주식 등 불법과 탈법, 편법으로 부를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열등적 자만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가치를 돈으로 매겨져서는 안된다. 사람의 가치는 사회 구성원들이 평가해야 한다. 그 사람이 사회에 얼마나 기여했느냐로 판단하는 것이다. 졸부보다는 민주화유공자를 더 높게 평가해 주는 것이 대표적인 예에 해당된다.

 

자존감에는 두 가지가 있다. 가짜자존감과 진짜자존감을 말한다. 가짜자존감은 돈이 많고 적음에 따라 평가하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 산다면 자존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진짜자존감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을 때 나타난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이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고 여길 때 자존감은 높아진다. 이것이 진짜 자존감이다.

 

나답게 사는 것은 자존 또는 자존감으로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나답게 살아야 할까?

 

매일 글쓰기 하는 것도 나답게 사는 것이다. 매일 축적된 삶을 사는 것도 나답게 사는 것이다. 매일 공덕 짓는 삶을 사는 것도 나답게 사는 것이다. 매일 보국(報國)의 마음으로 사는 것도 나답게 사는 것이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여 슬퍼하지 않는 것도 나답게 사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돈과 관련된 것은 없다.

 

한번뿐인 인생이다. 이 생에서 이 모습과 이 성향으로 사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귀중한 생에서 비교하는 것으로 인생을 헛되이 보낼 수 없다. 매일 글을 쓰는 것, 때에 따라 책을 만드는 것, 저축을 해서 재산을 불려 가는 것, 보시통장을 만들어서 나누고 베풀고 사는 것, 생업을 해서 이 사회와 나라에 보탬이 되는 것은 나답게 삶을 사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진리의 행자’로 살고자 한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나의 자존감은 높아진다. 나답게 살 때 자존의 삶을 살게 된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 다고 하여 인정투쟁 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나답게 사는 것이다.

 

 

2025-01-22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