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1263

범부는 장애를 가진 것과 같아서

범부는 장애를 가진 것과 같아서 하루 일과 중에서 가장 성스런 시간이 있다. 그것은 아침 글 쓰는 시간이다. 흰 여백을 마주하고 앉아 있으면 마치 시험을 보는 것 같다. 오늘은 잘 쓸 수 있을까? 스토커 꼬깔리까 머리맡에 쌍윳따니까야를 읽고 있다. 기억하고 싶은 문구가 있으면 새기고자 한다. 다음과 같은 게송이 와 닿았다.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려서 누가 그것을 올바로 규정할 것인가?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리는 자는 생각건대 장애가 있는 범부에 불과하네.”(S6.7) 이 게송은 ‘꼬깔리까의 경 1’에 실려 있다. 외톨이 하느님(Brahma) 쑤브라흐만이 수행승 꼬깔리까 앞에서 읊은 것이다. 수행승 꼬깔리까는 악인이다. 악인의 대명서 데바닷따의 제자이기도 하다. 수타니파타 ‘꼬깔리야의 경’(Sn...

담마의 거울 2024.04.25

알아야 할 것과 몰라도 되는 것들

알아야 할 것과 몰라도 되는 것들 햇살 가득한 백권당의 아침이다. 일터에 왔을 때 가장 먼저 보리수를 살핀다. 부활한 보리수 잎이 갈수록 커간다. 새로 잎이 나기도 한다.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잎이 무성한 그날을 기다려 본다. 아침에는 커피를 마셔야 한다. 백권당표 절구커피이다. 손수 절구질해서 만든 커피를 말한다. 쓰지도 않고 달지도 않고 시지도 않는다. 오늘 따라 입에 짝짝 달라 붙는다. 커피 중에 최상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최상은 어떤 것일까? “두 발 가진 자 가운데는 왕족이 네 발 가진 것 가운데는 황소가, 아내 가운데는 젊은 아내가 아들 가운데는 맏아들이 가장 낫네.”(S1.14) 이 게송은 하늘사람이 읊은 것이다. 부처님 당시 농경사회의 삶에 모습에 대한 것이다. 이를 세속적인 삶이라 말할..

담마의 거울 2024.03.30

여인은 감각적 욕망 그 자체일까?

여인은 감각적 욕망 그 자체일까? 엘리베이터에 그 사람이 탔다. 이른 아침 일터로 가는 길에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군복 입은 사람이 탄 것이다. 그 사람이 무엇을 할지는 알고 있다. 경비실 뒤로 담배 피우러 가는 것이다. 소형아파트에 살고 있다. 스물두 평임에도 엘리베이터식이다. 층고는 무려 이십오 층에 이른다. 소형이어서일까 신혼부부나 젊은 부부가 꽤 된다. 또 한편으로 독거노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산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한때 피웠으나 혼자 일하면서 그만 두었다. 선천적으로 체질에 맞지 않음에도 다른 사람이 피우는 것을 보고 따라 했다. 특히 회의가 끝날 때 강하게 당겼다. 직장 다닐 때의 일이다. 엘리베이터에 담배 냄새가 풍긴다. 순간적으로 기분이 상했다. 담배 피우는 사람에 대한 혐오의 마음이..

담마의 거울 2024.03.29

디지털논리 진리표로 본 진실과 허위의 언어적 개념

디지털논리 진리표로 본 진실과 허위의 언어적 개념 부처님법 만나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를 한자어로 ‘백천만겁난조우’라고 한다. 천수경에서는 “무상심심미묘법 백천만겁난조우”라 하여 개경게에서 발견된다. 부처님법에 대하여 무상(無上)이라고 말한다. 위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부처님 법에 대하여 ‘무상정등각’이라고 한다. 이 말은 아눗따라삼마삼보디(anuttara sammāsambodhi)를 한역한 것이다. 부처님이 발견한 진리는 궁극의 진리이다. 이것 이상 더 이상 진리가 없음을 말한다. 더 이상 깨달을 것이 없는 진리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나는 신들과 악마들과 하느님들의 세계에서, 성직자들과 수행자들, 그리고 왕들과 백성들과 그 후예들의 세계에서 위없이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바르게 원만히 깨달았다고 선..

담마의 거울 2024.03.21

액면 그대로 비추어 주는 진리의 거울

액면 그대로 비추어 주는 진리의 거울 하루하루가 위태위태하다. 잘못하면 부서질 것 같다. 아침이 되면 멀쩡하다가도 저녁이 되면 피로가 몰려 온다. 어제 저녁 으슬으슬했다. 몸살 기미가 보였다. 이럴 때 선 조치를 해야 한다. 타이레놀 두 알을 먹었다. 그리고 전기매트를 다시 깔았다. 몸을 따뜻하게 하고 하루밤을 보냈더니 개운해졌다. 다시 새 아침을 맞았다. 매번 반복되는 일상이다. 늘 그렇듯이 삶은 계란 하나, 삶은 고구마 작은 것 하나, 그리고 치즈 하나가 곁들인 샌드위치 한 조각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그리고 원두콩을 절구질하여 원두커피를 만들어 마시고 있다. 보리수가 살아나고 있다. 이제 하루다 달라 보인다. 이제 제법 잎으로서 형태를 갖춘 것 같다. 이대로 죽어 버릴 줄 알았는데 부활한 것이다. 자..

담마의 거울 2024.03.14

왜 사리뿟따를 지혜제일이라고 하는가?

왜 사리뿟따를 지혜제일이라고 하는가? 지금 시각은 오전 8시, 햇살 가득한 백권당의 아침이다. 자영업자에게 일요일은 없다. 주말은 평일의 연장선상이다. 오늘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한편의 글을 쓰는 것이다. 꽃샘 추위인가 보다 날씨가 영하이다. 그러나 햇살은 강렬해서 춥지 않게 느껴진다. 이제 더 이상 추위는 오지 않을 것 같다. 봄 같지 않은 봄이지만 결국 봄은 오고야 만다. 보리수에 잎이 나기 시작했다. 작년 잎이 모두 졌을 때 절망했다. 이대로 죽는 줄 알았다. 그러나 언젠가 들은 것이 있다. 보리수는 낙엽수처럼 잎이 다 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보리수 잎이 이제 형태를 갖추었다. 다시는 살아날 것 같지 않을 것처럼 보였으나 이삼주전 싹이 트기 시작하더니 이제 작은 하트모양이 생겨나기 ..

담마의 거울 2024.03.10

더 이상 배우려 하지 않는 꼰대

더 이상 배우려 하지 않는 꼰대 모임에서는 흔히 ‘선생’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선생이라는 용어는 매우 생소했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한번도 선생이었던 적이 없었고 한번도 선생이라고 불리어졌던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2016년의 일이다. 그 해 봄에 전재성 선생을 찾아 갔다. 전재성 선생은 나에게 “이선생”이라고 호칭했다. 참으로 어색했다. 평생 살아 오면서 한번도 선생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선생이라니! 선생이라는 호칭에는 존경의 의미가 담겨 있다. 학교 선생을 생각하면 된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그 학교 선생을 말한다. 그럼에도 선생이라고 했다. 나에게 “씨(氏)”라고 하지 않고 선생이라는 호칭을 붙여 주었을 때 정말 선생이 된 것 같았다. 요즘 글을 쓰면 누구에게나 선생이라는 호칭을 붙여 준다. ..

담마의 거울 2024.03.08

여행자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여행자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혼자 있어도 늘 바쁘다. 이것 저것 할 것이 많다. 하루 해가 금방 지나간다. 아침인가 싶으면 저녁이다. 늘 자리에 누워 있는 것 같다. 삶도 이런 것일까? 결국 죽음의 침상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의 삶은 불확실하지만 나의 죽음은 확실하다고 했다. 이 말은 어떤 뜻일까? 나의 삶이 불확실하다는 것은 정해진 수명이 없다는 말과 같다. 결국 이 말은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는 말과 같다. 확실한 것은 죽는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 있을 때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젊음, 이 건강, 이 삶이 천년만년 지속될 수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천년만년 살 것처럼 하루를 헛되이 보낸다. 그렇게 내버려 둘 수 없다. 글을 씀으로 인하여 삶의 흔적을 남긴다. 이런 ..

담마의 거울 2024.03.06

진리가 나를 자유롭게

진리가 나를 자유롭게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 말은 아마도 유일신교 경전에 있는 말 같다. 그런데 이런 뉘앙스의 말은 불교경전에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진리의 흐름이 이 사람을 이끌어간다.”(A6.44)라는 말이다. 새벽에 잠에서 깨었을 때 진리의 말씀이 떠오른다. 마치 오래된 기억이 떠오르는 것과 같다. 경전을 읽었을 때 새기고자 하는 구절이 떠오르는 것이다. 이럴 때 가만 있을 수 없다. 메모를 해놓아야 한다. 그러나 필기구가 없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스마트폰 메모앱을 활용하는 것이다. 능력 또는 근기의 다양성 진리의 흐름이 이 사람을 이끌어 간다고 했다. 이 말은 앙굿따라니까야 ‘미가쌀라의 경’(A6.44)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부처님이 재가의 여신도 미가쌀라에게 말한 ..

담마의 거울 2024.03.04

늙음은 부끄러운 것인가?

늙음은 부끄러운 것인가? 일요일 평온한 백권당의 아침이다. 집에서 가져온 삶은 고구마와 감자, 그리고 치즈를 올려 놓은 샌드위치 한조각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지난 일년 이상 늘 하던 것이다. 너무 많지도 않고 너무 적지도 않은 적당한 식사이다. 아침이 되면 몸 상태를 살핀다. 어디 아픈지는 없는지 점검해 보는 것이다. 아직 아픈 데는 한군데도 발견되지 않는다. 최상의 컨디션이라 말할 수 있다. 사람은 힘이 있으면 남용한다. 조폭주먹이 근질근질한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건강하면 건강을 남용한다. 어떤 것인가? 과음이 대표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과음해서 몸을 망가지게 하는 것이다. 이 건강은 언제까지 유지 될지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늙어감에 따라 기능이 약화된다는 것이다. 어..

담마의 거울 2024.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