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부디스트크리스찬 부디스트가톨릭 출현의 의미는

담마다사 이병욱 2009. 2. 10. 13:38

 

부디스트크리스찬(Buddhist-Christian)' '부디스트가톨릭(Buddhist-Catholic)' 출현의 의미는

 

 

'위빠사나'라는 키워드

 

위빠사나 수행자는 일반 법당에 가서 수행 하지 말라고 한다. 다라니나 염불, 절수행과 같이 집중수행 하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경행과 좌선을 위주로 이루어 지는 위빠사나와 절수행이나 다라니 수행과 같이 집중하여 수행 하는 사마타와의 차이 일 것이다. 같은 불교 일지라도 이렇게 차이가 큰 이유는 아무래도 수행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위빠사나 라는 말은 오래 전 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위빠사나에 관련된 서적이나 논문도 읽어서 어느 정도 개념은 파악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수행을 해 본 적은 없다. 특히 식자층을 중심으로 지대한 관심을 갖는 위빠사나 수행이 유행하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부처님 당시로 좀 더 다가가기 위한 몸부림이라 여겨 진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한국불교가 처한 현실도 어느 정도 작용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불교와 타종교의 가장 큰 차이는

 

한국불교는 대승불교이다. 단순하게 대승과 소승으로 나누었을 때 북방 불교를 대승이라 하고 남방불교를 소승이라 한다. 보통 대승이 소승을 폄하할 때 사용 하는 용어이다. 이런 폄하 하는 내용은 대승경전에서도 종종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소승불교가 그렇게 폄하될 대상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하여 학자들은 그 때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을 들어서 이야기 한다. 상좌부불교가 너무 교학적으로 치우쳐서 민중들과 괴리 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승운동이 일어나는 요인이 되었다고도 말한다. 그런 운동의 결과 발전된 대승불교는 초기불교의 모습을 많이 잃어 버리고 힌두교화 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즉 불교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3법인의 훼손이다. 그 중에서 무아에 대한 개념 변경이 두드러진다. 흔히 말하는  진아(眞我), 상락아정, 아뢰야식, 여래장과 같은 사상이 그렇다. 브라만교의 '아트만'과 크게 차이를 발견 하지 못하였을 때 불교는 인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불교가 타종교와 가장 차이 나는 부분이 바로 '무아(無我)'사상이다. 이제까지 이 세상 어느 종교도 무아에 관하여 이야기 한 종교는 없었다. 오로지 부처님만이 무아를 설 하였다. 무아의 개념은 무상(無常)과 고()와 함께 나온다. 무상 고 무아는 불교의 핵심인 3법인으로서 삼라만상 누구에게나 적용 되고 보편타당한 근본법칙이다. 그런 3법인에 가장 충실한 불교가 남방 상좌부라 볼 수 있다. 이런 무상 고 무아를 이론적으로 체계적으로 설명한 것이 부처님이 발견한 12연기법이다. 어떤 사람은 12연기를 '불교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12연기를 제대로 법문 하는 곳

 

도올 김용욕이 있다. 그가 쓴 책 중에 인도방문기가 있다. 그 책에서 부처님이 발견한 것이 12연기라는 것을 알고 매우 실망했다고 적고 있다. 알고 보니 별것 아니라는 식이다. 마치 천지창조와 같이 부처님의 깨달음이 거창한 그 무엇이 있는 줄 알았더니 "이것이 있음으로 해서 저것이 일어나고 이것이 없어 짐으로 해서 저것도 없어 진다"라는 매우 단순하고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이어서 허탈 했다는 것이다. 만일 그가 12연기를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그저 그렇고 그런 이론이라고 말했을까.

 

그런 12연기를 제대로 법문 하는 곳이 있다. 논현동에 있는 '한국위빠사나 선원'이다. 선원장은 유발 수행자로서 미얀마에서 7년간 수행하고 비구계를 받았다고 한다. 그가 가르치는 12연기는 아비담마 논장과 주석서를 바탕으로 '마하시 사야도'가 법문한 내용을 '우 에 마웅'이 영어 번역한 내용을 우리말로 번역한 '12연기(Paticca-samuppada)'이다. 이 책을 보면 12연기에 대하여 매우 상세 하게 나와 있다. 그냥 읽어 서는 무슨 말 인지 못 알 뿐더러 진도도 나가지 않는다. 용어 하나 하나가 생소 하기 때문이다. 법문을 들어야만 알아 들을 수 있고 진도도 나갈 수 있다. 지도 법사는 말하기를 자신은 이 12연기를 알고 윤회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위빠사나 수행에 들어 가기 전에 약 1시간여에 걸쳐서 12연기를 법문한다.

 

위빠사나 수행과 병행 하여 진행 되고 있는 12연기는 들으면 들을 수록 새롭다. 원인과 결과에 의하여 조건 지워졌다는 12연기 싸이클을 보면 이것 자체가 무상 고 무아를 설명하고 있어서 3법인에 매우 충실 하다고 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열반하여 해탈 하는 것이 목표이다. 흔히 경전에서 말하는 84000가지나 되는 방편이나 대기설법은 없다. 법 그대로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비담마 논장이라고 한다.

 

 

 

 

picture ;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

 

 

 

새로운 수행법을 찾는 이유

 

불교를 지혜와 자비의 종교라고들 흔히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특히 남방상좌부 불교에서 강조 된다. 반면에 자비라고 말한다면 북방대승불교에서 더 강조 되는 말일 것이다. 보살사상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남방에서도 보살이 있지만 관세음보살과 같은 이미지는 아니고 보살도를 닦는 수행자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대승불교권이므로 자비가 더 강조 되어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는 동아시아에서의 자비사상 보다 지혜를 더 우선시 하는 남방 불교가 대세라 여겨 진다. 그 예로서 유럽이나 미국불교를 보면 알 수 있다.

 

남방상좌부 불교가 도입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는 요인은 변화에 대한 욕구 일 것이다. 특히 기존의 질서에 식상한 식자층에서 심하다고 볼 수 있다. 수행을 하는 사람들의 성분을 보면 알 수 있다. 교수들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천주교나 기독교인들도 있다. 이들이 새로운 수행법을 찾는 이유는 그 방법이 보편타당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았을 때 하나의 가능성을 발견 할 수 있다. 이 것은 앞으로 한국불교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 하여 주기도 한다.

 

희망의 싹은 있는가

 

미래에 불교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 될 것임에 이론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그 증거로서 유럽과 미국을 보면 알 수 있다. 유럽에서는 불교신자가 카톨릭 신자 보다 더 많다고 지하 시인은 BTN에서 말하기도 하였다. 또한 BTN의 특집프로를 보면 미국에서는 400만명이 불자이고, 불교영향권에 있는 사람이 무려 2600만명이라고 한다. 그래서 '부디스트크리스찬(Buddhist-Christian)' 이니 '부디스트가톨릭(Buddhist-Catholic)'이니 하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불교영향권에 있는 사람들의 구성 비율이다. 이들의 대다수는 백인 중상층이 주류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소득으로 따졌을 때 3-6만불이 31%이고, 6-9만불이 19%, 10만불 이상이 20%이고 3만불이하는 30%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학력으로 따졌을 때는 고졸이하가 6%, 대학수학이 43%, 석사이상이 무려 51%라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미국의 불교는 중산층이상이 이끌어 간다는 이야기이다.

 

어느 나라든지 그 나라에 종교가 확산 되려면 중산층이상 상류층이 많아야 한다. 그런 현상은 역사적으로 증명 된 바 있다. 이와 같이 유럽이나 미국에서 중상류층을 중심으로 불교가 확산 되고 있는 것과 정반대로 우리나라는 기독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반면에 불교는 맥을 못 추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불교의 낡은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기독교는 새로운 것으로서의 문명의 이미지가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불교는 중흥 할 수 있을까. 현재와 같은 이미지로서는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는 한 지난한 일이 될 것이다. 대승불교에 타력적인 요소가 많아서 기독교의 타력신앙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여겨 진다면 아무래도 새로운 것으로 여기는 기독교에 더 기웃 거릴지 모른다. 특히 젊은 층에 있어서 그렇다. 그러나 하나의 희망의 싹은 보인다. 그것은 유럽이나 미국불교를 보면 알 수 있다.

 

유럽이나 미국 불교는 동아시아와 같은 대승불교의 성격은 아니다. 남방 상좌부 불교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만일 그들이 대승불교를 채택 했다면 기독교와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 하기 때문에 식자층이나 중상층에서 유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존의 기독교와 확실하게 차별화 되기 때문에 불교가 확산 되고 있는 것이다. 교회건물이 사찰로 바뀌는 경우도 그런 현상 중의 하나 일 것이다. 이런 현상이 세계적인 추세라면 우리나라 역시 예외 일 수 없다. 남방 불교 수행 열풍이 불고 있고, 식자층은 물론 타종교인들 까지 관심을 가질 정도라면 미래의 한국불교는 매우 밝다고 볼 수 있다.

 

 

2009-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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