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우주관과 독화살의 비유, 월폴라 라훌라의 말룽꺄뿟타(Malunkyaputta, 만동자 ) 이야기
관념과 실재, 좀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주제이다. 관념(觀念, idealism)이란 사전적인 의미로 본다면, 첫째로 어떤 일에 대한 견해나 생각이라고 말할 수 있고, 둘째로 현실에 의하지 않는 추상적이고 공상적인 생각이라 말 할 수 있다. 관념은 영어의 이데아(idea)의 역어이고, 심리학적 용어로는 표상, 마음의 내용을 말한다. 반면에 실재(實在, reality)는 인식주체로부터 독립해 객관적으로 존재 한다고 여겨지는 것을 말한다. 꿈이나 망상과 같이 인식 주체에 의해 만들어진 것과 구별된다.
관념을 배격하고 실재를
초기불교를 접하고 관념과 실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특히 위빠사나 수행을 하면서 지도법사로 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불교는 관념이 아니라 실재라는 것이다. 수행을 하는데 있어서 표상이나 개념 또는 관념과 같은 어떤 이미지에 물들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보라는 말과 같다. 경행을 할 때 발이 바닥에 닿으면 그 느낌이 딱딱 한지 부드러운지 차가운지 온기가 있는지를 알아 차리라는 것이다. 즉 발을 내려 놓을 때 발의 모양을 보지 말고 닿았을때의 느낌을 보라는 것이다. 발의 모양을 본다면 관념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차갑고 부드럽고 딲딱하다는 등의 실재를 보았을 때 법의 성품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초기불교의 가르침은 관념을 철저히 배격하고 있는 그대로 실재를 볼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가장 좋은 예가 우리몸을 5가지 무더기인 5온으로 해체 하여 관찰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를 '해체의 종교'로 말하기도 한다. 관념을 배격하고 있는 그대로 볼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만동자 이야기이다. 만동자 이야기를 월폴라 라훌라(Walpola Rahula)스님의 "what the Buddha taught"의 번역판으로 부터 옮겨 보았다(http://kr.buddhism.org/zen/walpola.html).
월폴라 라훌라의 말룽꺄뿟타(Malunkyaputta, 만동자 ) 이야기
순전히 사변적이고 비현실적인 문제만을 만들어 내는 쓸데없는 형이상
학적 질문을 논하는 것에 부처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그것들을 "견해들
의 황무지"라고 여겼다. 부처자신의 제자들 중에도 이런 태도가 못마땅
한 자가 좀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예의 하나로 말룽꺄뿟타Malunkyaputta
(만童子)를 들 수 있다. 그는 형이상학적 문제인 유명한 고전적 질문들
을 부처에게 던지고 대답을 요구하였다.
하루는 말룽꺄뿟따가 오후 일과의 '명상'수행에서 일어나, 부처에게
와서 인사하고는 한쪽 켠에 앉아서 말하였다.
'선생님, 제가 홀로 명상을 하다가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세존께
서 제쳐 놓으시고 거부하시어 설명되지 않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즉, ⑴
우주는 영원한가? 아니면 ⑵영원치 않은가? ⑶우주는 유한한가? 아니면
⑷무한한가? ⑸영혼과 몸은 같은 것인가? 아니면 ⑹영혼과 몸은 제각각
인가? ⑺여래는 죽은 뒤에도 존재하는가? 아니면 ⑻죽은 뒤에는 존재치
않는가? 아니면 ⑼죽은 뒤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치 않는가? 아니
면 ⑽존재치 않으면서 (동시에) 존재치 않은 것도 않은 것인가? 이런 문
제들을 세존께서는 제게 설명해주지 않으셨습니다. 이 (태도)는 제 마음
에 들지 않습니다.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세존께 와서 이 문
제들에 대해 여쭈어 보려 하였습니다. 세존께서 그것들을 제게 설명해
주신다면 저는 계속 세존밑에서 거룩한 삶을 따를 것입니다. 만약에 그
것들을 설명해 주지 않으신다면 저는 이 "동아리"를 떠나가 버리겠습니
다. 세존께서 우주가 영원한 것을 아신다면 제게 그렇다고 설명해 주십
시오. 만약 세존깨서 우주가 영원치 않다는 것을 아신다면 그대로 설명
해 주십시오. 만약 세존께서 우주가 영원한가 그렇지 않은가 등등에 대
하여 모르신다면 모르는 사람으로서 솔직히, "나는 모른다. 나는 보지
못하였다"라고 말하십시오.'
말룽꺄뿟따에게 해준 부처의 대답은 오늘날 세계에서 그런 형이상적
의문으로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불필요하게 마음의 평화를 뒤흔들어
버리는 수 백만의 사람들에게 정말 유익하다 아니할 수 없다.
'말룽꺄뿟따야, 내가 너에게 "이리 오너라. 말룽꺄뿟따야. 내 밑에서
거룩한 삶을 따르라. 그러면 네게 그 문제들을 설명해 주겠노라"라고 말
한 적이 있더냐?'
'없었습니다, 선생님.'
'그렇다면 말룽꺄뿟따야, 네가 "선생님, 저는 세존밑에서 거룩한 삶으
로 따르려 합니다. 그러면 세존께서는 그 문제들을 제게 설명해 주시리
라 믿습니다"라고 내게 말한 적이 있었느냐?'
'없었습니다, 선생님'
'말룽꺄뿟따야,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네게 "이리와서, 내 밑에서 거
룩한 삶을 따르라. 그러면 네게 그 문제들을 설명해 주겠노라"라고 말하
지 않는다. 그리고 너 또한 내게 "선생님, 저는 세존밑에서 거룩한 삶으
로 따르려 합니다. 그러면 세존께서는 그 문제들을 제게 설명해 주시리
라 믿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어리석은 자여, 이런 마당에 누가
누굴 거부하느냐?'
'말룽꺄뿟따야, 만약에 누가 "나는 그 문제들을 설명해주기 전에는 세
존밑에서 거룩한 삶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여래에게
서 이 질문들의 답을 듣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생각해 보아라, 말룽꺄
뿟따야. 어떤 사람이 독화살에 부상을 입었다. 그래서 친구와 친척이 의
사에게 데려갔다.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해보아라. "누가 내게
활을 쏘았는지를 알기 전엔 이 화살을 뽑아내지 않겠다. 끄샤뜨리야Ksat
riya(무사 계급)일까, 아니면 바라문(사제 계급)일까, 바이샤Vaisya(상
인과농민 계급)일까, 아니면 수드라Sudra(천민 계급)일까? 이름이 무엇
이고 성씨가 무엇일까? 키가 클까, 작을까, 중간일까? 피부 색깔은 까말
까, 갈색일까, 아니면 누런색일까? 그 작자는 촌사람일까? 읍내 사람일
까? 아니면 도회지 사람일까? 무슨 활로 나를 쐈는지 알기 전에는 이 화
살을 뽑아내지 못하겠다. 어떤 종류의 활시위를 썼을까? 어떤 화살일까?
무슨 깃털이 화살에 쓰였나? 살촉을 뭘로 만들었나?" 말룽꺄뿟따야, 그
사람은 이런 것들 중에 어떤 것도 알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말룽꺄뿟따
야, 그와 같이 어떤 이가 "나는 세존께서 우주가 영원한가 아니면 영원
치 않은가 따위의 질문에 대답해 주시기 전에는 그분 밑에서 거룩한 삶
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여래에게서 이런 의문들에 대한
답을 듣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부처는 말룽꺄뿟따에게 거룩한 삶은 그런 견해들과 무관
하다고 설명하였다. 누가 그런 문제에 대해 어떤 주의주장을 갖더라도
태어남과 늙음과 병듦과 죽음(生老病死), 슬픔과 비애, 아픔, 통한, 고
통(憂悲惱苦)이 있다. "내가 밝힌 것은 바로 이 삶에서 이런 것들이 그
치는 것(즉,열반)이다."
'그러하니 말룽꺄뿟따야, 내가 설명해야할 것을 설명하고 설명하지 말
아야될 것을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을 명심하거라. 내가 설명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우주는 영원한가, 영원치 않은가? 등등(열 가지 견해;十
無記)을 설명하지 않았다. 말룽꺄뿟따야, 왜 나는 그것을 설명치 않았는
가? 그것들은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정신적인, 거룩한 삶에
근원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더러움에 대한
〕혐오와 〔집착을〕여읨, 〔둑카(苦)의〕그침, 평안, 〔지혜를〕깊이
꿰뚫음, 완전한 깨달음과 열반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네
게 그것들을 말하지 않은 이유이다.'
'그러면 말룽꺄뿟따야, 내가 설명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둑카dukkha
(苦), 둑카의 생겨남, 둑카가 그침, 둑카가 그치도록 인도하는 길을 설
명하였다. 말룽꺄뿟따야 내가 왜 그런 것들을 설명하였는가? 그것에 쓸
모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신적인 거룩한 삶에 근원적으로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더러움에 대한〕혐오와 집착을 여읨, 중
지, 안정, 〔지혜를〕깊이 꿰뚫음, 완전한 깨달음과 열반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설명하였다.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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