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423개의 게송을 다 외울 수 없을까
‘법구경-담마파다’책이 도착하였다. 택배로 신청한지 사흘만이다. 책을 보니 밝은 청색의 하드 카바에 두툼한 것이 보기에도 무게가 나가 보인다. 850여페이지에 달하는 새책 법구경을 보자 마치 초등학생이 빳빳한 새 교과서를 맞이 하는 듯한 기분이다.
책을 열어 보았다. 게송부분의 글자체는 큼지막하다. 다만 주석부분은 작은 글씨로서 빠알리 원어가 많이 보인다. 특히 빠알리어로 된 주석은 이제까지 시중에 선보였던 다른 법구경과는 확실히 차별화 된 것이다.
해제부분을 읽어 보았다. 책의 방향을 알려 주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하는 해제는 저자의 저작 의도가 가장 잘 나타나는 글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해제가 매우 방대하다. 무려 57페이지에 달한다. 해제에는 어떤 내용이 있을까.
해제를 보니 이제까지 궁금해 하던 내용이 많이 실려 있었다. 그것은 현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다른 편역자들의 책에 관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 박사는 거의 대부분의 책들이 영어와 일어로 된 법구경을 중역한 것이라 한다. 빠알리 원전을 보고 번역한 것은 단 한권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번역한 법구경-담마파다가 빠알리 원전에 입각한 최초의 번역이 될 것이라 한다. 그것도 스리랑카 정통적인 주석을 보완하여 초기불교적 관점에서 주석을 달았다고 하였다.
숫따니빠따와 법구경은 어떻게 다른가
법구경은 어떤 가르침일까. 이에 대하여 전재성 박사는 숫따니빠따와 비교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숫따니빠따가 정각을 이루신 직후에 아직 승단이 구성되기 전의 은둔자적인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면, 법구경은 정각을 이루신 이후의 45년간의 전 생애에 걸쳐 설하신 수많은 가르침 가운데 주요한 주옥 같은 시들로 형성된 것들을 선별하여 모아 놓은 경입니다.
(전재성 박사, 법구경-담마파다 머리말)
숫따니빠따와 법구경에 대하여 대표적인 원시경전이라 한다. 특히 숫따니빠따의 경우 부처님 ‘재세시’까지 거슬러 올라 간 것이라고 표현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전재성 박사의 글에 따르면 정각을 이루시고 난 후 승단이 본격적으로 구성되기 이전의 상황에 대한 것이라 한다. 그래서일까 숫따니빠따의 게송을 보면 단순하고 소박하고 기교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홀로 떠돌아 다니는 수행자의 모습을 보는 듯한 장면을 숫따니빠따에서 볼 수 있는데 다음과 같은 게송이 대표적이라 본다.
[소치는 다니야]
“나 자신의 노동의 댓가로 살아가고,
건강한 나의 아이들과 함께 지내니,
그들에게 그 어떤 악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세존]
“나는 누구에게도 댓가를 바라지 않아,
내가 얻은 것으로 온 누리를 유행하므로,
댓가를 바랄 이유가 없으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다니야경(Dhaniya sutta, 숫따니빠따 Sn1.2 7-8번 게송, 전재성박사역)
재가자 다니야를 만나서 대화 하는 장면이다. 소치는 농부 다니야는 자신만만하다. 다 자란 송아지도 있고 새끼송아지도 있고 새끼 밴 암소도 있어서 그 숫자가 무척 많고 더구나 착한 아내와 아들과 딸 등 자식이 있어서 남부러울 것이 없다. 그런 상태에서 ‘비가 내릴 테면 내려 봐라’하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아무 가진 것이 없지만 부처님 역시 비가 내려도 걱정없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이미 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 났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처님의 패기 넘치는 젊은 시절의 모습을 숫따니빠따에서 볼 수 있다.
이렇게 숫따니빠따에서의 부처님의 모습은 젋은 시절에 대한 것이 많지만 법구경은 부처님의 45년동안의 핵심가르침을 시로서 요약한 것이라 한다. 그래서 불교도가 아니어도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책이라 한다. 삶의 이정표를 제시하여 주기 때문에 종교나 믿음에 상관없이 지혜를 추구하는 자라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교양서라 한다.
그래서일까 법구경이 19세기 중반에 유럽에 소개된 이래 영역만도 100여종이 번역 되었고, 그외 일역, 독역, 한글역 등으로 번역되어 전세계적으로 번역이 되지 않은 나라가 없을 정도라 한다. 그래서 법구경에 대하여 서구에서는 ‘동방의 성서’라고 한다.
마음이 심란할 때
마음이 심란할 때 법구경을 읽으면 문구가 쏙쏙 들어 올 때가 있다. 그럴 때 마다 마치 나의 현실을 꼭 집어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렇게 부처님 당시 성립된 법구경이 과학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인들에게 공감을 주는 이유는 진리의 말씀, 지혜의 말씀이기 때문일 것이다.
진리와 지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에 아무리 과학만능주의 시대라고 해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런 것이 대표적으로 무상, 고, 무아일 것이다. 실제로 법구경에서 무상(아니짜), 고(둑카), 무아(아낫따)에 대한 게송(Dhp277-279)도 있다.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법구경의 문제점들
현재 시중에는 한글로 번역된 법구경이 많이 있다. 그런데 전재성박사는 빠알리 원전과 비교하여 보았을 때 번역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한글법구경은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을까.
전재성박사의 해제글에 따르면 국내에 많은 번역본이 있지만 대부분 일역이나 영역에서 옮긴 것이라 한다. 이에 대하여 표를 만들어 보았다.
No |
법구경 |
저자 |
비 고 |
1 |
히말라야의 지혜 |
서경수 |
-빠일리본의 라다크리슈난의 영문번역본을 중역함 -1996년 초판발행 -가장 널리 읽히고 있는 책 -중역에 의한 번역상의 심각한 왜곡 -문헌학적, 철학적 주석 없음 |
2 |
법구경 에피소드 |
정태혁 |
-빠알리본을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한역의 한글중역을 빠알리 시문번역인 것처럼 왕왕삽입 -번역의 일관성상실 -인연담을 극히 간략하게 소개 |
3 |
법구경 I, II |
거해스님 |
-법구경 원문조차 빠알리에 기초한 법구경이라 볼 수 없음 -붓다고사의 주석인 법구경-인연담에 대한 편저이지만 원문과 대조하면 원문을 자의적으로 간추리거나 부풀리고 때로 심각하게 왜곡함. |
4 |
법구경 |
석지현스님 |
-1994년 -주석없이 시구만 번역 |
5 |
법구경 |
활안 |
-2003년 -라다크리슈난의 영문번역본을 중역함 |
6 |
법구경 |
이병두 |
담마딘나 스님의 영역을 중역함 |
7 |
법구경 |
한갑진 |
-1994년 -나까무라 하지메에 의한 일역의 중역 (막스 뮐러류의 번역) |
8 |
진리의 말씀 |
법정스님 |
-1999년 -나까무라 하지메에 의한 일역의 중역 (막스 뮐러류의 번역) |
표와 같이 여러 종류의 법구경 번역서가 있지만 모두 영역본과 일역본의 중역이라 한다. 더 상세하게 말하면 라다크리슈난의 영문번역본과 나까무라 하지메의 일문번역본을 한글로 옮긴 것이다.
원전에 의지하지 않고 중역하였을 때
이렇게 원전에 의지하지 않고 중역하였을 때 필연적으로 부처님의 금구(金句)가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예를 몇 가지 샘플게송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주석적 번역이 대표적이라 한다. 영역이나 일역에서 주석에 설명되어 있는 문구를 근거로 하여 자유롭게 번역한 것을 말한다. 그러다 보니 원문에 없는 용어가 추가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97번 게송에서 빠알리어‘sandhicchedo’을 보면 전재성박사는 ‘결박을 끊은 님’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다른 번역자들은 각각 “모든 속박을 끊고” “윤회의 속박을 끊고” “생사의 올가미를 끊고” “세속 굴레를 벗어 버리고” “윤회의 줄을 끊어 버리고” “생사윤회의 얽매임을 끊어 버리고”와 같이 원문에 없는 ‘윤회’를 부가하여 자유롭게 번역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주석을 보고 번역한 대표적 사례라 한다.
423개의 게송을 다 외울 수 없을까
법구경에는 총 423개의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423개의 게송을 다 외울 수는 없는 것일까. 그것도 빠알리어로 외우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스리랑카에서는 실제로 423개의 게송을 모두 외우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스리랑카 빅쿠들이라 한다.
현재 동국대에서 공부하고 있는담마키티 빅쿠의 말에 따르면 스리랑카 빅쿠들은 법구경을 모두 외운다고 한다. 법구경을 외우지 못하면 구족계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라 한다.
법구경의 게송이 모두 423개이므로 하루에 하나씩 만 외워도 1년 2개월이면 다 외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 법구경 게송은 매우 짤막하다. 실례로 3번 게송을 보면 다음과 같다.
“Akkocchi maṃ avadhi maṃ 악꼿치 망 아와디 망
ajini maṃ ahāsi me”, 아지니 망 아하시 메
Ye taṃ upanayhanti 예 땅 우빠나이한띠
veraṃ tesaṃ na sammati. 웨랑 떼상 나 삼마띠
‘그는 나를 욕하고, 나를 때렸다.
그는 나를 굴복시키고, 나의 것을 약탈했다’라고
사람들이 이러한 적의를 품는다면
그들에게 원한은 사라지지 않는다.
(법구경, Dhp3, 전재성님역)
이렇게 짤막한 게송이 모두 423개이지만 모두 26개의 왁가(품)으로 나누어져 있다.
1번 야마까왁가(쌍의 품)의 경우 모두 20개의 게송이고, 2번 압빠마나왁가(방일하지 않은 품)의 경우 12개의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다. 짦게는 10개에서 길게는 20개의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5개 정도가 평균으로 보여 진다.
일생을 걸고 도전해 볼 만한 것
외울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왁가별로 외우면 되는 것이다. 한 왁가에 15개 가량의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이는 라따나경(보배경, Sn2.1)과 비슷하다. 라따나경의 경우 모두 17개의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라따나경을 이미 외운바 있다. 약 한달 보름 정도 걸렸다. 그렇다면 한 왁가에 게송이 15개 정도라면 충분히 외울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423개를 한꺼번에 외우려고 하면 질려 버리지만 26개의 왁가로 나누어 외우고자 한다면 각개격파식으로 하여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생을 걸고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슬슬 발동이 걸리는 것 같다.
2012-08-02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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