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인작은법회

순례법회는 공덕 쌓는 행위, 천장사와 수덕사순례

담마다사 이병욱 2017. 4. 17. 11:23

 

순례법회는 공덕 쌓는 행위, 천장사와 수덕사순례

 

 

자고 나니 세상이 바뀌었다!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바뀌었다는 말을 듣습니다.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소설을 보면 1950 6월 서울이 바뀐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인민군들이 쳐들어온 서울의 아침에 대하여 헐레벌떡 되돌아 온 숙부는 몹시 얼뜬 목소리로 밤사이에 세상이 바뀐 걸 알려 주었다.”라 했습니다. 작가는 그날의 묘사에 대하여 길가에 인민군을 환영하는 인파가 적지 않다고 했다.”라고 표현 했습니다. 하룻밤 자고 나기 세상이 바뀌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세상이 바뀐 것은 계절이 바뀐 것을 말합니다.

 

이른 아침 일터로 향하는 길에 본 세상은 확실히 바뀌어 있었습니다. 초록의 세상이 된 것입니다. 연중 세 번 세상이 바뀝니다. 한번은 신록일 때, 또 한번은 단풍들 때, 또 한번은 눈이 올 때 입니다. 모두 극적입니다. 어느 날 자고 나니 세상이 바뀐 것입니다.

 

거리에는 초록이 시작되었습니다. 느티나무와 은행나무에서 새싹이 돋아 나면 세상이 바뀌어 보입니다. 나목이 옷을 입은 것입니다. 이제 일이주 안에 일제히 모든 나무에서 싹이 돋아나 그야말로 신록의 계절이 시작됩니다.

 

생명의 계절에 순례법회를

 

신록이 시작 되는 생명의 계절에 순례법회를 떠났습니다. 2004년 불교교양대학에 입학한 법우님들의 모임의 순례입니다. 올해 처음 떠나는 순례에  총무소임자로서 준비를 했습니다. 맡겨진 소임을 다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무엇보다 숫자를 채워야 했습니다.

 

30여명 되는 회원 가지고는 41인승 버스를 채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가족과 함께 하는 순례법회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습니다. 홍보수단은 카톡방에 글을 올리고 문자메세지를 발송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통치 않았습니다. 최소한 20명 이상은 되어야 하고 30명 정도 되면 그나마 성공이라 보았습니다.

 

내가 이럴려고 총무했나?

 

문자메세지를 보내 참석여부를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침묵으로 일관하는 법우님들이 많았습니다. 그럴 경우 전화로 확인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상처를 받습니다. 이에 대하여 심야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카톡방에 남겼습니다.

 

 

 

어느 조직이나 단체이든지 리더가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쟁취한 것이든 아니면 맡겨진 것이든 리더가 되면 강한 책임감을 느낍니다동시에 자신의 명예도 생각합니다.

 

작은 법회모임의 총무를 맡고 있습니다. 2년 동안 맡으면서 많은 것을 것을 배웠습니다. 무엇보다 리더십입니다. 이전에 한번도 이런 역할을 맡아 본 적이 없기에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것을 경험합니다. 한마디로 그것은 '인내'라 말 할 수 있습니다.

 

인내심 없이는 리더역할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잘 되면 다행이지만 못되면 쏟아지는 원망과 비난입니다. 실패한 대통령들이 겪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조직이나 단체의 리더는 잘해야 본전이고 욕 안먹으면 다행일 것입니다.

 

리더에게 또하나 요청되는 덕목은 자비심입니다. 세상에 대한 자비심 없이는 훌륭하게 역할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측은지심이고 연민입니다. 부처님이 세상에 대한 자비심으로 법을 설하려고 마음 먹었듯이, 마음을 자비심으로 전환하면 분노의 마음은 이전 마음이 되어 버립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2년 동안 배운 것은 인내와 자비심 입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분노하지 않고 상대편의 입장에서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마음이 들어 갑니다. 결혼식날과 겹쳐서 참석할 수 없고, 회갑기념일이라 참석할 수 없고, 무엇보다 생업 때문에 참석할 수 없다는 말을 듣습니다.

 

들어보면 합리적이고 타당한 이유 입니다. 특히 생업 때문에 참가하고 싶어도 못 가는 형편은 안타깝습니다. 남들 다 쉬는 일요임에도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 고단한 삶의 현실 입니다. 그럼에도 어느 법우님은 매출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아무 소리 없이 과감하게 참가 하는 법우님도 있습니다.

 

모임과 인연맺은지 13년 되었습니다. 강산이 한번 변하고 3년이 지난 긴 시간입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고령으로 참가하기 힘든 법우님들도 생겼다는 것입니다. 50대가 60대가 되고, 60대가 70대가 되었을 때 몸상태가 예전 같지 않음을 말합니다.

 

살다보면 예기치 않게 병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몸이 아플 때 참가하고 싶어도 몸이 따라 주지 않습니다. 지난주 많이 아팠습니다. 또다시 그런 아픔이 발생한다면 참가할 수 없을 겁니다. 감기만 들어도 거동이 불편할 정도 입니다. 몸이 불편한 법우님들은 속히 쾌차 하시어 다음순례에는 참가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한명이라도 많이 참가하게 하는 것이 총무역할입니다. 때로 참가를 독려하는 메세지도 보내고 소원한 법우님에게는 전화도 걸어 봅니다. 전화걸면 대부분 반갑게 응대합니다. 수고한다는 말과 함께 격려의 말을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 전화를 받았지만 목소리를 듣고 끊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경우  "내가 이럴려고 총무했나?"라는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어느 조직이나 단체이든지 지향하는 이념이나 목적이 있습니다. 계모임이라면 돈을 불리는 재미가 있을 겁니다. 공부모임이라면 배우는 즐거움이 있을 겁니다. 무언가 이득이 있기 때문에 모임에 나갑니다. 우리 모임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모임은 법회모임 입니다. 13년 전 불교와 인연맺은 것을 시발로 지금까지 유지 되오고 있습니다. 회비 등으로 인하여 상당한 금액이 축적 되었습니다. 어떤 이는 축적된 금액이 모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라 합니다. 또 어떤 이는 금액이 크면 분열의 요인이 될 것이라 합니다. 그러고 보니 돈문제 때문에 분열이 일어난 뼈아픈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돈이 너무 많아도 모임이 유지 되는데 장애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돈이 없어도 모임이 유지 될 수 있습니다. 지난 1월과 2월 봉사단체 작은손길에서 매주 일요일 을지로 노숙자 음식봉사에 참여 한 적이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작은손길의 재정시스템은 철저하게 플러스마이너스제로시스템 이라는 것입니다. 수입과 지출을 제로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13년 동안 유지한 것입니다. 미래를 위한 어떤 돈도 축적하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봉사시스템을 만든 것입니다.

 

조직이나 단체가 분열하는 요인은 돈 때문입니다. 돈이 많이 축적되어 있다고 해서 더욱더 번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가 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

 

우리모임의 이득이라면 13년 동안 불교로 맺은 인연 입니다. 그 동안 법회모임과 순례, 연등축제, 경조사참여 등으로 형제자매 못지 않은 끈끈한  정을 유지해 왔습니다. 아마 살아가면서 이런 모임 보기 힘들 겁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이런 모임 갖기도 힘들 겁니다. 늙어 죽을 때 까지 이런 모임 하나 쯤 가지고 있다는 것은 행운일 것입니다. 바로 이런 점이 우리모임의 가장 큰 장점이자 이득이라 생각합니다.

 

불교와 인연맺은지 13년 되었고 동시에 법우님들과 알게 된지 13년 되었습니다. 그 동안 수 많은 법우님들이 떠 났지만 그래도 이렇게 순례 등을 통하여 얼굴을 마주 하게 된 것은 기적같은 일이라 여겨집니다. 개인적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이번 순례에 참여하지 못한 법우님들은 다음순례를 기약하면 됩니다. 비록 작은 모임에서 결속도에 대한 스팩트럼은 다양하지만 그래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법우님들이 있기에 힘을 받습니다.

 

 

장문의 메시지를 카톡방에 올린 시간은 새벽 3시입니다. 모임을 추진하는 입장에서 뜻대로 되지 않자 스마트폰 자판을 두드려서 심경을 토로한 것입니다. 그런데 카톡음성을 무음으로 하지 않은 법우님도 있었던 같습니다. 어느 법우님이 개별카톡으로 이 시간에 카톡이라...라며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순례법회준비로인해 신경많이 쓰시네요.”라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사전 준비작업

 

4 16일 일요일 순례법회의 날이 밝았습니다. 이번 순례는 천장사와 수덕사입니다. 오전에 천장사에 들러 일요법회에 참석하고 점심공양을 합니다. 수덕사로 이동하여 각자 수행정진의 시간을 갖는 일정으로 짰습니다.

 

여러 가지 준비를 했습니다. 가장 먼저 아침에 먹을 것을 챙겨야합니다. 전날 김밥집에 김밥30인분 주문을 했고 과일과 빵, 음료수를 샀습니다. 떡을 준비해야 하나 이번에는 빵으로 했습니다. 전날 늦게까지 빵 두 개를 비닐에 포장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냥 하나씩 나누어 줄수도 있지만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지난 1월과 2월 노숙자봉사할 때 바나나를 비닐에 두 개씩 포장했습니다. 낱개로 주는 것과 비닐에 넣어서 주는 것은 받아 들이는데 있어서 차이가 있습니다. 낱개로 나누어 주면 모멸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일이 두 개씩 비닐포장해서 주는 것입니다.

 

순례법회를 준비하는 총무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순례법회지와 사전 연락을 취하여 점심공양과 입장료 문제에 대하여 협의를 해야 합니다. 천장사의 경우 주지스님과 통화하여 일요법회 참석을 알리고 점심공양 해 줄 수 있도록 요청했습니다. 수덕사의 경우 공문으로 보내 입장료를 면제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습니다. 수덕사의 경우 단체 30인 이하는 개인입장료 3000원을 내야 합니다. 능인선원 금강회 운영위원장 보살님께 전화하여 공문발송토록 협조 요청했습니다. 이렇게 사전에 준비 해 놓은 결과 입장료를 내지 않고 29명 전원이 패스할 수 있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순례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됩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순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지만 친구나 지인과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일까 이날 총29명 중에 부부팀이 5팀이었고, 친구나 지인과 함께 온 팀이 4팀이었고, 개인은 6명이었습니다. 참가회비는 차등 적용했습니다. 나홀로 온 법우님은 3만원이지만, 함께 온사람들은 인당 25천으로 5천원 할인 적용 했습니다. 그 결과 29명이 참가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차량지원을 요청하고

 

능인선원 정문에서 아침 7 10분에 전세버스가 출발했습니다. 일요일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막히지 않았습니다. 행담도 휴게소에서 한번 쉰 후에 천장사 제1주차장에 도착하니 9 20분 정도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서산까지 불과 2시간 10분만에 도착한 것입니다.

 

주차장에서 천장사까지는 산길로 1키로미터 가량 됩니다. 걸어서 약 30분 정도 되는 거리입니다. 다리가 튼튼한 사람들은 걸어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나 노보살님을 위하여 사전에 차량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천장사주지스님은 사륜구동RV승용차를 보내주었습니다. 행자스님이 직접 운전해서 몸이 불편한 법우님들을 천장사 앞마당까지 모셔다 주었습니다.

 

천장사 가는 길에

 

천장사 가는 길은 목가적입니다. 해미IC를 빠져 나와 고북면에 진입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평화로운 풍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때묻지 않은 자연과 평화로운 농촌을 차창 밖으로 보면 마음도 차분해지는 것 같습니다.

 

천장사 가는 길은 이제 봄이 시작 된 것 같습니다. 도심에서는 열섬현상으로 인하여 벚꽃이 지고 있지만 이곳 천정사가는길에서는 이제 벚꽃이 한창입니다. 더구나 신록의 봄을 맞이하여 이곳 저곳 울긋불긋 꽃이 피어 있습니다.

 

 

 

 

 

 

경허와 만공의 바랑이 쉼터

 

화창하고 싱그러운 봄날입니다. 천장사 올라가는 길에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법우님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 느릿느릿 여유 있게 올라갔습니다. 가는 길에 팻말을 하나 보았습니다. 승용차로 제2주차장까지 차로 가는 사람들이라면 놓칠 수 밖에 없는 귀중한 정보입니다. 팻말에는 경허와 만공의 바랑이 쉼터라 하여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탁발 다녀오는 길, 바랑 맨 만공스님이 경허선사 뒤를 힘겹게 따르고 있었다. 갑자기 경허선사가 물동이를 인 동네 아낙에게 입을 맞추고 줄행랑을 쳤다. 만공스님도 정신없이 줄행랑을 쳤다. 산길로 접어든 경허선사가 길가 널찍한 바위에 걸터앉으며 입을 열었다. “만공아 아직도 바랑이 무거우냐?”

 

 

 

 

 

경허스님은 크게 견성을 했습니다. 크게 깨닫고 나서 천장사에서 보림기간을 가졌습니다. 그때 나이 어린 제자 만공스님과 일화에 대한 것입니다. 경허와 만공의 일화는 최인호의 소설 길없는 길에도 묘사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경허스님은 나이 어린 제자에게 왜 아직도 바랑이 무거우냐?”라 했을까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대사가 잘 설명해줍니다.

 

 

 

시냇가에서 아리따운 처녀가 장마 부러난 물 때문에 건너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이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처녀는 부끄러움을 참으며 젊은 만공스님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만공은 처녀에게 정색을 하며 화를 냈다.

 

"불가에서는 여자를 가까이 하면 파계라 합니다. 어찌 젊은 처자가 스님에게 업어달라는 부탁을 하시오! “

 

그러자 경허선사가 처녀에게 등을 내밀며 말했다.

 

"내가 도와드리지요. , 업히시오. "

 

경허는 처녀를 업어다가 건너편에 내려주었다. 그리고 한참을 걸어가는데 뒤따르는 만공스님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따졌다.

 

"스님, 수도하는 스님이 어떻게 젊은 여자를 업을 수 있습니까?"

 

그러자 경허스님께서 말했다.

 

"내려 놓아라!"

 

"?"

 

"나는 처자를 냇가에 내려놓고 왔는데, 너는 아직도 그 처자를 업고 있구나!”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의 처녀 일화)

 

 

나이 어린 만공스님은 내려 놓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스승에 대한 의심과 오해입니다. 이는 경허스님이 나는 처자를 냇가에 내려놓고 왔는데, 너는 아직도 그 처자를 업고 있구나!”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경허스님은 처녀를 내려 놓았습니다. 마음까지 내려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나이 어린 만공스님은 처녀를 마음속에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경허스님은 처녀를 내려 놓음과 동시에 그 마음 마져 내려 놓았음에도 만공스님은 여전히 마음을 내려 놓고 있지 않음을 말합니다.

 

경허와 만공의 처녀일화는 매우 유명합니다. 바로 그 일화의 현장이 바로 천장사 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차타고 가서는 알 수 없고 오로지 걸어 가야만 발견할 수 있는 넓직한 너럽바위가 그것입니다.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이 그 바위에 앉아서 내려놓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평화롭고 고요한 분위기

 

천장사에 도착했습니다. 자주 오던 곳입니다. 허정스님이 주지로 있을 때 여러 차례 왔습니다. 천정사 일요법회회원들과 순례도 다니고 해미읍성 연등축제도 함께 하는 등 천장사는 매우 익숙합니다. 그러나 능인37기 법우님들은 매우 생소한 곳입니다. 이제까지 13년동안 전국방방곡곡 이곳저곳 안다녀 본 곳이 없을 정도로 수 많이 순례 다녔지만 한명 빼고 모두 천장사가 처음입니다.

 

천장사는 감추어져 있는 절입니다. 연암산 바로 아래 깊숙한 곳에 숨어 있다시피 해서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일까 오염이 덜 된 절이라 볼 수 있습니다. 절 입구에 제1주차장 주변에는 먹거리 가게도 없고 노점하는 할머니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평화롭고 고요한 분위기라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천장사 경내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나 수십명에 달하는 순례단이 도착하자 고요한 산사는 활기가 넘쳐 납니다.

 

예불과 법회에 참석하고

 

오전 10시 예불에 참석했습니다. 천장사는 인법당이라 법당 내부가 몹시 비좁습니다. 이날 천장사일요법회팀과 순례팀 합하여 약 40명 가량이 함께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법당 바깥 마루에도 사람으로 가득했습니다.

 

 

 

 

 

 

 

 

 

 

 

 

30분 정도 걸리는 의식이 끝났습니다. 이어서 경전공부시간입니다. 일아스님의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경전을 교재로 독송했습니다. 그리고 주지스님이 이를 설명하고 해설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 주지스님은 법명은 백운스님입니다. 작녁 10월 허정스님 후임으로 수덕사 교무국장 소임을 보다가 천장사로 발령받은 것입니다. 스님은 누구나 알아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차분하게 문답식으로 법문했습니다.

 

 

 

 

 

 

 

 

주지스님과 기념촬영을

 

10시에 시작하는 사시예불에서부터 일요법회까까지 1시간 30분 가량 걸렸습니다. 이런 경험은 흔하지 않습니다. 순례법회 가면 대게 스님들을 볼 수 없습니다. 보기도 어려울 뿐더러 법문을 듣는 것은 더욱더 희유한 일입니다. 그러나 멀리서 온 순례팀을 위하여 한시간 반동안 함께 해 주었습니다. 법회가 끝나고 기념촬영을 제안했습니다. 천장사 인법당 계단에서 주지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즐거운 점심공양시간

 

천장사일요법회참석으로 오전일과가 끝났습니다. 공양식당으로 이동해서 점심공양을 했습니다. 천장사에 오닌 모든 것이 익숙합니다. 천장사일요법회팀도 익숙할 뿐만 아니라 공양주보살님도 익숙합니다. 순례팀과 함께 왔음을 말하자 반갑게 맞이 해 줍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가장 즐거운 시간은 점심공양시간입니다. 일요일 새벽같이 일어나 산길을 걸어 왔습니다. 배는 적당히 고파 있습니다. 깊은 산중에서 청정한 재료를 사용한 식단이 꾸려졌습니다. 모두 함께 모여서 식사했습니다. 그래서 식구’라 할 것입니다.

 

 

 

 

 

 

 

 

 

 

 

 

 

밥을 함께 먹는다하여 식구라합니다. 지난 13년동안 법우님들과 함께 밥을 먹었습니다. 이제는 식구와 다름 없습니다. 형제 자매와 다름 없습니다. 자녀 결혼식과 같이 즐거운 일에 함께 하고, 부모님 부고시에 슬픔을 함께 합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합니다. 옷깃인연을 오백생이라 하고 부부인연을 천생이라 합니다. 옷깃인연이 아마 법우님들과의 인연이고, 부부인연은 천생이기 때문에 천생연분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인연이 악연이 되지 않고 선연이 되었으면 합니다.

 

밸라거사님의 우렁찬 목소리

 

점심공양이 끝나고 사찰소개시간이 있었습니다. 천장사일요법회팀 밸라거사님에게 소개를 요청했습니다. 밸라거사님은 서울에서 천장사까지 매주 일요일 법회에 참석하는 열성불자입니다. 천장사가 좋아서 천장사에 템플스테이 하기도 합니다.

 

밸라거사님은 시인이자 소설가이기도 합니다. 현재 천장사 카페 일요법회방에 3년째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일요일 천장사 순례에 대하여 0416,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려 놓았습니다.

 

밸라거사님은 목소리가 좋습니다. 이전에 불광사 남성합창단이었다고 합니다. 또 목소리가 크고 우렁차서 고교시절 연대장 했다고 합니다. 별명 밸라는 합창단 시절 누군가 붙여준 것이라 합니다.

 

밸라거사님은 특유의 우렁차고 바리톤음성으로 순례객들에게 천장사를 소개했습니다. 천장사 역사와 함께 특히 최인호의 길없는 길에서 묘사된 경허스님의 나체법문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원성문(圓成門), 깨달음을 원만히 이룬 방

 

밸라거사님의 해박한 지식과 상세한 설명에 순례객들은 진지하게 경청했습니다. 특히 경허스님이 머물던 작은 방, 일명 경허방에 대하여 장시간 설명했습니다. 밸라거사님에 따르면 한평정도 되는 매우 작은 방 입구에 한자로 된 팻말에 대하여 설명했습니다. 흘려쓴 한자에서 가운데 글자를 잘못 읽으면 원구문이라 합니다. 그러나 원성문(圓成門)’이라 합니다. 원성문은 깨달음을 원만히 이룬 방라 합니다.

 

 

 

 

 

 

 

 

 

경허스님방은 매우 좁습니다. 천장사에서 하루 밤 머물 때 경허스님방에서 잠을 자면 좋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기운을 느낀다고도 합니다. 천장사가 기운이 센 곳에 위치해 있는데 특히 경허방이 그렇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 법우님들은 경허방에 들어가 삼배를 하는가 하면 잠시 입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경허방에도 변화가 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수염난 모습의 컬러풀한 경허스님의 영정이 있었으나 지금은 단정한 모습의 흑백영정이 걸려 있습니다.

 

 

 

 

 

 

 

 

 

 

 

 

 

 

경허선사필 염궁문 (念弓門)

 

천장사에는 경허스님의 흔적이 이곳저곳에 있습니다. 인법당 마루에서 본 액자도그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한자인지 알 수 없습니다. 다면 경허선사필이라는 글씨와 낙관이 찍혀 있어서 경허스님의 글씨일 것으로 미루어 짐작합니다.

 

 

 

 

 

 

 

의문의 글씨에 대하여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습니다. 월간해인에 따르면 염궁문 (念弓門)’이라 합니다. 그래서 염궁선원(念弓禪院)이라는 명칭이 생겨난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작녁 11월 염궁선원은 불에 타 버렸습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산불로 번지지 않고 무엇보다 인법당이 보호 되었다는 것입니다. 염궁선원이 불에 탈 때 불길이 위로만 솟구쳐서 큰 화재로 번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참고로 염궁선원은 2003년 석청스님이 개설하였으며 2009년 선일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선방이 운영되었습니다. 가장 활성화 된 것은 허정스님이 주지로 있던 2012년부터 2016년까지 4년간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선원건물은 불에 타 버렸습니다.

 

수월후원에서

 

밸라거사님은 순례팀을 이곳저곳 안내했습니다. 대게 경허방, 만공방, 수월후원, 혜월동굴순입니다. 수월후원은 수월부엌으로 잘 알려졌습니다. 절에서는 부엌이라는 말 대신 후원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일자무식인 수월스님은 오로지 신묘장구대다라니주력 하나로 깨우쳤다고 합니다. 하루는 부엌에서 불을 지피며 밥을 하다가 깜박 졸았다고 합니다. 다라니를 독송하다 잠든 것입니다. 그런데 아랫마을 사람들 보기에 천장사에 불이난 것입니다. 불길은 크게 솟구쳐 올랐다고 합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양동이 등에 물을 담아 험한 산길을 단숨에 올라 왔다고 합니다. 올라와서 보니 놀랍게도 잠든 수월스님의 몸에서 방광 한 것이라 합니다. 오늘날 천장사 인법당 후원에서 수월부엌을 볼 수 있습니다. 솥뚜껑을 여니 김이 모락모락 나옵니다.

 

 

 

 

 

 

 

혜월동굴에서

 

밸라거사님이 마지막으로 안내한 곳은 혜월동굴입니다. 경허선사의 세 제자를 삼월이라 하는데 혜월, 수월, 만공이라 합니다. 그 중에 혜월선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혜월동굴입니다.

 

혜월동굴은 앉으면 머리가 닿을 정도로 낮습니다. 그러나 동굴에 앉아 있으면 고요합니다. 삼면이 두터운 바위로 차단 되어 있어 소음이 들리지 않습니다. 앞은 툭 터져 있어서 바람소리, 새소리가 들립니다. 앉은 채로 몇 일만 있으면 자동적으로 도인이 될 듯 합니다.

 

 

 

 

 

 

 

 

 

밸라거사님의 안내로 천장사 이곳저곳 구석구석 돌아 보았습니다. 바리톤음성으로 우렁차게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신 거사님에게 감사드립니다. 더욱 감사할 일은 행자스님입니다. 다리가 불편한 법우님들을 위하여 내려가는 길에 두 번씩이나 차량지원을 해 준 것입니다.

 

수덕사를 향하여

 

한적하고 여유롭고 화창하고 싱그러운 천장사길을 다시 내려 갔습니다. 다음 목적지 수덕사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수덕사는 천장사와 분위기가 180도 다릅니다. 꽃피는 봄을 맞이하여 전국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든 것입니다. 기념품 가게와 음식점 등 사하촌이 길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매표소에 도착했습니다. 미리 협조공문을 보냈기 때문에 입장료를 내지 않고 29명 모두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미리미리 준비한 보람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수덕사 관람은 천장사와 달리 자유입니다. 각자 자유롭게 2시간 동안 관람하고나 기도하거나 수행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옆모습이 아름다워, 수덕사 대웅전

 

수덕사에 가면 가장 먼저 가는 곳이 대웅전입니다. 수덕사 대웅전은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합니다. 고려시대 1308년에 건립되었다고 하니 700년 가량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옛날 그 모습 그대로라는 것입니다. 자연재해나 전쟁에도 견디어 낸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쳐다보면 볼수록 보물처럼 느껴집니다. 현재 국보 4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수덕사는 옆모습이 아름답습니다. 팔작지붕형태와는 다른 맞배지붕형태입니다. 이런 식의 건물은 일본사찰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삼국시대 우리나라 장인들의 영향을 받아서일 것입니다. 보면 볼수록 품격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건물입니다. 수덕사에 가면 늘 옆모습을 봅니다. 앞 모습보다 옆모습이 더 아름다운 건물이 수덕사 대웅전입니다.

 

 

 

 

 

 

 

7백년이라는 시간

 

수덕사 대웅전은 7백년 되었습니다. 목조건물이 어떻게 7백년 동안 그 자리에 훼손되지 않고 서 있는지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그래서 나무를 만져 보았습니다. 아름드리 나무는 갈라져 있고 패어져 있기도 합니다. 이대로 또 천년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지금 이순간 7백년 세월을 맞이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수덕사 대웅전은 7백년 전에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7백년 전에도 스님이 있었고 신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스님이 있고 신도들이 있습니다. 7백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뛰어 넘어 그때 당시 그렇게 했듯이 지금도 스님들은 예불하고 신도들은 불공을 드리고 있습니다.

 

 

 

 

 

 

 

안은한 꽃대궐

 

수덕사는 아름다운 절입니다. 사월 꽃피는 시절에 본 수덕사는 꽃대궐입니다. 그리고 수덕사는 안은합니다. 높은 산도 없고 암반으로 된 산도 없습니다. 야트막한 산 아래 만년 푸르른 노송으로 가득합니다. 이곳 수덕사에 오면 안은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견성암에서 등을 달고

 

주어진 시간은 두 시간입니다. 수덕사에 가면 정혜사까지 가 보아야 수덕사에 갔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견성암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비구니스님들의 거처이자 수행도량입니다. 이전에 허정스님과 천장사일요법회팀과 와 본적이 있어서 익숙합니다.

 

견성암에 이르니 입구에서 비구니스님이 차나 한잔 하고 가라고 합니다. 소임을 맡은 스님입니다. 자연스럽게 불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일년등을 달았습니다. 그러나 견성암은 한적합니다. 수덕사 경내의 경우 인파로 북적이지만 견성암을 찾는 불자들은 매우 적습니다.

 

 

 

 

 

 

 

 

마무리모임을 갖고

 

오후 4시가 되자 수덕사 순례가 끝났습니다. 4시부터 마무리 모임이 있습니다, 주차장 인근 식당에서 순례팀 전원이 모였습니다. 올해 첫 순례인원 29명이 모이니 일렬로 된 테이블 7개를 차지 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순례가 끝나면 곧바로 차에 타고 귀가길에 올랐습니다. 이번에는 방법을 달리 해서 소통의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음식을 나누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갖기 위함입니다. 모임을 이끌고 있는 회장님이 크게 한턱 냈습니다.

 

 

불교에서 음주는 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불음주계라 합니다. 그러나 사회생활하면서 오계를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일까 초발심자경문에서는 개차법을 적용한다고 합니다. 또 어떤 이는 계를 지킬 자신이 없어서 계를 받지 않으려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계는 평생지키는 것이라 합니다. 그래서 학습계율(sikkhāpada)’이라 합니다. 상황에 따라 지켜도 되고 안지켜도 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지키는 것이 오계라 합니다. 그래서 빠알리 경장과 율장에서 음주계에 대하여 이런 가르침이 있습니다.

 

 

Surāmerayamajjapamādaṭṭhānā veramaī

sikkhāpada samādiyāmi.

 

곡주나 과일주 등의

취기있는 것에 취하는 것을 삼가는

학습계율을 지키겠나이다.”

 

 

이것이 불음주에 대한 학습계율입니다. 피치 못하게 어쩔 수 없이 계를 어겼더라도 참회를 하며 다음 번에는 계를 지키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계를 지킬 자신이 없어서 계를 받지 않는 것도 아니고, 계를 상황에 따라 파하기도 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 지켜야 할 학습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간다거나 자제한다는 말이 들어갑니다.  

 

마무리모임에서 음식을 함께 나누며 식사했습니다. 마무리모임에서 우리는 하나다’ ‘우리는 가족이다라는 뜻으로 건배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취하도록 마시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 입에 대기만 하고 내려 놓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순례법회는 공덕 쌓는 행위

 

올해 처음 간 순례법회는 여법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비록 버스안이지만 출발할 때 삼귀의를 하고, 귀가할 때는 사홍서원과 산회가로 마무리했습니다. 모처럼 오랫만에 만난 법우님들과 고요한 산사를 찾아 법문을 듣고 화합하는 자리를 갖기도 했습니다. 그런 순례법회는 공덕쌓기입니다.

 

 

 

 

 

 

 

 

 

부처님은 초기경전에서 순례를 강조했습니다. 디가니까야 마하빠리닙바나경(D16)’에 따르면 부처님은 사대성지를 순례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마치 오늘날 이슬람들이 메카를 순례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은 탄생지. 정각지, 전법지, 열반지를 순례 했을 때 큰 공덕을 쌓을 것이라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누구든지 이러한 성지순례를 한다면, 그들 모두는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의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D16) 라 했습니다.

 

부처님은 사대성지를 한번쯤 가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도순례할 형편이 되지 않는다면 국내성지라도 순례하면 공덕이 될 것입니다. 불상에 참배하거나 탑묘를 도는 행위는 사대성지를 가보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측면으로 본다면 순례법회는 큰 공덕을 쌓는 행위라 볼 수 있습니다.

 

 

 

 

 

 

 

 

2017-04-17

진흙속의연꽃